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61장 때아닌 전쟁(3)
“하오면 주현군의 동원은 경상도와 전라도, 양광도(오늘날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 일대만을 한다는 것인지요?”
“그렇다. 각도(各道)의 호환(虎患)은 실로 백성들의 해가 된다. 변경과 북방의 지역은 시기가 시기다 보니 동원하기 어려우나, 남방 일대는 지방관과 호장(戶長)으로 하여금 군병(軍兵)을 통솔하여 사냥하게 한다면, 호환(虎患)도 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해수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호환을 근절하고자 말하긴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왕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속해서 사냥을 시작하면 영리한 맹수일수록 사람들을 건들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각 지역에 착호인(捉虎人 범 잡는 사람.)을 뽑아 정하되, 주(州)와 부(府)는 50인, 군(郡)은 30인, 현(縣)은 20인, 향(鄕), 소(所), 부곡(部曲)은 각자의 재량으로 수(數)를 삼게 하라. 만약에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여력(膂力)이 있고, 장용(壯勇 건장하고 날래다)한 사람을 택해서 정하고, 범이 출현하면, 수령(守令)이 곧 착호인을 징집해 이를 포획(捕獲)하게 하라! 또한, 범을 잡을 때 착호인 가운데서 그가 잡은 범의 대(大)ㆍ중(中)ㆍ소(小)와 선전창(先箭槍 호랑이를 잡을 때 가장 먼저 맞춘 화살과 창)과 차전창(次箭槍 호랑이를 잡을 때 두 번째로 맞춘 화살과 창)을 분간해서, 적법한 상급(賞給)을 수여하라.”
“상급으로는 어느 정도 적당하오리까?”
왕검은 조선 시대에 범을 잡을 때 세운 조건을 살짝 바꾸어 제안했다. 그가 알기로 전근대 한반도 역사상 구체적으로 호랑이를 잡은 국가는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범을 다섯 마리 이상을 잡았을 시 다섯 마리 모두 선전, 선창(先箭 先槍)한 자는 일반 병사라 할지라도 산원(散員 정8품 무관직)에 삼고, 선전, 선창이 세 마리이고, 이전, 이창(二箭 二槍)이 두 마리인 자는 교위(校尉 정9품 무관직)로 삼도록 한다. 그리고 선전, 선창이 한두 마리이고, 이전, 이창이 서너 마리인 자는 대정(隊正 종9품 무관직)으로 올리도록 한다. 그 밑으로는 호부와 건의하여 정하도록 하라. 만일 잡은 자 중 이미 관직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는 산원 이상에 한정하여 따로 내게 고하라!”
무관직에서 가장 낮은 대정조차 25명의 병사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다.
범을 잡는 상으로 관직을 걸었고, 심지어 1등상(一等賞)인 산원 경우에는 무려 일군을 지휘하는 낭장(郎將 정6품 무관직)과 부지휘관인 별장(別將 정7품 무관직)의 보좌관에 해당하는 높은 위치였다.
“전하. 능력 있는 자에게 직위를 하사하시려는 성심은 무척이나 옳고 바르신 결정이오나, 섣불리 높은 관직을 하사하는 것은 받은 당사자가 세간에 합당한 취급을 받지 못할 수가 있사옵니다. 난신적자라곤 하나, 그 옛날 이의민이 수박(手搏)이 뛰어나 의종 황제의 눈에 들어 단번에 별장(別將 정7품 무관직)으로 승급하였으나 주변 무관들이 관직에 받게 대우하지 않고 업신여기며 차별한 전례가 있사옵니다.
이장용은 이의민의 사례를 들어 상급으로 관직을 내거는 것에 반대하였지만 그의 우려 섞인 주장은 왕검이 대답하기도 전에 김방경을 비롯한 무관들에게 먼저 반박당하였다.
“그대가 우려하는 바는 알겠으나 난신적자 이의민의 사례와 전하께서 내건 관직은 다르네.”
“…….”
“난신적자의 경우에는 비천한 노비 출신에 승급 또한 공을 세운 것도 아니라 그저 의종 황제의 눈에 든 것만으로 과분하게 승급하였기에 올랐기 때문인데, 그러나 지금 전하께서 내거신 관직은 범을 다섯이나 잡고, 여기에 다섯 번 모두 큰 공을 세워야 관직을 주는 것이네. 그런데 범이란 것은 일생 한 번이라도 잡은 것만 하여도 큰 업적이고, 공인데 일등상인 산원직이 범을 무려 5번 잡고 전부 큰 공을 세워야 내린다는 것은 사실상 주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네. 만일 실제 그것을 행한 자가 있다면 그가 산원직을 받는다고 누가 그의 공과 능력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김방경의 설명에 훈련을 명목으로 왕검과 함께 수차례 사냥을 참가해 본 무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이어서 송문주와 유갑수도 감상을 내놓으며 이장용의 우려를 부정했다.
개혁으로 인해 무과가 재개되기는 했으나 아직 무과를 치르지 않고 무관이 된 이들도 많은 실정이라 반드시 무과를 치르지 않았다고 차별받기엔 아직 이른 실정인 것이다.
“그리고 교위와 대정은 (비교적) 큰 차별이 없으며, 그들이 중앙에 오지 않는다면 필시 지방군에 편입되거나 호장들에 따를 것인데 이리되면 우리들과는 별개의 일이네.”
“거기다 설령 차별을 받는다면 그들을 아예 솔부나 북방군으로 이속 시킨 뒤 전선에 투입하는 방도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네.”
호랑이를 여러 번 잡을 정도라면 담력도 어지간할 것이고, 그런 이들이라면 전선에 자주 불려가는 태자부 솔에 이속되어 부리는 것이 훨씬 이로웠다. 거기서 공을 다시 세우면 누가 토를 달겠는가?
고기도 먹어본 자가 더 잘 먹는 법이라고, 이렇게 측근의 무인들 대다수가 문제가 없을 것이라 말하니 이장용도 더 이상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다만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자 다른 걱정이 들어 묻기로 하였다.
“장수들이 모두 이리 말하니 소신의 틀린 듯하옵니다. 하오나 저 말을 들으니 다른 것으로 걱정이 듭니다. 하교하신 조건이 정녕 가능한 것이옵니까?”
호랑이를 한 마리 잡기도 쉽지 않은데, 관직을 받는 최저 조건이 5번 잡는 데 참가하고 거기서 또 첫 번과 두 번째로 공격에 성공해야 하는 법이 가능한지 의아한 것이다.
“관직의 수여 조건에 대해 그렇게 말하긴 하였으나 선창 외에도 크게 활약한 이도 파악게 한 후 관직을 하사함이 마땅한지 논할 것이고, 앞서 말한 조건 또한 호랑이 다섯 마리와 조우하는 데만 성공한다면 어찌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겠느냐?”
“하오나 다섯 마리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조건이 너무 센 것 아니냐고 물으려던 이장용이었지만 다음 말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해봤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냐? 척 장군.”
“그렇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
차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이장용이 충신이기에 그런 것이다.
* * *
“어흥!!”
이마가 이미 핏빛으로 시뻘겋게 붉어진 호랑이가 말 위에 탄 나를 목격하곤 무섭게 달려들었다.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과연 ‘산의 왕(山王)’답게 전광석화처럼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고, 몰이하던 범의 그러한 행동에 사냥꾼, 몰이꾼들이 되레 당황하기 시작했다.
“위, 위험합니다. 전하!”
뒤늦게 근처에 있던 견룡군들이 나를 호위하기 위해 내 앞으로 나서는데 그들이 그러는 동안, 나는 태연히 활시위를 당기고는 달려오는 호랑이를 겨누었다.
피잉!
이윽고, 바람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편전(애깃살)이 견룡군의 투구 사이를 지나 호랑이의 아가리 속에 박혀 들었다. 주위에서 일제히 탄성을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케엑. 케켁. 켁. 크아아앙!”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부위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격통에 범은 달리다가 쓰러졌고 그 자리에서 발을 휘두르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근원을 토해내려고 켁켁 소리를 내며 뱉어내려 해보지만 깊숙이 박힌 애깃살이 나올 리는 없었다.
그렇게 목을 찌르는 격통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인간의 공격을 대비하고자 발을 휘두르며 위협해 보지만 제자리에서 발만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멈춘 맹수를 놔둘 머저리들은 이곳에 없었다.
“그물을 던져라!”
호랑이가 바닥에 넘어지고 그 자리에서 발광하고 있자 이미 몇 번 사냥에 동석해 본 낭장은 지시를 내렸고, 그 지시에 따라 그물을 던졌다.
그물에 덮쳐진 호랑이는 뒤늦게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이미 덮쳐진 그물은 그의 움직임을 제한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던져라!”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에워싸고 있던 병사들과 사냥꾼들이 저마다 가진 화살과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십, 백발의 창과 화살들이 호랑이에게 쏘아졌고, 두껍고 거친 가죽에 튕겨 나가던 것도 하나, 둘씩 박히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토해지며 산천초목이 떨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는 산전수전 겪은 견룡군들과 사냥꾼들. 제아무리 산군(山君)이라 불리는 맹수라도 이렇게 되자 벗어날 수 없었다.
그물 아래에서 발광하는 호랑이를 향해 다시 창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저항이 약해지자 사냥꾼과 병사들은 장창을 들어 그물에 묶인 호랑이의 옆구리와 목을 찌르며 명줄을 끊어놓으며 사냥을 끝맺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죽은 호랑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중(中) 정도구나.’
이번에 잡은 범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크기의 범이었다.
“전하. 참으로 대단하시옵니다. 달려드는 호랑이의 아가리에 정확히 화살을 맞추시다니, 전하의 신기를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옵니다.”
사냥에 동석한 이 일대 호족. 황주(黃州 오늘날 황해도 황주군)의 황보간(皇甫玕)이 옆에서 비위를 맞췄다.
“몰이 사냥으로 지친 범이 단순무식하게 달려들어 주어 맞추기 쉬웠을 뿐일세.”
나는 지금 병사들과 사냥꾼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사냥 중이다. 폭풍 전야 같은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을 앞두고 북방에서 내려온 건 아니다.
이 시국에 북방을 비우고 내려온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아마도 조정에서 소환령이 떨어지지 않는 한 옷치긴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내려갈 생각 없다.
다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서경도 북계도 아니다. 그보다는 밑에 있는 서해도(오늘날 황해도+경기도) 일대다. 서해도도 북방에 속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내가 해수 구제는 중남부 지역에만 한정한다고 해놓고 내가 왜 사냥 중인지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주막을 설치한 곳은 대부분 중남부 쪽이라 북방에서 해수를 아무리 잡는다고 한들, 중남부 지역 주막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데 말이다. 내가 사냥에 나선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예전부터 사냥을 한 이유와 같다. 병사들로 군사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두 번째는 태자인 나도 호환을 근절하기 위해 나서는 것으로 중남부의 해수 구제 사업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세 번째는 앞으로 있을 전쟁들, 옷치긴 왕가 전쟁만이 아니라, 여몽대전까지 포함한 전쟁들에서 백성들이 나라를 버리지 않고 항전해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나라의 문제에 조금이라도 조정과 왕실이 백성들을 위해서 힘썼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나라의 위기에 나서지 않겠는가?
마지막 네 번째는 사실 첫 번째 이유와 상통(相通)하는 것도 있다. 서해도는 1차 여몽 전쟁 당시 고려군이 몽골군 상대로 야전(野戰)에서 이긴 동선역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그 외에 패배한 안북성 전투도 서해도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말은 전쟁이 터져 서북면에서 침입하는 몽골군의 진격을 북계에서 때맞춰 막지 못하고 놓칠 경우 요격은 서해도에서 일어나는 것이 섭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계를 포함한 서해도의 지리를 조금이라도 알아보고자 구제를 빙자하여, 지역 순행과 산의 탐찰(探察)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사들이 잘 모르는군요. 저렇게 잡으면 호피가 많이 상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곁에서 황보간이 아쉬워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물에 묶인 호랑이를 무수히 창과 화살을 던져 잡으면서 호피가 넝마가 된 것이 안타까운 듯하다.
“지금 내가 군을 움직여 범을 잡는 것은 백성들을 위협하는 해수를 근절하고 하는 것이지, 호피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닐세. 호피를 얻는다 한들, 장용한 병사들과 백성들이 다친다면 그것이 무슨 이득이겠는가?”
“소인이 어리석어 헛말을 하였나이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타이르자 황보간도 즉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심정은 이해하기에 나도 그 이상 따지지 않았다. 호피가 비싸니 저렇게 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이번 사냥이 백성을 구제(救濟)하기 위한 빌미니 나는 그것을 입 밖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다음 산은 어디라 하였지?”
“봉황산이옵니다.”
“봉황산이면 서경성 바로 지척에 있는 산이 아닌가? 거기에도 범이 있었단 말이더냐?”
#작가의 말
1. 절도사(節度使)로 하여금 군사(軍士)나 향리(鄕吏) 그리고 역자(驛子)와 공ㆍ사천(公私賤)을 물론하고 자원(自願)하는 것을 들어주어 착호인(捉虎人)을 뽑아 정하되, 주(州)와 부(府)는 50인, 군(郡)은 30인, 현(縣)은 20인으로 액수(額數)를 삼게 하고, 만약에 자원하는 사람이 없으면, 여력(膂力)이 있고, 장용(壯勇)한 사람을 택해서 정하고, 원액(元額) 가운데서 혹 사고가 있게 되면, 또한 자원하는 것을 들어주어 충원하게 하고, 만약에 범이 출현할 것 같으면, 수령(守令)이 곧 착호인을 징집해 이를 포획(捕獲)하게 하소서.
1. 착호인 가운데서 군사이면, 그 잡은 범의 대(大)ㆍ중(中)ㆍ소(小)와 선전창(先箭槍)과 차전창(次箭槍)을 분간(分揀)해서, 절도사로 하여금 입안(立案)해주어 당번(當番)의 계사(計仕) 때에 녹용(錄用)하게 하고, 향리와 천인은 《대전(大典)》에 의하여 시행하게 하소서.
1. 지난 경오년의 수교(受敎)에 ‘잡은 범의 다섯 마리 중에서 모두 선전ㆍ선창(先箭先槍)한 자는 1등을 삼아 승품(陞品)시키고, 선전ㆍ선창이 세 마리이고, 이전ㆍ이창(二箭二槍)이 두 마리인 자는 2등을 삼아 초자(超資)하고, 선전ㆍ선창이 한두 마리이고, 이전ㆍ이창이 서너 마리인 자는 3등을 삼아 가자(加資)한다.’고 하였으니, 이제 이 예(例)에 의하여 상직(賞職)을 주되, 다만 품계(品階)를 올리는 것은 두 자급(資級)으로 고쳐 올리고, 자궁(資窮)인 자는 준직(准職)하여 서용(敍用)하게 하소서.
– 성종 3년(1472년) 3월 20일中
*이번 화 나온 황주 황보씨의 황보간은 후삼국시기 유명호족인 황보제공의 후손이란 설정으로 작중 창작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