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82
282화
27장 예상 못 한 사태
며칠 전 요동.
“고려군이 옷치긴 왕가군을 격파하였다고?”
“그렇다고 하옵니다. 대승도 그러한 대승이 없었다고 합니다.”
동모산 앞에서 이룬 고려군의 대승은 빠른 속도로 퍼졌다.
특히 밀무역을 엄중히 관리한다는 빌미로 광녕로에서 요동성으로 넘어와 전황을 예의주시하던 야율설도는 고려 조정보다도 먼저 승리의 보고를 들을 수 있었고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내 납득하며 고려를 돕기로 마음을 돌리고 있었다.
“이번에 내려간 노왕의 군대는 십중팔구 정예병이었을 터, 그런데도 대승을 거두었다니 고려가 이를 제대로 갈고 있었구나.”
“그렇사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승을 이루게 된다면 본국은 어찌하면 되겠나이까?”
동요국에 많은 인재들이 죽고, 힘(설무아지와 병력)도 사라졌다지만 모두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지난 전쟁으로 병력들과 그 입지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그럼에도 동요에 충성을 바치는 충신들이 적게나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노왕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아직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담판 승부를 제안한 이상 전쟁은 이번에 바로 끝날 확률이 높으니 우선 고려에….”
“전하. 산동에서 지부겐 장군이 전하를 뵙자고 하옵니다!”
그 말에 야율설도는 혀를 차며 입실을 허락하였다.
“쯧. 귀 하나는 밝군.”
찾아온 이유는 뻔했다.
그도 고려가 옷치긴군을 격파한 것을 듣고는 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 것이다.
물론 동요국의 정확히는 광녕로의 병력을 동원하려는 것이라면 단칼에 거절할 생각이었다.
고려군이 패했다더라도 보내기가 저어되는 상황인데 아예 고려가 대승을 거둔 상황에서 귀한 병력을 지원할 이유는 없었다.
지금 요동에 온 몽골군들 또한 테무케의 긴급지시에 따라 되는대로 산동의 장정들도 동원하여 온 상황일 터.
그렇다면 병력의 수라면 몰라도 질적 수준은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병력으로 대승으로 사기가 고취되어 있을 고려 태자가 있는 군대를 이길 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물론 병력의 규모는 될 테니 동쪽에 있는 몽골군들과 합류한다면 나름 고려군과 기 싸움을 할 만한 세력이 되니 회담 자리에서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산동에서 병력을 이끌고 온 몽골 장수가 들어왔다.
‘병력의 지원 혹은 동쪽으로 가는 길을 터달라는 것 둘 중 무엇이고 어떻게 거절한다.’
전자라면 거절하겠지만, 후자라면 못 들어줄 내용은 아니었다. 그러나 야율설도와 대면한 몽골 장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였다.
* * *
한편 고려 조정은 태자의 친군에 대해 섣부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가 진군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옷치긴 왕가의 1만 8천 대군이 1만 9천의 고려군에게 격파당했다는 급보를 받고는 축제 분위기에 들어가 있었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이번 전투로 아조는 국경을 지킨 것은 물론 저 기고만장한 몽고 놈들의 기를 꺾었다 할 수 있사옵니다.”
“껄껄껄! 아태자는 나라에 있는 난신적자들을 척결하는 것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외방에 대해서도 명석하고 뛰어나니 가히 아태자가 나라의 흥복(興復)이로다.”
앞선 김방경이 승리하였다는 보고가 올라오긴 하였으나 이번에는 옷치긴 왕가 주력군과 제대로 담판을 지어 승리한 것이다.
어느 누가 천하의 몽골군을 상대로 평지에서 야전을 제안하여 승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겠는가? 하물며 테무케 옷치긴이 누구던가? 현 몽골 칸의 숙부이자 고려와는 대요수국의 침입을 시작으로 몽골과의 전쟁에도 크고 작게 관여된 오랜 악연이 있던 작자가 아니던가?
그런 자의 군대를 고려가 대승을 거두고, 실질적으로 땅까지 넓힌 것이다.
몽골인들의 패악질을 아는 고려인들일수록 이 소식이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이 승전이 어찌나 기뻤는지 왕은 태자가 올린 승전의 장계를 신하들이 모인 곳에서 다시금 읽게 하였을 정도였는데 그러한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쁨에 힘입어 연회를 시작하려던 찰나, 숨을 가쁘게 헐떡이는 환관이 대전으로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요동에 있는 몽고군이 압록강을 넘어 진군 중이라고 하옵니다!”
그 순간 대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방금 전까지의 승전에 취해 있던 신료들의 머릿속에 다시금 지난날 일어난 변란을 떠올린 것이다.
“무, 무슨 소리인가! 어찌하여 몽고가 서북면을 친단 말인가? 전하께서 올린 글에 의하면 이번 분쟁은 어디까지나 갈라전 북쪽으로 한정된다고 적혀 있거늘!”
“그것이 지금 문제요? 적이 온 이상 그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하지 않소! 폐하. 지금 당장 갈라전으로 간 군에 칙사를 보내 소환하여야 하옵니다.”
“지금 태자 전하께서 갈라전에서 적을 격퇴하고 대치하는 중인데 소환하라니. 제정신이오!”
“그대야말로 정신 차리시오. 지금 태자 전하께서 갈라전의 문제로 대동한 병력은 1만이 넘소. 그중에는 서경에 속한 병력들도 대거 동원되었기 때문에 지금 서북면의 방비는 이전에 비해 약화되어 있단 말이오.”
“그렇다고 갈라전의 문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군을 뺀다면 갈라전은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갈라전은 이미 대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고작 변방의 침입을 막고자 적들이 아조 깊숙이 들어오는 것을 관망할 생각이오!”
신료들은 하나같이 목소리를 높였으나 누구 하나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이가 없었다.
침입을 부정을 하는 이들은, 침착함만을 주장하며 대응책을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태자군을 소환할 것을 주장하는 이들은 갈라전의 문제를 뒤로 미루었다.
그들의 소란스러움에 왕은 방금 전의 기쁨은 사라지고 두통을 느끼고 있을 때 한 사람의 외침과 함께 곧바로 수습되었다.
“조용!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이런 소란인가!”
“수, 수문하시중.”
박문성(朴文成 = 박서)의 호통에 신료들은 뒤늦게 자신들에겐 아직 몽골군을 격파한 장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진정하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왕도 박서의 존재에 안도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수문하시중. 지금 사태를 타파할 방도가 있는가?”
“폐하. 지금 올라온 보고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북방에는 이자성의 군대가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말아주시옵소서. 이 장군을 여즉 소환시키지 않은 것은 모두 이와 같은 사대를 대비한 것이 아니옵니까?”
“그, 그렇지. 북방에는 이자성 장군이 있도다.”
평소 태자가 북방에 이자성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 것이 이자성과 군대를 떠올린 왕과 신료들의 안색은 밝아졌다.
“과연 아태자로다. 이런 사태를 대비하여 수어를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그렇사옵니다.”
박서와 이자성의 존재로 아수라장이 될 뻔한 문제를 해결된 것을 안도하며 문하시중 최종준은 수문하시중에게 물었다.
“수문하시중. 이 상장군의 군대는 5천 정도인데 그 수로 몽골군을 막을 수 있겠소? 거기다 태자 전하께서 군대를 차출하며 북방의 병력이 만전은 아닌데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되겠소?”
“이 상장군은 적을 관망할 자가 아닙니다. 충분히 막을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사이 남방에서 군을 동원하여 남경에 두고 북방의 사태에 따라 적절히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어째서 황도나 서경이 아니라 남경에 두자는 것이오?”
“남경은 본국의 중심에 있고, 해운과 수운을 통해 신속이 곡량과 군대를 이송할 수 있으며 심도와도 가깝기 때문이오.”
“…그렇소?”
“한데 수문하시중. 상장군 이자성이 뛰어난 명장이라곤 하나 만에 하나라도 북적에게 패한다면 어찌 되는 것이냐? 그때는 누굴 병마사로 선정하여 보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느냐?”
왕의 물음에 박서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때는 신을 보내주시옵소서.”
* * *
고려 현종 시기 고려의 강감찬이 강을 건너던 요나라의 소배압이 이끄는 정예기병 10만을 기습하여 전쟁의 기선을 잡은 흥화진 전투는 이후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시킨 귀주대첩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려에게 있어서 뜻깊은 전투가 일어난 흥화진에서 고려군은 오늘날 다시 외적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과거의 전투와 차이가 있다면 이번 전투는 기습전이 아닌 회전이었고, 몽골군 1만 2천과 고려군 8천 명은 어느 누구 하나 우세를 점하지는 못한 채 치열하게 맞서 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싸워라!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저들을 막아내야 한다!”
야전에서 몽골군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아는 이자성이었지만 이번에 온 몽골군은 자신들보다 병력은 많더라도 과반수가 보병이라는 것과 보병들의 수준도 형편없어 보였기에 전쟁을 빠르게 끝내고자 회전을 걸었다.
그러나 개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자성은 생각을 고쳐야 했다.
“결국, 저것들이 문제로군. 명불허전 몽고 기병이로다.”
이자성은 인상을 찡그리며 저 멀리서 분투하는 몽골 기병들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고려군에 의해 몽골 보병들이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끼어들어 막아내고, 약해진다 싶으면 사정없이 측면을 공격해 왔다.
심지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안 그래도 수가 밀리는지라 아군이 이미 완전히 포위된 것 같은 착각을 주는 듯했다.
그때마다 이쪽에서도 기병들을 보내 막고는 있었지만 이대로 가면 피해가 너무 크게 나올 것이 뻔했다.
“안 되겠다. 내가 직접 기병들을 이끌고 저들의 수장을 막아보겠다. 너는 그사이 보병들을 무너뜨려라!.”
“장군?! 차라리 소장이 그 일을 하겠습니다.”
부장 주거(唒岠)는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지만, 이자성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이쪽에서 죽을 힘을 다해 보병을 움직여 몰아붙이려고 하면 귀신같이 그것을 간파하여 맞대응하고, 이쪽이 함정을 파놓으면 바로 군을 빼내버려 지루한 소모전을 일으키는 적장이 있었다.
부장의 능력으론 그를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수로 다수의 적과 길항을 이루고 있는 상태라고 좋아할 것이 못 된다.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수가 적은 우리가 먼저 무너질 우려가 있다.’
“저자는 이미 3번이나 큰 피해를 입기 전에 군을 빼냈다. 기민한 대응을 하기 위해선 내가 직접 상대하는 것 말곤 없으니 너는 여길 맡아라!”
그렇게 말하곤 이자성과 기병대는 적장이 있는 몽골 기병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뒤늦게 이자성이 다가오는 것을 본 몽골군 기병대도 맞대응하듯 달려들었다.
두 기병대가 서로를 향해 각자 칼과, 창 등의 무기를 휘두르며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이자성의 부장 ‘주거’는 칼을 빼 들며 병사들을 대신 독려했다.
“겁먹지 마라! 적들이 우리보다 많다고 하나 대다수의 보병들은 오합지졸들이다! 무너뜨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승리다!”
“도망치는 자들은 내 손에 먼저 죽을 것이다! 진군을 멈추지 말고 눈앞에 있는 적들을 하나라도 더 죽여라! 예케 몽골 울루스의 전사가 된 이상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을 잡아라!”
기병과 기병이 교전을 하고, 보병과 보병들이 쟁투를 하니 안그래도 치열한 전장을 더욱 치열하게 변해갔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사실상 양군이 돌격하여 힘을 겨루듯 싸우고 있는 보병들과 달리 기병들의 교전은 마치 행성 주위를 도는 위성처럼 보병 주변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싸우고 있었다.
치열하고도 기묘한 전장은 몽골군의 보병대의 일부에서 변화의 기색을 뽐내면서 달라졌다.
언뜻 보면 고려 보병이 드디어 몽골 보병을 무너뜨리는 전조 같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몽골 보병대의 후군의 일부가 마침 지근거리에서 교전 중인 기병대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핏 봐도 몽골군은 제 살을 잘라 고려 기병대라는 뼈를 취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자성은 어느 사이에 자신들을 몽골 보병들 근처로 유인한 몽골기병대의 실력에 경탄하면서도 신속히 대응하였다.
이자성의 용병술에 더해 그가 지휘하는 기병대들 또한 강병이기에 몽골 보병과 기병의 합격(合擊)도 견디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이자성은 겨우 상황을 깨닫고 탄식했다.
“아뿔싸. 함정이었구나!”
자신들이 합격을 막는데 집중하던 중 몽골 기병 일부가 몽골 보병대 뒤로 우회하여 넘어간 뒤 아군의 측면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다! 돌격하라! 고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검차와 기병 몇이 측면을 보호하려 했으나 이미 기세를 타고 돌격 중인 다수의 몽골 기병을 막을 수 없었고, 돌파되자 겨우 길항을 하고 있던 고려 보병으로서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적의 습격을 버틸 수가 없었다.
고려의 전열이 무너지는 순간 전황은 순식간에 몽골에게 돌아갔고, 몽골군의 장수들의 면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대승입니다.”
“아직, 아직이다.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전투에 집중하라!”
이미 승리에 자축하고 있는 부하들을 다그치며 몽골군을 총지휘하는 사내, 테무케 옷치긴의 장자이자 타카차르의 아버지이며, 일찍이 부친인 테무케와 함께 몽골제국 형성기에 참전한 지부겐 대왕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무너져 가는 고려군을 주시했다.
# 작가의 말
작중 나온 이자성의 부장 주거는 작중 창작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