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8
348화
61장 때아닌 전쟁(1)
진노한 테무케는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부하들을 뿌리치고 일어서 다시 호통을 쳤다.
“고려가 쫓아냈다. 그것도 예케 몽골 울루스의 사신을 말이다. 그런 단순하고도 예케 몽골 울루스의 위신이 달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하지만 이번 사건은….”
“형님(칭기즈칸)께서 살아계실 적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주저 없이 군대를 보내 위신을 세웠는데, 오늘 자처(子妻)의 유약한 대응이 예케 몽골 울루스 전체의 위신이 흔들리게 되었구나. 형님을 뵐 날이 없구나. 없어!”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테무케의 행동은 고려와의 전쟁을 막는 퇴레게네가 얄미운 것도 있었으나 그 이상으로 그때와 달라지는 듯한 행동에 진심 섞인 한탄도 있었다.
그래도 이번 문제는 테무케로서도 지난번처럼 무작정 일을 벌이는 것은 조금 주저되었다.
‘안 그래도 이전 전쟁(갈라전 전쟁)을 강행한 이후 조정 내에서 나와 울루스를 보는 눈이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카툰이 논의 후 뜻을 내리자고 말한 지금, 내가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조정의 결정과 의사를 무시하는 격이 된다. 지금 내가 받기엔 정치적 부담이 크고, 자칫하면 퇴레게네 그년이 내가 칸의 의사를 어겼다는 누명을 씌고 군대를 보낼 위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전선이 늘어날지 모르는바,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좀 더 미뤄야 하는가.’
어떻게든 대칸이 귀환하기 전에 고려의 문제를 끝맺어야 하나, 고려는 이제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테무케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실패했다가는 자신은 정치적 고립을 피할 수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지부겐을 보내라. 고려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저들에게 똑똑히 전하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여 유사시 고려로 병력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설마 고려가 아니라 몽골 내부에서 발목을 잡힐 줄은 몰랐던 테무케는 욕지거리를 내뱉어야 했다.
‘카툰. 그리고 고려여. 이 내가 여기서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나는 나의 것을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 * *
“크흐으. 이거 입에 잘 맞는군. 자네가 왜 여기로 오자고 했을 때는 의아했는데 이것 때문이었군.”
“낄낄낄! 이제 알았는가?”
두 장사꾼이 수저를 들고 평상에 마주 앉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거 참, 살다 보니 이런 요리를 산에서 다 먹어보는군. 뜨뜻하고 맛도 얼큰한 것이 정말 좋아.”
“이게 몸도 보해줘서 참 좋지.”
한 명은 이미 이 장국에 익숙한 듯 새우젓을 풀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숟가락을 꽂았다.
“아무렴, 이 장국밥이란 것은 태자 전하께서 직접 떠올린 요리인데 안 그러겠는가.”
“그래. 그래. 꺼-억. 잘 먹었수다.”
두 사내는 바닥까지 박박 긁어먹고는 일어났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산에 위치한 주막(酒幕)이었다.
처음 마을 사이에 있는 산에 주막이라는 것이 설치되었다는 이야기와 설명을 용강상단과 관아에서 들었을 때만 하여도 마을 사람들과 상인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들에게 있어 산이나 마을 사이 위치하여 지나가는 이들이 쉴 수 있는 시설은 대부분 원(院)이나 가끔씩 산지에 사는 인가(人家)에서 하루 묵다 가는 것뿐이라는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가는 말할 것도 없고, 원들조차 대개 거대 사찰에서 관리 하기 때문에 사찰이 없는 곳이나 벽지 같은 곳에는 없었고, 그러한 곳은 옆 마을 사이 작은 산 하나만 자리 잡아도 옆 마을에 가는데 나름의 각오가 필요했다.
“포구에서 자네가 설명해 준 뒤 우리 둘만으로 산을 건너자고 했을 때만 하여도 좀 더 인원이 모이면 가자고 했네만 내가 틀렸어.”
그러나 그 주막이 있는 산골로 용강상단의 상인들이 자주 오가고, 이용한 보부상들은 하나같이 주막의 유용함을 말해주면서 마을 사람들과 상인들은 주막이 있는 산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옆 마을에 사는 지인이나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이 이전보다 빈번해졌고, 상인들 경우에는 작은 규모로 건너갈 수 있게 된 주막이 있는 길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이라면 산 하나 건너는데 하루가 넘는다 싶으면 밤에는 노숙으로 불침번을 서며 맹수들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원들이 한 번에 건너야 했는데, 이렇게 주막이 있으니 밤에는 집에서 편안히 자고, 식사도 안전히 마치고 출발할 수 있으니 말이네. 정말 주막이 천세 만세일세.”
비용을 지불하긴 해야 하나 산을 완전히 넘기 전까지는 수면은 물론 식사를 할 때도 맹수들의 습격을 대비해야 하던 상인들에게 주막은 작은 원이나 다를 바 없었다. 처음 주막을 이용해 본 사내는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소감을 말하며 고개를 돌아 뒤를 따라오던 일행에게 말했다.
“그런데 자네 어째서 아까부터 대답이 없는… 끄허어어억!!”
이윽고 그 사내는 혼비백산하며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서경.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이 드디어 완성되어 간다고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지금 말한 대장경은 최우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이미 제작 이야기가 나왔으며, 계사지주 이후로도 만종이 이어서 제작을 맡은 국가사업 대장경으로, 원 역사로 치면 팔만대장경에 해당한다.
본래 팔만대장경이란 말은 경판의 수가 8만이 넘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식 이름은 재조대장경 (再雕大藏經)이다.
‘재(再)’라는 말처럼 다시 만든 대장경이란 뜻인데, 거란과의 전쟁 시절 고려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처음 만든 대장경,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2차 여몽 전쟁에서 대구까지 내려온 몽골군에 의해 불타면서 다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선 2차 전쟁에서 몽골군이 서경에서 격퇴되어 물러나면서 초조대장경은 안전하게 남아 있다.
초조대장경도 남아 있는데 대장경 제작이 시작된 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2차 전쟁 격퇴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몽골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최우 본인도 전쟁에서 제대로 된 공을 세우지 못하자 위신과 민심을 다잡기 위해 대장경을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튼, 이렇게 새로 만드는 대장경이다 보니 재조대장경이 아니라 다른 대장경으로서 제작되어 이름도 재조가 아니라 아예 ‘고려대장경’이라고 이름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런 대장경이 지금 거의 완성돼 가고 있으니 있다는 것이다. 만종이 권력을 반납하고 물러난 이후 대장경에 대해선 거의 신경 쓰지 않았는데, 벌써 다 만들어 가고 있구나.
사실 대장경 제작에 대해 말이 올라온 것은 1233년이었으니 벌써 8년이 다 되어간다.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원 역사에서는 1236년에 제작이 시작되었고, 완성된 것이 1251년이니 15년이 걸렸다.
물론, 전쟁과 내우외환(內憂外患) 등으로 각 잡고 제작한 시기랑 비교적 쉬엄쉬엄 제작한 시기가 혼재되어 있으니 같은 조건이라곤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이 단축된 거다.
‘만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개태사의 수기대사나 다른 전국 승려들도 해동유학의 이야기를 듣고 경각심이라도 가진 것인가?’
“이 대장경들에 대해선 일전에 말한 대로 해인사에 보관하는 것이 어떠냐고 내가 물은 바 있는데 그리하고 있느냐?”
“예. 전하께서 후보로 하교하신 해인사 인근을 알아보니 가히 대장경을 보관하기에 그보다 좋을 명당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본래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곳이 해인사인데.
“그렇다면 되었다. 이번에 대장경에 참석한 고승들과 그 승려들이 있는 사찰을 모두 똑똑히 적도록 하라.”
‘이게 다른 속내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원 역사에 비해 나라가 평화로우니 기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이리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교 국가와 미륵(왕건)의 후손인 이상 이번에는 대장경 완성에 승려들의 공은 크게 인정해야겠지.’
제작을 허용했다고 하지만 원 역사만큼 대장경밖에 기댈 곳이 없다는 심정도 아니고, 그런 정신론만을 믿고 하는 것은 극구 사양인지라 제작 비용과 관심은 원 역사 고려 조정에 비해 현격히 적은 편이다.
아예 만종에게 맡긴 것도 사실상 민간에 맡기고 조정에선 최대한 돈을 적게 내놓겠다는 뜻인데, 이 속도라면 절대 만종이나 최씨가문의 힘으론 무리다.
분명 다른 승려들이나 사찰들도 크게 지원을 하는 등 도왔다는 뜻이 된다.
‘거기에 백성들도 많이 시주하며 제작을 도왔을 것 같지만, 이 경우에는 사찰과 승려들에게 주는 게 훨씬 낫다.’
대장경 제작은 현대인 시점에선 현실적인 대책은 만들지 않고 쓸데없이 돈과 노동력, 시간만 버리는 행위지만, 이 시기 고려인들에게 있어선 이야기가 다르다.
군대에는 군종병이 있고, 현대사회에서도 종교를 믿는 이들이 많다. 이건 그만큼 종교가 가진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시기 고려에서 불교는 오늘날 기독교나 불교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일상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 보니 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께 기도를 하여 가호를 받겠다는 행위가 전해지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민심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반대로 이미 시작한 대장경 제작을 반대하거나 취소한다면 민심과 불교에서도 반대가 올 것이다. 이런 이유도 있어 비용과 노동력이 아까우면서도 놔두긴 했지만 말이다.
“대장경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보다 주막이 설치된 곳들에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들었다.”
“그렇사옵니다. 주막을 설치한 곳 중 반년이 지난 17개의 군현들에서는 주막이 생기기 전에 비해 인근 지역에서 사람이 많이 오가고 있다고 하옵니다. 또한 주막이 생기면서 원이 없는 곳에도 가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 해당 지역의 시장에도 점차 타지의 물품들과 사람들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다 합니다.”
이로써 상단의 보고와 관아나 호족들 보고가 모두 일치하게 되었다.
사찰의 관리에서만 제대로 운용되는 원이 아니라 상단 혹은 개인이 운영하는 주막이 늘어날수록 사람과 물자의 이동도 이전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아직 화폐를 만들어 도입시킬 정도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 보 한 보 전진하고 있는 것으로도 기쁜 소식이다.
덧붙여 조선 시대 경우 주막의 발전은 화폐 유통과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활발해지면서인 것을 생각하면, 이 화폐 유통과 주막의 발전 부분은 거의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같이 어느 한쪽이 심해지면 다른 한쪽도 덩달아 오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조선은 화폐 후 주막의 발전이지만 나는 반대로 주막을 만들고 화폐를 만들 생각이다.
이쪽은 고가치 화폐라지만 은전은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두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양광도를 비롯한 전라도, 경상도 각지에 설치한 주막들 중 5분지(의=之) 1은 이대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답이 올라왔으며 이 중 3분지 1은 이미 그만둔 상태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여전히 이용하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더냐?”
주막들만 설치한다고 모든 것이 쉽게 흘러갔으면 한국에서 화폐는 옛날 옛적에 만들어 유통시키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아무리 주막을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그쪽으로 사람이 오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으며 주막도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막을 설치할 때 되도록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곳 근처나 설치하면 많이 갈 것이라 생각한 지역에 설치시키도록 했다.
이마저도 초반 유입을 위해 용강상단의 보부상행 길목에 두거나 부부상행의 길을 그 주막이 있는 쪽으로 운용하여 용강상단을 마중물로 써대는 중이다.
그러니 다소의 손해 정도는 각오해서라도 초반에 강행하려고 하는 것인데….
“아니옵니다. 그것은 이미 예정한 정도이며, 장래에는 해결될 것이라 보고 있사옵니다.”
“하면 어째서?”
답답하여 버럭 묻는 나의 질문에 정안연의 대답은 지금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그러나 예전에 경계했던 내용이었다.
“해수(害獸)의 문제. 호환(虎患)이 일어나고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