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62장 테무케의 마지막 도전(4)
“즉, 몽고의 칸이 자리를 비우고, 칸의 형이자 요직을 앉은 합찰태의 죽음, 여기에 더해 칸의 숙부인 노왕 와적흔이 아조를 치는 지금만이 벌일 수 있는 행동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합찰태와 와적흔은 몽고의 양팔(兩腕)이요. 그 둘을 잃게 된다면 몽고 조정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오?”
“그러나 위험한 일입니다. 칸의 숙부를 처리하고 그 본진을 파괴한다면 그 후 돌아올 칸의 보복은 절대 작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서 선공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노왕 일파가 될 것이오. 심지어 몽고 조정에선 절대 허락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왕이 칠 것이니 전란 중 노왕이 전사한다더라도 따질 명분이 없소. 또한 합찰태가 죽어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아조가 노왕의 공격에 반격하여 그 본진을 친다 한들 저들은 강하게 보복할 처지가 못 되오. 무엇보다 갈라도가 아조에 돌아온 것은 구육 황자와 몽고 칸이 그 노왕을 견제코자 준 것이니 아조가 친 것에는 더욱 참작의 여지가 있소이다.”
“…하오나.”
이 전쟁에서 최춘명과 박서가 우려하고 반대하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이 부분은 몽골 제국 내 차카타이와 테무케 옷치긴의 현 입지와 상황을 모르는 박서와 최춘명으로서는 무모하다 싶은 도박으로 여겨, 선택할 수 없는 작전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말해야겠다.
“최 장군.”
“예. 전하.”
“노왕을 죽이든 죽이지 아니하던 몽고는 반드시 아조를 칠 것이오. 그것만큼은 과인도 절대적으로 단언할 수 있소.”
“…….”
그 말에 최춘명은 침묵하더니 결국 말을 전하겠다며 물러났다.
‘저들이 결코 나보다 전략이나 군재가 떨어지는 이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와 이렇게 판단이 갈렸다는 것은 순전히 내가 저들보다 몽골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정보가 이토록 큰 위력을 발휘하는 법이다. 그러니 나는 이 이점을 최대한 살려 몽골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만든 사설 정보조직 ‘천지사(天知司)’는 아직 국경 밖에 정보들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고, 국내의 정보도 강화도나 일부 도시, 포구 등을 제외하면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적다.
조금 더 갈고 닦아야 한다. 하지만 최춘명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것으로 계획 실행에 앞서 처리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래서 즉시 서찰을 이규보와 최종준에게 보내고는 김방경과 유갑수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얼마 뒤 내 명에 따라 정안연과 유갑수는 견룡군 10명과 함께 심도로 건너간 후 전격적으로 수문하시중 박서와 문하시중 최종준과 연계하여 전쟁의 반대하는 이들을 불러모아 설득시켰다.
명목상 납치나 구금이 아니라 태자인 내가 국무로 고생을 하는 조정 대신들을 위로하고자 사냥 중 잡은 사슴 고기(염장 고기)를 내리니 부디 모두 보신하라는 이유였다.
실제 내린 고기들을 그 자리에 구워서 그들에게 술과 찬과 함께 먹였으니 틀린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동석하지는 않았으나 연회를 베푼 것으로도 보일 것이다.
단지, 고기를 호송한다는 명목으로 내린 견룡군 10명이 주변을 에워싸인 상태에서 염장 고기가 계속 구워지는 동안 정안연이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서찰을 읽는데 고기 맛을 제대로 느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들 시점에선 나의 이런 행동이 까불면 죽이겠다는 의도로 오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겁박하려고 그런 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다.
문하시중과 수문하시중. 각자 문과 무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만든 자리이고 서찰의 내용도 걱정하는 바는 알겠으나 내가 하는 의도는 전쟁을 확전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도리어 이러한 상태에서 왜곡하여 불안을 야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물론, 계사지주 당시 궁궐에 출석하여 생사부를 든 정안연의 말과 손짓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직접 본 이들이라면 더욱 긴장하고 서찰의 내용이 숙청 의도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나 적어도 내가 없는 동안 격하게 반동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돌아온 정안연의 보고에 의하면 박서가 이런 짓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 * *
왕검의 서찰이 전달되고 고기를 다 먹으면서 자리가 파하게 되자 신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떠났다. 그러나 그들이 다 떠난 자리에 박서만은 남아 심기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정안연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께서 우국충정(憂國衷情) 어리신 마음으로 대계를 모색하신 것은 알겠네. 그러나 저들은 조정의 신료들로 나라를 이끌 동량(棟梁 동량지재의 준말)들이네. 그런 이들에게 창칼을 든 병졸들을 주변에 두어 호위인지 겁박인지 모를 형태를 취하다니…. 최소한의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실례했습니다. 전하의 뜻을 오해하지 않고 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고려의 신료들이 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그저 다디단 교언만을 일삼고,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사태만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고 계신다고 할 셈인가?”
“당연히 아닙니다. 권신을 타파하고, 외적을 격퇴하여 아조를 지킨 이가 다름 아닌 태자 전하이신데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옵니까?”
둘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견룡군들이 다가갔으나 박서는 의연함을 잃지 않은 채 더욱 준열하게 꾸짖었다.
“그렇다면 태도와 행동에 대해 주의하게. 지금 그대의 행동은 나라를 바로 잡으신 태자의 공적들을 권신이 국정을 농단할 준비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이후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네!”
호랑이의 울음 같은 호통에 견룡군들이 되려 긴장과 함께 놀라며 경계했지만 먼저 고개를 숙인 것은 정안연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권신이 신하의 참된 진언을 막고, 겁박하여 교언만이 일삼는 조정은 전하께서도 가장 경계하던 사태. 이번에는 전쟁을 앞두어 이렇게 되었으나 이후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암. 그랬으면 좋겠네.”
이 일을 정안연에게 보고 받은 왕검은 화를 내기는커녕 씨익 웃으며 과연 충장답다며 기뻐했다.
* * *
이 무렵, 갈라도의 연길에는 완안자연의 군대가 소집되어 있었고, 그 이남 남갈라전에는 아부한 두문과 이안사의 군대가 임전 태세를 갖추고 대기해 있었다.
대규모의 병력들이 소집하며 모이게 되자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졌고, 그 입소문은 사람들이 모이는 각장에도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각장에는 고려의 동태를 파악하고자 상시 옷치긴 왕가의 세작들이 심어져 있었고, 그들은 이 소문을 듣는 즉시 보고하기 위해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입소문이 흘러갈 것과 세작들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배치하고 있던 완안자연, 용강상단, 이안사 휘하의 경비들에 의해 세작들은 체포되었다. 하지만 모두 잡지는 못했고 용케 도망친 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큰 의미는 없다. 고려가 대비할 것이라고는 테무케도 일찌감치 짐작하고 있었던지라 세작들의 보고는 짐작을 확인을 받은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역시 갈라전에 병력을 집중하여 전쟁을 대비하고 있구나. 영악한 애송이 놈.”
“고려가 우리가 공격할 것을 파악했다면 이대로 공세를 취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옵니까?”
“멍청한 놈. 고려가 우리를 칠 것을 파악할 것을 짐작할 것을 알고 전쟁을 준비했는데 저들이 아는 게 무슨 문제냐! 갈라전의 동태를 주시하고 저들이 군대를 이끌고 성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관망하도록 해.”
그리고 왕검 또한 테무케가 각장에 세작을 보내 이쪽의 행동을 주시하려 들 것을 짐작했던 바였다. 그래서 세작들을 놓쳤다는 소식에도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놓친 이들에게 큰 벌은 내리지 말고 이후 이번의 실수를 만회하도록 기회를 주라는 명령을 내렸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송구하옵니다. 전부 잡지 못하고 놓쳤으니 노왕은 갈라전이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군대가 움직였다는 것을 간파했을 것입니다.”
“상관없다. 그 늙은 여우 같은 노물이 정말 몰라서 세작을 넣었겠느냐? 옛적에 우리가 갈라전에 전쟁을 대비하고자 병력을 이동하리 라는 것을 예측하고 세작을 넣었겠지. 세작을 모두 잡았다 한들, 소식이 끊긴 것으로 확신을 했을 테니, 세작을 놓친 이들에게 큰 벌을 주지 말고 이후 공을 세워 만회할 기회를 주도록 하라!”
그렇게 양자 상대의 행동을 파악한 그들이었지만 옷치긴과 고려, 어느 누구도 대놓고 그 행동을 밝힌 뒤 규탄하지 않았다.
규탄하기는커녕 그 시간이 아깝다면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병력을 모으며 전쟁 준비에 박차를 계속 가해갔다. 그리고….
* * *
드디어 그날이 왔다.
이번 옷치긴의 대군은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할수 있었다.
유목민 성격이 강하다곤 하나 금과 호라즘, 서요, 서하 등을 잡은 뒤로 다소 정주 국가의 성격도 띠게 된 예케 몽골 울루스 내에서 여전히 유목민 성격이 훨씬 강했던 옷치긴 왕가로서는 희귀하게도 보병들도 많았으니 말이다.
그들 대다수는 오고타이칸에게 분봉 받은 만리장성 이남 봉토에서 만주까지 끌려온 한인(漢人)들이었다.
그러한 대규모의 병력이 만주로 가는 것을 고려가 눈치채지 못할 리 만무했고, 실제 눈치챘으나 따로 건들지 않았다.
그것을 지적하거나 규탄한다 한들 의미가 없음을 고려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탄을 하기보다는 고려도 그사이에 전국의 병력을 소집하며 병사들을 불리는 데 집중했으니 그야말로 피장파장이라 할 수 있었다.
여튼 옷치긴 왕가는 결과적으로 몽골 조정도, 고려도, 동요국의 방해도 없이 한인들을 무사히 끌어모았고 그야말로 유례없는 대병력을 소집하게 된 것이다.
“너희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고려 태자는 수년 전 마지막에 와서야 2천 명에 불과한 잡졸들을 군사랍시고 들고 참전하여 갈라전을 낼름 삼켜 먹었다. 그 이후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전사들은 얼마나 큰 수모를 당했는지 말이다!
그리고 예케 몽골 울루스의 하늘 같은 은혜를 받고도 의심스러운 작태를 반복하는 가증스러운 고려 놈들에 우리 모두가 불쾌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것도 전부 오늘까지다.
오늘 우리는 저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고려를 잡고 그 죄를 낱낱이 열거하여 벌을 내릴지니, 너희들은 푸른 늑대와 하얀 사슴의 후예로서 그 용맹을 절제 없이 드러내라!”
테무케의 말에 전사들은 열광하였다. 전사들이 열광하자 그에 호응하듯 병사들도 따라 함성을 내질렀고, 그 일대 전체에 늑대의 하울링 같은 함성이 깔렸다.
그러한 병사들의 함성과 기세를 보며 테무케는 승리를 확신한 듯 미소를 지으며 출진을 시작했다.
* * *
아직 침범했다는 보고는 듣지 않았지만 갈라전으로 가기 위해 동북면으로 군대를 이끌고 가고 있다.
시기상 슬슬 전쟁이 시작될 것이고, 어차피 갈라전 밖으로만 먼저 안 나가면 그만이라 미리 가서 선점하는 것도 큰 문제는 없다.
참고로 지금부터 일어날 전쟁은 일반 백성들은 몰라도 나를 비롯한 조정 신료들은 몽골의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으로는 봐도 ‘여몽 전쟁’이라고는 보지 않고 있다.
옷치긴 왕가가 몽골 제국의 일부이긴 하나, 전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테무케라는 사실을 조정 신료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나는 지난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도 여몽 전쟁으로 계산하진 않는다. 애당초 몽골 제국으로 취급했다면 지난 전쟁에서도 옷치긴 왕가의 사자가 왔을 때도 돌려보내지 않았고, 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옷치긴 왕가의 전쟁이 몽골 제국과의 전쟁은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전쟁하러 가는 장졸들의 표정에는 저마다 긴장감이 서려 있다. 어찌 되었든 상대는 몽골 제국의 일각인 옷치긴 왕가.
하물며 그들 본진까지 치고 나가는 것이니 긴장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사기가 바닥이 아니고, 전의도 있는 것을 보아하니 7만 대군을 편성한 것은 역시 잘한 일인 것 같다.
‘테무케 당신을 끝낼 수 있다면 7만 정도 동원하는 지출 정도야 감내하리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지긋지긋한 인연을 끝내봅시다!’
보기(步騎) 7만. 그야말로 예종 이후 처음으로 운용해보는 대군의 원정이다. 지난번 옷치긴 왕가의 동원력을 생각한다면 수적 우위를 얻고 확실히 끝내려면 최소한 7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결과 만들었지만 그래도 방심할 상대는 아니다.
잘못하면 죽는 건 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진짜 각오하자. 그렇게 비장한 각오를 하며 말을 몰고 있을 때 말 탄 전령이 다급하게 나를 찾았다.
“전하! 전하 어디 계시옵니까! 급한 전갈이 옵니다! 급한 전갈이…!!”
“나는 여기 있다! 무슨 일이냐?!”
헐레벌떡 달려오는 전령의 모습에 나는 속으로 ‘드디어 옷치긴 군이 갈라전으로 쳐들어왔구나.’라고 생각하며 다그쳤고, 나를 발견한 전령은 다급하게 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그런 전령의 보고를 모두 들은 나는….
즉시 갈라전으로 향하던 말머리를 돌렸다.
#작가의 말
2부에서 있던 3차 여몽 전쟁(동요국 전쟁)이 작중 세계에선 분수령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