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26
326화
52장 남방 경략(4)
일본 남큐슈 오스미국(大隅國 오늘날 가고시마현).
“그러니까. 저 아래의 섬들을 우리 신국의 강토로 만들라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소인들은 누구보다 저 섬을 오갔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요. 저 섬은 신라(고려)놈들의 땅이 아닙니다. 그저 교역을 막기 위해 그러고 있을 뿐입니다. 저들이 뭔데 우리보고 이래라저래라한단 말입니까?”
“흐음.”
오스미국의 고케닌(御家人 코케닌이라고 부른다.)인 그는 고민하였다.
다자이후의 진서봉행 쇼니 스케요시는 밀무역을 엄금한다고 지시를 내렸고 그에 따르긴 했지만, 사실 자신처럼 남단에 위치한 지역은 고려로 가기가 쉽지 않았다.
조공무역은커녕 사행무역에 선발되는 것도 어려웠고, 차라리 저들의 눈을 피해 남조와 거래에 성공하고 그렇게 얻은 송의 물품들을 일본 내지에 파는 것이 이득이었다.
실제 남송의 해금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이익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고려가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다자이쇼니(쇼니 스케요시) 또한 이 일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섬을 신국의 강토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 섬이 스스로 우리에게 복속될 것을 청하게 만들고 그것을 조정에 전한다면 다자이후에서도 나리를 어찌하겠습니까?”
“으음. 그러나 고려는….”
고케닌 중에서도 신중하다고 자부하는 그는 고려의 개입을 우려했으나, 눈앞의 상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고려는 전쟁을 택하지 못합니다. 이번 다자이후의 지시가 도리어 그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주장한 우리 죄라는 신국이 당상(송상)과 교역을 한 일은 이번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입니다.”
“…….”
“그런데도 이제 와서 다자이후에게 따진 것은 그만큼 신국을 건들기 저어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들키지 않고 이 일을 전부 처리한 뒤, 조정과 다자이후도 끌어들인다면 저들도 못 이기는 척 물러날 것입니다.”
신라구와 도이구(여진해적)의 악명과 그를 진압한 고려의 수군에 대해 강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일본이었으나, 문제는 마지막 외부 침략인 ‘도이의 입구’(刀伊の入寇)조차 2백여 년 전의 일이었다.
심지어 그 여진 해적들이 극성일 때조차 그들의 공세는 북큐슈에 집중되어 남큐슈는 비교적 안전했다.
쉽게 말하여 자주 고려를 오가는 북큐슈의 상인들이나 신라구, 도이구들의 침탈을 자주 받은 북큐슈 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전해 들어 약탈이 재개될 것을 그나마 경계하고 있지만, 남큐슈의 주민들에겐 덜한 것이다.
그들이 경계하는 것은 멀리 있는 곳에서 내려올 해적의 약탈보다는 큐슈 내에 있는 다자이후의 진서봉행과 측근들이 더 걱정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도 문제가 커지면 조정과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 분명했다.
쉽게 말해 지금 코케닌들을 설득하는 상인들은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속될 것을 주장하게만 만들고 그것을 받은 뒤 최대한 빠르게 크게 퍼뜨려 사건을 벌리기만 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설령 아니더라도 오키나와에만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오키나와에서만 전쟁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 * *
오스미국 해안가(오늘날 구마게군 해안가).
“…….”
해안가에서 찢어진 그물을 고치고 있던 어부는 할 말을 잃고 눈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난생처음 보는 함선들이, 그것도 인근 어느 배들과 비교해도 크고 단단해 보이는 함선들이 한 두 척이 아니라 수십 수백 척이 수평선 모두를 메우고 해안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오스미에는 그야말로 대혼란이 시작되었다.
“저건 도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함대냐! 무슨 수가 저렇게 많단 말이냐!”
“고…려… 고려군이라고!? 고려군이… 어째서 이곳에… 그것도 어떻게 남쪽에서…?”
“다, 당장 슈고(守護 쇼군이 보낸 지방관)께, 아니, 다자이후에도 보고하라! 고려군이 쳐들어 왔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바닷가를 메우는 함대의 등장에 남큐슈의 어부들은 물론 슈고와 고케닌들, 상인들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고려가 정말로 일본에 군대를 보내올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만에 하나라도 고려군을 보내더라도 북쪽에서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그들에게 정반대로 남쪽에서 나타난 고려군의 함대는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그렇게 당황하는 이들에게 고려 함대에선 쪽배와 함께 사자가 나와 전하였다.
“우리는 유구에서 해동천하의 평안을 어지럽히는 밀상들과 난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유구로 출병하였다가 그곳에서 그대들 나라의 상인들을 발견하여 온 것이다. 지금 당장 당장 대재부(다자이후)에 있는 진서봉행에게 우리가 온 사실을 전하고 그 해명을 듣고 싶다. 그때까지 우리 군은 이곳 해안가에서 정박하고 기다릴 것이다. 혹시라도 경거망동하여 창칼을 들이민다면 우리 또한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할 것이나, 얌전히 있다면 결코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곳의 성주와 주민들에게도 전하니 그대들 중 유구로 넘어간 나라를 어지럽힌 죄인들에 대해 짐작 가는 자, 혹은 관계가 있는 상인들을 안다면 그들을 잡아 보내도록 하라. 숨기거나 발뺌을 한다면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이, 이놈들! 네놈들 장사치가 나를 잡아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고려가 오지 않아?”
“그, 그럴 리가…. 이, 이건!”
“네놈들 말을 들었다 내가 죽을 뻔했구나! 당장 이 장사치를 포박하라!”
남큐슈의 고케닌들은 고려군이 온 내막을 알아채고는 대노하며 자신들을 꼬드기던 상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큐슈 해안가에 당도한 고려군은 2만 정도였는데. 오키나와와 달리 일본은 2만이라는 대군으로 정복이 될 정도로 약하지 않았고, 인구가 적지도 않았다.
큐슈의 다이묘들이 힘을 합친다면 2만 정도 혹은 그 이상도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협력을 할 때 이야기고, 일개 다이묘 개인이 감당할 병력은 절대 아니었다.
거기다 이 시기 판옥선은 오키나와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는 함선이라 실제보다 더 많은 병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을 들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이리되자 고케닌들은 물론 슈고 또한 독단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일단 고려와 외교를 전문으로 하는 다자이후와 협력하여 온건적으로 끝내고자 혹은 대응하고자 모색하는 방향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태가 여기까지 온다면 고려에 고개를 숙이는 다자이후의 쇼니도 일본을 배신하고 완전히 고려에 붙을 마음을 품지 않는 이상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이 자칫 고려와 맞붙을 경우 쇼니의 협력은 필수였기에 상인들을 잡는 한편으로 쇼니에게 고려군의 출몰을 보고하였다.
* * *
다자이후.
“…고려가 쳐들어왔다는 것이 사실이란 말이냐?”
고려의 사자에게 말을 전해 보고하는 것에 앞서 주변 고케닌들에게서 더 빨리 고려군의 출몰 소식을 들은 쇼니 스케요시도 당황하며 되물었다.
만일 남쪽 쇼케닌들의 보고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아무리 고려가 강국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고려가 자신에게 많은 이익을 준다고 하더라도 고려가 진정으로 큐슈를 삼키겠다는 의도로 온 것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조정에 알려져도 그냥 끝날 리가 만무한 문제였다.
“고려 사자는 우리 일본과 전쟁을 하거나 큐슈를 삼키려는 의도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왔단 말이냐?”
“지난번 고려에서 막으라고 하였던 밀무역을 하는 장사꾼들이 또다시 류큐에 적발된 끝에 잡혔고, 그 일로 온 것 같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였건만… 아니,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고작 그것 때문에 군대를 이끌고 함부로 타국에 왔단 말이더냐?”
어처구니가 없다는 주군의 말에 가신인 소 시게히사도 입을 다물어 무언으로 긍정을 표했다.
분명 쇼니 스케요시가 한번 말로 주의를 준 것 이외에는 따로 강하게 제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다.
이쪽의 상인이 밀거래를 하고자 넘어왔다는 이유로 따로 사신을 보내 묻거나 따진 후 군대를 보내는 것도 아니고 냅다, 군대를 보내는 법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진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고, 문제가 될 소지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잘못 해결한다면 자신의 입지도 위험해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정말 고려가 이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러나 이대로 잠자코 있을 수도 없었고, 소 시게히사는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말을 내놓았다.
“어찌 되었든 고려의 군대가 지금 남쪽에 당도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들이 진정 전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면 저들이 이렇게 나온 진짜 의도를 알아내야 할 것입니다. 주군. 부디 소신을 보내주십시오.”
쇼니 스케요리는 입을 꾹 다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고려가 온 이상 이쪽에서 먼저 대응해야 알아서 수습을 하든 조정에 보고를 하여 조정의 군대를 끌어들이든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 밑에서 고려와 가장 외교를 잘할 인물을 고르라면 직접 고려 태자와 만나본 소 시게히사밖에 없었다.
“…알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확실히 파악하고 돌아오라.”
“존명!”
* * *
그렇게 각오를 굳히고 고려에 간 소 시게히사는 송문주와 만나고 얼마 뒤 당황을 금치 못하였다.
“장군. 이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그렇다. 그러니 내가 먼저 그대에게 물으러 온 것이 아니겠느냐?”
“하늘에 맹세코 단언하는데 이 일은 소인과 주군은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성주(코케닌)들도 우리에게 해당 사건에 연류된 장사치들을 보내고 용서를 구하는 말을 보내왔다. 거짓말이라 생각 든다면 그 성주들을 알려줄 테니 직접 확인해라. 그대도 알겠지마는 이만한 사건이라면 일본국에 사신을 보내 낱낱이 따져 경을 칠 문제이나, 이번 사태가 일본 전체의 뜻인지, 아니면 구주의 뜻인지, 그것도 아니면 구주 일부의 독단인지 알아보고자, 잡은 이들을 이끌고 여기로 온 것이다.”
송문주의 능청스러운 말에 소 시게히사는 그렇다고 함부로 타국에 함대를 끌고 오는 일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반박해 봤자 피곤할 뿐이었고 송문주의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그 침소봉대(針小棒大)같은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지도 모를 문제였으며, 이 문제를 지적해 봤자 자신들이 더 불리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없지만, 남큐슈의 코케닌들 몇이 그런 모의를 하고 있다는 장사꾼을 잡아 보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큐슈 내에 정말로 고려와 분쟁을 일으키려는 모의가 있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고려의 함대를 여기에 계속 두는 것을 관망할 수도….’
그렇게 번민하고 있을 때 송문주는 물었다.
“하면 진서봉행은 이 일과 무관한 것이 확실하단 말이렷다?”
“그렇습니다. 주군만이 아닙니다. 소방의 조정에서도 이러한 일을 지시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알겠다. 그렇다면 나도 지금 바로 떠나 조정에는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지. 진서봉행한테도 향후에는 밀상을 더욱 단속하도록 하도록 전하라.”
송문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정말로 볼일이 끝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 바로 떠난다는 말씀입니까?”
“진서봉행이 보낸 자네에게 답을 들었고 이쪽도 전부 설명하였으니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닌가? 우리도 갈 길이 바쁘다.”
쇼니 스케요시와 다른 코케닌들이 그러했듯 소 시게히사 또한 고려군이 순순히 떠날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아 자칫 잘못되면 고려군과의 일전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고려군이 이렇게 순순히 떠나려고 하자 도리어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일본국의 뜻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간자 역할을 한 만큼 사신을 보내 엄히 꾸짖어야 하나, 그리되면 일이 커질 것이고, 자네의 주인인 진서봉행에게도 좋을 일은 없을 것이라 여겨 이번만큼은 내 재량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들르게 된 것이다. 뭐, 타국이긴 하나 아조의 번국이기도 하니 귀환 도중 들르는 것이라 하면 조정에서도 나를 일정 이상 책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야. 밀상들 또한 진서봉행에게 넘겨주도록 하겠다.”
“……”
“어찌 되었든 진서봉행이 관여치 않았다고 하나 괜히 번신과 번국을 의심스럽게 만든 이 사태에 대해선 진서봉행이 자세히 조사하여 파악한 후 다음 조공사에 설명을 해주게.”
“아, 알겠습니다. 다자이쇼니께는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떨떨해하는 소 시게히사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고려 함대가 이렇게 물러난다는데 막을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