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56
356화
62장 테무케의 마지막 도전(5)
이번 2차 옷치긴 전쟁에 대해선 처음부터 막대한 지출과 후유증도 각오하며 계획했다.
유구 개혁과 경략에 들어갔던 비용에 이어, 확실한 승리를 위해 소집한 7만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군.
그리고 이만한 비용을 들인 만큼 개전이 어떻게 대응하고 움직일지 전략과 전술들도 기라성 같은 장수들과 참모와 함께 머리를 맞대며 준비했다.
그런 만큼 더더욱 전쟁을 강행해야 하는 처지이고, 실제 테무케의 명예 회복과 갈라전 욕망을 생각하며 피할 수도 없으니 빨리 끝내야 하는 전쟁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진군을 멈췄다. 힘들게 모은 병력과 과감한 결정과 열심히 준비한 전략들을 포기하며 갈라전으로 향하는 진군을 포기했다.
“전하. 무슨 일이옵니까?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라니요?”
동행하던 김방경이 놀란 얼굴로 나를 찾아와 물었다.
이번 원정은 자그마치 7만 명을 소집하고 나가는 원정이다. 그렇게 준비하고 나가는 원정을 위해 들인 일들과 계획이 진군을 포기하면서 전부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보다 진군을 할 것이라 당부했던 내가 진군을 멈췄으니 안 놀라면 그게 이상한 거지.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평지로 간다. 거기에 진영을 설치하고 지금의 일을 설명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나 지금 가지 않는다면 이후 노왕의 군대에 대한 대응이 더 늦어지지 않겠사옵니까?”
“노왕의 군대가 침략하는 문제라면 괜찮다. 더 이상 걱정할 것 없다.”
“예?”
당황하는 김방경을 뒤로 하며 나는 곧바로 갈라전 인근에 있을 테무케에게 서찰을 보냈다.
서찰에는 이번에 전쟁이 일어나려 했다는 일 자체가 없었다는 것처럼 이웃의 연장자에게 보내는 예의 바른 글로 적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이 서찰을 받은 테무케는 분명 나처럼 군대를 돌리고, 그도 이번에 일어날 뻔한 문제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려고 할 것이다.
테무케도, 나도 모두 만반의 준비한 계획이 흐트러진 것이다. 분명 쓸데없이 날린 군비를 생각하면 복구하는 데 문제가 생길 것임에도 나는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전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왕이 치지 않을 것이라니요? 노왕의 군대는 반드시 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노왕은 이제 아조를 치지 않을 것이다. 치지 못한다!”
“어째서 말입니까?”
그리 묻는 김방경에게 나는 전령이 요동에서 가져온 내용을 알려주었다.
“몽고의 칸이 죽었다!”
* * *
카라콜룸.
“어, 어떠냐? 테무케 어른은 이미 고려와 전쟁 중이시던 것이 맞는다고 하느냐?”
“아직 소식이 없사옵니다. 다만, 고려로 출정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미 전쟁이 벌어졌을….”
“출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 그러는 것이 아니더냐! 어서 나가 다시 알아보거라!”
“예, 옛!”
호통에 시종이 허겁지겁 나가는 것을 보고도 퇴레게네는 불안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차카타이의 죽음 이후 생길 옷치긴 왕가와의 불안을 소르칵타니의 제안에 따라 무사히 대처했다고 생각했다.
번국인 고려는 점차 강해지고 있고, 테무케 옷치긴의 신경은 고려로 돌리는 것으로 할 수 있는 한도에선 최선의 대응이라고 퇴레게네도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서쪽에서 날아온 내용에 의해 미칠 것만 같았다.
“대칸께서 돌아가시다니 믿기지 않는다. 어째서. 어째서 돌아가셨단 말이냐!”
“고정하십시오. 대카툰.”
“파티마. 진정하라니. 요전에는 차카타이 공이 세상을 떴는데 이제는 대칸이 떠나셨다. 팔 하나가 사라진 것도 큰일인데 머리가 사라졌단 말이다. 이 소식을 옷치긴의 그 늙은이가 들으면 어찌할지 감이 안 서는구나. 그나마 믿고 견제할 고려도 우리가 먼저 버려 버렸으니….”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근래 들어 입지가 불안하다곤 하나 여전히 영향력을 떨치고 있고 황실 최고 어른이기도 한 테무케다.
그가 준동한다면 막을 대칸과 서방 왕가의 차카타이가 모두 사라졌고, 정예 병력들도 모두 서쪽으로 가 비어 있는 지금, 퇴레게네 카툰을 비롯한 오르두의 여인들은 그야말로 무리에서 떨어진 새끼 양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이 제일로 바라는 전개는 옷치긴의 군대가 고려의 국경을 넘어 전쟁이 시작은 하였으나 때맞춰 사자가 도착하여 중재를 하며 고려에 은혜를 팔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옷치긴의 군대가 고려와 이미 전쟁을 하고 있고, 이번에 보낸 사자가 무사히 때맞춰 도착하여 중재에 들어가 고려의 오해(오해 아니다)를 풀어준다면 고려도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신들 처지가 궁해지니 그제야 손을 벌리는 행위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았지만 지금 그녀‘들’에게 고려는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카툰! 큰일 났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전개는 퇴레게네의 본인조차 일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바였고, 현실은 뜻대로 흘러가는 일은 극히 적었다.
“테, 테무케 어르신의 군대가 지금….”
“!!!”
시종의 말에 퇴레게네 카툰은 공포에 질려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바라지 않았던 최악의 사태였기 때문이다.
* * *
“테무케 님. 정말 이래도 괜찮겠습니까? 본래라면 이 병력은 고려를 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주스쿠. 너도 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칸이 죽은 이상 황실의 어른으로서 대칸의 유궁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 고려의 소문 따위는 칸의 죽음에 비하면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쓸데없이 이곳에서 발목 잡혀봤자 좋을 것은 없다.”
칸이 죽은 것은 테무케로서도 예상외의 사태였고, 그 시점에서 고려와의 전쟁은 테무케에게 있어서도 크게 고민하게 될 문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좋게 말하면 칸의 죽음으로 혼란이 생기니 고려를 더욱 병탄할 기회라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이제 곧 있을 쿠릴타이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측근에게 전선을 맡기고 돌아가는 수가 있겠으나 흑태자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 옷치긴과 지부겐이 잘 알았다.
그렇다고 쿠릴타이에 참석하지 않고 고려의 전선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웠다.
안 그래도 흔들리는 입지가 쿠릴타이 미참석에 그 이유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충실한 번국인 고려를 치기 위해서라면 그때야말로 몽골 내의 옷치긴 왕가는 주치와 같은 취급을 받을 우려가 생긴 것이다.
그런 찰나에 고려에서 전쟁이 일어날 뻔한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모른 척하며 대칸의 명복을 빌며, 지금 일어날 뻔한 일들을 넘기겠다고 뜻을 밝혀준 것이다.
이 전령을 받는 순간 테무케에게는 아직 대칸의 임종 소식을 듣지 못해 이미 고려와 전쟁을 벌였다는 변명도 불가능해졌다.
쿠릴타이와 입지를 포기하더라도 고려와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려의 뜻에 따라 화평을 받고 전쟁을 미룰 것인가. 여기 와서 테무케가 고민할 것은 없었다.
“군을 돌려라. 우선 지금 당장 카라콜룸으로 간다! 칸의 유궁留宮에 가장 먼저 당도하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테무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쿠릴타이 또한 카라콜룸에서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차카타이가 죽고, 제왕(諸王)들과 전력들도 서쪽으로 다 빠진 지금, 예케 몽골 울루스 내에 나를 막을 자는 없다. 이는 내가 칸의 유궁을 차지하며 카툰들을 설득하여 쿠릴타이를 개최할 경우 잘하면 내가….’
여기까지 생각한 테무케는 저도 모르게 생각을 멈추고 침을 삼켰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참람(僭濫)스러운 야욕이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야욕이었다. 자신의 가슴 속에서 끌어오르는 야심이 그 야욕을 잊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은 물론 세력 전부가 날아갈지도 모를 문제임에도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찰나 날아온 고려의 서찰은 테무케는 야욕에 결정타를 가했고, 결국 테무케는 도전하기로 했다. ‘생애 마지막 도전’을 말이다.
‘나는, 아니 내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대칸이 된다!’
* * *
“과연 그 말씀대로라면 노왕이 고려를 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을 이끌고 수도로 갈지는….”
강륜이 그리 말했으나 왕검은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노왕은 반드시 수도로 갈 것이오. 이제 노왕에게는 그것 말고는 남은 길이 없기 때문이오.”
왕검은 알고 있었다. 테무케는 이미 몽골 내의 반대와 눈살을 찌푸리는 시선들을 무릅쓰고 전쟁을 준비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황형(차카타이)에 이어 연달아 칸마저 죽어 나라가 어수선해질 상황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옷치긴 왕가나, 옷치긴 왕가를 지지하는 이들에게나, 그리고 몽골 제국, 모두에게도 좋을 게 없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쿠릴타이 개최도 시급한 상황에서 만일 쿠릴타이에 참가하지 않고 억지로 전쟁을 지속하려고 든다면, 현재 옷치긴 왕가를 따르는 친 옷치긴파들 사이에서도 반감이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현 상황에서 고려와 전쟁을 하는 것은 안 그래도 어수선한 제국의 변경마저 무너뜨리려고 든다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피해와 입지를 보존하기 위해선 옷치긴 왕가의 본진으로 돌아간 뒤 본인만 쿠릴타이에 소집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껏 모은 대군을 해산하고 그대로 본진에 돌아가는 선택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테무케 본인이 그걸 납득하지 못한다.’
테무케는 이미 고령으로 이제 이후를 기약하기엔 수명에 자신이 없을 시기였고, 무엇보다 대칸이 죽기 전 어느 정도 권리를 위임받은 카툰들이 자신의 지척에 있는 것이다.
수도를 제압하고 쿠릴타이를 개최한다면 대칸의 자리도 가능성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두고 테무케가 얌전히 죽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보건대 노왕은 지금 보위(寶位)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오.”
웅성이는 장내의 반응을 무시하며 왕검은 이어 말했다.
“현 상황에서 노왕은 전쟁을 위해 모은 병력들을 서찰 하나로 무산하여 돌려보내기보다는 칸의 유궁을 지키겠다며 끌고 갈 것이 분명하오. 아조와의 문제만 해결하고 보다 칸에 오를 수 있는 준비를 하려면 병력이 많은 것이 유리할 테니 말이오.”
“…실제 이미 며칠이 지났으나 국경 어느 곳에서도 노왕의 군대가 침범하였다는 소식이 없으니 아무래도 전하의 말씀대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조금 맥이 빠지는군요.”
“강 장군. 맥이 빠진다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닐세. 유 중랑장. 단지, 전쟁을 할 것이라 잔뜩 긴장하였는데 전쟁을 하지 않고 넘어가게 된 것이 다행이면서도 맥이 빠진다는 말이네.”
“하지만 그것조차 천운이지요. 예. 아조에 천운이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 위험한 화난을 이렇게 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허허허.”
“그럼 이대로 병사들은 돌려보내는 것이 되겠군요. 장성을 넘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려. 하하하.”
졸지에 북방까지 끌려갈 뻔했던 장수들은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옷치긴 왕가와의 전쟁을 이런 얼토당토않은 우연으로 피했다는 사실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전쟁을 회피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하지만 일부, 왕검을 아는 측근들은 아직 안도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주군을 슬쩍 살펴봤고, 아니나 다를까.
우려대로 그 화기애애한 회의장에 찬물을 끼얹듯 태자의 말이 차갑게 울려 퍼졌다.
“제장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이대로 해산이라니?”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