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94
294화
36장 토사구팽 피하기
귀주성에서 몽골군을 격파하고 얼마 안 되고 박서의 북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거 잘만 하면 옷치긴 왕가 아예 끝장낼 수 있겠는데?’
저측에서 보낸 병력들은 전부 격퇴했고, 지금 양 전선에 있는 패잔병 병력들도 갈라전 측은 수가 적고, 요동 지역 쪽은 정예병들과는 거리가 먼 한인들로 이루어진 징집병들이다.
여기에 (조금 의심스럽긴 하나) 중립을 표방하는 동요국과 개입을 하지 않는 몽골 조정, 전쟁 자체가 옷치긴 측에서는 다소 무리하게 벌인 전쟁이라는 배경까지 따진다면 가히 유례없이 약해진 상태라고 단언해도 좋을 것이다.
이쪽에서 수비가 아닌 원정을 나가 침공한다면 여태까지, 그리고 이후로도 거슬릴 옷치긴 왕가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 기회에 옷치긴 왕가를 제거하거나 완전히 무력화까지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결국 단념하고 블러핑 소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 이거 잡으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다.’
고려와 옷치긴 왕가의 위치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 고려가 원 역사보다 강성해진 것에는 옷치긴 왕가를 견제하기 위한 조정의 번견 역할도 있기 때문이라는 점과 옷치긴 왕가의 테무케가 몽골 제국의 건국공신이자 황실 어르신이라는 점을 말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계속 커지고 있어 견제를 하고 싶어하는 황족들이 있지만, 결국 옷치긴 왕가는 몽골의 일원이고, 고려는 타국이다.
그리고 대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그런데 고려가 옷치긴 왕가에 쳐들어가 쓰러뜨린다?
물론 ‘이번 전쟁에서는’ 몽골 조정이 옷치긴 왕가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는 견제가 필요했던 세력이 힘이 꺾여 이제 더 이상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더 이상 견제할 필요가 없어진 고려의 가치가 몽골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몽골 제국VS고려가 되는데 그럼 현 고려군으로 몽골 제국 상대로도 이길 수 있냐고 한다면… 음, 역시 무리군.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무리야.
미친 척하고 몽골본토로 쳐들어간다고 해도 몽골의 주력과 핵심 인재들은 전부 서쪽에 있는 이상 카라콜룸을 초토화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한들 빈집털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유목민 상대로 빈집털이는 막대한 피해를 줬다고 하긴 힘들고, 결국 그 이상의 보복이 올 건데 초장기전을 가면 국고가 거덜 나거나 국토가 초토화된다.’
고로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몽골 제국과 싸우기가 힘들었고, 옷치긴 왕가를 쓰러뜨리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블러핑 계책에서 옷치긴 왕가가 분을 참지 못하고 전쟁이 재개된다면 몽골 조정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걸로 잡고 시도했는데… 순순히 낚인 옷치긴 사자 덕분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듯 하다.
‘어차피 본전 이상은 얻었으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 멈추는 것이 딱 좋기도 하고.’
그중 하나는 마포이가 협상 중 재차 선처를 부탁한 목단강 일대 이동 지역을 이번에 요구하지는 않는 것으로 완화하되 소유권은 제대로 포기하지 않고 남긴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쪽 땅을 논의 장소로 두면서 옷치긴 왕가와 이쪽 사이에 잔불을 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종전을 추구하면서, 먹지도 못할 목단강 이동 지역의 논쟁거리만을 포기하지 않아 잔불을 남기는 것이 무슨 성과냐고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다.
먹지도 못할 땅을 괜히 논쟁거리만 남겨 전쟁의 씨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해도 침략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북쪽만이라도 마음껏 군대를 내보내 싸울 권리를 남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도 드러났지만, 기본적으로 이쪽은 번국이라는 입장 때문에 국경 밖으로 군대를 보내기가 힘들다. 그 때문에 전장터는 매번 이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목단강 이동 지역의 소유권을 논쟁지로 둔다면 후일 쳐들어와도 적어도 그쪽 부분에는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고려와 옷치긴 사이에 완충지대로 만들기 위해 내건 조건 인것이다.
더욱이 그렇게 함으로써 옷치긴 왕가는 패하고도 여전히 고려와 항쟁할 전력을 가지고 있고 고려는 몽골 조정이 아닌 옷치긴 왕가에 집중 혹은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처럼 조성할 수도 있다.
‘옷치긴이 다른 왕가, 특히 조정에서 무시해도 될 정도의 형편 없는 상태로 만들어선 안 된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힘을 줘야 해. 고로 이제부터 옷치긴 왕가와는 적대는 하되 공존 관계를 구축해야겠지.’
이렇다 보니 잔불 남기기와 별개로 옷치긴 왕가와 힘을 회복 겸 이쪽과 (적대적)화평을 나눌 수 있는 쌍방 이익이 있는 조건도 제안했다.
‘뭐, 그걸 받아들일지는 테무케의 선택에 달린 거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는 대로 적대적 공존 구도가 되면 양자 모두 좋을텐데.’
여태까지는 옷치긴의 침공과 개입을 막기 위해 몽골에 붙었다면, 지금부터는 몽골 조정의 시선을 막기 위한 옷치긴 왕가와의 냉전 같은 구도를 보이며 공존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이제 답장이 오기 전에 서북면에서 있었던 일, 아니 동요국의 진상을 파악 내지는 해결하도록 할까. 이것(지부겐의 서북면 침공 관련)관련은 저들(옷치긴 왕가)에게 따지지 않겠다고 했으니 따질 수도 없고….’
동요국을 의심하게 된 것은 지부겐 군을 격퇴하면서 귀주성을 구출한 후 적들의 잔해와 무기들을 확인하다가 아무리 봐도 몽골군이 원정 중 제조하였다고 보기에는 많은 공성 무기라는 것을 들은 순간부터였다.
이건 동요국에서 지원했다고밖에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전쟁 중 아군이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고 관망하거나 옷치긴 군에게 길을 허락한 것도 이해 범주로 넘겼던 나로서도 가볍게 넘기기는 힘든 문제였다.
‘중립 고수가 아니라 지부겐에 붙었다라… 완충지대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거름망 역할 정도는 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그것도 못한다면 솔직히 유감인데.
그쪽도 지부겐군이 패했다는 것은 들었을 거고, 그들은 당분간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만약 적대를 고집한다면 여기서는 억지로라도 옷치긴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력으로 서북면에 군대를 보낼 가능성도 있긴 한데 이러면 동요국의 전의에 호응을 받아 옷치긴 왕가가 전쟁을 택할 가능성이 있긴 해서 솔직히 곤란하기는 하지만… 지금 서북면에는 박 장군의 군대가 있고, 대처 못 할 레벨은 아니니 옥석을 가리기 위한 기회로 봐도 되려나?’
우선 반응부터 보고 동요국에 대한 취급도 다시 궁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렴 박서가 있는데 어련히 잘하겠지.
* * *
통주.
“예?”
“지금 본군은 선봉이라고 하였소. 귀하께서 궁금한 것은 그것이 아니오? 지금 올라가는 우군이 얼마나 올지, 그리고 우리 군이 강을 건널지 말지 말이오.”
자신을 현 고려군의 총 책임자 상장군 박문성이라고 밝힌 장수의 말에 막불태는 당황했다.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궁금해하고 있던 것을 지적하여 설명해 줬기 때문이다.
정보를 알아낸 것은 기쁘지만 여기까지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기쁨보다는 의심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것이 무슨….”
“무얼, 이해하고 있소. 귀국 측 입장에선 영토 인근까지 군대가 오는 것이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할 것이오. 이에 대해 조정에서도 귀국에 숨기라는 명령도 없었고, 이렇게 식량까지 보내주셨으니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말해주는 것이오. 지금 소장이 이끄는 군대 1만이 선봉군이라고 말이오.”
“그, 그렇습니까?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알려주신다는 것만으로 고려에선 아조를 믿….”
긴가민가 의심하면서도 박서의 경계 없는 듯한 모습에 반색하는 막불태였지만 다음 나온 박서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그런데 이번 귀주성을 쳤던 적들에게서 상당수의 공성 무기가 있었다는 것을 정사께서는 알고 계시오?”
“…예?”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니겠소? 어떻게 저렇게 많은 공성무기를 저들이 동원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들고 아조까지 올 수 있었는지 말이오. 때문에 도주한 적들도 마땅히 추적하여 끝을 보는 것도 상정 중이오.”
“그것참, 기이한… 으음.”
웃음으로 무마해보려던 막불태는 눈앞에 미소는 그대로였으나 인자한 눈은 어느 사이에 속내를 꿰뚫어 보듯 날카롭게 변해 있는 박 서의 눈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섣부른 말은 악영향만 끼칠 것이라고 판단하곤 한숨을 내쉬며 토로했다.
“…지금부터 하는 소인의 이야기는 일을 하다가 일어난 일들에 대한 넋두리입니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들이니 듣는 것은 장군의 소량이십니다. 들으시겠습니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이렇게 마주까지 한 것도 인연이오. 차를 마시면서 담화를 나눈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소.”
변명을 들어주겠다는 수락의 뜻을 받은 막불태는 요동에서 있었던 지부겐이 요동으로 건너온 일, 동모산의 소식을 듣고 왕에게 말한 것, 거기서 자신들은 단호히 거절하였으나 그 후 결국 ‘반환’ 형식으로 건넸다는 사실들을 나름의 각색을 더해 이야기 해주었다.
“형식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
“동감입니다.”
소감을 말하는 박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막불태는 박서를 면밀하게 관찰해 보았다. 본국을 포함한 고려 밖에서는 원정을 자주 나간 고려 태자가 더 유명하다곤 하나, 고려 무관들의 정점에 해당하는 수문하시중의 이름 정도는 백성들이면 몰라도 동요국 조정에서 아예 모를 리는 없었다.
‘고려 내부에선 그 흑태자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명장이라 하던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노련한 숙장(宿將)의 무게가 느껴지니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다. 태자가 이곳을 맡기고 떠날 만하다. 태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고려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악수(惡手)로구나.’
그리고 막불태는 그가 흑태자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전 몽골과 맞서 싸워 용전한 장수 중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참지정사(이규보)보다 노구인 몸으로 위험함을 알고도 본국에 넘어온 것도 그렇고, 속내를 지적당하고도 움츠러들거나 구차하게 변명을 하기는커녕 승복은 하되 더욱 열심히 재차 설득하려는 그 언변은 가히 풍도(馮道:오대 말 명재상)가 따로 없구나. 동요국에도 인재가 있었어.’
막불태가 박서를 관찰하고 평가를 내리는 동안 박서 역시 이런 시국에 찾아오고 지적당했음에도 떳떳하게 설득하는 막불태에 대하여 크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면 귀국의 뜻은 대왕 전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소장 또한 대왕의 인사를 무사히 전하여 올리겠소.”
그렇게 노신과 노장 양자 모두 상대가 무엇인가 속내를 가지고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 언변과 태도에 감탄하고는 내심 아쉬움도 느끼며 헤어졌다.
“다행히 여기 있는 것이 본군의 전부라는 사실은 간파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 같네. 다만 완전히 간파한 것은 아니더라도 허세일 가능성도 의심은 하고 있던 것 같네.”
막불태가 떠나자 부장으로 대동했던 최춘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걸자 박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막불태에게는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선군이고 곧 있으면 후군도 당도할 것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허세였다. 북계에 있는 북상군은 이곳에 있는 1만 명이 전부였고, 따로 추가로 증원이 올 예정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속인 것은 전쟁이 길어지지 않게 몽골과 동요국을 견제하고, 나아가 동요국에게도 수상한 짓을 한다면 이번에도 강을 넘겠다는 위협이자 경고였다.
“그나저나 이번에 온 거란의 정사는 인상 깊은 사람이군요. 거란에 저런 인재가 있을 줄이야. 어쩌면 거란도 중흥할지 모르겠습니다.”
막불태가 한 지부겐의 협박이라는 주장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동요국이 결국 몽골군에게 무기를 지원하여 간접적으로 고려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 일조한 것은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적국의 인재를 높게 평가하는 최춘명을 박서는 이상하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글쎄. 저런 유능한 자가 있음에도 지금의 격랑을 겨우 넘기는 것이 고작인 것이 작금의 상황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지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군요.”
최춘명 또한 박서처럼 1차 여몽 전쟁에서 몽골군과 싸워본 적이 있기에 그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결국 그런 난세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자 하는 것은 거란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인 것이지. 이 일은 황상 폐하와 태자 전하 두 분께 시급히 올리도록 하세.”
# 작가의 말
목단강 이동 지역은 무리였습니다. 가지기엔 너무 넓고 관리가 힘들고, 저기까지 삼킨다면 몽골조정에서도 고려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