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2
342화
58장 시찰단(1)
“그렇다면 척인사. 너는 시찰단이 어째서 온다고 생각하느냐?”
잠자코 있던 척인사에게도 묻자 척인사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신은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대장군의 의견대로 저들 내부의 문제가 가장 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들 중 다른 의견이나 짐작 가는 바가 있는가?”
척인사의 대답에 혹시나 싶어 물어보자 이장용이 다시 대답했다.
“신이 생각하기에도 노왕과는 별개는 분명해 보입니다.”
“근거는?”
“이번 시찰단 소식은 요동에서 왔다 하였습니다.”
“그렇다.”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제아무리 동요가 아조보다 몽고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몽고 조정은 요동에서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저들이 그곳의 사정을 이렇게 신속히 알아내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
“…아!”
한순간의 공백 후 김방경의 입에서 이해했다는 소리가 나왔고, 그 직후 한발 늦게 정안연의 입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리고 입으로는 내뱉지 않았지만 나도 이때 겨우 눈치챘다.
“…그 말대로다. 지난 노왕과의 전쟁에서 그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에서 이야기겠지만 그들은 노왕의 아들 지부간(只不干 지부겐)이 아조를 치려는 것도 그렇고, 아조의 군대가 강을 통해 북계로 가는 것도 지척까지 오고 난 후에야 겨우 눈치챈 것이 동요다. 그런 그들이 저들의 도읍에서 일어난 일을 이렇게 빨리 눈치챈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 시찰단의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논하기 전에 이 사실이 동요에 전해졌다는 것 자체가 몽고 조정에서는 이 시찰단 파견의 소식을 동요에, 아니, 동요를 통해 아조에 먼저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노왕이 그러한 의도를 품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이 시찰단은 노왕과 별개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 말이 아니더냐?”
“그러하옵니다. 전하.”
“전하께서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군요.”
내가 이해한 것이 이장용이 생각한 것이 맞는지 확인할 겸 물은 것이지만 정안연은 마치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했고, 이에 유갑수를 비롯한 측근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장용이 말한 뒤 겨우 이해한 거라 민망했지만 구태여 말하진 않았다.
‘이장용 녀석. 지난번 소문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처음 등용했을 때만 하여도 똑똑하긴 해도 다소 어리숙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나 개혁 부분에선 내가 대부분 머리를 굴려 발안하면 이장용은 거기서 보조하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최근 이장용은 문제가 터지면 나보다 빨리 혹은 나도 생각 못 한 것을 떠올리는 일이 잦다.
‘확실히 수년 동안 다사다난(多事多難)한 일들이 있었고, 그동안 내 곁에서 지켜봤다. 성장했어도 이상하진 않아. 오히려 성장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그것도 그럴 것이 이장용은 여몽 전쟁 시기 손꼽히는 천재 재상이니 말이야. 갑자기 달라졌다기보다는 슬슬 두각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
세간에선 나를 문무양도의 천재, 천인(天人), 천장(天將) 등 매우 과대평가하는 이들이 많지만, 나는 이것을 내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정말로 과대평가 그 자체다. 그런 평가가 나오게 만든 내 활약들 대부분이 미래 지식 덕분이니 말이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지식의 효과는 떨어질 것이고, 반대로 이장용과 김방경 같은 젊은 인재들은 더욱 성장하여 두각을 드러낼 것이고 말이다.
이건 당연한 순리이며, 추월당하였다고 기분 나빠할 이유도 없다.
앞으로 다가올 여몽 대전은 나 홀로는 벅찬데 나보다 모자란 인재들이 있는 것보다 나와 비슷, 아니, 그 이상으로 뛰어난 기라성(綺羅星) 같은 인재들이 나온다면 환영하면 환영하지 반대할 이유는 없다.
“만일 정말로 요국을 통해 아조에게 시찰단이 갈 것을 의도적으로 알린 자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우리가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증좌들을 숨기거나 반응할 것을 노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사옵니까? 전하.”
척인사의 질문 덕분에 나는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크흠. 저들이 누군지도 그 의도를 명확히도 알지 못하는 이상 그럴 가능성도 절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러나 시찰단에게 금과 아조의 관계를 정말 들키거나 증거를 가지면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사실이고 현실적으로 그것이 더 우려되는 점인바, 은닉할 수 있으면 은닉해 두는 것이 좋다.”
“알겠사옵니다.”
난데없이 시찰단 이야기가 나와 많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로써 여러 가지 변수 혹은 더 생각할 것이 생기긴 했다.
몽골 내의 알력 다툼. 그것도 대칸과 구유크가 사라진 상황에서 테무케를 상대로 알력 다툼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의 존재가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옷치긴 왕가가 우리를 잡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 세력이 뭔지 파악하고 연계를 하든 이용을 하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전쟁 자체는 막지 못한 것이 뻔해. 이 계획을 한 이는 테무케의 야심을 너무 얕봤어. 도대체 누가 보냈을까?’
그래도 전쟁 이후 몽골 조정과의 관계를 조정 내지는 적대를 완화시키는 데는 쓸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시찰단이 오면 좋겠다.
* * *
“뭐라 시찰단 일행 중에 몽가(蒙哥)가 있다고?”
당혹 어린 내 목소리가 정자(亭子)에서 울려 퍼졌다. 요동 동요국에서 알려준 내용에 측근들 또한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러합니다, 전하. 안동성각장한림태수(安東城 榷場 翰林 太守 안동성의 태수와 각장도 담당하는 한림직도 맡고 있는) 유준공도 놀라 급히 알린다고 적었습니다.”
“…으음.”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세상에, 어찌 이리 예상치 못한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몽가는 몽골의 이름을 한자로 적은 뒤 한음(漢音)으로 부른 말이다. 몽골 이름을 들리는 말을 그대로 한글로 적을 경우 몽케, 혹은 뭉케라고 한다.
그가 이번 시찰단의 일행에 있다는 것을 들은 것만으로 이번 시찰단에 대한 나의 경계심은 더욱 커졌다. 어째서냐고?
원 역사대로 따진다면 몽케는 오고타이와 구유크 사후 몽골 제국의 4대 칸이 되고 수십 년의 여몽 전쟁 중 몽골이 고려를 가장 많이 침탈했던 시기의 군주다.
물론 그건 원 역사 기준이고, 이미 많이 개변된 이 세계에서도 몽케가 칸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내가 어째서 이렇게 경계하냐면 몽케의 미래가 아니라 그의 신분 때문이다.
몽케의 동복동생 중에는 지난번 4차 전쟁에 참여했던 쿠빌라이와 아리크 부케도 있다.
이중 쿠빌라이는 정원대도호부에서 송문주와 정안연의 군대에 패했고, 아리크 부케는 천리장성 이북을 약탈하고 그곳을 지키고 있던 상장군 채송년을 죽인 녀석이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바로 툴루이의 과부로 남은 원 역사와 달리 전쟁의 문제로 구유크의 처가 된 소르칵타니다.
그 전쟁에서 그들 일가의 처우는 자업자득이라 할지라도 그들 입장에선 나를 적대하기 충분했다. 시찰단이 좋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심 외에도 내 개인적으로 그가 참여한 사실이 신경 쓰이는 점도 있다.
그녀가 구유크와 재혼 후 오고타이나 구유크는 후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르칵타니의 자식들을 툴루이의 후손으로 남기지 않고 구유크의 자식 신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구유크는 내가 상보(尙父)로 모시고 있는 황족이다. 소르칵타니 그녀가 상보의 부인이 되었으니 내게는 어머니뻘이 돼버린 셈이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런 상보의 부인의 친자식이자 형식상 상보의 자식이 된 몽케 형제들과 나의 관계는….
‘솔직하게 말해 진짜 껄끄럽다!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껄끄러움과 별개로 그의 참가에 이번 시찰단에 개입한 세력에 소르칵타니 혹은 툴루이 일가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설마 이번 시찰단에 사로합처니(唆魯合貼尼 소르칵타니)가 개입한 건가? 몽가가 이번 시찰단의 정사(正使)라고 하더냐?”
만약 소르칵타니가 개입했다면 무척 귀찮아질지 모른다. 그녀의 능력 유무와 별개로 그녀의 행적을 본다면 우리 고려가 어느 사이에 몽골의 권력 다툼과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옵니다. 정사가 아니고 부사(副使)격에 해당한다고 하옵니다.”
“그런가. 그럼 됐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정식으로 보내는 시찰단인 이상 귀찮더라도 제대로 접견은 해야 할 일. 서경까지 오기 전에 시찰단 일행들을 마중 나갈 이와 사신을 호종할 병력을 인선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저들이 시찰을 하러 온 사신단이라고 그저 소문의 진위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시찰 도중 아조의 허실과 군의 강약도 파악하려 들 것이 뻔하니 사신인 동시에 간자(間者)들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몰래 양성 중인 병사들과 무기는 당연하고 노왕가의 전쟁을 대비하는 것 또한 들켜선 안 될 것이다.”
본래 사신들은 단순히 우호와 교린, 국서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용으로만 보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만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도 충분히 있지만 방문국의 허실을 파악하기 위해 보내는 경우도 잦다.
당장 과거 고려에 사신으로 온 북송의 서긍도 고려의 상태와 실정을 파악하고자 했고, 그렇게 조사하고 적은 책이 바로 이니 말이다.
그래서 몽골의 사신이 올 경우 같은 건 옛날 옛적부터 염려하고 준비하던 사항이라 지난 회의 중 굳이 길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옷치긴 왕가와 전쟁은 물론 장차 여몽 대전까지 대비하는 우리 입장에선 정말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다.
여몽 대전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옷치긴 왕가의 전쟁을 대비하여 준비를 했다가 시찰단에게 전쟁을 꾸미고 있다고 누명을 받을 수 있다.
이를 걱정해서 일부러 기강을 해이하게 하거나 약하게 보였다가는 반대로 시찰단들이 이 정도면 이길 수 있다고 여겨 보고를 하고 몽골 조정의 군대도 동원될지 모른다.
이렇게 될 경우 몽골 조정이 끼어들어 몽골 조정과도 전쟁을 하게 될지 모르는데, 이러면 우리가 이겨도 몽골 제국은 옷치긴 왕가만이 아니라 조정의 군대마저 번국에게 패했다는 결과가 돼서 체면이 구겨진다.
그 이후 몽골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될지 아니면 대칸이 올 때까지는 조용할지는 모르지만 그런 일은 없는 것이 낫다.
가장 좋은 건 이쪽의 사기와 전열은 엄중하되 공세를 나갈 것 같지 않게 적당히 보이는 것이 딱 좋다. 화포나 화약 무기를 들키지 않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고 말이다.
“허어. 일찍이 아조가 개국한 이래 이러한 적이 있던가.”
엄밀히 따진다면 1231년 1차 전쟁이 시작되면서 몽골이 고려에 다루가치 보내 그보다 더한 일들을 시도하긴 했다.
하지만 그때 다루가치들은 1232년 2차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최우의 명령에 의해 일제히 처리해서 다 죽거나 도주하면서 해결된 일이다.
즉, 현재 기준으로 다루가치 파견 건은 보내지긴 했되 몰살로 보답시켰으니 순응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굴욕적이더라도, 그리고 칸이 서정으로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이들을 거부할 수 없었다.
이런 점이 하고자 한다면 3차 전쟁에서 맺은 조약을 핑계로 축객령을 쫓아 보낼 수 있는 옷치긴 왕가의 사자와는 다른 점이다.
오고타이가 서정을 간 지금 정말 오고타이의 지시로 보내졌을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해도 정말로 거부한다면 이는 고려는 몽골의 정사를 거절한 것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는 고려가 상대할 주체는 옷치긴 왕가가 아닌 몽골 제국이 돼버리고 형식상 6사 요구를 철폐한 명분들마저 흐트러지게 된다.
이건 추측 수준이 아니라 확신에 가깝다. 왜냐면 4차 전쟁에서 얻은 6사 요구 철폐 자체가 몽골 입장에서도 진심으로 자비와 은덕을 베풀어준 것이 아니라 상황상 서정이 급해서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쪽에서 구실을 마련하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사건이 일어나고 이걸 다시 해결하려면 정말 피곤해진다.
‘그 짓거리를 할 바에는 그냥 짧고 굵게 시찰단 한 번으로 끝내는 게 백배 천배 낫지.’
전쟁을 앞두고 접대비가 나갈 것이고, 정신적으로도 피로가 많이 들긴 하겠지만 이건 감내해야 한다. 그래야 이쪽도 마음 놓고 옷치긴 왕가와 전쟁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