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47장 고려 제일의 상단(1)
갈라전 각장.
북방 전쟁으로 여러모로 피해를 받은 테무케 옷치긴은 그 피해를 어떻게든 복구하기 위해 주변과의 무역을 활성화하였다. 옷치긴 왕가의 상인들이 향한 곳에는 새로 설치된 갈라전의 각장도 있었다.
그렇게 시장을 찾아오는 몽골 상인들을 따라 완안자연을 비롯한 갈라전의 여진, 고려인들 역시 북방에서 새로 커져가는 시장의 흐름에 동참하였는데, 그중에 용강현과 서경에 근거지 삼는 용강상단도 갈라전의 각장에 도달한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이라 할 수 있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고려인삼과 고려청자라면 천하 어딜 가든 알아주는데 고작 이걸로 되겠소? 배는 주시오! 은이 없다면 우마(牛馬)로 대금을 치러도 좋소. 물론 흠이 있는 우마는 가격을 깎을 테니 염두에 두시오.”
자신이 요구한 것에 배는 내놓으라는 고려 상인의 말에 몽골 상인은 인상을 찡그리더니 자신의 허리에 찬 칼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고려인삼, 그리고 고려청자 귀한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그리고 말은 우리도 부족해서 이번에 들고 온 것이 끝이다. 그것도 비싼 거니 적당히 그걸로 만족해라. 아니면….”
“아니면? …오호라! 그러니까 겁박하여 뜯어보겠다? 그대는 여기가 아직도 이곳이 노왕의 땅이라 생각하시오?”
하지만 그러한 몽골 상인의 위협에 용강상단의 상인은 도리어 히죽 웃더니 손가락을 튕겼고, 그러자 그의 뒤로 여러 변발을 한 건장한 사내들이 다가왔다.
“…너. 지금 주르첸 놈들을 믿고 이렇게 나대는 거냐?”
여진인들의 모습을 본 몽골 상인은 더욱 이를 드러냈고, 몽골 상인들의 일행들도 함께 적의를 드러내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용강상단의 상인이 다시 히죽 웃으며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여기서 칼부림을 하게 되면 누가 더 손해일지 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고려 상인은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옆을 가리켰다. 그곳을 보니 자신들을 슬쩍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이 보였다.
그의 말마따나 각장 안에는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고려, 여진 병사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고, 지난 전쟁 이후 그들은 옷치긴 왕가에서 직접 보낸 사람이 아니면 즉각 무력 대응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즉, 여기서 소란을 피운다면 불리한 것은 자신들일 것이 뻔한 일이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고려 산삼이나 청자, 면포가 필요하다. 은과 말도 그리 많지 않다. 조금만 깎아달라.”
“흐음. 북방에서 대금은 은과 우마가 최고지만…. 뭐, 그대들과 이번만 만나고 말 것 같지도 않고 나름 선처해 줄 수는 있소. 은과 말이 없다면 다른 거로 대금을 치러도 좋다는 말이오. 예를 들어 약재로 많이 쓰는 유황과 염초도 괜찮고, 파사국의 융단이라거나 향료, 혹은 진귀한 보물도 괜찮소. 다만 후자 경우에는 그것에 맞게 값을 조정해야 할 것이지만 말이오.”
“…이번에는 많이 들고 오지 못했다. 이번엔 동물 가죽뿐이다.”
“그럼 이번에는 다소 깎아줄 테니 다음부터는 부탁하오. 만일 오래 거래할 생각이 있다면 이쪽에서는 그대들에게 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할 생각이오. 이것은 비단 그대만이 아니라 북방의 노왕께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소?”
“…말해봐라.”
“우선….”
옷치긴 왕가로부터 수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은과 소와 말이었고, 그 외 서역의 물품들과 조미료, 향료, 유황, 염초 정도였다.
사실 이 시기 고려는 옷치긴 왕가에게서 필수적으로 받아낼 품목이 없었다.
평시라면 우마를 얻을 수 있었으나, 이 시기 옷치긴 왕가의 우마마저 서방 원정에 동원되거나 혹은 이번 전쟁에 잃은 피해를 복구한다고 자급자족이 우선인 상황이다.
고려 입장에서는 각장을 열면서 얻는 것 치고는 매우 미미한 정도이다. 하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값비싼 물품을 비교적 싸게 구하고 다른 나라에 파는 것으로 손해는 없었다.
반대로, 테무케는 처음만 하여도 예상 이상으로 고려가 은을 긁어모으는 모습에 갈라전 각장을 포기해야 하는가 생각도 들었지만, 곧이어 은과 말 외에 대체하여 지불할 수 있게 되면서 그대로 지속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빠져나가는 은이 예상보다 많긴 하나 대체할 수 있는 물품들이 있는 이상 은의 지출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고려와의 각장으로 일본과 남송의 물건들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이 예케 몽골 울루스 내에서 거래가 될 때 옷치긴 왕가는 이문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덕분에 고려는 지금 오랜만에 경제적 호황을 누비고 있었고 그 무역에 참여한 용강상단도 큰 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다. 용강상단은 이익을 누리고 있긴 하였다.
* * *
그리고 왕검은 그 이익으로 부유해진 용강상단을 이용하여 유구경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군말 없이 따르던 정안연조차 이번 유구경략에 추산된 군비의 액수를 보고는 입을 꾹 다물고 만 것이다.
장장 수만 명이 동원되는 출병이다. 단순히 수만 명이 하루에 먹고 마실 물과 식량을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어마무시한 액수가 나올 것이고, 출병과 경략에 들어가는 군비까지 부담하는 영역이다.
본래라면 국고는 물론, 전국에 특별 세금까지 더해 마련할 문제다. 함께 분담하더라도 일개 상단이 부담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양이었다. 설령 태자의 충실한 심복이라고 하는 용강상단의 정안연이라고 해도 말이다.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이번에 들어가는 군비는 도저히 용강상단만으로는….”
아니, 태자의 수족이기에 더욱 그 수족을 자르는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알고 있다. 많겠지.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결코 쉽지도 않을 것이다. 나라의 곳간과 국고가 차는 속도가 예전만큼 회복되었으니 이 뒤에 그대와 상단의 노고가 어찌 작겠느냐? 그리고 상단이 부유해졌다곤 하나 여태껏 여기저기 나의 거사를 돕는다고 상단이 겉과 달리 속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라의 국고가 차는 속도는 예전에 버금가나 그 안에 들어간 양은, 예전 이상으로 나가는 것이 늘어나 국고가 아직 예전만큼 차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금은 국고에 빼는 것은 민심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아니냐?”
“…그렇사옵니다.”
“징병과 출병의 평판이야 현 정병들을 동원하거나 탐라인들을 부리거나, 혹은 입소문을 통해 만들 수 있으나 추가 조세만은 수습하기가 쉽지 않으며 어찌 말로 수습한다 한들, 잃은 피해를 복구하는 것도 힘이 든다. 이것도 알고 있을 터다. 그렇지 않으냐?”
“맞사옵니다.”
“하여 내가 이번에 힘든 것은 알면서도 그대에게 다시 부탁하려는 것이다. 이 유구 경략의 문제는 비단 이번에 즉시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용강후. 그대가 그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
“맞사옵니다. 문제는 그 군비의 양이 사전에 염두에 둔 것 이상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문제는 자칫하면 상단의 막대한 피해를 넘어 분산을 불러올지 모르옵니다.”
정안연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자타공인 나라에서 손꼽히는 상단 혹은 제일가는 상단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용강상단이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수적을 소탕하면서 수적들과 남해에서 성세를 누비던 상단들을 산하에 들인 후였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상단들은 용강상단의 산하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즉, 지금의 용강상단은 금상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조직인 동시에 여러 상단들도 공존, 복속한 상단의 연합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이 용강상단에게 붙은 목적에는 상단의 존속과 번성도 있는 만큼 용강상단에서 막대한 부담과 손해를 받게 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그들의 충성은 당연히 흔들리고 배신할 우려가 있었다.
만약 그들이 반란을 하여 성공한다면 용강상단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이고, 왕검의 개혁에도 차질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것을 감수하면서도 해야 할 일이기에 말하는 것이다. 그대는 이번 경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번 경략에 누가 가고, 무엇을 사용하고 이후 무엇을 하려는지 측근인 그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속행하고, 완전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국고가 아니라 되도록 나의 선에서 처리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이런 부탁하는 심정과 중요함을 모르느냐?”
“…알고 있사옵니다.”
“이번의 장소는 아조가 아닌 만리타향이오. 외지인들뿐이다.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만전으로 임하여야 하는 것이다. 혹여라도 그곳에서 일이 벌어지거나 뒤처리가 잘못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낭패가 아니냐? 그대는 상단의 주인이며 대외적으로는 나의 장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나의 측근이다. 그렇기에 이번 문제를 그 누구보다 먼저 알리고 상의하였다. 그런 그대가 보기에 나의 대사는 진정으로 여기서 지체를 하거나 그만둬야겠느냐?”
“…아니옵니다.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나이다.”
차라리 무리거나 이해할 수 있느냐? 라고 왕검이 질문을 던졌더라면 정안연은 이해는 하나 너무 힘든 요구니, 반발을 막기 위해 반대의 의견을 개진해 볼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태자가 한 말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확인’의 구하는 말이었다.
‘작전의 중요함을 알고도 무엇을 우선시하는 것인가? 혹은 그것을 이해하고도 반대를 한다면 그만한 대안을 마련하였는가? 라는 확인이구나. 지금 나에게 이 문제를 보다 깔끔히 해결할 대안이 없다면 이것을 거부하지 말라는 뜻이다.’
“본 상단의 모든 임원들을 소집하여 물자와 금액을 동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끌어모아서 금년 본상의 모든 수익을 포기하고 적자를 각오한다면 얼추 모을 수는 있을 것이다.
고비는 있으나 대체로 순조롭게 성장한 용강상단에게 이번 일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고비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용강상단 직속 단원과 백성들만의 문제였으나 이제는 산하라곤 하나 타인의 상단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이 경략이 끝난 후에는 더욱 큰 이익이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단지, 정안연은 그 이익이 돌아올 때까지 산하 도방들이 얼마나 잠자코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리고 과연 용강상단이 무사히 견딜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 * *
용강현.
갑작스러운 용강상단의 상단주의 소집에 불린 상단주들은 소집장에서 여러 번 경악하여야 했다.
명성이 자자한 용강상단의 주인. 황실의 인척이자 높은 사람인 용강후 정안연이 이번 소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 첫 번째로 놀란 것이고, 그 직후 그의 입에서 이번 출병에 대한 군비를 용강상단을 비롯한 산하 상단들, 즉 자신들도 일부 부담할 것이라는 충격 발언이 둘째였다.
당연히 요구한 액수에 상단주들은 여러 소리를 내며 반대하였으나 용강후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이번 문제에 그대들이 많이 당황하고 놀라는 것은 이해하는 바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기는 손해와 그로 인한 자금 압박은 내가 해결할 것이니 이번 군비를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준비하도록 하라!”
“…….”
“으음.”
단호한 선언에 그들은 그 자리에서 입을 다물었으나 속에서 솟아오르는 불만과 우려마저 잠식시킬 수는 없었다. 지원할 군비의 총액은 자그마치 은(銀) 10만 냥에 근접하였기 때문이다.
은 10만 냥이라고 한다면 북송 시절 고려의 국신사가 왔을 때 대접하는 데 드는 비용이었으며, 북송이 전연의 맹으로 요나라에 매년 바치던 은의 양과 맞먹는다. 일부만 부담한다고 하기에도 너무나도 막대한 양이었고 액수가 너무나 컸다.
이 갑작스러운 자금 압박에 상단주들은 소집이 끝난 후에도 자신들끼리 다시 자리를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그대들은 이번 대방(용강후) 어른의 지시를 어찌 생각하는가?”
“…대방께서 친히 모습을 드러내 명하신 일이긴 하나, 이건 너무나 심한 요구요!”
“그렇소. 은 10만 냥이라니! 아무리 대방 어른의 지시라고 하여도 이것은 아니오! 이것을 따랐다간 상단이 망하고 말 것이오.”
“아무리 그래도 설마 망하겠소? 솔직히 용강 상단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대방 어른의 것이 아니오? 당연히 대방 어른께서도 분명 나름대로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겠소?”
“글쎄요?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저는 지금 대방 어른께서는 상인이 아니라 조정의 요직에 오른 자로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대방 어른께선 상인인 동시에 정계에도 몸을 담그고 계신 거물이 아니십니까?”
“…….”
“하여, 이번 유구 출병에서 많은 돈을 지원하여 조정에 대방 어른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자 용강상단을 비롯한 우리를 끌어들여 지원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방 어른께서 자신의 권력을 위해 우리 모두를 희생시키고 있단 말이오? 말조심하시오! 그런 망발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갔다간….”
“그만! 뭐가 되었든 이번 지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오! 요구한 액수를 지불하고 나면 우리 손에 있는 것도 탈탈 털어 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올해, 아니, 수년간은 평소처럼 장사하기가 버거워질 정도란 말이오.”
“그러나 대방 어른께서 해결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조금 더 믿어보는 것도….”
“어허. 불이 나 소들이 다 타 죽은 뒤에 외양간을 고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소. 나는 그 말을 쉬이 믿을 수 없소.”
상단주들은 그렇게 저마다 불안과 불만을 말하고 헤어졌다.
그러한 대화 중 어느 누구도 대놓고 누군가에 대한 반심(叛心)을 내뱉지는 않았으나 말들 속에서 적재된 불안과 불만은 그곳에 있던 모두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지는 상단주들 사이에서 한 명의 상단주가 눈을 반짝이며 다른 상단주에게 접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