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30장 2차 귀주성 전투(1)
귀주성 앞까지 진군한 지부겐은 즉시 장수들을 불러 군의(軍議)를 열었다.
그의 서북면 침공은 동요국도, 테무케도, 왕검도 예상하지 못한, 지부겐 본인조차 요동에 오기 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강을 건너기 전 요동에서 충분한 공성 무기들과, 북방의 정보, 그리고 지난 귀주성 전투에도 참가한 장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보기에 귀주성을 함락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한다 생각하는가?”
지부겐의 질문에 카르추는 기다렸다는 듯이 귀주성과 인근 지리가 대략적으로 그려진 지도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지도를 본다면 귀주성은 남문을 제외하면 전부 산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어 남문이 가장 취약합니다. 그러나 고려군들도 이것을 모르진 않을 테니 십중팔구 남문을 집중적으로 방어할 것입니다. 하오니 병력을 나눠 남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 북문을 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러나 그런 카르추의 의견에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즉시 반대하였다.
“전 반대입니다. 과거 저 성을 점령할 때 우리 군은 동서남북 모두 시도해 보았지만 총력을 가한 곳은 결국 남문이었습니다. 이건 그만큼 우리들도 남쪽을 공략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으음.”
다른 이가 말했다면 카르추는 쌍심지를 켜며 반박했겠으나 주장한 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지난 귀주성전투에 참가하고 지휘까지 해본 우예르였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4개월 동안 숱하게 귀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노력한 그가 현재 군의에 참가한 이들 중 귀주성을 가장 잘 아는 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귀주성에 있는 장수는 지난번 장수와 다르고, 우리 또한 지난번보다 병력이 많다.”
비록 정병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한인들로 이루어진 보병들이 다수를 이루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난번보다 배는 많은 병력이었고, 공성무기도 많았다.
그리고 아무리 한인 병사들이라고 해도 야전이 아닌 공성전에서는 그나마 더 활약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도 있었다.
“그러니 우선 저 성이 얼마나 명성처럼 대단한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지. 그대가 말한 남문으로 말이야. 카르추와 우예르, 그대들 둘에게 맡길 것이니 아무쪼록 건투하도록 하라.”
* * *
“지난번 포위한 북적들도 저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자성을 돕기 위해 작게나마 병력을 이끌고 온 정주부사 ‘온술’은 성을 포위한 몽골의 대군을 보며 혀를 내두르며 말했고 이자성은 동의했다.
“그럴 것이다.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적의 수는 지난번(1차 여몽전쟁 귀주성 전투) 보다 많은 2만 5천에 달한다고 하니 분명 지난번 이상으로 어려운 전투가 되겠지.”
이자성은 담담히 말했지만 그의 미간과 입에서는 미세하게나마 쓴소리가 섞여 있었고, 온술은 그것을 눈치채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 상처가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기시지요?”
“어리석은 소리. 이까짓 잔 상처에 내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예전에 김 장군(김경손)도 말하였듯 장수인 내가 지금 물러나면 이곳에 모인 군사들의 마음이 모두 흔들릴 것이 자명하지 않은가.”
귀주성에서 항전을 선택한 직후 이자성은 병사들을 모아 수년 전 김경손이 그러했듯이 자신도 병사들의 사기를 잃지 않기 위해 성벽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보다 다른 각 문에도 병사들을 보냈는가? 적들이 성동격서의 책을 꾸미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네.”
“물론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온술의 대답에 이자성은 이번에는 귀주부사 ‘감출’을 보며 물었다.
“귀주부사는 지금 각 기둥에 바를 진흙과, 물 먹인 이불도 충분히 준비하였는가?”
“빠짐없이 준비하였습니다.”
물을 부어도 쉽사리 꺼지지 않고, 쉽게 불이 붙는 몽골군의 공세에는 물보다는 진흙으로, 물먹은 이불을 덮거나 감싸서 막았다는 지난 전투의 일들을 떠올리며 준비를 마친 이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장들을 향해 말했다.
“적이 많다곤 하나 우리 또한 지난번보다 많고, 준비도 마친 상태다. 무엇보다 저들을 격퇴한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니 너희들 또한 지난번에 격퇴한 장병들을 본받아 ‘살 각오가 아니라 반드시 죽고자 하는 각오로 나와 함께 싸워라.’ 그러면 이번에도 능히 북적들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귀주성에 있는 병력은 온술의 이끈 병사 3백 명을 더해도 고작 5,200밖에 되지 않아 지난 전투에 비하면 2백 명 정도 차이밖에 없지만, 이자성은 짐짓 병력이 많은 것도 강조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하였으니 이제는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겠구려. 부디 임진년(壬辰年 1232년) 때 와 같이 얌전히 항복하고 문을 열어주라는 칙명만 내려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오.”
“그때와 지금의 아조는 많이 다르오. 우리가 이곳에 버틴다면 분명 아조에서도 원군을 보내줄 것이오.”
그리고 두 부사는 귀주성의 병력이 많음보다는 조정에서 원군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전의를 다졌다.
* * *
“오오오오!!”
콰쾅! 콰과쾅!
우지끈.
“무, 무너진다! 피해라!!”
“우아아아!”
성벽에서 날아온 거대한 돌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며 몽골군의 투석기들이 있는 곳으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운이 나쁜 투석기가 직격하여 사용해보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개의 바위가 연달아 몽골군이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몽골군도 뒤늦게 투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성전은 시작되었다.
카르추의 군대는 방배를 든 병력을 정면에 앞세우고 그들 뒤로 한인 병사들이 격전의 소리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공성사다리와 운제를 밀며 성벽으로 진격했다.
“아, 악! 뭐야. 이거? 어이. 이것 좀 치워줘!”
성을 향해 진군하던 병사들이 가장 먼저 본 것은 성벽 주위에 처진 가시덤불들이었다.
지난 귀주성 전투 이후 기르기 시작한 가시덤불들은 적들을 막기 위해 기른 용도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었다.
“크어!”
지나가기도 힘들고 운제로 밀어붙이려고 해도 가시덤불이 바퀴에 얽히자 몽골군은 가시덤불부터 처리해야 했고, 그렇게 가시덤불에 발이 묶인 적들을 성벽 위의 고려군이 가만히 관망하고 있지 않았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 비에 몽골군의 일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크윽!”
“어서 덤불을 치워라!”
공격을 받으면서도 몽골군은 가시덤불 처리작업에 집중했고,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덤불은 제거되며 진군은 재개되었다.
그리고 몽골군의 공성사다리는 결국 고려군의 성벽에 걸치는 데 성공하였다.
처음 하나가 걸쳐지자 곧이어 다른 사다리들도 시간차로 하나둘씩 성벽에 걸쳐졌다.
“걸쳤다!”
“올라가! 올라가!”
“어서 올라가!”
사다리가 걸쳐지자 이 앞까지 오는 동안 고생한 것을 풀고 말겠다는 듯 몽골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다리를 급히 올라가던 최선두의 몽골 병사들이 곧이어 본 것은 자신의 시야 전부를 가리며 내려오는 거대하고 날카로운 못들이 박힌 벽과 기둥이었다.
“낭아박, 야차뢰 투하!!”
“투하!”
“투하!”
낭아박은 거대한 판에 창, 칼, 못처럼 뾰족한 것을 박고, 판의 측면에는 고리를 만들어 이 고리에 줄을 끼워 성벽 위에서 아래로 반듯하게 떨어뜨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을 성벽으로부터 떨어뜨리는 병기였고, 야차뢰는 그냥 대들보 같은 무게가 많이 나가는 나무에 몸체에 철못 등을 박아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병들 위로 떨어트려 성벽으로부터 떨어뜨리는 병기였다.
고려군은 성벽에 공성사다리가 걸쳐지자마자 이 무기들을 성벽 앞으로 밀어 올라오는 적들을 향해 투하한 것이다.
성벽에서 거리가 떨어진 몽골군은 성벽 위의 고려군이 낭아박을 성벽 쪽으로 옮기는 것을 목격했지만 성벽 바로 아래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던 몽골군들은 사각지대라 보지 못하고 올라가다가 큰 봉변을 당한 것이다.
“가아아악!”
“내, 얼굴!”
이런 낭아박의 공격에 공성사다리에 오르던 몽골군이 줄어들자 이자성은 다음 지시를 내렸다.
“지금이다. 사다리를 밀어라!”
“와아아!”
성벽 위의 고려 병사들은 저마다 봉 끝에 사슴벌레처럼 갈라진 창날이 있는 창(일본 에도시대 경비용으로 범인들을 잡을 때 쓰던 도구 자차(刺叉)와 같은 형태.)을 들고 성벽에 걸린 사다리 몸체에 대고 밀어붙였고, 여럿이 달라붙어 밀자 사다리는 금세 빠질 듯이 흔들거리더니 기어코 떨어져 몽골군이 있는 곳으로 넘어갔다.
“와아아아!!”
몽골군의 공성사다리를 떼어내는 데에 성공한 귀주성 성벽에서는 환호의 함성이 쏟아졌고, 그것을 지켜보는 몽골군 진영에서는 신음성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 * *
“역시 저항이 거세군요.”
“이 정도는 예상 범주다.”
이어서 성벽에 당도한 운제들마저 치에서 쏜 줄이 묶인 쇠뇌의 화살들과 갈고리에 묶인 뒤 성벽의 고려군이 줄을 끌어당기며 옆으로 넘어트리는 것을 본 지부겐은 공세를 멈추고 퇴각을 지시한 것이다. 군의를 시작한 지부겐은 우예르에게 물었다.
“그대의 말대로 귀주성은 철옹성과 같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지. 쓸만한 작전이라도 있나?”
“더 강력한 공세. 그것이 아니라면 카르추 장군의 말대로 다른 문에 사람을 보내 신경을 분산시키고 땅굴을 파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지난번에 시도하였다가 파훼 된 것들로 실패할 공산이 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적들을 피로하게 만들 수 있으니 아주 쓸모없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우예르는 한치의 주저 없이 대답했다.
침입 성공을 목적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로를 목적으로 하자는 말은 다소 전의가 꺾이는 말이 아니냐고 하고 싶어도 발언자가 4개월 동안이나 포위를 해본 경험자의 주장이라면 현시점에서는 더 강력하고, 적이 쉴새 없이 몰아치는 공세만이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카르추. 너도 동의하나?”
“…예. 다만 피로만을 목적이 아니라 승리를 목적으로 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군을 나눠주신다면 저는 서문을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5천 명을 주지. 내일 다시 공격을 시작한다.”
“…그나저나 성의 저항이 거센데 이때 적의 원군이 오지 않을까가 걱정입니다.”
내일 있을 작전도 끝낸 지부겐이 군의를 파하려던 순간 그런 말이 나왔다.
발언자는 이 자리에서 말석에 속하는 젊은 장수 노이적이었다.
“현재 이 근방에 고려군이라곤 저 성안에 있는 것이 전부라 원군 걱정은 할 필요 없네.”
“만약 온다고 해도 시간이 걸릴 것이니 그 전에 점령하면 되네.”
“그렇소. 지금 귀주성을 구할 원군은 고려 조정에서 보낼 남방의 군대와 가능성은 낫지만 서경의 군대가 무리하게나마 보낼 경우인데 전자는 시간이 걸리고 후자는 그 수가 많지 않으며 둘 모두 남쪽을 주시하면 그만이오.”
“…만일 흑태자가 갈라전에서 군대를 빼내 구하러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말에 좌중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바지. 갈라전에 고려군이 빠진다면 고려는 갈라전도 잃게 될 테니 말이야.”
“그리고 설령 고려 태자가 군을 빼낸 도와주려고 해도 동북면을 통해 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고 그 방향 또한 남쪽이니 걱정할 바는 없네.”
“만일 고려태자가 정말로 그렇게 움직여 준다면 정말 고맙긴 하겠군. 운이 좋아 몇 번 이기며 커진 그 기고만장한 콧대를 꺾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껄껄껄. 맞는 말이오.”
장내가 화기애애해지자 노이적도 안심하면서도 문득 언급되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을 깨닫고는 입에 담았다.
“만일 흑태자가 북쪽으로 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북쪽으로 온다고?”
그 말에 좌중은 순식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껄껄껄! 농이 심하군. 자네는 동요국이 고려군이 요동을 지나가는 것을 놔둘 것 이라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일이 끝난 후 동요국은 사라지겠지요.”
“그렇지. 그것을 야율 부사도 모를 리 없지. 그러니 요동을 지나는 것만은 막겠지!”
“북쪽에서 오겠다는 것은 요동으로 우회하여 간다는 것이니 동요국의 땅을 침범하는 것이 되고, 동요국을 우회하지 않고 오겠다면 백두산 밑으로 가겠다는 것인데 그곳이 얼마나 험한지는 아는가?”
“지난번 장성 이북을 공격한 아리크부카 님의 선택을 보고 장수들이 좋지 않게 보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그분이 쓸데없이 그곳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네.”
“애당초 귀주성이 중요하긴 하나 고려태자에게 우선순위는, 자신 때문에 약해진 서경을 지키는 것이 우선일 텐데, 고려 태자가 서경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귀주성으로 온다고? 아무쪼록 그 거친 산들을 넘어 온 고려군에 태자 혼자만 남아 있는게 아니라면 좋겠군?”
다른 장수들의 노골적인 비웃음에 노이적의 얼굴은 새빨갛게 변했다.
그런 그를 구원한 것은 지부겐이었지만 그 또한 북쪽에서 온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노이적.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하고 조심하려는 자세는 좋다. 그러나 저들의 말대로 너의 걱정은 현실성이 없다. 귀주성이 중요하긴 하나 카르추의 말대로 태자에게 있어서는 서경이 보다 중요하고, 서경이 약해져 있다. 갈라전에 데려간 병력도 현재 우리 군보다 작은 상태에서 태자가 북쪽이라는 험한 길을 사용하는 것도, 귀주성으로 오는 것도 무리가 있는 일이다.”
“그, 그렇군요.”
지부겐마저 이런 말을 하자 노이적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카르추는 입가를 비틀며 종지부를 찍듯이 말했다.
“만일 자네 말대로 정말로 그런 일을 벌인다면 그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 되겠지. ‘위대하신 흑태자와 그 군대’로 말이야.”
카르추의 비꼼에 게르 안은 다시 웃음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 작가의 말
*인지도가 없어서 그렇지 우예르(혹은 우에르, 오야이 등으로 불립니다.)는 실존했던 장군으로 1차 여몽 전쟁 당시 귀주성 전투에 참가한 몽골 장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