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49
349화
61장 때아닌 전쟁(2)
“호, 호환(虎患)이라고?”
해수(害獸)란, 문자 그대로 ‘해를 끼치는 동물’을 말하고, 호환(虎患)은 ‘호랑이에게 당한 화’를 말한다. 다른 말로 ‘호랑이에게 당한 재난’이란 의미로 호난(虎亂)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수들은 보통 표범, 늑대, 이리, 호랑이, 곰 등 전부 싸잡아 말하지만 한반도 역사상 가장 악명 높고 피해를 끼친 해수는 두말할 것 없이 범이다. 즉, 해수 사건 중 가장 심한 해수 사건이 호환인 셈이다.
전근대 이 호환의 공포와 위험이 얼마나 강렬한지 무려 마마(천연두)이나 전쟁에 비교할 정도로 언급된다.
조선 시대에는 아예 착호갑사(捉虎甲士)라고 해수퇴치 전문 부대를 만들고, 호환일 경우 임금의 허가 없이 먼저 군대를 움직여도 될 정도로 큰 권한을 부여받았을 정도로 위험하게 여겼다.
“그렇사옵니다. 앞서 말한 곳들은 죄다 3번 이상 해수가 주막 인근에 나타났음을 고하였고, 그중 4곳은 객이 주막을 떠나자 호환을 당해 죽은 자는 물론, 주막에 있는 주인까지 잡아먹힌 일도 있나이다.”
“뭐라!? 그럼 범이 주막 안까지 들어와 잡아먹었단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정안연이 어두워진 낯빛으로 대답했다. 빌어먹을. 가장 주의했으면서도 바라지 않았던 일이 기어코 터졌다.
호랑이는 현대 한반도에선 이미 백두산 정도야 있을지도 모르고, 그 외에는 확실히 멸종했다고 보는 짐승이지만 괴짜이신 할아버지 덕분에 나도 어지간한 건 잘 안다.
당장 ‘우리 현조(玄祖 증조부의 조부)께선 호랑이도 잡았는데 그 후손이 사지 멀쩡하고 병도 안 걸렸는데 멧돼지 하나 못 잡으면 가문의 수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할아버지가 옛날 호랑이를 모르겠고 설명을 안 해주겠는가?
그렇다 보니 주막 설치 계획을 할 때 해수와 호환에 대해선 일찌감치 경계했다.
“주막을 둘 곳은 두기 전에 반드시 그 근방에 해수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하고, 최대한 해수가 나오지 않는 곳을 선정하라 하였다. 혹여나 흔적이 있다면 사냥꾼과 병사들을 보내 반드시 사냥하여 위험이 없도록 하라 당부하지 않았더냐? 그마저도 아예 불가능하다 싶다면 아예 산기슭에 설치하거나 미뤄두라고 하였다. 여기에 더해 산이나 기슭에 두는 주막 주위에는 담을 쌓고,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주막과 주인의 안전을 보장하라 했는데 이 모든 것을 해도 호환이 일어났단 말이더냐?”
조선 시대에도 산기슭에 집을 지으면 위험한데, 제대로 된 주막도 없는 이 시기 고려에 산골에 주막을 설치하고 소수의 사람만을 그곳에 보낸다? 당연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철저히 조사하라고 했는데 기어코 해수 문제가 터진 것이다.
“산이 무척이나 넓고 해수들은 저마다 은신에도 능하다 보니 사람이 찾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라 하옵니다.”
참고로 지금 산골이나 산기슭에 설치한 주막의 주인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주모(酒母)라는 아줌마나 여성이 맡고 있는 게 아니라 남자, 즉, 아저씨들이 맡고 있다.
이마저도 주기적으로 사람이 와서 생존을 확인하며 주막의 안전 보장과 고수익을 미끼로 사람을 보낸 것인데, 이렇게 희생이 일어나다니….
“정안연 그대도 알겠으나 이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주막이 있어야 물류 이동이 원활해지고, 지역 간의 교류도 쉬워지고, 장기적으로 길을 설치하는 것에도 보탬이 된다. 그러니 이 주막 설치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정안연도 이런 주막의 중요함을 알기에 내 말에 반대하기는커녕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불난 수레에 한 잔의 물을 뿌리는 행위에 불과하겠으나 우선 전(全) 지점의 보부상 행수들에게 해당 지역을 지날 때는 반드시 사냥꾼들을 영입하고 산을 넘을 때마다 해수들이 보이면 잡게 하겠나이다.”
용강상단의 보부상들은 그냥 보부상이 아니다. 험한 지역들을 오가는 장정들이 많고, 노숙에도 익숙한 이들이다.
이들이 자신들이 지나는 길목에 해수가 보이면 잡겠다는 것은 길을 유지하겠다는 정안연의 굳은 표명이다.
하지만 정안연 본인이 인정하였듯 이거론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한반도에 해수들이 얼마나 많고 영악한데 많은 일행들이 있는 보부상행의 사냥만으로 길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일행들이 있는 동안은 숨어 있다가 사라지면 다시 나올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확실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다.
“…….”
지금 상식적으로 보면 호환이 터진 이상 최대한 빨리, 그리고 확실히 처리하려면 조선처럼 군대를 보내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고려는, 총력전을 펼칠지도 모르는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다. 그러니 함부로 군대를 빼는 것은 무척이나 꺼려진다.
하지만 이 주막과 호환 문제도 신속히 대응해야 할 문제였다. 한참을 고민한 나는 결국 결정을 내려야 했다.
“노왕과의 전쟁을 앞두고 다른 일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만, 노왕 또한 지금 몽고 내부에서 발목이 잡혀 있을 터, 어차피 해야 한다면 지금 당장 하는 것이 그나마 좋겠지.”
“전하? 그것이 무슨….”
“명을 내리겠다!”
측근들의 눈이 번뜩이며 나의 지시에 귀를 기울인다. 역시 이런 건 신속히 제대로 뿌리까지 도려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조선에서 했고, 일제도 했던 것처럼 해수가 있어 살기가 힘들다면 해당 해수들을 처리할 뿐이다. 나는 즉시 벽 족자에 그려진 호랑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설령 산군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위협한다면 용서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부터 군대를 동원하여 저 해수들을 근절시킬 것이다.”
저 맹수는 해로운 짐승! 지금부터 우리 고려는 해수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렇게 야심 차게 주장한 나였지만, 내 말 직후 이장용이 입을 열어 만류했다.
“전하. 전쟁을 앞둔 지금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좋지 못하옵니다. 하여 용강후도 병사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단이 오가는 길목만을 지키는 임시책을 제안한 것인데 어찌 전시를 앞둔 상황에서 군대를 움직이려 하는 것이옵니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나 또한 옷치긴 왕가와의 총력전을 앞두고 군대를 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화폐나 개혁을 할 때는 초장에 제대로 해야 하는 법이다.
“상행 때에 요행히 해수들을 만나서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이나, 범이란 짐승은 원체 영리한 맹수(猛獸)라, 그 방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희박한 법이다. 하여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면 오직 군대를 동원하여 해결해야 함이 마땅하다.”
실제 아무리 호랑이나 곰, 표범 같은 맹수라도 대인원이 한 번에 우르르 이동한다면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나오지 않고 되려 숨는다. 그러니 보부상단이 사냥꾼을 대동한다고 해도 마주칠 일 자체가 극히 적다.
그럼 대규모로 계속 이동하면 될 일 아닌가 싶지만 그러면 주막을 설치하여 물류 이동을 활성화한다는 목적이 반감된다.
더군다나 지금 아예 주막 자체를 급습했다는 보고도 올라왔는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버리란 말인가? 아니면 그냥 다 불러오란 말인가?
“하오나 그리되면 변방의….”
인명 피해가 난 곳은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단순히 발견된 것과 달리 사람 맛을 본 맹수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식인 호랑이나 맹수가 나오면 사태 불문하고 퇴치를 우선했다.
하물며,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집에 마저 쳐들어온다면 주막이 무슨 의미고, 집이 무슨 의미겠는가? 이건 주막 문제를 제외해서라도 처리해야 하는 거다.
물론 이장용의 말대로 호환을 막자고 전국의 군대를 동원하기에는 현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은 맞다. 국경의 방어가 약해졌다가 돌파되면 큰일인 건 맞다. 하지만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전군을 동원하자는 뜻은 아니다. 갈라도의 길은 이안사와 변방의 백성들이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바, 지금 토벌을 할 곳은 주막을 설치한 곳 중 군을 동원하여 토벌하는 것은 경기(개경 인근) 이남 남방 일대에 한정할 것이다. 또한 그중에서도 주막 자체가 급습당했던 곳들을 가장 우선하려고 한다.”
옷치긴 왕가의 군대가 쳐들어올 방향은 현실적으로 동북면. 즉, 갈라전 쪽일 확률이 가장 높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테무케가 가장 원하는 것은 갈라전 탈환이니 말이다.
그래서 일부러 이전 전쟁에서 목단강 이동지역을 ‘분쟁 지역’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게 쳐들어올 경우 갈라전은 갈라전에 있는 병력만으로도 충분히 시간벌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믿는 구석으로, 만약 옷치긴이 우리의 허를 찌르고자 동북면이 아닌 서북면 쪽으로 온다고 하더라도 동요국이 미리 알려줄 것이라는 점이다.
동요국도 예전과 다르다. 국력이나 병력이 몽골 제국이나 옷치긴 왕가를 무시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난번처럼 옷치긴 왕가에 은근슬쩍 붙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는 돕지 않더라도 우리 쪽을 도울 것이다. 이번 시찰단 이야기처럼 알려준다는 것인데, 이번엔 나름 믿을 만하다.
지난 전쟁에서 고려가 옷치긴 왕가를 상대로 대승한 것도 이유가 있지만, 몽골 내에서 옷치긴 왕가가 다소 불안하다는 것을 그들 또한 알게 모르게 직감하고 있다는 것과 동요국의 왕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동요국의 신왕(新王)은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가 아니다. 지금 아조를 배신하고, 노왕에게 붙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야율 형(兄)이 아니다. 분명, 형제국인 아조를 배신하지 않고 이웃국으로서 그 의무를 성실히 다할 것이다.”
고려가 오키나와 남벌이 한창일 때 동요국에서는 왕이 교체되었다. 3차 여몽전쟁에서 고려를 치고 나와 자주 서찰을 주고받았던 야율설도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인은 자연사(自然死)라고 한다. 그가 죽고 지금 새로이 동요국의 왕이 된 자는 지난번 고려에 유학을 하러 왔던 야율수국노다.
야율수국노가 나(신체 기준)보다 나이가 많긴 하나, 나랑 달리 공식적으로 제대로 정치를 해본 적은 없다.
본래 왕이 슬슬 세자에게 양위하고 싶을 때가 되면 세자에게 미리 왕으로서 경험을 하도록 관련된 업무를 지시 내리거나 곁에 두어 보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리청정을 시켜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야율수국노는 볼모 생활을 감안하더라도 그런 경험을 겪어보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율설도 생전 시점에서 이미 많은 동요국의 유능한 신하들과 병력도 많이 사라져 동요국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야율수국노가 즉위해 버렸다.
나라는 이미 사실상 몽골이 관리를 맡고, 수국노 본인은 몽고에 오래 볼모로 잡혔던 자다. 신하들 중에는 수국노의 즉위에 불안해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수국노 본인도 권력을 행사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고려는 수국노의 즉위가 고려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쌍수 들어 환영했고, 사신도 보내 친교를 다졌다. 그리고 실제 우리 예상대로 수국노 세자, 아니, 수국노 신왕은 친고려 노선으로 움직였다.
이건 야율수국노가 매국노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고려 태자인 나와도 친하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입지를 세움과 더불어, 그 덕분에 지난 옷치긴 전쟁에서 흔들렸던 국교를 회복하였다는 업적과 모습을 동요국 내부에 보이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고려로서는 동요국을 완충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살려둘 것이다. 이는 동요국의 신하들은 물론, 수국노도 알고 있다. 그렇게 고려를 이용하여 수국노는 자신의 권력을 편히 행사하는 것이다.
사실상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관계인 것이다. 실제, 야율수국노가 즉위하면서 옷치긴 전쟁으로 금이 갔던 동요국과 고려의 관계는 말끔히 회복됐으니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야율설도가 야율수국노를 고려에 보낸 것은 자신의 수명이 다 되어감을 알고, 죽기 전 어떻게라도 우리와의 친분을 회복하고 아들인 수국노가 왕위를 얻을 수 있도록 하고자 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죽기 전 최대한 대리청정을 시켜 경험을 쌓게 하는 것보다는 유일한 우방국인 우리 고려에 보냄으로써 우리의 체면을 세워주는 동시에, 사실상 공식적으로 지난번 전쟁의 일을 사과하는 듯한 제스처를 제대로 알리고, 수국노 본인에게는 고려의 실태를 견식하고 나아가 나와 인맥을 만들게 하는 용도로 말이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야율설도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자식과의 작별인사나 가르침보다는 자식의 장래와 나라를 우선했다는 것이 된다.
나는 원 역사의 야율설도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니 이 개변된 세계 속 그의 죽음은 물론 내게 보인 행동들조차 원 역사의 야율설도와 흡사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역사 개변을 하면서 그의 방향성과 선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본 야율설도는 난세 속에서 사직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시도해 본 위국(危局)의 군주라는 것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야율설도 왕. 설령 세상에 그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몽고의 개’라고 손가락질당하더라도 나만은 당신이 진정한 ‘거란의 왕’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