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14
314화
48장 확장되는 해동천하(3)
“너는 도대체 무얼 알아본 거냐!”
슌텐씨의 성에서는 때아닌 슌바쥰키의 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노를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측근이자 이번 고려군을 끌어들이는 계획을 구상하고 제안한 요두리였다.
“5백! 너는 고려가 보낼 수 있는 병력은 기껏해야 5백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저게 무엇이냐! 네 눈에는 저것이 5백 명으로 보이느냐! 2만 명이 넘는다. 자그마치 2만 명이 넘어! 지금 우리 성에 있는 모든 사람을 모아도 저것에 미치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
“…죄송합니다. 저도 저렇게 대군을 보내올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고려에 대한 입조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벌인 일이다.
군대 지원을 청한 것 또한 고려가 정말로 군대를 보내준다면 그들로 이용할 생각이었고, 그 군대가 자신들에게 창칼을 들이밀고 삼킬 경우 정도는 대비했다.
단지 그들이 생각한 규모는 탐라 왕자의 난을 기준으로 하여 5백 정도로 잡았고, 린잔의 보고를 듣고도 1천, 최악을 상정하더라도 2천 정도로 잡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처음의 50배(탐라인이나 기타 장인까지 포함하여 2만 5천 명이다.)요. 최악의 기준으로도 10배를 넘는 이 사태는 상정을 넘었고, 처음의 그들이 결심한 각오를 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생각을 못 했다니! 그 말로 모든 것이 넘어가리라 생각하나! 그들을 맞이하던 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입은 장비도 하나같이 우리 병사들보다 뛰어나다 들었다. 저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이 성이 단번에 함락될 것인데…. 허, 허허.”
결국 슌바쥰키는 기가 차서 웃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려에 다녀온 린잔의 보고에 고려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크고 강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동시에 이곳과 고려의 거리가 멀고 험난해서 쉽사리 항해가 힘들다고도 했다.
그래서 이전 요두리의 말도 있고 해서 대군은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믿었다.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슌바쥰키는 근방, 아니, 인근 섬에서도 가장 크고 강한 세력을 가졌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고려가 보낸 병사들의 수가 그런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서 사는 모든 인간들을 모아도 비교할 수 없었다.
“주군. 그래도 저들이 우리를 치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들을 후하게 대접하고, 상정한 대로 인근 아지들을 치게 한 뒤 돌려보내시지요.”
한 가신이 그렇게 말하자 슌바쥰키는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이 어리석은 놈아! 저들은 군대가 지낼 동안 먹을 식량을 지원하라 하였는데 저들이 몇이냐? 수만 명이다! 수만 명! 내가 다스리는 땅에 있는 모든 수를 모아도 비교가 안 되는 인원을 먹일 식량을 우리가 어떻게 언제까지고 부담하란 말이냐?”
부양하는 백성들보다 많은 군대를 부담하라니,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만큼 적절한 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지 못하겠다는 말을 한다면 자신들을 도우러 온 군대를 먹일 식량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말이 돼버리고, 고려군이 적대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성에 있는 모든 식량을 계산하고, 산하 아지들에게서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식량을 받도록 한다.”
슌바쥰키 스스로도 이것이 자충수와 불만을 가져올 명령인 것은 알았지만 정말 이것 말고는 고려군의 식량을 지원할 방도가 없었다.
만일 이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아지들의 불만을 듣는 정도가 아니라 고려군의 창칼과 대면하게 될 위기였으니 말이다.
슌바쥰키는 탄식하였다. 슌바쥰키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아버지가 힘과 위세로 복속시킨 세력들이 분열 및 붕괴되는 사태를 막고자 노력하였다.
따라서 산하 아지들과 부하, 백성들에게 대놓고 무리하거나 과한 명령은 최대한 자제해 왔다. 그런데 그 방침이 이번에 깨진 것이다.
“고려 황제께서 참으로 나를 많이 생각해 주었구나. 생각해 주었어.”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이윽고 돌아온 린잔의 말에 슌바쥰키와 가신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고려의 대장군이 말하길, ‘진위교위(슌바쥰키)가 천군의 전 장병들을 먹일 식량을 계속 부담하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알고, 군량을 나름 넉넉히 들고 왔으니 식량 지원은 어디까지나 백성들이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만 지원하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성주의 성의와 진심이지, 유구의 고혈을 빨기 위해서가 아니며 어서 빨리 지도와 목석 등을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오, 오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옵니까? 주군!”
가장 고민이었던 고려군 식량 문제를 고려군 측에서 먼저 가져온 군량이 아직 넉넉하니 백성들에게 부담이 가는 선에서 내지는 않아도 좋다.
대신에, 재차 지도와 목재와 석재들을 요구하였고 인근 지도를 달라고 청한 것이다.
한마디로, 주변 지리를 알기 위한 정보와 진지를 갖출 자원은 빨리 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선대 성주 슌텐이 죽기 전 ‘내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문제를 남기더라도 내 아들이라면 충분히 문제를 깨닫고 해결할 것이다’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의 인재인 슌바쥰키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을 보여준 고려였다.
슌바쥰키는 고려에서 내린 진위교위라는 지위가 낮다고 분노했지만, 이번 대장군의 말도 진위교위가 군대의 식량을 전부 부담을 할 수 없을 것이라 배려하지 않았던가?
결과적으로 보면 낮은 지위를 받았기에 이만한 배려를 받은 것이오. 고려에서는 자신에게 맞는 지위를 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자신 쪽이 생각과 태도를 고칠 수밖에 없다.
“…지난번에 고려에서 보내온 관복, 그것을 가져오너라. 그것을 입고 내가 직접 그들에게 가서 칙서를 받아야겠다.”
“주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군!”
고려에서 내준 관복을 입고 직접 가서 맞이하겠다. 그 괄괄한 선대 성주인 슌텐이라면 상상도 못 할 성주의 행동에 가신들, 특히 요두리는 맹렬히 반대하였다.
하지만 이미 각오를 굳힌 슌바쥰키의 결심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이런 옷은 그들이 떠난 후 벗어도 그만이다. 그보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들 앞에서는 철저히 고려의 번신으로 움직이는 것 말고는 우리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
* * *
이윽고, 슌바쥰키는 고려에서 내준 관복을 입고 스스로 고려군이 있는 곳으로 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칙서를 받을 채비를 갖추었다. 송문주가 시선을 보내자 김구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유구 성주 순마준희는 칙서를 받들라!”
“예.”
슌바쥰키가 무릎을 꿇고 받을 준비를 마치자 김구는 손에 든 칙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진위교위 순마준희에게 칙유하노라. 지난번 너의 아들 의본(기본)이 내조(來朝)하여 말하기를 ‘네가 능히 짐을 공경하고 아조에 귀심(歸心)하겠습니다’ 하여 짐이 너를 매우 가상히 여겼다.
그런데 의본이 이어 말하기를 ‘유구는 지금 도적들과 송과 왜의 상인들이 천조의 눈을 피해 침투하여 밀거래를 행하여 나라가 많이 혼탁하여 힘드옵니다’ 라고 하여 짐은 그것을 안타까이 여겨 그대에게 직위와 관복을 하사하여 유구가 아조의 번속임을 그들에게 명확히 알리고, 이제 이렇게 대장군 송문주 등을 천군과 함께 보내어 유구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슌마쥰키는 칙서의 내용을 공손하게 들었다.
“또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적절히 조처를 할 것이니 너는 천군을 도와 사태 해결에 진력하라. 그리고 이번 일이 끝나면 네가 친히 내조(來朝)하라, 그렇다면 너에게 유구에 대한 명분(名分)과 상사(賞賜)를 주어, 너로 하여금 군민(軍民)을 안무(安撫)하게 할 것이다. 만약 유구의 다른 두목(頭目)들 중에도 명분(名分)을 주기에 합당한 자가 있다면 그대와 함께 옴이 가(可)하다. 만약 명분을 주기에 합당한 사람이건대 그곳의 일로 인하여 오지 못하는 자가 있거든, 그들의 이름을 명백하게 일일이 기록해 가지고 와서 아뢰면 명분(名分)과 상사(賞賜)를 일체로 주겠다. 이 까닭으로 칙유한다.”
김구가 칙서의 내용을 전부 읽고는 이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슌바쥰키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폐하께서 그대에게 내리는 하사품이다.”
비단 3필과 면포 5필, 은그릇 20개, 은을 두른 안마장 1개와 청자 4점과 보검 한 자루였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대는 황상 폐하의 신하가 되었고, 황상 폐하는 이 먼 변방의 안전을 위해 우리 천군을 보냈다. 그 황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입니다. 하물며 천군께서 소방의 어려움을 이해해 주시어 과중한 징세를 하지 않도록 해주셨으니 이 또한 어찌 감사를 뜻하지 않겠사옵니까. 하여 크게 연회를 베풀었으니 부디 성의를 봐서 받아주시옵소서.”
“성의는 고마우나 하루라도 빨리 사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은 일이로다. 더욱이 아직도 군이 지낼 진채가 마련되어 있지 않으니 지금 연회를 베풀었다간 우리 천군과 사람들은 성내에 지내게 되니 백성들에게 겁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니 연회는 조금만 미루는 것이 어떠겠느냐?”
“소방을 거듭 생각해 주시니 어찌 감읍하게 여기지 않겠사옵니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우리 번민들은 더욱이 천조와 천군의 덕을 칭송할 것입니다.”
“한데 이곳의 지도는 준비하였느냐?”
“말하기 부끄럽사오나 소방은 대국처럼 상세한 지도가 없으며, 문자도 없어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대국의 문자가 아니라 변방의 기호로 표시하고 있나이다. 그러니 장군과 천군께 편의를 주고자 지도와 함께 향도(嚮導)를 붙이려고 하는데 괜찮겠사옵니까?”
“…음. 좋다. 향도가 지낼 막사를 마련할 테니 그곳에 두도록 하겠다.”
송문주가 수락을 하자 슌바쥰키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사람을 고려군 옆에 붙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실 현 섬의 제일가는 세력가라고 알려진 슌텐씨의 슌바쥰키가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국에서 준 옷을 입고 이국인에게 무릎을 꿇고 나아가 존대하는 모습은 섬에 사는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슌텐씨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굴욕적이기도 한 광경이었다. 당연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슌텐씨의 위상에 금이 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가신들도 슌바쥰키가 고려의 옷까지 입으려고 하자 맹렬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슌바쥰키는 결코 그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어서 이런 행동을 고집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고려의 대군이 오고, 이곳에 진채까지 설치한다면 섬에 고려군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고려라는 나라가 얼마나 강하고 부유한지도 알려진다면, 저들도 결국 나처럼 고려에 입조하려 들 터, 상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익을 얻게 될 것이고, 나아가 고려의 힘을 입어 나를 꺾으려 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자칫 섬 내 힘과 위계 서열이 뒤바뀔지도 모르는 일이다.’
‘당연히 그런 일은 막고 싶지만, 고려가 원한다면 나로서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쓸데없이 자존심을 챙겨 저들이 우리 외에 다른 아지들에게 관심을 주게 하기보다는, 저들이 섬에 있을 때 저들은 물론 섬 전역에 우리가 고려의 제1 신하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100보 나을 것이다.’
한마디로 슌바쥰키는 지금 어차피 무력으로 몰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고려에 으뜸가는 신하로 먼저 자리매김하여 후일 다른 아지들이 조공을 바쳐도, 섬 내 일인자 슌텐씨라는 것을 선취하고자 벌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도로 행하는 행동이라도 슌텐씨의 약한 모습을 보고, 슌텐씨의 힘이 약해졌다고 여겨 배신하거나 혹은 기세를 드러내는 아지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색출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슌바쥰키는 더욱 고려에 예를 표했다.
‘저 고려의 대군으로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아지들과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을 솎아내고 처리하게 하면 된다.’
고려군이 왔을 때 겸사겸사 그들을 쉽게 병탄할 수 있는 의도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슌바쥰키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반적들과 밀상들에 대한 위치를 물으셨는데 소인에게 적긴 하나 따르는 아지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협력하여 반적들과 밀무역을 행하는 상인들이 있는 곳을 알아본 결과 몇 곳을 찾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