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64
264화
12장 뒤처리
탐라 왕자군 사상자 138명, 포로 600여 명. 고려군 사상자 9명.
압도적인 교전비를 내며 왕자군을 막은 고려군은 얼마 뒤 부천이 사로잡은 양원을 인수받으면서 탐라 왕자의 난을 완전히 진압할 수 있었다.
당연히 죽다 살아난 성주 고적은 성 밖으로 나와 김방경을 맞이하고는 크게 환대해 주었다.
“자. 자. 어서 드시오. 천군 덕분에 성의 모두가 살게 되었으며 소방도 구원을 받았으니 장군께서는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이나 다를 바 없소.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장군께선 어떻게 아조에 재난이 있음을 알고 때맞춰 온 것이오?”
“소장은 그렇게 신명(神明)이 있는 장수가 아닙니다. 그저 수적의 잔당이 탐라로 갔을지 모르니 확인해 보라는 태자 전하의 지시에 따라 섬에 왔다가 여기 있는 문공의 이야기를 듣고 적도들을 소탕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공은 소장이 아닌 태자 전하께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허어. 평소 천조의 태자 전하께서 영명하실 뿐만 아니라 신명까지 갖춘 천하의 준걸이라는 이야기는 나도 익히 들었으나 거기까지일 줄이야. 과연 대국이오이다.”
“하온데 저하. 이번에 잡은 이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들은 아조의 번국인 탐라국에 큰 분란을 일으킨 자들입니다. 이는 탐라국의 일이기도 하나 동시에 우리 고려와도 연관된 일입니다. 당연히 그 죄는 역모에 준하니 천조에 끌고 가 벌을 내리고자 합니다.”
김방경의 말에 성주와 문신의 표정은 멈칫 굳었고 성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군. 그렇다면 끌고 갈 죄인들은 얼마나….”
“그야 이번 난에 연루된 도적들 전부가 아니겠습니까? 토호들은 물론 병사들로 참전한 그 가솔들까지 전부 끌고 간다면 다시는 변방이 시끄러워질 일이 없을 것입니다.”
“헙!”
김방경을 대신하여 대답한 유갑수의 말에 성주와 문신은 입을 다물었다.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왕자 양원을 지지한 그들을 동정하며 가혹하다는 뜻이 아니라, 탐라국에게 그만큼이나 가혹한 처사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왕자를 지지하는 세력은 대략 잡아도 섬의 절반에 해당했다.
그런데 그와 연루된 토호와 백성들을 모조리 끌고 가겠다는 것은 사실상 탐라국의 인구 절반을 끌고 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장군, 아니, 대인.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시오.”
자력으로 해결했다면 탐라 내부의 문제라는 논리로 주장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오로지 고려군만이, 그것도 고려 태자의 견룡군이 해결한 일이었으며, 성주의 병사들보다 많은 그 군대가 지금 눈앞에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주둔하고 상태였다.
명분과 무력 그 무엇도 불가능한 지금, 성주는 자신의 아들뻘 되는 김방경을 대인이라고 부르며 선처하여달라고 간청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저하. 지금 혹 고려와 탐라 양국에 분란을 일으킨 자들을 옹호하시는 것입니까?”
“겨, 결코 그런 것이 아니오. 저들 중에는 수장에 의해 모른 채 연루된 이들도 있으며 강제로 연루된 이들도 많소. 부디 그들을 구별하고 용서하여 달라는 말이오.”
김방경에게 향한 성주의 간청을 유갑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리고 반은 노한 듯한 표정으로 성주에게 되물었다.
용강후와의 대화 이후 나름 스스로의 위상과 자존감이 늘어난 성주였지만 겁박하듯 묻는 유갑수에게 아무런 말도 불만도 말할 수 없었다.
전장에서 왕자군을 도륙하듯이 활약한 장수가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며 묻자 절로 위축된 것도 있었고, 실제 탐라국의 역대 성주가 받는 무산계의 품계를 고려하면 중랑장보다 아래인 것도 많았으니 용강후 정안연과의 대화 이전을 고려한다면 고려의 중랑장이 하대나 하오체를 하더라도 할 말이 없던 것이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저하! 국법에 의하면 역모는 참형이 기본이고 그와 연관된 이들도 연좌제를 받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저하께서는 감히 천조에 창칼을 들이댄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시는 것이 흡사….”
변명하듯 말하는 고적의 답변에 유갑수는 버럭 호통을 치듯 대답했고, 그 호통에 고적과 문신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오만한 유갑수와 달리 김방경은 예를 알고 있어 유갑수를 말리고는 공손히 대신 대답하였다.
“그만. 유 중랑장은 그만하라. 실례하였습니다. 저하.”
“괘, 괜찮소. 그러나 김 대인. 정말 그들을 전부 끌고 가야겠소? 부디 관용을 베풀어주시오.”
하지만 겁을 먹더라도 성주는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국의 인구 절반 가까이가 사라지는 것을 두 눈 뜨고 그대로 관망할 수는 또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노력이 통한 것일까.
김방경의 고개는 결국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자의로 가담한 이들과 그 가솔들을 제외한 이들의 처우는 성주 저하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용강후 저하께서도 저하께 알려주셨다시피 본국의 태자 전하께서는 남방의 탐라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계시며, 저하께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유념하시며 처리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
맡긴다는 말에 안도를 하려다가 태자가 언급되자 성주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일전에 듣기는 하였으나 확답을 미루고 싶던 문제를 이제 결정해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한 것이다.
군대까지 온 지금, 여기서도 대답을 미룬다는 것은 사실상 거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 자신이 거부한다고 고려에게 대체재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장군. 소인도 대국으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오. 부공은 공을 세우면 세웠지.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어찌 죄인처럼 취급할 수 있겠소.”
“조기에 막지 못하여 대국에 번거로움을 끼친 이 늙은이를 그렇게 추켜세워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탐라국을 건설한 삼신인 중 한 명 부을나의 후예인 부천. 그가 고려에 붙어 이렇게 연회에도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거절을 한다면 고려는 바로 부씨 성을 가진 성주를 옹립하고 계획을 그를 통해 할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즉, 이제 고려에서 바라는 계획은 성주가 없다고 한들 못하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결국 성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자의 지시에 따르기로 하였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이전처럼 자신이 탐라 제일 고려파의 자리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라도 있었으니 말이다.
“…대인께서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소, 나 또한 저들을 곤히 둘 생각은 결코 없으니 그것은 안심하시오. 역적들의 가옥을 전부 허물고, 강제로 연루된 이들도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생각이오. 하면 저들은 이후 두 번 다시 언감생심을 품지 못할 것이며 그럴 힘도 없게 될 것이오.”
그렇게 한번 결단을 한 고적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고려 태자가 간지러워하는 부분을 확실히 긁어주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태자의 계획이 무사히 성공한다면 지금의 악명은 조만간 양원과 그 일당들에게 전가될 것이니까.
“또한 공을 세운 부천. 그대에겐 따로 중임을 맡기려고 하니 부디 힘써주시오.”
“저하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부천에게 맡긴다고 공연하게 밝힌 것은 고려에게 자신을 부천을 처리하지 않고 중임을 맡기겠다는 뜻을 밝힘과 동시에 부천 본인에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란 경고였다.
* * *
탐라 왕자의 난 소식은 김방경의 장계와 함께 강화도에도 전해졌다.
“그래, 김방경이 큰 공을 세웠구나.”
그리고 소식을 접한 왕검의 반응은 예상보다 약했다.
기뻐해도 무방할 희소식에 도리어 착잡함에 가까운 반응을 낸 것은 결코 김방경의 활약이 달갑지 않았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보다 탐라 왕자 양원의 이야기가 착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원은 자신들 측근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움직였고, 실제 김방경이 늦어 성주 일가를 완전히 근절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부천이 있더라도 수백 년 동안 성주와 함께 이어졌으며 작금에 와서는 탐라 백성들의 지지도 많이 받고 거병에 성공한 왕자 양원을 바로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모든 탐라인들이 단합을 한다 하더라도 그 수가 적어 고려의 무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무력을 사용한다면 강제로 토벌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강행했다간 속국이 아닌 직할지로 만드는 것이나 나아질 것이었고, 그렇게 되면 본말전도였다.
거기다 왕검은 양원이 고려의 본뜻을 알더라도 마치 왕검 자신이 구유크와 몽골에게 했듯이 고려에 명분을 주지 않는 선에서 계속 발버둥 치며 번거롭게 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오늘날 탐라의 결말은 내가 과거에, 그리고 이후에 당할지도 모를 광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왕검 자신이 과거에 최우를 밀어내지 못했다면, 신라와 백제 부흥을 잠재우지 못했다면, 동요국을 치지 못했다면, 그때 구유크를 설득하지 못했다면 등…
과거의 갈림길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패했다면 오늘날 양원과 같은 꼴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기엔 충분했다.
동시에 지금 고려라는 대국에 모든 것을 잃고 탐라도 이제 반영구적으로 고려에 반항할 수 없게 된 이 상황을 두고 왕검은 도저히 양원을 비웃을 수 없었다.
‘지금 나와 고려가 있는 곳이 얼마나 어려운 곳인지 명심하지 않는다면 나도 양원처럼 되는 건 순식간이다. 저 양원 또한 포선만노와 같이 내가 기억해야 할 상대다.’
“김방경에게 맡기길 참으로 잘했구나. 보고를 들어보니 폐하의 어명이 당도한 것은 난을 진압한 후라고 하니 선참후계(先斬後啓:먼저 베고 뒤에 보고하다)가 되었으나 보고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방경이 한 것에 죄를 묻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물론이옵니다. 전하. 자칫 시기를 놓쳤다면 본국은 충실한 제후와 속방의 많은 백성들이 위험하였습니다.”
“그렇다. 이는 본국의 변방은 물론 충실한 속방도 구한 것이니 가히 큰 공이라 할 수 있도다. 또한 향후 그런 일이 없도록 내 황상을 뵙고 이에 대해 진지하게 토로하도록 해야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시작된 상태로 더욱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화살은 쏘아졌고, 그것을 도중에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은 건 준비하였던 계획을 시작하는 것뿐.
탐라국이 혼란스러울 때, 그리고 탐라국에 고려파만 남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탐라의 문제가 해결된 지금 탐라를 고려의 양마장과 간접 외교 창구로 만드는 것을 막을 자는 없을 것이다!’
탐라는 이미 사실상 고려의 속지였고 이번 왕자의 난으로 탐라 내부에 고려에 반감을 가진 호족들마저 사라지거나 있더라도 그 힘을 잃어 고려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군현제를 폐지하고 지방관 파견을 그만둔다는 조건으로 양마장 문제는 최대한 탐라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할 것이다.
설령 밭과 숲을 불태우고 절반을 목축장으로 만든다는 악명이 계속하여 나와도 고적에게 집중되거나 못해도 양분될 것이니 고려의 위명에 피해는 죽일 준비는 끝낸 것이다.
탐라의 사정을 제하고도 이 일에 태클을 걸 세력은 외부로도 내부로도 없다.
몽골은 탐라의 존재를 알지도 못할 것이고, 일본 조정은 공식적으로 쇄국이며, 남송은 탐라를 알아도 고려를 대신할 정도로 아끼지 않는다.
애당초 탐라는 본래 고려의 관할이었으며 남송 황제는 탐라가 고려의 양마장이 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을 안다면 알아도 쉬쉬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제주도가 고려의 양마장이 되고 비상시 간접 외교국가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쯧.’
왕검은 속으로 혀를 찼다.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는 탐라 왕자의 난이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탐라 측에서는 태자가 김방경을 보낸 것에 선견지명을 찬양했지만 정작 그것을 들은 왕검으로서는 실소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김방경에게 탐라에 수적이 있는 것을 빌미로 하여 가라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수적 소탕 후 곧바로 내려간 것은 김방경의 판단이었다.
당연히 왕검이 양원이 바로 터뜨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왕검으로서 바라던 최고의 전개는 왕자가 거병을 일으킬 때 군선들을 대량으로 움직이되 몽골에게는 남국(南國)에서 분란이 보이니 제조한 군선을 이용해 보겠다고, 남송에는 남송대로 저들을 속이기 위해 움직이겠다고 일부러 힘쓰는 척하는 것이었는데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왕검은 이것이 불가능한 것에는 큰 미련이 없었다.
그것은 해도 그만 없어도 크게 난처할 것은 없는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는 큰 문제였는가? 라고 한다면 그것도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소한 문제라고 하기에는 또 아니었다.
‘남벌은 오키나와를 찾을 때까지는 할 수가 없으니 미뤄두면 되는데, 문제는 추가적인 북벌이 언제 시작되느냐다.’
추가적인 북벌이 ‘시작하느냐’가 아닌 ‘시작되느냐’는 것이 그 북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왕검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