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55장 일진광풍(一陣狂風) 전의 평화(3)
왕검의 걱정대로 금나라 옥새가 고려에 있다는 소식은 곧장 옷치긴 테무케의 귀에도 들어갔다.
“고려가 금 옥새를 가지고 있다고?!”
“예. 온통 소문이 파다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개봉이 함락될 때 현 고려 세자비가 금나라의 옥새를 들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마포이는 머뭇거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비록 그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따로 말을 들은 건 아니었으니 이 소문이 정확한지에 대해서 검증이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테무케는 물론 마포이 또한 사실일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러한 진실 유무와 별개로 이 소문은 여러 의미로 옷치긴 왕가가 고려를 건들 명분으로 충분했다.
일단 고려 태자비가 금 황녀라는 소문 자체는 별문제는 아니다. 그건 이미 몽골 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금나라 옥새의 문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채주에서 금 황제를 잡은 몽골군이었지만 금나라의 옥새만큼은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채주가 함락되기 한참 전 금 황녀가 개봉이 함락될 때 빠져나가 황녀의 손으로 고려에 넘어간 것이었다면, 고려는 지금껏 옥새를 가지고 있어 놓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고 지금도 고려가 금나라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면 더욱 예케 몽골 울루스를 우롱했다는 증거가 된다.
이 정도면 옷치긴 왕가라면 충분히 고려에 전쟁을 걸 명분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끌끌끌. 그래, 기어이 그런 소문도 나온 건가? 이거 정말 잘 됐군. 안 그래도 그 애송이에게 복수를 해주고 싶은 참이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술술 풀리게 될 줄이야. 탱그리 신께 감사를 표해야겠군. 아주 잘 되었어.”
테무케는 웃었다. 지난 전쟁 이후 고려와의 무역으로 수익은 늘었으나 그와 별개로 고려 놈이 설치는 것이 영 아니꼽고 성가시던 차에 이 소문은 너무나 반가운 소문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전쟁으로 입은 피해는 완전히 복구한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군사력을 복구하였다. 그러나 고려에 의해 손상된 위상만은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회복한 군사력으로 이번에야말로 저것들이 더 성장하기 전에 한 번쯤 꺾어두고 싶은데 그것을 못 하고 있었다.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할 여력과 자신감이 있는데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상을 회복할 기회가 이렇게 굴러온 것이다. 테무케의 자식들은 물론 마포이를 비롯한 부하들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주군이 이 기회를 놓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막을 생각도 없었다. 막아봤자 헛수고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그저….
“어찌하실 것입니까? 설마… 바로 전쟁을….?”
“아니, 지금은 준비다. 철저히 준비하라.”
그러나 테무케는 고개를 저었다. 이 기회를 넘길 생각은 없지만, 결코 급하게 일을 벌였다가 그르칠 생각도 없었다.
상대는 흑태자였다. 당장 지난번에 전쟁에서도 영토 분쟁이니 단순하게 조정은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일원인 자신을 지지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서둘러 전쟁을 일으켰다가 어찌 되었던가?
씻을 수 없는 참패를 당한 것이 그때의 굴욕이요, 지금의 처지였다. 그러한 참패를 다시금 당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바로 친정을 갈 것이다. 하니 내가 갈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라. 개전은 모든 준비를 마친 이후다!”
지난번 패전은 단순히 명분만 빼앗긴 것이 아니다.
전력을 모으기 전에 전쟁이 시작되었다가 재차 병력이 모이기도 전에 승부가 났고, 각개 격파를 당했고, 자신은 고려로 가보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노회한 테무케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오고타이와 구유크가 경계한 노물답게 그는 고려와 어린 태자를 얕보지 않았다.
“방심하지 마라. 방심했다가 어찌 되었는지 잊지 마라!”
테무케는 이어 친족들에게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희들도다. 너희가 나의 친족이며, 인척이라 할지라도 지금 너희들이 있는 자리는 무능한 자가 앉아도 될 정도로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라 믿겠다!”
노물의 서슬 퍼런 말에 옷치긴 왕가의 전사들은 모두 각오를 다졌다.
* * *
서경.
강화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바로 측근들을 소집하고는 말했다.
“사태가 시급하다. 병사들과 군비는 충분한가?”
“전하. 몽고가, 아니, 노왕이 정말로 우리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키겠습니까? 지난번 전쟁으로 노왕은 적지 않은 피해를 받은 상태입니다. 여기서 또 군대를 일으킨다는 것은….”
“친다! 그자라면 반드시 칠 것이다!”
“…….”
단언한다. 이건 예측이 아닌 확신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그 늙은이가 아니다.
“지난 전쟁으로 생긴 각장의 이익이 아조에게만 돌아온다고 생각하지 마라. 몽고는 아조 이상으로 육지 무역에 익숙한 족속들이다. 저들이 거래하는 상대와 나라가 아조보다 많으면 많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노왕쯤 되면 그 교역로를 통해 얻은 부로 지난번 손해를 금세 복구하였을 것이다. 아니, 병력을 복구하는 데 그 무엇보다 우선하였을 것이다.”
병력 복구를 우선했으리라는 것도 확신에 가까운 짐작이다.
지난번 패전으로 휘청이는 위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병력이 필요할 것이고, 또 원 역사대로라면 저 늙은이의 머릿속에는 분명….
“전하께서는 이미 여러 번 패한 그들이 기껏 회복한 병력으로 다시 아조를 칠 것이라는 말씀입니까?”
정안연의 질문에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병력을 회복했으니 이제는 손상된 자존심과 위상을 되찾을 차례가 아니겠느냐? 그리고 이 사태는 지난번과 달리 우리에게 유리한 명분이 아니라 저들에게 명분상 우세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뜻이…?”
“그렇다!……고 하고 싶지만 차라리 그랬다면 나을지도 모른다.
“예?”
현재 고려는 잇따른 공사와 훈련, 남정 등으로 많은 지출을 한 상태다. 거기다 용강상단에 대출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평시 운영이라면 몰라도, 전시에 돌입하면 다소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어 현재로서 전쟁은….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전쟁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옷치긴의 침공’에 대해서만큼은 정반대로 ‘지금 당장 군대를 보내지 않을 경우’도 만만치 않게 걱정이 되는 심정이다.
만약 옷치긴 왕가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신속히 침공해 온다면 분명 고역을 겪을 것이다. 평시부터 나름 방비를 하긴 했지만 지금 전쟁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예측한 것과는 다르다.
북방 병력 일부를 빼고, 내부개혁과 남방문제에 집중한 것도 갈라전 전쟁 이후 한동안 북방과 대규모 전쟁은 없으리라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올해와 내년 세액에 영향이 올 것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막을 수는 있다. 다소 피해와 손해는 입겠지만 지난번처럼 급히 쳐들어와 축차 투입해 준다면 어렵지 않게 격퇴할 수 있다. 그러니 옷치긴 쪽에서도 이쪽이 준비되기 전에 처리하자는 생각으로 해준다면 그나마 최악은 면하는 것인데….’
문제는 저 노물 옷치긴이 지난번 같은 실수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 나 자신이 더 잘 안다. 이쪽에서 몽골 조정에 보낼 통로는 많다.
최단 거리는 요동을 통한 길이지만 거기가 막힌다고 해도 바닷길로 산동 지방을 통해 가거나 요서로 가거나 우회로는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길들 덕분에 지난번 갈라전 전쟁에서는 명분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명백히 고려가 불리하다. 지난번에는 동진국 정벌 이후 조금씩 만들어둔 고토반환 보은이라는 인식으로 고토의 문제가 고려의 주장이 합당하다는 식으로 만들었다면, 이번엔 정반대다.
예전부터 있었던 태자비 금 황녀 소문은 결국 동진국 잔당의 전쟁 명분으로 가져왔고, 구유크 또한 지적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구유크와의 거래로 인해 소문을 이쪽에선 근절시키지 못하게 관망해야 했고, 그러한 위험 속에서 나는 금사와 금나라의 정통성이 고려에 있다고 주장하여 금사 편찬을 집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옥새의 소문과 금나라 부마 소문이 다시 강하게 터진다면 몽골은 우리를 의심한다.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여태까지의 일들로 인해 의심을 받기 딱 좋은 상태인 것이다.
‘옷치긴 테무케는 분명 이 기회를 이용한다. 나라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에 당해본 이상 이번에는 몽골의 조정에서 명분을 확고히 얻은 이후, 준비도 철저히 마친 상태에서 시작하겠지. 그렇다면 지금 내게 가진 패로 가능한가?’
상보(구유크)와의 연을 이용한다? 안 된다. 이것으로는 턱도 없다. 구유크 본인이 자신의 계승에 방해가 된다면 망설임 없이 자를 것이다.
거기다 쿠추를 총애하는 오고타이가 이 문제에 구유크의 손을 들어줄지도 미묘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으나 서정 상황을 모르는 이상 섣불리 이용하는 것은 자승자박이거나 악수가 될 수 있다.
현 칼라콜룸의 가장 위세가 높은 카툰(황후)들에게 청탁한다? 이 또한 불안하다. 섣불리 편을 들다간 그들의 권력 분쟁에 제대로 휘말리고 발목이 잡힐 우려가 있다.
오고타이 사후 원 역사와 달리 계승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상 섣불리 깊게 개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오고타이칸에게 직접 사람을 보내 부탁한다?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서정에 가서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빠르게 소식을 전한다고 해도 그사이 잡히거나 왜곡될 우려가 있다.
무사히 도착한다고 해도 오고타이가 어떻게 마음먹냐에 따라 최악 몽골 조정이 주도하는 전쟁을 벌일 우려가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오고타이가 쿠추 계승을 도우라는 등의 조건을 건다면 오르도에게 청탁하는 것 이상으로 엮이게 된다.
몽골 역대 칸들은 이러한 분쟁 속에서 즉위 이후 제 뜻에 반한 적측을 곱게 둔 적이 없다. 그나마 예외가 있다면 칭기즈칸 본인에게 선택받은 오고타이칸 본인 정도겠지.
“절영도를 비롯한 목장들의 군마의 수와 상태는 어떻지?”
“예?”
“내 예상이다만 전쟁은 지금 당장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나 반드시 일어는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어나는 기점은 저 북왕(北王=테무케)의 준비가 끝나는 순간이겠지.”
“…….”
“분명히 말하마. 이 전쟁은 지금까지 겪은 전쟁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방심하지 않는 몽고군의 침공이 시작될 것이며, 노왕의 전력을 맛봐야 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노왕만이 아니라 몽골 조정의 군대도 투입할지 모른다!”
“…….”
이제까지 몽골 조정의 군대가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그것을 노리고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옷치긴 왕가가 이 소문을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따라 내가 지금까지 몽골 조정에 만든 인맥 관계가 단번에 수포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만큼이나 이번 사태는 큰일이다. 북방의 노물, 전장 경험이라면 나는 말할 것도 없고, 고려 어느 무장과 견주어도 많은 옷치긴의 군대를 상대하자면 이쪽도 큰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전쟁은 우리도 총력으로 다해 싸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어쭙잖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대승을 거두어야 한다. 모두 각오하라. …친정을 온 와적흔을 죽인다는 각오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