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4
344화
58장 시찰단(3)
서경 객관.
“무슨 고려 태자가 선대 칸과 자무카 님의 일을 어찌 저리도 잘 아는지….”
왕검의 전령을 만나 설명을 들은 테케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고려에서는 역참을 죽이고 말을 훔친 것을 따진 것이다.
이에 테케는 속으로는 고려가 언제 난폭하게 대응할지를 경계하는 한편, 겉으로는 일단 조사를 방해했다고 뻔뻔하게 나가보았다.
하지만 고려에서는 이미 그런 답변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지척에 있는 서경에 묻지 않았는지와 말의 훔친 것을 지적했다.
나아가 몽골의 관습에서 말 도둑질은 중죄인데, 100보 양보해서 조사를 방해하여 죽이고 필요한 말을 훔친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남은 말들을 모조리 방생한 것도 언급했다.
“아태자 전하께선 대국의 관원이 관인을 살해하고 말을 훔친 것도 모자라 말을 마저 푼 것이 조사에 무슨 도움이 되기에 행했는지, 그리고 대국의 선한의 말을 훔치려던 찰목합(札木合 자무카)의 동생 고사를 떠올리고 자세히 해명해 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칭기즈칸과 자무카의 우정조차 결정적으로 파투 나게 만든 말 도둑질 사건을 들어 말을 훔치고 방생한 것을 역설하는 추궁에 테케는 결국 입을 다물고, 자신도 모르는 일이니 알아본 연후 답하겠다고 해야만 했다.
“어째서 저놈처럼 멍청한 놈이 이번 고려행에 끼어들어 있는 건지….”
테케는 그리 말하며 이미 구타를 당해 기절한 단원이 있는 방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처음 말을 끌고 온 수하의 행동에 무슨 말인지 물어봤더니 자신감 넘치게 고려인을 죽이고 들고 왔다고 말한 것을 듣고 기가 막혔다. 사고를 쳐도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러나 테케도 알고 있었다. 이 대형 사고는 단순히 저 멍청이가 우연히 시찰단에 들어온 것도, 이 사고도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런 멍청이를 넣어 사고를 부추긴 자가 있단 것을 말이다.
‘직접 넣지는 않았어도 결국 테무케 님의 입김으로 들어온 거겠지. 이번 시찰단 자체를 꺼리셨던 분이시니 어떻게 해서라도 고려와 관계를 파투 낼 생각이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실 줄이야.’
입술을 깨물었다. 고려에 관련된 소문을 들은 시점에서 테케는 옷치긴 왕가가 고려와 전쟁을 하려들 것이라곤 예상했던 일이었다.
지금 옷치긴 왕가 아니, 옷치긴 테무케에게 ‘소문의 진위 따윈 부차적인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이래선 시찰의 성패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죽을 수 있는 위기가 아닌가?’
문제는 이렇게까지 성대하게 파투를 낸다면 고려에서 단순히 성을 내며 축객령을 내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까지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시찰단의 여럿은 설마 지배당하는 속국이 그렇게 나오겠냐 편안히 생각하는 이가 많았지만 테케는 잊지 않았다.
예전에 고려가 이미 한 차례 예케 몽골 울루스가 파견한 72명의 다루가치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던 일을 말이다.(1232년 최우의 다루가치 살해)
‘고려야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지만 고려에 갔던 다루가치들이 죽은 것의 뒷배경에 고려가 있다는 것을 어느 누가 모른단 말인가. 그런데 테무케 님께서는 고려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계획하셨다고? 하물며 지금 서경에는 그 영악한 흑태자가 있는데…?’
테케는 2차 전쟁 당시 태자 본인도 다루가치 살해 의혹에 연류되었다는 것과 서경에서 회군을 하던 자신들에게 사람을 보내 겁박에 가까운 협상을 하였던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 사태의 심각함도 모르고 저지른 저 멍청이를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저 머저리의 목을 베고 태자에게 주며 이 사건을 무마하고 싶은데….”
하지만 이내 테케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려에서도 요구하지 않은 것을 자신이 알아서 죽인다는 것은 예케 몽골 울루스의 체면 문제였다.
결국 저놈을 처리하려면 저놈이 미쳐서 자신에게 덤비거나 아니면 조정에 보고해서 절차대로 처리하는 것 말곤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라도 가능성이 떨어지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었다. 시찰을 서둘러야 하는 입장에서 오래 서경에만 잡힐 수 없었다.
이대로 제대로 된 답도 하지 못한 채 고려로 가는 것은 목숨이 걱정됐다. 그런 그의 속내를 모르는 부사 몽케가 물었다.
“그렇게 걱정이오? 그래 봐야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속국이거늘….”
* * *
“그렇게 걱정이오? 그래 봐야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속국이거늘….”
이 시기 몽골인들에게 번국에 대한 인식은 중원의 일상적인 ‘형식적인 조공만 해주면 간섭하지 않는 타국’이라는 개념이 아닌 ‘점령된 피정복지’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몽케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사실상 고려와의 전쟁으로 일가가 오고타이계로 편입된 몽케가 고려에 대해 내리는 평가치고는 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몽케 본인은 고려를 고의로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
당장 자신의 동생들은 물론 계승을 돈독히 하게 보낸 동정군이 대패하고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단순히 생각하고 움직인 동생 아리크 부케 경우에는 그 대가가 가족들이 이 꼴이 난 것이 아닌가.
거기다 어머니 또한 그 일 이후 고려를 주시하며 지금은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였으니 폄하할 의도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런 평가를 내린 것은 이것이 이 시기 대다수 몽골인이 보는 번국에 대한 인식이자 몽골이 보는 ‘고려의 인식’이였기 때문이다.
몽골과의 전쟁에서 몇 번이고 이겼다? 옷치긴 왕가와 싸워 이겼다? 번국치고는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딱 그 정도’라는 인식이 컸다.
고려가 여러 번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나 서정을 서두르고 있던 대칸이 서정 직전에 보낸 군대라는 것은 몽골 내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옷치긴 왕가와 전쟁을 하여 이긴 것도 대단하긴 하나, 대칸이 서정으로 빠지고, 그 옷치긴 왕가도 서정에 군대를 지원한 상태였다.
결국 고려가 대단하다고 한다 한들, 그 활약은 어디까지나 방어전에서 승리한 것에 불과했으며 그 정도는 이미 금과 남송 등에서도 겪은 몽골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다소 다시 볼지언정 고려에 대해 기존 번국에 대한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미 몇 번이나 고려에 직접 왔고 전쟁도 해본 테케나 이미 몇 번 큰고 다친 옷치긴 왕가만이 고려를 크게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조차 옷치긴 왕가나 테케나 둘 다 예케 몽골 울루스 시점에서 고려는 별것 아니란 생각은 하나, 전자는 예케 몽골 울루스가 아닌 ‘옷치긴 왕가와 고려’로 비교도 하고 있는 실정이라 크게 경계하였다.
후자의 테게 경우에는 고려의 전력보다는 다루가치들을 죽이거나 협박으로 화친을 요청하는 등 고려의 예상치 못한 과감성, 혹은 고려 태자 그 자체를 경계한 것이 차이였고 말이다.
그러한 몽케의 물음에 테케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시찰단에서 테케와 몽케는 정사와 부사로 서열이 있긴 하나 정작 실제 관계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 가까웠다.
이는 몽케가 비록 툴루이 울루스의 대표자 자리에서 물러나 형식적으로 대칸의 손자가 되긴 했으나 실제론 툴루이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몽케 본인도 전장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로 몽케는 형식적 위치와 별개로 실제 위치는 여태까지의 과거를 고려하여 테케도 단순히 하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몽케 공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려가 호락호락하진 않소. 특히 지금 서경에 있는 태자가 권력을 잡은 이후 고려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하였소. 이는 이미 지난번 공의 형제들이 참가한 전쟁과 옷치긴 울루스와의 전쟁에서 증명한 사실이 아니오.”
“음,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이라면 지금 우리는 매우 곤란한 상황이 아니오?”
“그러니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자칫하면 우리도 죽을지 모른단 말이오.”
저도 모르게 버럭 대답한 테케는 직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사과했지만 몽케는 딱히 화난 기색 없이 대답했다.
“하면 이 문제는 내가 대신 맡아봐도 되겠소? 최소한 고려에서 비명횡사하는 것은 모면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소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 * *
이게 웬일일까? 전령을 보낸 후 테케가 나를 만나러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사에 지난 전쟁에서 직간접적 인연도 있던 테케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나기 껄끄러운 부사 몽케가 찾아왔다.
심지어 스스로의 신분을 구유크의 아들이라고 소개하고 나와 직접 만나고 싶다고 찾아왔다.
‘몽케와 구유크가 사이가 좋았던가?’
잠시 생각해 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저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내 기억상으론 몽케와 구유크 사이는 우호적이라기보다는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구유크는 의심이 많고, 몽케는 몽케대로,(비록 소르칵타니의 입김대로라고 해도) 구유크 사후 대칸에 오르자 구유크의 아내 오굴 카미시를 잡고는 눈과 귀, 코 등 모든 구멍을 실로 꿰맨 후 조리돌림 한 뒤에야 멍석으로 밝아 죽인 후 강에 던져 죽였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몽케가 그런 구유크의 아들 신분을 이용하여 만나자고 한다?
‘이거 절대 뭔가 노리는 게 있군. 이번 사건 문제를 무마하려고 온 건 아니야.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빌미겠지. 그럼 소르칵타니의 뜻인가? 아니면 몽케의 자체 판단? 이거 받아야 하나? 받을 경우 어떻게 대해야 하지?’
우선 실제 몽케는 칭기즈칸의 아들 툴루이의 자식인 만큼 칭기즈칸의 손자이며 현 대칸인 오고타이칸의 조카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유크의 자식으로 입적되었으니 형식적으로 칭기즈칸의 증손자뻘이 되며 오고타이의 손자 신분에 해당한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본래 ‘툴루이 울루스의 주인’ 혹은 차기 주인에 해당하는 몽케는 중원으로 치면 군왕(郡王)급에 속하는데, 지금은 군왕 신분이 아닌 일개 황손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제후국의 태자인 나와 상국의 황손인 몽케와의 의전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선 조선 경우 임금의 자식인 대군(大君)의 적장자. 즉, 왕의 손자는 종1품 군(君)에 봉해지며, 세손(世孫)을 제외한 세자의 여러 아들과 왕의 서자인 군(君)에 해당하는 왕자들의 적장자, 대군의 적장손은 정 2품 군(君)에 해당한다.
또 세자의 손자들과 대군의 적장자를 제외한 아들들은 종 2품 군으로 봉해진 것을 감안해 보자.
이 경우 몽골에 있어서 황후에 해당하는 카툰은 처가 되는데 이것을 고려나 조선식으로 그대로 대입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그리고 구유크를 적장자로‘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소르칵타니도 구유크의 첩이 아닌 처로 인정할 경우 몽케는 오고타이의 적장손이 되니 종1품에 해당된다.
그러나 구유크를 서자로‘만’ 취급할 경우 몽케는 정 2품이 된다. 여기에 더해 소르칵타니도 첩으로 취급할 경우 몽케는 종 2품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내 경우에는 전에도 말했지만 번국의 세자(왕태자)이기 때문에 못 해도 1품급이다. 그것도 온전히 취급받는 1품으로 말이다. 고로 중원식 품계로 따질 경우 서열상 내가 몽케보다 높다. 하지만…
“전하. 어찌하오면 되겠사옵니까?”
내가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자, 마휘가 재차 들여보낼지 말지를 물었고, 이 재촉에 결국 만나기로 결정했다.
“들여보내라. 상보의 자식이라면 나에게 있어서도 형제와 같은 이다.”
꼬여 버린 몽케의 취급에 이쪽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많이 껄끄럽기는 하나, 그 이상으로 구유크의 자식이라는 신분을 사용하면서까지 만나려고 한다면 만나보는 것이 좋다.
정말로 몽케가 이번 시찰단에 참석한 것은 시찰이 목적이 아니라 나와 대면하는 것이 목적일 경우 그 의도를 알아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저쪽에서 먼저 와준 방문을 매몰차게 거절하기엔 역사를 아는 내 시점에서 몽케의 네임벨류가 가볍지 않고 말이다.
‘거절을 하거나 손절을 하는 것은 들어본 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