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5
345화
59장 테무케의 야망(1)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구유크의 아들일 뿐인’ 몽케와 ‘고려국 왕태자’인 나의 서열을 중원 식으로 따질 경우 내 쪽이 위다.
다만, 지금 몽케가 ‘같은 구유크의 자식’으로서 ‘개인적인 만남’이라는 뉘앙스로 만나자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러면 조금 애매해진다.
물론, 여기가 고려나 조선대로라면 왕태자와 왕자가 다르고, 세자와 대군이 다르듯 개인 만남이라도 상하 구별이 당연하게 나누는 것이 맞다.
문제는 몽골과 고려의 차이, 국력 차 문제를 떠나 ‘몽골과 고려의 왕실과 왕족들의 취급’의 차이점이다.
거기다 몽케는 나보다 훨씬 연상이고 말이다. 심지어 전직이라곤 하나 군왕 내지는 친왕에 준하는 위치에 있었던 자다.
그때의 위상으로 보자면 솔직히 나보단 아버지인 고려왕에 비견되는 위치인 것이다.
그런데 구유크의 자식이 되었다고 조카뻘 되는 내가 막 하대하는 것은 형식 문제 이전에 이전 경력을 그냥 무시하고 몽케의 자존심을 건들 수 있다.
여기서 이전 경력이 어쨌다고 대우해줘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실제론 동서양 막론하고 과거 고위직에 대해선 나름 존중은 해주는 것이 보통이다.
당장 조선 시대에서도 유배 간 명망 높은 양반들 경우 정말로 해당 유배지를 관리하는 관리나 사는 사람들도 유배자를 막대한 경우가 별로 없다.
이는 해당 양반이 언제 복귀할지 모른다는 것과 명망이 있는 만큼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대에서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도 전 거대 기업 회장이나 전 국회의원, 국무총리 같은 사람이 오면 나름 겉으로는 존중해 주는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여기에 더해 원 역사에서 몽케를 포함한 툴루이 계 황금 씨족들이 몽골(->원나라 포함)을 통치한 것을 아는 나로서는 더욱 지금 몽케 처지만 보고 막 대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란 생각밖에 안 든다. 요약해서 말해 훗날 몽케가 다시 떡상할지 모른다는 말이다.
“어서 오시오. 몽케 공. 사실 이쪽에서도 따로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싶었으나 이번에는 양자 사적으로 온 것이 아니라 공적인 일이 우선이라 생각하여 만들지 않았소만, 이렇게 공께서 먼저 찾아와 주니 놀라는 한편으로 많이 반갑기도 합니다.”
“명성이 자자한 고려국의 태자 전하와 독대를 하게 되어 저도 참으로 영광이옵니다.”
몽케는 내가 준비한 통역가의 말을 통해 나의 인사를 듣더니 나를 향해 약간 허리를 굽혔다.
굽혔다곤 해도 정말 약간만 굽힌 것이 절을 한다기보다는 고개만 까닥거린 느낌일 정도다. 거기다 역관은 몽케의 말을 내게 존댓말로 한 것으로 통역해 주었는데 글쎄. 과연 정말로 존대를 해준 것일까?
거의 고개만 까닥거린 수준이나 저 표정을 보면 자존감이 당당한 것이 자신을 나보다 아래라고 생각지 않는 것 같은데….
뭐, 강동성 전투 이후 몽골 사신은 고려왕에게 직접 와서 손에 칙서를 쥐여줄 정도로 미친놈이었으니, 몽케도 속국인 고려의 왕자 따위에게 진정으로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 더 이상하다면 이상하겠지만 말이다.
‘언행을 보면 딱히 간절히 간청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고, 요청을 하는 게 있다면 마지막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거절하는 방향으로 잡더라도 나쁜 인상을 남긴 채 떠나보내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군.’
“허허허. 같은 상보의 자식이라면 과인에게 있어서도 형제나 다를 바 없습니다. 되도록 양자 편히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 몽케의 말들을 보면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분명 내게 존댓말이나 경의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 공손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역관이 이것을 그대로 통역할 수가 없어 나름 순화시켜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건 국가 외교의 외교 비화로 번지지 않게 노력하려는 역관으로서 자세니 이해가 가긴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몽케의 진의와 혹은 대칸에 대한 야욕이 있는지 알아두고 싶은 것이다. 최대한 순화되지 않은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나의 말뜻을 이해한 것인지 역관은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몽케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고려 태자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니 그리하겠소.-라고 합니다.”
반존대인 하오체다. 이것도 통변에서 순화된 건지 아니면 진짜 저런 투로 말하는 건지는 확신이 되지 않지만 적어도 통변 중에는 상호존대로 갈 것 같다.
그것이 양자로서도 편하고 뒤탈도 적을 테고 말이다. 그럼 어디 들어나 보자. 그 유명한 몽케가 뭐 하러 나를 찾아왔는지.
“하면 몽 형께선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 * *
“그러니 이번 일은 정말 의도치 않게 일어난 일이란 말이오?”
“그렇소. 이에 대해선 조정에서 강하게 보고하여 그자에게 엄중한 벌을 내리도록 하겠소.”
“으음.”
몽케의 설명이 다 끝나자 왕검은 턱을 쓰다듬으며 몽케의 말을 곱씹어 보더니 이내 판단을 내렸는지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겠소.”
“그렇다면?”
“죄를 범한 그자를 당장 처벌한다면 몰라도, 저자를 저대로 두는 것은 아조 내에서도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소. 물론 오해로 일어난 일이고 몽 형이 해명을 해준 만큼 성실사한과 찰목합(札木合) 왕(王) 같이 비극적으로 일어나진 않겠으나 적어도 양국에 이 사태를 진정시킬 시간은 필요하다 생각하오.”
그것은 완곡히 지금은 몽골로 돌아가라는 답변이었고 몽케도 그것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태자께서 그리 말한다면 어찌 이쪽에서 그리 말하겠소. 다만, 돌아가는 일에 대해선 태자가 직접 정사에게 설명을 해주어야지. 나도 설득이 가능할 것 같소.”
“물론이오. 그에 대해선 직접 정사를 만나 말하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이제 본 시찰단은 돌아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사고만 내고 돌아가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되니 본 시찰의 목적을 태자께라도 듣고자 하는데 답해줄 수 있겠소?”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해주겠소.”
“하면 현 태자비가 금의 황녀나 황족이 아닌 것이 분명하오? 이 일은 요전에 태자께서 말한 대로 스스로 이실직고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오. 사실이라 한들, 이실직고만 한다면 예케 몽골 울루스에 공을 세운 태자를 어찌 대칸께서 어찌 용서치 않겠소.”
일말의 반응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피는 몽케의 시선 속에서 왕검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태자비가 금의 황녀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오. 나의 생각으론 태자비의 부친이 금에서 온 자이다 보니 그러한 소문이 퍼진 낭설이오.”
“호오. 부친이 금인이란 말이오? 그 말은….”
“그렇소. 나라의 공신인 정안연이 금에서 온 자이고, 그의 양녀가 현 태자비이오.”
양부라는 말에 몽케는 멈칫하며 반문했다.
“양부… 라면 친자(親子)는 아니란 말이오?”
“그러하오. 그러니 내가 낭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소문이 퍼진 것에는 태자께서 다른 처들은 두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오. 만일 다른 처를 두었다면 현 태자비가 금의 황녀이고, 태자가 부마이기에 아끼고 다른 비를 두지 않는다는 의심이 나오겠소.”
“!”
몽케의 말에 왕검은 물론 곁에 시중들던 궁인들도 움찔 반응했고, 통변한 역관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뜨악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사실 왕검이 근본도 모르는 금수유를 태자비로 둔 이후 조정 내에서도 왕검이나 대왕에게 또 다른 태자비나 첩. 즉, 조선 시대로 치면 빈(嬪)에 해당하는 태자비들을 두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가 종종 나온 바 있었다.
이때 왕검은 신하들에게는 자신이 결혼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 드냐며 회피를 하였지만 지금 몽케의 말은 자칫 잘못하면 몽골과 정략혼을 맺자는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왕검은 금세 태연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몽 형께서는 짓궂으시오. 아왕(我王 우리 왕=고려 고종을 의미)께서도 오직 한 분의 왕후(안혜왕후 安惠王后)만을 두시었고, 사별한 지금도 재혼을 아니 하고 계실진대, 아직 어린 내가 어찌 여럿의 비를 둘 수 있겠소?”
“그러나… 아니 그렇다면 알겠소. 과연 고려가 그러한 일이 있었다면 내 어찌 말을 하겠소.”
뭔가 더 말하려는 것 같았으나 이내 그렇다고 말하며 물러났다.
* * *
“시찰단을 저렇게 보내도 괜찮겠습니까? 혹여라도 이것이 빌미가 된다면….”
김방경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찰단은 강화도는커녕 개경조차 당도하지 못하고 떠났다.
“노왕의 의도가 저렇게 확고하고 극명히 드러내 놓는다면 이대로 아조에 두어봤자 얼마나 더 횡포를 부릴지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그냥 돌려보내는 것이 우리에게도 낫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테무케가 이번 소문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반드시 우리 고려와 전쟁을 할 것이다.
사실 평소라면 이 정도 소문으로 고려와 전쟁을 하기엔 옷치긴 왕가 입장에선 다소 도박과 억지로 한다고 볼만하다.
안 그래도 전에 패했고, 자신들과 고려의 사이가 나쁘니 또 트집 잡아 공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옷치긴 왕가가 이번에는 곱게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전쟁을 건다,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몽케의 대담에서 나는 옷치긴 왕가의 전쟁에 대해 ‘확신’을 넘어 ‘확인’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전에 이 소문이 몽고에 퍼진다면 노왕이 반드시 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째서인지 아느냐?”
“손상된 위상과 영토를 빼앗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맞다. 그러나 구태여 이번 사건에 그 위상과 영토를 얻고자 절대로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무엇이옵니까?”
“바로 노왕의 수명 문제다.”
그렇다. 이것이 내가 이번 전쟁에서 옷치긴 왕가가 반드시 전쟁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칭기즈칸의 막냇동생이라 칭기즈칸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막냇동생인 만큼 나이 차이가 있겠지만 당장 자신의 형인 칭기즈칸의 손주인 구유크가 장성하다 못해 아들까지 본 상태다.
즉, 증손주 세대가 태어나는 것을 테무케는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 테무케는 고령의 노인으로 실제 지금 나이가 75살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근대에서 70살 이상까지 사는 것은 얼마나 장수하는 케이스인지 생각하면 테무케의 수명은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장수한다 한들, 아들 세대도 아닌 손주 세대보다 장수할 것이라고는 테무케 본인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도 알겠지만 노왕의 세력에서 가장 눈여겨볼 자는 노왕 본인이다. 노왕이 몽고 황실에 어떠한 위치인지를 제외하더라도 노왕의 세력에서 노왕 만큼 노회하고 뛰어난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조가 북벌을 한 이래 노왕의 세력과 위상은 아조에 피해를 입었고, 급기야 지난 전쟁에선 아조가 대승을 이루었으니 노왕으로선 자신의 명줄이 붙어 있는 동안 최대한 신속하게 아조를 꺾고 피해받은 것을 복구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몽케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사고를 터뜨린 것도 친 옷치긴 왕가 측의 사람이고, 이번 시찰단의 파견 여부도 친 옷치긴 왕가 세력의 제장들 측에서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대칸이 서정을 떠난 지금 담판을 지으려 한다는 내 추측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여기까지 상황을 본다면 테무케, 그 늙은이는 역시….
‘대칸의 자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구나.’
이것이 내가 어느 울루스보다 고려와 지척에 있고 강성한 세력을 가진 옷치긴 왕가에 경계를 하고 손을 잡는 것을 많이 꺼리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