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2장 탐라국의 사정
“하여. 그대는 지금 고려 조정이 성주를 지지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오?”
동도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처음 고려에서 온 판관(김구)이 성주청을 방문하였다는 소식만 들었을 때만 하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려의 관리가 성주청을 방문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나 방문하는 것 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국에서도 명성 있는 용강후가 친히 탐라로 와서 성주청을 방문하고 성주가 문신과 자주 만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부터 불안감은 순식간에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고려가 성주의 진하사는 받아들이나 왕자의 경하사가 거절하는 사건까지 벌어지자 안 그래도 큰 불안감은 이제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
더 이상 동도리의 불안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우연도 한, 두 번이지 계속되는 우연은 의심과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도 성주는 친 고려파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 여기까지 오면 의심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어차피 성주가 제 사욕만 챙기며 대국에 알랑방귀를 뀐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오? 지금 사태도 대국 조정의 문제가 해결되어 성주가 끌어들인 뭍 놈(문신)을 처벌할까 기대하였지만 그게 아니어서 이전으로 돌아간 것뿐이오. 하지만 본국의 사정은 변한 그대로이니 뭍 놈이 안정을 다진다 한들 우리가 더 강성한 것은 변함이 없으며 저들이 불리한 것도 변함이 없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고려가 개입이라도 한다면 현 전황은 단번에 뒤집힐 것입니다. 고려는 수천, 수만의 대군을 단숨에 투입할 수 있지만 우리는 고작해야 1천도 되지 않습니다. 노비들을 다 합쳐야 1천이 겨우 될지 모르겠지요.”
동도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탐라는 성주와 왕자로 세력이 나뉘어 있었는데 본래부터 비옥한 농토를 갖춘 성주 쪽이 그 세력이 조금 더 강했다.
물론 강하다고 하여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어서 고려에 입조 이후 성주가 뒤바뀌는 일이 있었고, 지금 와서는 고려의 외부 세력을 정주시키며 생긴 반발에 그 차이는 더욱 좁아졌다.
여기에 더해 고려의 조정에 권력이 다시 뒤바뀌면서 무신들이 장악하던 시절 힘을 키운 가문 또한 고려의 눈치를 보고 있게 되면서 성주가 외부에서 그들을 끌어들인 것은 자충수가 되어 지금 양 세력은 길항 혹은 왕자 측이 우세였다.
하지만 그런 우세 따위는 고려가 개입이라도 하는 순간 너무나 무의미하게 변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고려 때문에라도 성주를 치지 말란 말인가.”
“아닙니다. 전하. 성주를 제거하도록 합시다!”
양원의 통탄 어린 말이 나오기 무섭게 부천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에 양원과 동도리는 어이가 없었다.
부천은 지금 탐라의 국력을 대체 어느 정도로 보고 있는가?
아니, 탐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힘을 어느 정도로 보고 있고, 고려를 얼마나 얕잡아 보고 있으면 이 상황에서 성주를 제거하자고 자신만만할 수 있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경은 이 상황에서 성주를 치자는 말을 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만일 동도리의 말이 사실이라 하여도… 아니 사실이라면 더욱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주가 대국을 조정하거나 이용할 능력이 있는 자입니까?”
질책하듯 묻는 양원의 질문에 부천은 대답과 함께 엉뚱한 질문을 던졌고 양원은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럴 턱이 없지.”
그렇게 유능한 자였다면 탐라 토호 절반 이상이 자신에게 넘어오는 사태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에 부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성주는 그렇게 유능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대국이 성주와 손을 잡으려는 듯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동도리의 말과 함께 우리를 불안하게 한 것들은 전부 대국의 사람이 성주에게 간 것들입니다. 물론 성주가 우리들 몰래 먼저 대국과 소통하여 용강후를 불렀다면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우리들은 전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성주라는 자리 본국의 군왕이라고는 하나 대국에서는 그 격은 보름달 옆의 반딧불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허어. 그런가! 그랬던 것인가. 알겠도다. 그대들도 지금 부천 공이 말하는 것이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아!”
부천의 말이 끝나자 가장 먼저 양원과 동도리가, 그리고 그 뒤로 다소 시간 차는 있었지만 다른 토호들 중에서도 부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눈치챈 이들이 나왔다.
즉, 성주가 고려를 꼬드긴 것이 아니라 고려가 성주를 택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눈치챈 이들 중에도 그 의미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부천 공께서 말하는 바는 알겠으나 그렇다면 더욱 힘든 것이 아니오? 대국이 그렇게 정했다면 우리가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오?”
“아니오. 그렇지가 않소. 생각해 보시오. 대국이 무슨 이유로 유능하지도 않은 성주를 택한 것이겠소?”
“택한 이유? 그야….”
부천의 반문에 대답을 하려는 토호의 말을 부천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설명했다.
“그렇소! ‘성주가 성주’이기 때문이오. 그리고 성주라는 자리가 무엇이오? 바로 ‘대국이 인정한 탐라국의 왕’이오. 성주가 아무리 무능하고 볼품없다 한들, 대국에서는 인정한 번왕의 자리가 성주인 이상 본국의 가장 높은 자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소. 즉, 대국이 무엇을 꾸미고, 무엇을 생각하여 본국에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나 오늘날 성주에게 사람을 보낸 것은 그의 능력 유무와 별개로 고려의 번왕이라는 위치 때문이오. 하면 우리는 그 점을 인지하고 이용하면 된다는 말이오.”
“…이용한다니 어떻게 말이오? 성주가 고깝긴 하나 경의 말대로 본국의 군주인 것은 천하가 알고, 역사가 증명하지 않소?”
“세상 여러 나라들에 비해 본국의 특성이 있으니 바로 성주가 대국의 태조 시절부터 대국의 번왕이나 본국에는 대국의 태조께서는 인정한 번왕이 성주만이 아니란 것이지 않겠소?”
부천이 거기까지 말하자 그제서야 미처 이해하지 못한 토호들의 입에서도 탄성이 흘러나왔다.
“역사를 상고하면 대국이 본국에 이러저러한 법을 실시하거나 군을 보내는 그 행동과 지시 그 기저(基底)에는 본국이 평화 이전에 대국에 피해를 가거나 소란이 가거나 혹은 저항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소. 그리고 대국이 그러한 조치를 취할 때는 언제나 대국의 태조가 책봉한 번왕직인 성주를 통한 것이오. 하면 우리가 이제 해야 할 것은 간단하지 않겠소? 대국을 지성을 다해 설득하는 것이오.”
부천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 짓고는 빙긋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토호들은 아귀가 떨어진다 여겨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대국이 성주를 택한 것이 그러한 이유라면 대국이 우리를 택하게 하면 될 뿐이 아니겠소. 우리 토호들이 모두 입을 모아 현 성주의 무능함과 문제를 규탄하고 여기 계신 왕자 전하를 탐라의 유일한 번왕으로 책봉을 청한다면은 대국에서도 알아주실 것이오.”
“그렇소. 대국에서 우리 번국의 문제를 꺼려한다면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도를 전해주면 될 뿐이오이다.”
토호들의 반응에 부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아. 자아. 모두들 진정하시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오. 지금 우리의 경하사가 내쳐졌다는 것은 대국에서는 이번 기회에 성주와 왕자 이 자리를 처리할 요량인지도 모르오. 이것이 고착되기 전에 우리의 뜻을 전달하여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소.”
“…부천 어르신의 말씀이 참으로 맞습니다. 소인이 오늘 탐라 제일의 현인의 통찰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껄껄껄! 그저 늙은이의 소견에 불과한 것을 현인의 통찰력이라고 과대평가하여주니 듣잡기 민망하오. 오히려 그대가 전체적인 상황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 늙은이가 어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겠소?”
젊은 동도리와 부천의 대화를 듣던 양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천공도, 동도리공도 둘 모두 나의 장자방과 위징이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군을 일으키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야. 우리의 군이 저들보다 많은 것과 섬의 민심이 어디로 향하였고,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대국에서 본국을 통어(統御)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 알릴 수 있지 않겠는가?”
* * *
토호들을 돌려보낸 후, 양원은 정원을 거닐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사실 부천의 말에 굳은 표정을 풀고 토호들에게는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견 부천의 의견으로 답답함과 막막함이 해소되긴 하였으나 일소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고려는 성주를 선택하고 이쪽은 경하사 조차 막힌 현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부천은 성주 대신 왕자인 자신을 대체하면 될 뿐이라고 쉽게 말했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성주가 우선이고, 왕자가 예비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부천의 말대로 고씨 성주의 역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자신들이 성주를 밀어낸다 하더라도 고려가 성주를 고집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부천은 그것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지지가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였지만 그 말 또한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의 지지가 없다면 혹은 사라진다면 언제든지 위태로워진다는 말이 된다.
“나를 단순하게 본 것인가? 아니면 시험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인가?”
탐라 토호들 사이에서 성주 고적에 대해 대체적으로 무능하다. 혹은 무능하진 않다는 평가로 양분된다면 왕자 양원에 대해선 대부분이 평가가 좋았다.
이는 양수의 난 이후 흔들리던 왕자의 세력을 바로 잡고 단번에 성주와 길항을 이룰 정도로 성장시킨 것이 바로 양원의 대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양원은 유능했다.
그런 그였기에 부천의 계획이 그대로 성사될 시 도래할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미래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었다.
‘내게는 성주 자리를 줄 테지만 자신들의 자리와 대우를 확실히 해달라 이것인가?’
설마 이 정도의 생각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과 분한 감정과 함께 성주와 고려라는 큰 문제를 앞두고 이러한 내부 문제도 신경 써야 하는 처지에 한숨이 나왔다.
이는 삼한시대 이래로 하나의 나라이되 제대로 중앙집권이 되지 않았고 공고한 통일 체계를 이룩하지 못한 탐라의 단점이었다.
양원은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안에 순순히 응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고려가 자신과 성주 둘 중 무얼 선택해 줄지 불안하고, 설령 성주가 되더라도 토호들의 지지로 군약신강의 체제가 될까 걱정이 된다면, 자신은 고려가 자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하고, 탐라들의 지지도 흔들리지 않게 할 방도를 모색하면 된다.
예를 들어 저들에게 ‘자신 외에 선택지들을 모조리 제거’해 버린다면….
‘과연 그때도 자신을 고르지 않고 있을수 있을까?’
* * *
왕손을 축하하러 온 사절 중 동요국에서는 정식으로 경하사의 사신이 왔으나 남송에서는 송상들만 왔을 뿐 조정에서 보낸 사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송상들 중에는 공식적으로는 조정에서 보낸 사신은 아니라곤 하나 3차 여몽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송 조정의 뜻을 전하기 위해 왔으며 정식 수교 이후로도 상인 외교의 일환으로 남송의 뜻을 대변하던 송상 ‘이연보’도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도 비공식 사절로서 온 것이었다.
“고려인들은 생선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보니 어선들이 많은 것을 보니 올해는 이전보다 많은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송상 이연보가 지금 말한 것은 고려의 어렵 기술이 뛰어나서 물고기를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아니다. 흡사 수양제가 국경을 순시하다가 동돌궐에게 갔을 때 앞서 방문한 장손성(長孫晟)이 동돌궐 계민가한의 막사 앞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천막 앞 풀뿌리에 좋은 향이 난다’고 말한 것과 같다.
장손성의 말에 계민가한은 처음에는 그 뜻을 몰라 직접 잡초를 뜯어 맡다가 ‘중국의 천자가 방문하면 모든 잡초를 제거하되 향이 나는 향초만은 둬도 좋다. 그런데 여기에 잡초가 무성하니 향초라고 한 것이다.’ 라는 장손성의 말을 듣고 계민가한은 양제가 오기 전에 직접 칼을 뽑아 잡초를 제거했다고 한다. 지금 이연보의 말도 고려에서 선박을 만들고 있는 것을 돌려 말하는 것이다.
“어디 어선만 있겠는가? 상선과 조운선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쪽에서 선박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고 딱히 숨기지도 않았고 그것을 알게 된 남송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따질 거라고도 예상한 일이다.
단지….
‘정사나 관료가 아닌 상인으로 보내 묻는다라….’
# 작가의 말
*탐라 토호 부천, 동도리는 모두 작중 창작 인물입니다.
탐라국의 인물들은 기록이 너무 적어 앞으로 나올 인물들도 대다수가 창작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