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27
327화
52장 남방 경략(5)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소니 스케요시는 당연히 입술을 깨물었다.
“말도 안 된다. 이건…. 이게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혹 무언가 오해가 있다던가, 그런 것이 아니더냐?”
“소 스케요시 공의 보고로는 고려군에 만나기에 앞서 고케닌들부터 그런 작당을 한 장사치들을 잡고 고려에 바쳤다고 합니다.”
“…적어도 남큐슈의 장사치들이 그런 모의를 품었을 가능성은 정말 크다는 말이냐?”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듯하옵니다. 보고에 따르자면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이고, 혹시 몰라 고케닌들에게 가보았는데 자신들은 꼬드김을 들어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변명을 하며 상인들이 한 것은 인정하였고, 상인들 또한 우발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라고 시인하였습니다. 고케닌들이 거짓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남큐슈에 그런 것을 품고 있던 자들이 있던 것은 사실인 듯하며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보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 일단 장사치 놈들은 진짜 그런 말을 내뱉은 것은 사실이란 말이로구나. 허허허.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이냐.”
만약 고려의 설명과 보고가 사실이라면 저들은 고려가 류큐라는 섬에 군대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고려를 막기 위해 류큐의 만족(蠻族:야만인)들을 부추겼고, 나아가 본국의 고케닌들도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가 고려가 본국까지는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는 그들의 예상을 정면에서 무너뜨렸다.
그것도 그들이 있는 곳인 남쪽부터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그들의 등장에 남큐슈의 고케닌들은 혼비백산에 빠져 자신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곤란에 빠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진서봉행인 스케요시 자신도 외국의 군대가 당도를 허락한 오점을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고려를 욕할 수도 없었다.
이번 고려의 행동은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자신을 존중하였고, 그로 인해 더 큰 문제와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 고려에선 내가 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 간파하고는 나에게 한 번 더 기회와 명분을 줄 테니 알아서 처리하라 이 말이군….”
고려군이 온 것에 대해선 류큐를 토벌하다가 그곳에 있던 본국의 사람들과 죄인들을 귀환 도중 송환할 겸 왔다고 포장하면 될 것이다.
다소 억지가 있으나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고려군이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갔음도 사실이니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고려군은 이미 떠나면서 해결돼 가고 있고, 완전히 떠난 것만 확인되면 이후 다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고려군이 왔다는 사실에 일어날 문제와 이 사달을 일으킨 원인 파악은 현재 눈앞에 닥쳐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니 말이다.
“주군?”
“이 일로 남큐슈도 고려 수군의 활동 영역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전보다는 얌전해지겠지. 그리고 양국의 관계를 어지럽힌 장사치가 남쪽 놈들인 것이 알려진 이상 고케닌들은 자연히 죄를 피하고자 내 눈치를 봐야겠지. 그리고 나 또한 이 일을 문책하고 조사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런 만큼 이 일을 무사히 해결하고 나면 나는 큐슈를 손에 넣은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겠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태는…. 허허허.”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면 조정에서도 사람을 보내 따질 것이고, 이것을 해결하는데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실패했다간 최악의 경우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하여 분명 분노를 느껴야 하는 상황인데도 스케요시는 기가 차서 웃었다. 너무 충격이 심해 분노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이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싯켄도, 쇼군도, 유배된 법황(法皇)도 아니며, 하다못해 큐슈 내의 고케닌도 아닌 장사치였다니….
하지만 그 기가 차는 감정도 결국 분노에 밀려났고 그의 입에 서는 천둥과 같은 외침을 토해냈다.
“지금 당장 고케닌들에게 지금 바다에 고려군의 함대들이 보인다면 그들은 고려로 돌아가는 길이니 움직임을 주시하며 기록을 하되 결코 건들지는 말라고 전하라. 또한. 영지 내 상인 중 류큐에 간 이들을 검거하라고도 전하라. 그리고 슈고들에게도 지금 일어난 사건을 간략히 전하고 이 사건을 부른 범인을 찾고자 경거망동 행동하지 말고 조사에 임해라 전하라! 어서 가라! 고케닌이나 슈고들이 과장된 말들로 조정에 보고를 올려 나라를 어지럽게 둬서는 안 된다!”
“존명!”
“…그리고 상인들. 정말 돈에 미친 놈들이구나. 어떻게 저리도 탐욕스럽고 멍청할 수가. 내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장사치들을 특히 남큐슈 놈들을 손보겠다!”
쇼니 스케요시는 속으로 검을 빼 들었다. 이 순간, 남큐슈는 피의 파란이 예정된 것이다.
* * *
어느 날 조정에서 같은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녀석에게 관직을 내렸다.
친구 놈이 갑자기 관직을 받게 된 것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저놈도 관직을 받고 있는데 나는 여태 뭘 하고 있었는가, 하는 회한과 시기도 조금 나서 배가 약간 아팠다.
하지만 그 직후 조정에서 온 사람이 친구 놈에게 관직을 받는 대가로 우릉도로 이주해야 한다고 하자 복통은 바로 사라졌다.
조정에서 온 높은 분이 말하길, 오래전 우산국이 멸망하면서 그곳 사람들이 우리 고려로 귀부하여 살게 되었고, 친구 녀석이 그 유민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 녀석과 우산국 유민들의 후손들은 황명에 의해 친구 녀석과 함께 우릉도로 넘어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자기가 왕족일지 모른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군. 뭐… 이 경우 틀린 것이 훨씬 좋았겠지만 말이야.”
그걸 듣고 관직을 받은 그 녀석에게 절로 동정이 갔다. 사실 우산국 유민들의 후손이라고 해도, 그 유민들이 고려에 온 지가 이미 200여 년도 지난 일이다.
제아무리 조상이 섬사람이라고 해도 이제는 배나 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인데, 강제로 섬에 가게 됐으니 어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안 들겠는가?
그런 것도 모르고 조금이나마 친구를 시기했다니 나도 참 못난 사람이구나. 사실상 종신유배형이나 다를 바 없으니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보기 힘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사라도 하기 위해 친구나 만나볼까, 몸을 일으키는데 그때 그 녀석 쪽에서 먼저 왔다.
“이게 누군가? 아니, 누구십니까? 우산국 왕가의 후손이자 이번에 정위의 직을 받으신 백겸 나리가 아닙니까? 허허허. 관직을 받게 된 것을 감축드립니다.”
내가 진심으로 축하의 뜻으로 말을 건네니 친구 녀석은 나의 이런 마음도 이해 못 하고 뭐 씹은 얼굴을 지었다. 정말 실례군.
“…됐네. 이 사람아. 그보다 자네는 뭐 하는가? 혹시나 해서 왔는데, 이렇게 느긋이 굴고 있다니 어서 짐을 안 챙기는가?”
“짐을 안 챙기냐니?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소인은 정위 나리께서 하는 말씀을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어차피 둘뿐인데 그냥 말놓게. 그리고 무슨 말이긴 자네도 우릉도에 가야 하니 짐을 챙기란 말이네.”
“…내가 왜?”
“그야 황상 폐하께서 우산국 유민 후손들은 예외 없이 우릉도로 가라고 어명을 내리셨으니 그런 것 아닌가.”
“…그게 뭔 소리인가? 내가 우산국 유민의 후손이라니?”
“자네 몰랐는가? 예전에 자네의 부모께 들으니 자네의 조상과 우리 조상이 같은 곳에서 왔다고 하였네. 그런데 내가 우산국 왕가의 후손이면, 자네도 자연히 우산국의 유민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빠질 생각 말게. 이미 관아에도 제대로 전했으니 만일 빠지면 자네는 죄인이 되는 것일세.”
“이런… 10(십)…8(팔)….”
“그래. 내가 우산국주의 18(십팔)대손이니 아마 자네도 비슷하게 18대손일 것이네. 어쨌든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친구.”
실실 웃고 있는 친구 놈을 보고는 나는 친구를 잘못 뒀다는 것을 깨달았다.
* * *
우릉도.
결국 나의 저항도 부질없이 나는 그 웬수 같은 친구 놈과 다른 주민들과 함께 우릉도로 끌려왔다.
내 살다 살다 이렇게 어이없는 경험을 하다니 아마 내 인생에 더 이상 이런 경험을 겪을 리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나는 우릉도에 끌려올 때 이상으로 어이없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오늘도 우리 우산국은 평화롭습니까. 승상?”
“홀홀. 전하의 배려 깊은 마음에 따라 나라는 태평성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홀홀홀.”
그 웬수 같은 친구 놈은 우리 모두가 겨우 건설한 마을을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니며 제 나름 근엄한 목소리로, 왕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경외감이 느껴지긴커녕 삼류 광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기가 찰 지경이다.
‘무슨 우산국의 왕이냐. 무슨 우산국의 부흥이냐.’
저 녀석도 우릉도에 끌려온 것이 어지간히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우릉도에 와서는 옛 우산국의 궁터를 보더니 결국 회까닥한 건지, 궁터 앞에서 한참을 웃더니 본래 조상의 땅이니 후손인 자신도 제 자리를 찾겠다며 우산국을 부활을 선언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우산의 왕이라고 자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몰라도 이 말도 안 되는 백겸의 광태(狂態)를 다른 사람들은 받아주고 있다.
심지어 고려에서 온 관리와 병사들도 뒤에서 비웃거나 연민의 시선을 보낼 뿐, 참칭을 하는 행동에 크게 역정을 내지 않고 있다.
덕분에 그런 촌극 아닌 촌극에 이제는 그 후손들조차 생소할 우산국이 20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다시 부흥된 상태다. 진짜 나라라고 판정해야 하는가는 둘째 치고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 우산국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고, 의외라면 의외로 문무백관을 설치해 승상까지 둔 상태다. 문무백관의 수는 무려 4명이나 된다.
그렇다. 40명도 아니고 4명이다. 문무백관(文武百官)인데 4명이다.
지금 승상이라 불린 어르신만 하여도 승상만이 아니라 예조(禮曹), 이조(吏曹), 형조(刑曹)의 대신까지 겸직하고 있다.
이유는 유민 중 그나마 사서삼경을 떼고, 과거에 (낙방했지만) 응시하였을 정도로 박식하며 연공도 높으시다는 이유로 우릉도에 건너오고 나라를 건국할 때 승상으로 삼은 것이다.
덧붙여 병조(兵曹)와 호조(戶曹)자리에도 백겸의 옆집에서 살던 덩치 하나만은 대장군 감이라 풍채가 좋고 완력이 있으며 군공(고려에 있을 때 징집되었다가 전장에서 적병 하나를 잡은 적이 있다.)도 세우셨으니 장군에 적합하다고 임명받은 옆집 아저씨와 저 녀석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남은 두 자리는 다른 친구들이 꿰찼다. 이러는 나도 사실 그 녀석에게서 공조(工曹)자리를 권유받긴 했는데 나는 바로 다른 놈을 추천해서 거부했다.
뭐 추천받은 놈은 내게 화를 내기보다는 자기도 이제 직위가 있느니 뭐느니 희희낙락하니 다행인 듯하다만….
‘…미친놈. 무슨 불교 사천왕도 아니고 문무백관 4명이 뭐냐? 일당백(一當百)도 아니라 일당이십오(一當二十五)냐?’
사실 나라라고 해봐야 군적에 오른 자 포함하여 20명이오. 백성이라고 부를 만한 총 호수는 나를 포함해도 23호인데 문무백관 100명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이게 무슨 나라란 말인가.
예주(禮州)에 사는 양민들이 여기보다 사람 많을 거다. 그런데도 예조니, 병조니 제대로 만들려는 몇 번을 생각해도 저 친구가 여기서 왕을 자칭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역시 미친 건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답변일 것이다. 나도 가끔 바다를 보면 어이가 없어 미칠 것 같은데 저놈이라도 다를 게 있겠는가?
그리 생각하니 저 촌극도 불쌍하게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저 촌극에 참여하여 신하 놀이를 해줄 생각까지는 없지만 말이다.
“에고고. 어서 바다에나 가자.”
이 미쳐 버린 곳에서 조금이라도 오래 떨어져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것이 일과가 된 나의 일상을 오늘도 반복하려고 배를 띄우려고 하는데, 그때 듣기 싫은 그놈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오-. 토수(土琇). 아직 떠나지 않았군. 다행이야.”
갑자기 피곤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