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63장 西邊而蕭索 北塞尙昏濛(3부 완결)
“…카툰.”
게르 밖에 벌어진 사태에 오르드의 많은 여인들이 막 태어난 망아지인 양 대카툰 퇴레게네만을 보며 떨었다.
현모라는 소르칵타니도 식은땀을 흘리며 침묵하였고, 평소 기가 세다던 오굴 카미시조차 애써 분노를 가장하며 공포를 이겨내려는 것이 전부였다.
오직 퇴레게네만이 눈을 감은 채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게르 안에서도 느껴지는 진동과 밖에서 들려오는 말굽 소리가 점점 커지자 퇴레게네는 눈을 뜨고 게르 밖으로 나갔다.
“괜찮다. 저들은 감히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평정심을 찾았는지 그녀는 일어나 게르 밖으로 향했다. 게르 밖에는 저 멀리서 수많은 대군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 선두로 있는 것은 새하얀 백발과 수염을 한 노장. 테무케 옷치긴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게르 안의 그녀들이 공포에 질린 동시에 현 몽골 제국 동방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광경이기도 하였다.
비록 황실의 어른이라곤 하나 수많은 대군이 나라의 수도, 그것도 선대 칸(오고타이칸)의 과부들이 있는 카라콜룸에 오고 있는 동안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 상황을 말이다.
이윽고 수많은 대군이 게르 앞까지 오고 테무케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퇴레게네는 떨리는 속내를 감추고 마중을 나간 후 옷치긴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자부(子婦 아들의 처. 며느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신 것입니까?”
퇴레네게는 칭기즈칸의 자식인 오고타이칸의 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테무케의 자식의 처라고 한 것이 이상할 수도 있으나, 몽골은 세대마다 부(父), 자(子), 손(孫)으로 불렀고, 옷치긴 세대에선 그것은 일상이었다.
옷치긴에게 퇴레네게는 조카인 오고타이의 처, 즉 ‘자식의 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호칭은 몽골 제국이 커지고 구분을 더욱 획일화하면서 사라져 가는 호칭들이었는데, 지금 퇴레게네는 구태여 사라져가는 풍습을 인용하여 자신을 며느리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세대의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칸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다음 제위에 오를 자는 다음 세대가 되는 것이지, ‘조부(祖父)’에 해당하는 2세대 전의 인간이 칸의 자리를 노려선 안 되니 자신의 연령과 입장을 잘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본래 원 역사에서도 테무케는 오고타이칸이 죽자 군대를 이끌고 왔고, 이에 퇴레게네 또한 지금과 같이 말을 하였고, 이를 들은 테무케는 결국 그대로 군을 돌려 본영인 부유르 지방으로 돌아가며 옷치긴의 야망을 포기하였다. 그러나….
“지금 칸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서정으로 칸은 물론 여러 젊은 제왕들과 왕자들도 자리를 비웠으니 일족의 최고 어른인 내가 칸의 유궁과 카툰들을 지키러 나선 것이오. 그런데 카툰은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고려에서 불어온 역사의 개변으로 인해 몽골도 원 역사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것이 있었다. 원 역사보다 서정이 이르게 시작되었고, 그 서정에는 오고타이칸이 친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몽골 제국은 원 역사보다 더욱 빠른 서정을 시작했고, 활약을 하지만 중동을 치지 않다 보니 더욱 보급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그 서정을 위한 물자 보급을 담당하였던 것이 서방 왕가의 책임자에 해당하던 차카타이였다.
차카타이는 원 역사보다 더 혹사를 하며 동생의 뒤를 보조했고 그 결과 원 역사보다 이르게 죽은 것이다.
하지만 차카타이의 죽음 이전에 아바스 왕조와의 무역이 성사가 되며 서정군에는 더욱 여유가 생겼고, 칸의 친정으로 통일된 지휘 계통 앞에서 서정군의 구유크는 원 역사와 달리 도중에 돌아오는 일도 없었다.
원 역사에서 바투와 분쟁으로 돌아왔던 구유크는 후일 바투의 서정이 지속되던 도중 다시 서쪽으로 가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오고타이칸의 죽음을 듣고 군대를 돌려 카라콜룸으로 귀환하였다.
이 귀환 소식이 퇴레게네가 아들의 처라는 말로 테무케를 설득하는 그 순간 때마침 전해지며. 테무케는 구유크의 군대와 맞서 싸울 위험이 생김은 물론, 일족의 어른으로서 테무케는 궁을 지킨다는 명분마저 잃으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구유크가 돌아오지 않았고, 서정에는 주력들이 참가하였으며, 제국 내 유일한 견제인 서방의 차카타이마저 과로사로 죽었으니 구유크의 군대 소식은 없을뿐더러, 테무케 또한 퇴레게네의 말만 듣고 순순히 넘어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무사합니다. 그러니 아버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허. 차카타이 그 아이마저 세상을 떠 예케 몽골 울루스가 어지러울지 모르는 이 상황에 어찌 어른인 내가 가만히 있겠소. 카툰은 걱정 말고 이 늙은 아비의 성의를 거절하지 마시오.”
“…….”
퇴레게네를 비롯한 소르칵타니도 이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현 상황의 매우 위험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안 그래도 이전 시찰단 문제와 고려와의 전쟁에서 옷치긴 왕가만 치르게 하여 힘을 빼려는 의도를 간파한 테무케였기에 퇴레게네에 대해 나름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교섭을 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겨 퇴레게네는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선 쿠릴타이… 예케 쿠릴타이를 개최하실 생각입니까?”
쿠릴타이는 칸의 명으로 널리 소집되는 제왕(諸王) 및 유력 부족의 수장, 중신으로 구성된 유목 국가의 최고 정치 회의이자 기관이었는데 그 역할은 크게, 우선 황제(칸) 후보자 선정이나 즉위, 세계 각국으로의 원정 계획 수립, 그리고 법령 제정이었다.
특히, 몽골 황제나 황족들이 울르스(국가)의 방침을 결정하고자 주최하는 쿠릴타이는 ‘예케 쿠릴타이’(Yeke Qurilta 번역하면 대大쿠릴타이)라 불리는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 제일 중요한 회의였다.
즉, 황실의 최고 어른이라는 입장과 자신들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예케 쿠릴타이를 개최하여 정국을 주도할 셈이냐는 질문인 것이다.
“허허허.”
그 질문에 테무케는 무척이나 인자하게 웃었다. 그러나 퇴레게네는 식은땀과 긴장이 멈추지 않았다. 테무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인자하게 웃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 차카타이가 죽은 직후 바로 대칸께 동방의 사태를 고하고 중재를 청했어야 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라, 테무케는 승리의 미소를, 퇴레게네는 패배의 침음성을 삼키며 이제 끝났다고 결론을 내리던 찰나, 전령하나가 헐레벌떡 그들 사이로 오며 카툰에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카툰! 지금 고려에서 전령이 왔습니다.”
“…고려에서?!”
그 말은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었다. 퇴레게네는 놀라는 한편, 재빨리 옷치긴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고려의 지척까지 군대를 끌고 간 테무케가 순순히 군대를 돌릴 수 있던 것에는 고려로 넘어가기 전 칸의 부고를 듣고, 온 것일지 모르나 동시에 고려와도 나름의 합의를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회한 늙은이니 급하다곤 하나 그 정도 대응은 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자면 이 상황은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고려를 통해 무엇을 압박하려는 셈인가? 아니, 여기서 굳이 고려를 이용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이미 이 노망난 옷치긴의 손아귀에 떨어진 지금, 고려를 이용하여 빚을 지는 것은 늙은이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이라도 의도를 파악하고자 살핀 순간, 그녀는 테무케 또한 의아함과 놀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직후, 테무케도 자신이 표정을 숨기지 못한 것을 깨닫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미 늦었고, 그녀는 깨달았다.
‘이 사태는 저 늙은이의 의도와 다르구나!’
“시끄럽구나. 무슨 소식이더냐?”
재빨리 되물어 보고의 내용을 물었고, 그 일련의 의도에서 테무케는 찜찜하면서도 끼어들 명분도 없어 가만히 경청하여야 했는데 전령이 내놓은 말은 그곳에 있는 모두를 당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려에서 고려 태자가 말하기를, ‘대칸의 승하 소식에 슬픔이 세상을 덮어 변경마저 그 영향이 끼치며, 대국이 혼몽해질 것 같아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만일 허락만 해주신다면 군대를 보내 돕고자 하며, 조의에도 참석하고자 합니다.’라며 군대를 압록하(강)에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
퇴레게네도, 테무케도 그 말의 진의와 애매한 표현에서 나오는 불안한 가정을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둔한 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고려가 지금 군대를 대국 내에 보내려는 것에서 고려 태자가 몽골의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는 것도 분명했다.
“카툰! 이것을 허락하자는 말은 안 할 것이라 믿겠소. 고려 태자가 비록 공을 세웠다곤 하나,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일원이 아닐진대 그 군대를 어찌 부른단 말이오.”
테무케의 말대로 퇴레게네 또한 평소라면 생각할 가치조차 없는 제안이었다. 어찌 타국의 군대를 부른단 말인가?
평상시라면 설마 속국의 왕자 따위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예케 쿠릴타이’에 참가하고 싶다는 말이라도 하는 것이냐고 역정을 낼 문제였다. 하지만….
“허락한다고 전하라.”
“대카툰!”
“진정하시지요. 아버님. 고려 태자는 타국의 사람이라곤 하나, 우리 구유크의 자식과 같은 자입니다. 연을 맺은 이후에는 꼬박꼬박 인사와 선물을 진상하니, 저에게 있어선 손자요, 카미시와 소르칵타니에게 있어선 자식과 같은 이입니다. 안다를 맺은 이는 상대의 가문에서도 일족에 준하게 취급하는 것이 우리 몽골이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고려의 태자 또한 일반 속국의 왕자와는 다소 특별하게 취급하여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의 고려군을 들이면 옷치긴을 견제할 수 있었다. 거기다 쿠릴타이에 참석하겠다고 명확하게 표현한 것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조의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지. 이마저도 본인이 직접 오겠다고 한 것도 아니니, 이후 쿠릴타이에는 참석이 불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 문제였다.
“그렇다고 하나!”
테무케도 그러한 퇴레게네의 뜻을 파악하곤 그래도 막아보려 했으나 퇴레게네는 그것도 간파하고 되물었다.
“예. 그러나 타국은 타국. 함부로 군대를 수도에 들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선 고려의 군대는, 카라콜룸이 아닌 요동(동요국)에 주둔하는 것을 허락하고자 합니다. 요동에 고려군이 있다면 만자(남송)들이 준동할 경우 제때 움직여 대처하지 않겠습니까?”
요동은 일단 동요국의 땅이니 예케 몽골 울루스의 내부에 완전히 들어온 것은 아니었으며, 요동은 중원과 몽골, 만주의 가교이자 요충지이다.
따라서 그곳에 고려군이 있다면 남송이 칸의 부고를 듣고 수년 전처럼 진격하더라도 고려가 막아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물론 그것은 엉터리 주장이었다. 회수 이남에 있는 남송이 아무리 재빨리 진격한다 한들, 몽골까지 신속히 올 수는 없었다.
요동은 중원과 몽골, 만주의 가교란 뜻은 반대로 말하면 카라콜룸과 만주에도 군대를 보낼 수 있다는 뜻으로 명백히 옷치긴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으음.”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옷치긴은 그 이상 반대하지는 않았다.
요동에 배치되는 것이라면 고려가 신경은 쓰이긴 하나 개입하기엔 거리가 멀고, 고려가 선제공격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결국 수도 내에서 주도권은 자신이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조건에서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따져봤자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 상황을 보면 이후 어떤 흐름이냐에 따라 고려를 무작정 지워 버리기보다는 설득하는 것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테무케는 파악했기 때문이다.
‘고려의 애송이. 전령까지 보내 나를 보내놓고 여기서 이러다니… 뭐 좋다. 애송이 나름 오기이자 자신도 이득을 보겠다는 심산이겠지. 오냐. 살코기 하나 정도는 선물로 줄 테니, 이제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 * *
몽골제국의 동방에서 늙은 여우 테무케가 서서히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한편, 수만 리 너머의 신성로마제국 변경에서는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찍이 ‘신의 철퇴’라고 하던 훈족 아틸라의 대습격이 이러했을까? 신성로마제국 변경의 백성들과 병사들은 그야말로 지옥도를 체감하며 절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여도 그 지옥을 재현하고 있는 악귀나찰 같은 몽골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그런 비명을 들으니 더욱 힘이 샘솟는다는 듯 칼을 휘두르고 말을 채찍질하는 팔의 힘은 더욱 거세져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다.
“꺄아아악! 엄마!”
“계집과 아이들 외에 바퀴보다 큰 남성들은 모조리 다 죽이라는 엄명이다!”
“어째서! 어째서 이러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이라면 이럴수 없다. 저놈들은 진정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
“감히 예케 몽골 올루스의 사신과 황자를 건들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단 말이냐!”
“오오! 신이시여! 거룩한 아버지시여!! 부디 이 가녀린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소ㅅ….”
말도 죽고 몸마저 넝마가 되어 더 이상 싸울 수 없게 된 기사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신을 부르짖으며 구원을 빌었으나 그런 기사의 머리 위로 내려친 것은 신의 가호가 아닌 몽골기병의 곡도였다.
그날 그곳에 그들을 구원해 줄 신은 없었다.
-了
#작가의 말
*이번 화 제목인 西邊而蕭索(서변이소삭) 北塞尙昏濛(북채상혼몽)은 고려시대 진화가 적은 시 「봉사입금(奉使入金)」의 1, 2행에서 한 글자만 바꿔 올린 겁니다. 서쪽 변경은 죽어가고 있고, 북쪽은 어지럽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