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3
343화
58장 시찰단(2)
며칠 뒤에 드디어 시찰단 일행이 서경에 도착했다. 몽골답다면 몽골답게 번잡한 예식은 저쪽에서 먼저 사양해서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송이라면 번잡한 예식은 무조건 다 해야 했는데 이거 하나만은 편해서 좋다. 물론, 반대로 남송이라면 황제가 번국에 하사한다는 명목으로 내려주는 값비싼 하사품 같은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하사품을 받고 이들을 고려에 오래 두는 것보다는 안 받고 빨리 보내는 것이 훨씬 낫다.
당장 나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서 직접 시찰단들과 대화를 하고 있고 말이다.
“대국에서 먼 거리를 거쳐 방문하였는데 아조의 대접이 부족한 것 같아 미안하오. 물론 시찰단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좋은 대접을 하였을 텐데 말이오.”
“아닙니다. 우리가 고려에 진수성찬을 먹고자 온 것도 아니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지금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는 고려와 전하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소문이 무엇인지는 전하께서도 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동에서 태자비에 대한 소문이 일어난다고 하니 그 때문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소만….”
“알고 계시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소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요.”
지금 나와 대화하는 시찰단의 정사(正使)는 테케다. 테케는 4차 전쟁만이 아니라 1, 2차 여몽 전쟁에서도 참전한 장수로 고려는 물론, 나와도 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몽골 장수다.
2차 전쟁에서 내가 살라타이를 사살한 후 고려와 화약을 체결한 것이 부원수였던 그였으니 말이다.
다만, 이자가 옷치긴 왕가 소속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1차 전쟁부터 여몽 전쟁 초반부는 옷치긴 왕가가 주도한 것들이라 관련은 있을 가능성은 크긴 하지만 정작 지난 옷치긴 전쟁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본인이 옷치긴 왕가 소속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
그래도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크다 보니 경계 중이다.
‘현재로선 시찰단이 생긴 것 자체는 테무케의 뜻은 아니더라도 이 시찰단에 옷치긴 왕가의 입김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려나?’
전에도 말했지만 시찰단 자체를 보내는 것은 테무케에겐 득보다 실이 크다.
그러나 시찰단 파견이 확정이 되었다면 이쪽에서 돌려줄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시찰단에 개입하여 주도권을 쥐고는 전쟁의 명분을 증대시키고자 할 가능성은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소. 그러나 태자비는 금의 황녀가 아니오. 애당초 사실이라 한들, 대국의 선한(先汗 선대 칸)이신 성길사한(칭기즈칸) 폐하께서 이미 황후 중 한 분을 금의 공주(公主)로 들이신 선례도 있으신데, 대국에 금사 편찬을 허락받은 아조가 무엇 때문에 숨긴단 말이오? 대국에서 허락을 내리지 못할 문제도 아니며 구태여 숨겨 일을 만들 바에는 차라리 미리 선고하여 해명하는 것이 훨씬 이로운 것이 뻔한데 어찌 대국을 섬기고 은혜를 받은 아조가 대국에 반하는 짓을 하겠소?”
나의 말이 통역되는 순간 테케는 물론, 다른 시찰단 일행들도 꿈틀거렸다.
참고로 지금 내가 말한 칭기즈칸의 황후가 된 금의 공주는 금의 7대 황제인 위소왕의 딸 기국공주(岐國公主)를 말한다.
위소왕 다음 즉위한 금 선종이 몽골과의 전쟁을 막기 위해 칭기즈칸에게 화친을 맺고자 보낼 때 공주를 보냈는데 그때 기국공주가 보내진 것이다.
정략적으로 보내진 기국공주는 일종의 화번공주(和蕃公主)라 할 수 있었다.
화번공주는 정략적인 목적으로 이민족에게 출가시킨 공주를 말하는데 보통 화번공주는 황제의 친딸이 아닌 황실의 여인 한 명을 양녀로 입적시킨 후 보내거나 혹은 황실의 여인 한 명, 심할 경우 궁녀를 공주라고 둔갑하여 보내는 것이 태반이었다.
기국공주 또한 여타 화번공주가 그러했듯 당대 금 황제인 선종의 친딸이 아니었으니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부친인 위소왕은 칭기즈칸이 대놓고 혐오와 욕을 한 황제임에도 칭기즈칸은 그녀를 유일하게 비 몽골인 신분으로 오르도를 관리할 정도로 높은 권한을 부여받을 정도로 아꼈다.
그리고 젊었을 때 가서 그런지 기국공주는 지금도 몽골에서 무사히 태후로서 살고 있었다.
이후 전쟁의 빌미가 될 태자비가 금 황실의 여인이라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최소화하고자 기국공주를 언급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도 현존하는 태후를 무시하고 욕을 할 수는 없어 시찰단은 내 말에 수군거릴 뿐, 대놓고 반발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찰단에 단순한 이들만 있지는 않았다.
“칭기즈칸의 일과 지금 소문의 일을 동일시하시겠다는 것입니까?”
정색한 테케의 목소리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동일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금나라의 문제로 대국에 숨길 이유가 없단 말이오.”
“예. 맞습니다. 하지만 금나라의 옥새라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금나라의 옥새를 받은 것이라면 숨길 이유가 충분히 있지요.”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며 나를 바라보는 시찰단 일행들의 눈과 표정은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역시 옥새 소문도 들은 거구나. 전국 옥새를 가졌다면 그리고 그것을 주기 싫다면 분명 숨길 만한 일이라고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당찮은 소문이오. 아조에 전국 옥새라니, 우리 고려가 금의 옥새를 쥐어봤자 중원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오?”
“그건 모를 일이지요. 전하께서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저로선 모를 일입니다.”
너희가 중원을 도모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숨겼을 가능성도 충분하지 않느냐. 아니, 너희라면 그럴 것이다. 라는 식의 대답을 들으니 답답했다.
지금 고려가 중원을 도모했다간 안 그래도 불안에 빠진 남송은 이쪽을 경계하다 못해 아예 공격까지 할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미쳤다고 전선을 늘리겠는가.
차라리 이딴 옥새 몽골에 주고 다른 것을 얻는 것이 백배 이득인데 말이다.
“하면 확인해 보시오.”
솔직히 시기상 이장용의 소문으로 소문을 묻히게 했지만, 그것이 되레 금나라가 벌인 소문은 인정하는 것으로 보일 우려가 있어 불안했다.
하지만 시찰단이 오기 전 수습은 했다.
“하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 *
“정말로 아조의 백성을 죽였단 말이더냐!”
…결국 몽골 시찰단이 일을 벌였다. 적어도 내가 있는 고려에서는 최대한 자제할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그러하옵니다. 전하. 하여 백성들은 감히 집 밖으로 나서지도 못하는 실정이옵니다.”
몽골의 시찰단 일행 중 하나가 역참에서 일하는 하급 관원을 쏘아죽였다.
사건의 전말을 따져보면 시찰단이 조사를 위해 여기저기 움직이다가 일행 하나가 역참에서 말들을 달라고 했는데 다섯 필을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관원은 한 필도 아니고 다섯 필이나 갑자기 내주는 것은 힘드니 정 필요하다면 조정이나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그렇게 거부당하자 몽골인이 화가 나서 하급 관원을 활로 쏘아 죽인 뒤 기어코 말 다섯 필을 훔친 것도 모자라 마구간에 있는 모든 말들은 풀었다고 한다.
제아무리 몽골 제국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2차 전쟁 이전에 몽골 사신이 고려에 오면 저렇게 제집인 양 날뛰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당장 저고여만 하여도 고려에 와서 사람들을 향해 활을 쏘아대었다가 결국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버티지 못하고 고려 사람들이 그를 방에 가뒀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2차 전쟁에서 고려가 승리하면서 적어도 조정에서 보낸 사신들은 오만하게 굴지언정 저고여 때만큼 난폭하게 군적은 없다.
예외가 있다면 4차 전쟁에서 왕이 동경으로 몽진 간 줄 알고 무대포로 나섰던 놈 정도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몽골 시점에서 고려왕이 도망간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고, 군대 또한 대동한 상태였으니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군 것이 이해라도 간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신이 아닌 진위를 찾기 위한 시찰단이다. 즉, 형식상 아직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인정한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도 2차 전쟁 이전 때처럼, 그것도 옷치긴 왕가 놈들이 했던 것처럼 굴고 있으니… 심한 처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난폭하게 구는지 결국 측근들은 물론 서경과 인근 귀족들도 내게 직접 찾아와 하소연할 정도다.
“전하. 부디 저 건방진 몽고인들을 당장 내쫓아 주소서! 타국에 온 이가 어찌 저리 잔학무도하고 무례하단 말입니까!”
“노왕과 저들 모두 똑같은 몽고인들입니다!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면 똑같이 취급하면 될 뿐입니다.”
하소연 수준이 아니라 아예 성토 수준으로 그들은 몽골 시찰단에 대해 강하게 말했고, 그들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면서도 진정시켜야 했다.
거란침입에 이어 1, 2차 전쟁에서 크게 당했던 북방지역이지만, 동시에 2차부터는 승리만 거듭하고, 서경에 이르러선 2차 전쟁부터 무난히 피해 없이 넘겼다 보니 저들도 점점 자신감을 되찾았다.
원 역사에서는 2차 이후로도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초조함이 여기선 덜해진 것이고, 나도 서경에 있자 아예 주전론에 가까운 주장까지 하고 있다.
강대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움츠러들지 않고 전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여몽 대전을 염두에 두는 나로서는 호기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마냥 좋아할 수 없었다.
‘용맹한 것은 좋은데, 지금 고려 상황에선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만 담당하는 것이 우선인데 말이야.’
솔직히 이번 몽골 작태를 보면 당장에라도 잡아 족치고 싶다. 하지만 시찰단을 보낸 형식상 상국인 그들을 이쪽에서 마음대로 처리하면 문제가 커진다.
재차 말하지만 지금 몽골 조정까지 끌어들이는 건 좋지 못한 선택이다. 장거리 원정인 유구 정벌로 나간 것도 그렇지만 유구 정벌이 ‘무사히 성공’했기에 마을과 포구를 만드는 등의 문제에 지출도 많이 나가는 상황이다.
여기서 옷치긴 왕가와 전쟁을 하는 것도 손해를 각오하고 하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몽골 조정까지 끼어든다?
이건 승패 이전에 국고가 거덜 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 나는 내 심정과 별개로 그들을 다독여야 한다.
“그대들의 뜻은 잘 알았다. ‘과인(寡人)’ 또한 이 일을 그냥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태의 전후를 모조리 파악한 뒤 판단을 내리고 싶도다.”
“전하. 사태는 이미 일목요연한데 여기서 무엇을 더 파악하고자 하시옵니까!”
“경들의 심정이라고 어찌 과인이라고 모르겠는가? 하나 섣불리 감정으로만 대응하였다가 이것이 저들의 함정일 경우 성패는 물론, 명예조차 더럽혀질 우려가 있으니 그 사태를 막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오면….”
“시찰단 정사 철가와 부사 몽가에게 전해라. 대국의 사람이 아조의 관원을 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말까지 훔쳐 달아났는데, 이는 선한(칭기즈칸) 시절 선한의 의형제(안다)인 찰목합(札木合)의 동생이 선한의 말을 훔쳐 간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일에 대해선 과인에게 먼저 고한 후 청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어찌 그런 짓을 하였고, 선한 시절 저 말도둑에 대해 선한께서 어찌 처리했는지 아느냐고 말이다.”
찰목합은 자무카의 한문으로 표기한 것인데, 자무카는 칭기즈칸의 ‘안다’로 형제와 같은 친구였고, 실제 칭기즈칸의 아내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자 함께 구하러 갔을 정도로 우정이 각별한 친구였다.
그러나 둘의 세력이 커지고, 어느 날 자무카의 동생인 타이차르가 칭기즈칸의 말을 훔치다 칭기즈칸의 부하인 조치 다르말라에 죽음을 당하면서 둘의 관계는 파토 났다고 한다.
고작 말 따위에 친구의 동생을 죽였냐고 할 수 있지만 몽골인에게 말은 어린 시절부터 말과 함께 자라기 때문에 가족과 다를 바 없으며 매우 귀중한 재산이기도 했다.
때문에 몽골 풍습에서 말 도둑을 발견한 경우 그 자리에서 죽여도 된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의 중죄 중 중죄에 해당했다.
이렇게 지적했는데 저들이 어떻게 넘어갈지는 좀 더 기다려 보자.
#작가의 말
고종 8년(1221)에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 등이 관반의 접대가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화를 내며 관반을 향해 활을 쏘고 두들겨 팼다. 관반낭중(館伴郞中) 최공(崔珙) 등이 객관 문 밖으로 달아나 자물쇠를 채웠더니 몽고 사신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였다. 김희제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달래자 비로소 그들의 화가 풀어졌다.
– 김희제 열전 中
*실제 고려에서 몽골 사신이 날뛰니 가둔 적 있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