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14장 이해
제주도에서 김방경이 전달한 탐라국 내의 정쟁 문제에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이쪽에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왕자에게 군주의 자격이 없다, 라고 명시한 이상 탐라국의 호족들이 반란을 한다는 것은 고려를 거역한다는 것이 되니 소란을 잠재울 수 있었고, 동시에 향후 성주가 고려의 눈 밖에 난다면 고려의 의사에 따라 왕자가 다시 군왕의 자격을 인정받는 것으로 성주를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하. 부천이라는 자는 참으로 영리한 자인 것 같사옵니다.”
이장용이 말하였듯, 그리고 아마도 보고를 한 김방경도 눈치챘겠지만, 부천. 이 녀석 진짜 대담한 자다.
성주에겐 군왕의 자격을 포기할 뜻을 밝히면서 성주가 왕자를 섣불리 제거하려고 하면 이쪽이 개입할 여지를 주어 안전을 확보하게 했고, 이쪽도 아무리 상국이라 할지라도 군왕의 자격을 쉽게 철회하고 부여하는 것은 나라의 위신이 걸린 문제라 쉽게 협박하긴 힘든 문제란 점에 쉽게 왕자를 이용하지 못하게 했다.
즉, 부천은 왕자의 격과 권위, 위상을 스스로 낮추는 것으로 고려, 성주로부터 스스로의 안전과 이익을 요구한 것이다. 다소 오만하다는 생각도 없지는 않지만 이쪽도 탐라국 내에 분쟁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 아닌지라 이 정도는 봐줄 만하다. 거기다 단순히 어부지리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제안하되 자신의 일은 확실히 하겠다고 밝힌 것이니 그 노력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허용해 줄 만한 선이고 말이다.
“상관없는 일이다. 어차피 성주에게 힘을 줄 예정, 이 기회에 탐라국 내의 군왕 분쟁을 해결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겠지.”
“그러나 정말로 탐라국을 다시 놓아주어도 되겠습니까?”
이장용이 불안한 목소리로 되물었는데 이건 고려의 군현에 편입되고 겨우 지방관도 파견하는 등 영향력을 강화시켜 직할령에 가깝게 만들었는데 그것을 단번에 취소하겠다는 내 말 때문이다.
“그건 이미 이야기가 끝난 일이 아니냐? 탐라가 본국의 현에서 벗어난다 한들, 탐라국이 본국의 제후국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거기다 탐라에서 얻는 세금이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세금보다는 나라의 교역권만을 쥐고 송과 왜의 무역을 우리가 관장하는 것으로 탐라를 통어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하여 군대를 상주시키고, 지방관이 아닌 주차관(駐箚官)을 파견시킬 것이니 탐라는 감히 본국에 역심을 품지는 못할 것이다.”
쉽게 말해 일단 다시 자치를 맡기겠으나 몽골이 속국에 다루가치를 파견하듯 고려도 탐라에 주차관을 파견하여 탐라국의 사정을 파악하고 여차하면 간섭하겠다는 뜻이다.
* * *
이래저래 탐라국의 처우와 이후 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며 강화도 동공에 머문 지 보름이 다 되어 갈 무렵 왕자의 난의 주범인 양원이 드디어 강화도에 수송되었다.
보고를 빙자하여 통보한 것과 일목요연하게 거병을 일으키고 천군인 고려군을 공격한 죄로 양원의 처벌은 이제 나라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가 처형되기 전에 꼭 만나 대화하고 싶어 형이 시행되기 전날 밤 옥에 갇힌 그를 만나러 직접 찾아갔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양원을 볼 수 있었다.
“…귀하신 분께서 이런 곳에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거병에 실패한 것에 어지간히 심적 고생이 심했는지 딱히 고문의 흔적은 없었음에도 그는 백발노인 같이 삭아있었다.
이자가 정말로 그 작은 제주도에서 무려 1천 명이나 되는 병력을 일으켜 거병한 자인가 의심도 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묻지 않을 수 없어 어찌하여 거병을 일으켰냐고 물으니 양원은 이렇게 말했다.
“전하. 저는 어려서부터 나라에 환난(患難)이 있으면 먼저 나서서 화란(禍亂)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저의 뜻이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나라의 ‘충의지사’ 같은 이라면 어찌하여 이번에 난을 일으켜 나라를 대국과 소방 모두를 어지럽혔느냐?”
“전하. 소방이 비록 대국의 번방(藩邦)이라곤 하나 엄연히 나라가 다르고 습속이 다르며, 저도 고려사람이 아닌 번방의 사람입니다. 또한, 저는 대국의 태조(太祖 왕건)께서 인정한 제후. 탐라국의 왕자에 있는 자로서 속방의 안전을 우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사옵니까? 제가 듣건대 대국 또한 북방의 이적들에게 크게 고난을 겪었고 그때 전하께서는 황상을 대신하여 맞서 싸웠다고 들었습니다. 전하시야말로 어찌 저 몽고라는 대적에게 맞서 싸운 것입니까?”
고려도 몽골에 비해 작고 약한데 어찌 힘들게 싸운 것이냐 반문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로 술을 들고 오고 저자의 칼을 벗겨주어라.”
“전하. 하오나 그는 죄인으로….”
“과인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문답을 하고자 하는데 칼에 의해 저자의 목이 갑갑한지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 그러는 것이니 지체 말고 따르라.”
“명을 따르겠나이다.”
내 명에 의하여 병사들이 양원의 칼이 풀고 술을 내주자 양원은 나를 멀뚱히 보더니 술을 마시고는 말했다.
“그 유명한 흑태자 전하께서 일개 무능한 패군지장인 죄인에게 이러한 아량을 베풀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원컨대 천천히 하문하시옵소서. 어차피 떠날 몸, 될 수 있는 한 하나하나 진달(進達)하겠습니다.”
양원도 일말의 희망을 품지 않은 채 이미 삶에 초탈한 듯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가 올린 서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로다. 설령 요행을 벌여 천군이 당도하기 전에 난을 완수하여 끝냈다고 한들, 그 서찰에 의해 대국의 진노를 받을지 모를 것인데 그러고도 거병을 단행한 것은 성주를 제거하기 위해서가 맞으렷다?”
“과연 그 말대로입니다. 성주를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전하의 말이 모두 옳습니다.”
“함부로 난을 일으킨 것만 하여도 대국의 진노를 받을 것인데 천조에서 인정한 성주를 제거한 것은 호족의 개입과 권위를 억누르고자 한 것이 맞았느냐?”
“그렇습니다. 성주가 사라진다면 대국에서는 왕자인 저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저는 대국에서 회사품으로 나가는 비용을 줄일 수있도록 호족들의 조공을 금지제안을 구상하였습니다.”
“…그대는 난(亂) 도중에나 늦어도 진압된 후에는 대국의 뜻을 어느 정도 알았을 것이다. 맞느냐?”
그 말에 처음으로 양원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방금과 다름없는 초탈한 모습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듣지는 못하였으나 대략 처음부터 제가 큰 오판하였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한데 만약 전하께서 제가 그것을 사전에 알았더라도 거사를 벌였을 것이냐고 하문하시는 것이라면 저는 그래도 그럴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 거사 후에 너와 너의 나라에 있는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이 될 것인지 알고도 말이냐?”
“…….”
그가 침묵하자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어 다음 말을 했다.
“본국은 탐라국을 존치하기로 결정 내렸다. 그대가 바라는 대로 제주도로 간 아조의 지방관은 돌아올 것이며 탐라국은 아조의 현에서도 벗어나 더 이상 세를 바치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대가 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하고자 생각했으며 이미 성주와 약조를 한 상태였다.”
“과연.”
“하나 그대의 난으로 인해 연루된 탐라의 수많은 백성들은 아조로 끌려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 고려의 노비가 되어 부역하게 될 것이며 탐라에서도 그들이 살던 터전과 가옥들을 허물고, 밭을 뒤집고, 전부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들이 돌아갈 곳은 이제 탐라에 없을 것이며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란 말이다.”
“…….”
“이후 그들에게도 탐라가 본국의 현에서 벗어나 아조의 지방관이 아닌 성주가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과 처음부터 그런 예정이었다는 것을 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를 동정하거나 아쉬워하는 이들도 그대의 거병에 의문과 분노를 가질 것이다. 탐라의 사람은 그대의 거병을 섣부른 거병이라 부르거나 혹은 탐라를 위한 거병이 아니라 스스로의 야욕을 위한 더러운 난신적자의 반란으로 곡해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대와 그대 가문은 아조는 물론 탐라의 역사에서도 대대로 한나라의 왕망이나 동탁 같은 탐욕스러운 역신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이다. 아느냐?”
내 말이 계속될수록 양원의 눈가와 입이 부르르 떨렸다. 양원은 제 딴에는 탐라국을 위해 움직인 것이 맞다. 고려의 개입을 몰아내고 탐라인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만들려고 한 의도는 분명 있었다.
그런 뜻이 몰락한 것도 모자라 대대로 오명으로 곡해되어 전해진다는 것은 이제 죽을 각오를 마친 그로서도 적지 않은 충격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묻기로 했다.
“다시 묻겠다. 그대는 그것을 사전에 알았어도 거사를 벌였을 것이냐?”
그러나 그의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흔들리기는커녕 더욱 대쪽같은 기개로 대답했다.
“예. 거사를 벌였을 것입니다. 전하의 말씀대로 고려가 처음부터 아국을 존치하였을 것이라 하더라도 그 존치와 혜택에는 분명 혜택에 상응하거나 이상의 속박이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것을 막을 자는 저밖에 없습니다. 하여 저는 탐라국을 고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에 평생을 바칠 것입니다.”
“…어째서인가?”
“저는 탐라국의 군주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 그렇게 나의 문답을 끝까지 해준 그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하나 뿐이다.
“그대의 자식들이 탐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참수만은 면하게 할 것이로다. 탐라에서 끌려온 죄 없는 포로들 또한 10년의 역을 마친 이후로는 면천을 시킬 것이고, 그들의 판단에 따라 탐라로 보내도록 하겠다. 그것이 과인이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려다가 실패한 어리석은 남국(南國) 군왕(君王)에게 내리는 화답이로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옥에서 나갔는데 그때 뒤에서 양원의 말이 들려왔다.
“…부디 전하께서는 성공하시길 바라옵니다.”
반응하지 않고 나갔다. 어차피 실패하면 이번에는 내가 거기에 있는 결말일 것이 뻔하니까.
* * *
‘마지막까지 나라를 지키려다가 실패한 어리석은 남국(南國) 군왕(君王)에게 내리는 화답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양원은 그제서야 고려의 태자가 자신을 찾아와 이런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실소와 한탄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을수 없었다.
결국 이 젊은 태자도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세간에는 이 어린 태자의 활약으로 고려가 북쪽의 이적들을 크게 격퇴하고 고려는 나날이 중흥하고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으나 실제로는 저 몽고라는 이적은 여전히 고려보다 막강하여 마치 우리 탐라와 고려와 같은 처지인 것이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계획을 망칠 뻔한 이 패장에게 분노도 비웃음도 아닌 저런 착잡한 시선을 보내겠는가.
결국, 제 한 몸 아끼지 않고 고려와 요동 여기저기 나가 세운 업적들은 바람 앞 등불과 같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태자의 발버둥이며 노력에 발원된 것이리라. 그렇다면 지금 아국에 행할 조치들도 그 일환일지 모른다.
약관도 되지 못한 이 어린 태자가 고려 조정 몰래 이러한 계획을 하는 것도, 이런 계획을 하고도 어렵다는 몽고를 앞둔 고려의 처지도,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것도 전부 지금 이 어린 태자가 자신을 보고 스스로를 투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우리가 그렇게 경외하며 대국이라 부르던 고려도 다른 이가 보기에는 탐라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인가.’
양원은 오늘 태자가 무슨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도 알 것 같았다. 바로 자신을 통해 스스로의 의지와 각오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가 있던 자국만을 위해 타국에 휘말리는 계획이 정도라곤 할수 없다. 하물며 그 계획에 당하는 측으로서는 이해유무를 떠나 감정적으로 용서할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기까지 이르게 되니 기이하게도 저 어린 태자에게 유정(有情)이 느껴졌다.
하여 양원은 앞으로 자신보다 더 어려운 고난을 겪을 이 어린 태자에게 저주가 아닌 진심 어린 말로 격려와 함께 작별하기로 하였다.
“…부디 전하께서는 성공하시길 바라옵니다.”
태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떠났지만 양원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보고 죽기 바로 전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같지 않을 정도로 개운하고 시원하게 심정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탐라국 왕자 양원은 난을 일으킨 난신적자로서 고려의 왕과 신료들 그리고 왕태자가 보는 앞에서 참수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왕태자만은 역적의 참수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 작가의 말
*작중 양원을 적을 때 실패한 주인공이란 생각도 하면서 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