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91
291화
34장 진퇴양난 야율설도
한편, 고려가 서북면을 친 몽골군마저 격파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동요국에서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게 고려의 승리에 안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옷치긴 왕가를 지원하지 않고,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은 이유가 옷치긴 왕가의 남하를 걱정했기 때문이었는데, 고려가 이기면서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구도를 바라고 있던 야율설도는 깊은 수심에 잠겨 있었다.
“전하. 어찌하여 그렇게 근심하시옵니까? 고려가 승리하였다면 노왕의 성장이 저어되는 것이니 응당 본국에도 이로운 일이 아니옵니까?”
결국, 여느 때처럼 충직한 신하들만 모인 장소에서 궤장을 하사받았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 신하가 물었고, 야율설도도 겨우 속내를 밝혔다.
“노왕의 영향력이 강고해지는 것을 막긴 하였으나, 이번 서북면 침공에 대해선 우리도 관련이 전무(全無)하다곤 할 수 없어 그렇다.”
“전하. 저들이 요동을 지나는 것은 우리로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아니다. 거기까지라면 고려가 아조에 따질 수 없다. 그러나 지부겐군이 고려를 침공할 때 본국에서 공성 무기들을 들고 가지 않았는가? 고려가 그것을 눈치채고 본국에 따지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전하. 그것은 우리의 자의가 아니었습니다. 포악한 저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사옵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돕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노왕과 적대하고 있는 고려가 구태여 본국까지 적대하려 들겠습니까?”
신하들은 저마다 우리들은 죄가 없으니 괜찮다고 위로하였고, 실제 지부겐 군이 동요국의 공성무기를 얻게 된 것은 야율설도의 본의와는 거리가 멀긴 하였다.
* * *
“불가능하오! 이번 전쟁은 고려와 왕야(테무케)의 문제이고, 그것에 대해 아조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 밝혔소. 길을 열어준 것만으로도 이쪽에선 해줄 것은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부족하단 말이오.”
동모산의 전투를 듣고 신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다짜고짜 찾아온 지부겐의 고려 서북면을 치기 위해 길을 열어달라는 것에는 순순히 허락한 야율설도였으나 이어 공성무기를 달라는 말에는 거절하였다.
길을 열어주는 것은 몰라도 무기까지 지원한다면 그때부터는 동요국도 고려를 치는데 가담을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부겐은 물러서지 않았다.
“예. 부족합니다. 그러니 달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라?”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우리에게 고려로 가는 길을 열어주신 것은 참으로 고마우나 아군은 지금, 급히 온다고 제대로 된 공성무기를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고려로 간다 한들, 고려의 성을 점령할 수가 없습니다. 군량까지 지원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공성을 할 때 쓸 무기들을 주시지요.”
“…….”
이러한 처사에 수치를 느끼면서도 야율설도는 침착하게 어려움을 설득하였고, 그러한 노력이 먹혔는지 지부겐은 한발 물러나 다른 방식으로 요구하였다.
“과거에 고려를 침범한 잔적(대요수국)들 을 칠 때와 동진국을 칠 때, 우리 군이 요동에 주둔하면서 공성 무기를 만들었다가 두고 간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돌려주십시오. ‘지원’이 아닌 ‘반환’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공성무기를 돌려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려의 성을 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고 이대로 아버지께 가야겠지요. 그리고 고려와의 전쟁은 끝이 나겠지만, 그게 과연 전하께 이로울지는 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
고압적이고 통보적인 말에 야율설도가 입을 다물자 지부겐은 수락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자리를 떴다.
“그렇다면 공성무기는 후군에 보내주시리라 믿고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 * *
그렇게 지부겐의 겁박이 담긴 요구에 결국 지원이 아닌 반환의 형태로 공성 무기를 건네줘야 했다. 물론 덕분에 야율설도는 변명거리는 얻었다. 공성무기에 대해 고려가 따지면 지원이 아닌 반환한 것일 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고, 이번에 귀주성을 살린 고려군이 강을 통해 간 것을 알고도 지부겐군에게 말하지 않았다거나 이쪽도 고려를 위해 했다는 대답 거리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내놓던 지금 고려군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고려 입장에서 큰 배신감이 앞선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비해야 할 문제였다.
이제 옷치긴 왕가의 군대가 아니라 고려군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여 신하들의 위로는 무엇하나 야율설도의 근심을 덜어주지 못했다.
“전하. 설혹 고려가 아조에 원한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감히 치겠사옵니까? 아조는 어찌 되었든 예케 몽골 울루스의 번국입니다. 그것을 친다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 멍청한 신하 하나가 낙관적에 멍청하기까지 한 말을 하자 야율설도는 결국 언성을 높였다.
“그러니까. 지금 몽골군이 들고 간 우리 공성무기가 문제라는 것이 아니더냐! 그것을 빌미로 따지게 되면 아조가 고려를 먼저 친 것이 돼서 저들에게 빌미를 줄 수 있게 된단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전하. 고정하여주시옵소서. 분명 고려가 우리들의 예상보다 강하긴 하나 본조를 치고 땅을 점령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고려로서도 제대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너희들은 고려가 아조를 쳐서 영토를 점령하지 못할 것이라며 안도하는데 약탈과 방화를 하는 것은 몽고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갑오년 고려 태자가 침입하였을 때 어찌 되었는지 그대들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설무아지 장군의 군대를 격파한 고려 태자군이 그대로 치고 올라가 요동성 이남의 여러 마음과 성의 백성들이 고려에 끌려간 일을 지적하자 신하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으음.”
“알겠느냐. 이제 본국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노왕과의 전쟁이 아니라 고려와의 전쟁인 것이다.”
그제야 신하들도 고려와 전쟁을 할지 모른다는 상황을 깨닫고는 웅성거렸고, 제대로 답이 나오지 않았고 이에 야율설도는 깊은 한숨을 푹푹 쉬었는데, 그때 처음 안색을 물은 늙은 신하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와 고려는 순망치한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고려가 있어야 편한 것처럼 고려 또한 장기적으로 본다면 우리가 있는 것이 그들에게도 이로울 것입니다.
하여 갑오년 때에도 그러했으니 이번에도 고려에서 아조를 일방적으로 처리할 생각만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하의 우려는 지극히 합당한 것이며, 고려가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심산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것도 옳다 생각하옵니다.”
“…그러니 어떻게 말이냐?”
“아조와 고려국은 갑오년 이후 형제의 나라(兄弟之國)이 되었으니 고려 태자 또한 전하의 조카가 되어 사사로이는 전하께서 숙부라고 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전에도 고려 태자는 전하께 조언을 구하였을 정도로 숙질(叔姪)간의 관계는 돈독하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렇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라는 말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는 전부가 그것을 이해했다.
“하오니 해가 바뀐 지 제법 늦긴 하였으나 영신(迎新)의 예로 고려 태자에게 세찬(歲饌)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세찬을 보내라고?”
“그렇사옵니다. 듣건대, 이번 고려의 서북면을 침공한 적을 격퇴한 것도 고려 태자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전하께서 보내는 것은 숙부가 조카에게 주는 것이 되니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음, 세찬이란 새해에 찾아온 손님에게 주는 것인데 왕태자가 아국에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유야 붙이면 될 뿐입니다. 지난번 태자가 물은 것은 아조와 (고)조선의 관계였는데, 이때 아조와 고려는 연고가 있다 하였고, 요동과 고려의 북방 또한 과거 ‘조선의 땅’이었다고 하였으니 같은 조선의 땅에 찾아온 태자에게 세찬을 보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서 그곳에 있는 고려군의 기색, 나아가 고려 태자의 속내가 어떤지 파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율설도는 고민했다.
“그러나 고려가 어리석지 않아 우릴 경계할 공산이 큰데, 그것을 받겠는가?”
“이번 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귀주성의 장병들과 백성들을 위로하는 선물로 식량을 함께 보내시옵소서. 이때 요전에 노왕의 지시로 인해 제한해버린 각장의 일도 유감을 표한다고 건넨다면 그들도 식량과 각장의 문제 때문이라도 일고에 내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미곡을 선물하자는 노신의 말에 다른 신하들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전하. 그것이 알려진다면 몽골에서 따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 일로 긁어부스럼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옵니다.”
“성의 병사들과 백성들에게도 먹일 군량이라면 적게 잡아도 백석은 넘게 날것인데 그것을 몽골에게 끝까지 숨길 수 있겠으며, 후일 들킬 경우 후환이 두렵사옵니다.”
“조용히 하라. 그것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하지만 노신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고, 야율설도도 해답을 알고 있었다.
“숨길 필요가 없다. 그대가 말해보아라.”
“보내기 전에 먼저 우리가 보낼 것이라 알리면 되옵니다. 몽고인들에게는 우리가 현재 고려 북방이 어떠한지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데 고려의 의심을 걷어내고자 선물을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면 저들도 크게 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늙은 신하의 주장에 야율설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변 신하들중 가장 귀담아듣고 현재로선 시도 해볼 만한 조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오면 몇 석을 보내실 생각이시옵니까?”
재정을 담당하는 신하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자 야율설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귀주성에 줄 미곡으로 삼백 석을 보내도록 하라.”
“사, 삼백 석! 전하. 너무 많사옵니다. 안 그래도 몽골에 나가는 것도 적지 않은데….”
“상관없다. 너무 적다면 고려가 거부할 것이고, 설령 거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몽고 놈들이 의심할 것이다. 만일 고려가 거부한다면 다시 돌아올 것이니 그것을 감안 한다면 삼백 석은 큰 손해가 아니다.”
그렇게 동요에선 서둘러 미곡 삼백 석을 사자와 함께 고려로 보냈다.
* * *
“으음. 확실히 동요국에서 온 것은 맞는 것 같소만 그 이유가….”
“우리 대왕께서 대승을 고려 태자 전하에게 보내는 세찬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동성 각장 한림 태수 유준공은 갑자기 여러 수레들을 이끌고 찾아온 동요국의 사자의 서찰을 읽고 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서찰에선 눈앞의 궤장을 들고 있는 늙은 사내가 동요국의 관리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신의 사실 여부를 떠나 거란국 자체가 의심스러운 나라이니 그냥 돌려보내고 싶은데….’
동요국이 고려와 전쟁을 하는 나라는 아니었으나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몽골군이 고려에 넘어오는 것을 관망한 나라였다는 점이 경계를 부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일국의 왕이 보내는 성의를 변방의 장수가 제맘대로 돌려보낼수는 없었다. 거기다…
“세찬치고는 제법 많군요.”
“허허허. 많이 드셔야 할 때가 아니십니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너무 많지 않습니까?”
사신이 들고온 것은 바로 미곡 이였다. 아직 전시에, 그것도 미곡을 구하기 힘든 북방에서 군량을 들고 온 것이다.
“허허. 수년 전부터 양국은 형제의 나라가 되어 우리 왕께서는 고려왕을 형으로 모시게 되었고, 고려 왕태자 또한 우리 왕의 조카가 되었습니다. 하여 양국은 화호를 돈독히 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오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정작 이번 전쟁은 어떠했습니까? 형은 정도에 그릇된 것에 당당히 나서 싸울 때 아우인 아조는 몽고 탓이라곤 하나 형의 위기에 이렇다 할 큰 도움도 주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대왕께서는 이것을 매우 통탄스럽게 여기며 식음도 거르게 되었습니다.”
“으음.”
“다행히 조카이신 고려 태자 전하께서 대승을 이루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 건강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귀주성의 분투에 큰 감명을 느끼시고는 그들을 위로하고자 전하께 보내면서 그들 몫 또한 준비한 것이니 부디 전할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