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88
388화
8장 해동의 패자(霸者)(2)
사숭지와 정청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사신이 고려로 향했을 무렵, 다른 신료들처럼 중 고려가 요청을 받아줄 것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바다 건너에 있는 이적들이 뭐가 아쉬워서 공격하지도 못할 나라의 설유에 연호를 그만두겠는가?
혹은 검토하겠다고 겉으로는 말하고, 뒤로는 고집하는 방식이면 그나마 온건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상식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탓에 사숭지와 정청지도 일찌감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전제로, 향후 일어날 정전의 상황에서 주도권을 쥐고자 머리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행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끝났다. 고려왕이 연호를 즉시 그만둘 것이라는 답을 공언하는 글과 함께 돌아온 것이다. 이는 그 어떤 신료들도 짐작하지 못한 대이변이었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이번 사태는 분명 기쁜 일이었다. 어리숙한 천자라는 모욕을 받을 뻔한 사태가 단번에 ‘번왕의 충직함을 믿고 확인하여 그것을 입증시켜 준 현명하고 후덕한 성군’으로, 양국의 관계도 보다 든든하게 되었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거고, 배은망덕한 번왕에게 속아 심기가 온후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아직 미진함이 보인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나서려는 충신이라는 전개는 무산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난 일에 계속 연연하지 않았으며, 할 수도 없었다.
곧바로 기쁨에 묻힌 조정에서 배은망덕한 죄인으로 몰릴 사대부 한 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그는 입을 열었다.
바로 고려의 대답으로 졸지에 나라를 위해 나선 충신에서 월권 의혹을 가지게 되어 난처한 입장이 된 시눈새의 처우였다.
“폐하. 고려왕 왕철이 올린 주문(奏文)에는 지난 사행에 정사로 간 죄인 시눈새에 대해 그가 죄가 있음은 사실이나 청하는 것에 악의는 없었고, 본조에 대한 충정도 진실로 보였으니 부디 벌을 낮춰 상국의 충신이 잃는 일까지는 없길 바란다고 적혀 있사옵니다. 어찌하면 되겠사옵니까?”
지난 사행 이후 시눈새는 자택에서 근신하고 있다가 사신이 고려에 갔을 때는 아예 감옥에서 하옥하고 큰 벌만을 기다리는 처지였는데, 의외로 고려에선 그가 언행이 잘못되어 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악의는 없었던 것이라고 변호를 해준 것이다.
“나라의 기쁜 일이 생기면 죄가 가벼운 이들은 방면하는 것이 상례이며, 시눈새가 악의가 없었음은 짐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무척이나 참람하고 전례를 남길 수 없어 이렇게 된 것이니 벌은 내리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로다. 하나, 그 선조가 이룬 공(후주 공제 시종훈의 양위를 말함)이 태산같이 크고, 동평왕(고려왕)의 주청도 있어 그 벌을 낮추어 삭탈관직(削奪官職)이 아닌 파직(罷職)한 후 명주로 유배를 보내도록 하려는데 대신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황제가 제안한 벌에 신하들은 속으로 크게 안도했다.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명부에서도 이름을 지우는 삭탈관직과 달리 파직은 그저 관직에서 물러나게 할 뿐이었고, 유배를 보낸다는 명주도 임안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것은 여차하면 복귀시키겠다는 의사였기 때문이다.
“폐하의 자비 어린 성단(聖斷)에 무얼 말하겠나이까.”
정청지와 사숭지도 그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벌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인 시눈새에게 이 정도의 벌은 천자의 권위를 도용한 것 치고는 무척이나 경벌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고려왕의 무죄에 이어 시눈새의 처우도 끝이 나니 다시 문제가 돌아왔다.
* * *
조윤은 웃었다. 자신은 지금 즉위한 이후 처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짓는 만승천자(萬乘天子)에 어울리는 웃음을 짓고 있노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고려가 약속을 확실히 지켰구나. 고려에서 먼저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지….’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고려는 제후국의 신분은 유지했을지라도 황제 자신은 입지를 크게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그 자리에선 거절하여 돌려보냈고, 이어 그 상황에서 정청지 대신들의 반응에서 자신을 견제하고자 한다는 것을 눈치챈 황제는 정청지의 뜻에 따라 보내는 척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전에 약속한 연호 폐지였으니 정청지와 사숭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큰 공을 세운 것이리라.
황제는 말하기 앞서 정청지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관록과 연공을 가진 대신답게 겉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잘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쯤 속은 아마 착잡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있을 일은 그를 더욱 착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황제로서 해동의 충직한 번왕(藩王)에게 내릴 상 겸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준비하여 내리는 것을 논의하고자 할 셈이었다.
고려나 몽고 등, 북벌에 관련된 일이라면 여태까지 어지간한 것은 대전에서 바로 내뱉기 전에 정청지와 사숭지 모두 따로 불러 삼자대면으로 의견을 주고받은 후 대전에서 말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은 두 영수가 가진 권위와 입지가 그만큼 황제 홀로 압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황제가 그런 논의나 휴정 없이 바로 언급하려는 것은 그만큼 황제의 입지가 강해진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 *
“불가합니다. 번왕이 겨우 신하 된 도리를 자각하고 따르는데, 어찌 감히 구오지존인 양 천하를 관리하게 하시려는 것이옵니까?”
시눈새의 처벌까지 끝내고, 고려가 바라는 연호의 허가, 정확히는 연호를 대처할 것에 대해 논하고자 황제가 입을 열자 신하들에게선 반대의 의견이 먼저 나왔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없는 법, 원칙적으로 천하는 오직 천자만이 지배하고 통치한다.
그러나 정사로 나간 범종은 이에 대해 단평 2년 동평왕으로 책봉한 사례를 들어 의견을 밝혔다.
“폐하. 천하의 통치하는 것은 오직 천하이나, 천하의 광활함은 천자 홀로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예로부터 드러나 그 옛날 주왕(周王 주나라의 왕. 당시 왕이 곧 황제라서 천자를 의미함)는 믿을 수 있는 신하들을 제후로 봉하며 땅을 내렸습니다.
이를 본받아 본조 또한 서하와 안남국(대월=베트남)의 왕들을 사위(四圍)를 관리하는 서와 남의 평왕(平王)에 책봉하며 서와 남의 문제가 중원에 끼치지 않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고려왕 왕철은 그들과 같은 동평왕으로 책봉 받았으며 그 격과 대우는 서평왕과 남평왕보다 높고, 그만한 자격이 있사옵니다.
하여 황상 폐하께서 지난 단평 2년에 고려왕 왕철에게 해동의 문제를 믿고 맡기고자 동평왕으로 책봉한 것이니 지금 고려왕이 동평왕으로서 의무를 다하고자 청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품성이 곧고 원칙을 준수하는 범종이 고려왕의 청에 동의하는 발언에 신료들을 놀라게 했으나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주자(朱子)의 제자로 바른말 하기를 좋아하는 이부시랑겸중서사인(吏部侍郞兼中書舍人 이부시랑과 중서사인을 겸직) 두범 또한 고려왕의 청에 호응하였으며, 연호를 대처할 것을 마련하려 한다는 고려를 납득하는 이들도 많이 나왔다.
“추밀원부사의 말대로입니다. 오늘날 천하는 이적들이 많이 궐기하고 있으며 본조의 덕과 교화도 제대로 이해하기는커녕 닿지조차 않는 곳이 많사옵니다. 오직 동이의 고려만이 중화의 덕을 이해하고 교화되어 해동성국이라 불리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해동에는 고려보다 강력한 이적이 없는 실정입니다. 구태여 꼽는다면 요동과 옛 숙신 북쪽 옛 실위 땅까지 몽고가 뻗어 있어 고려가 크게 경계하나, 몽고는 본조로서도 토벌해야 할 이적입니다.”
거유(巨儒)들의 주장에 이어 다른 신료들도 동의했다. 유학자들이기에 고루한 원칙을 따지지만은 않았다.
아니, 이미 천 년 넘게 중원이라 부르던 하북 지방을 금에게 빼앗기고, 지금도 몽골이란 이적의 손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였기에 더욱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무시한다면 거란과 서하, 금, 몽골과 화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천하에 각자의 천하를 구가하는 이적이 있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사숭지와 정청지도 고려의 필요성을 알아 연호 폐지가 거절되고 조정의 분노를 진정시키려던 이들이었다. 고려가 연호를 관두고 대처할 것을 마련한다는 것에 반대할 이유도 없었고, 오히려 이 상황이 처음 각오한 상황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습니다. 폐하. 지금 저들이 원하는 것은 해동을 지배할 권위와 입지입니다. 연호의 문제도 그렇다고 하니 적당히 그를 인정하여 달래시지요.”
물론 그럼에도 반대하는 이들은 있다. 그들도 국경 밖의 현실을 아주 모르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천자가 정식으로 번국에게 인정해 주는 것으로 생길 여파였다. 이른바 조선 시대 예송논쟁과 같이 정통성과 정당성 문제인 것이다.
“고려는 일개 번왕인데, 어떻게 구오지존인 양 행세하는 것을 방조하란 말입니까? 이러한 전례는 없었소.”
“그렇습니다. 폐하. 본디 평왕이란 전조(당)가 나라가 어지러워져 조정에서 통어하기가 힘들어 절도사에게 내린 왕작입니다.
비록, 서하나 안남 같은 외방으로 내리긴 하여도 그것은 그들이 천지를 모르고 날뛰니 이미 있는 땅을 관리하라고 설유하고자 낸 것이지, 진정으로 번민들을 통치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으며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얌전히 따르는 고려에게 허락하는 것은 정말로 천하의 일부를 관리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옵니까. 고려는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박에 사숭지도 곧바로 재반박에 나섰다. 정청지보다 앞서 고려를 눈여겨보고, 천자에게 고려를 진언한 이가 그였던 만큼, 신료들 중 고려에 대해서라면 지금 남송 전체에서 그 이상으로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오. 그 옛날 북위의 세종도 고구려를 두고 ‘대대로 상장(上將)의 직함을 가지고 해외를 마음대로 제어하여 교활한 아홉의 이적(구이)를 모두 정벌하였다.’라고 하였소. 이는 예로부터 고려가 중원 밖에서 이적들을 통솔 관리했음을 증명한 것을 자인한 꼴이니, 어찌 전례가 없다고 할 수 있겠소. 지난번 본조에서 고려왕에게 평왕으로 책봉한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는 것이오.
하물며, 고려 또한 그것을 알기에 최근까지 계속하여 북방을 경략하며, 고구려의 기세를 되찾으려 하고 있으니, 본조가 허락하지 않아도 저들이 스스로 취할 것이오. 아니면 몽고라는 적을 두고 준비를 하는 고려에게 이마저도 그만두라고 막을 것이오?”
언뜻 들으면 딱히 우리가 허가하지 않아도 저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뜻이었지만 그 말의 진의는 고려는 고구려 시절부터 이미 번신을 자처하면서도 실상은 해동의 패자(霸者)였고, 그들도 그것을, 아니, 우리가 딱히 연호를 대처할 만한 것을 주지 않아도 고려는 얻을 것이다.
그런데 몽고를 앞두고 협력을 해야 하니 그냥 주는 것이 양국에도 낫다는 말이었다.
“사 승상의 말이 맞나이다. 거기다 몽고라는 대적을 둔 상황에서 해동에서 가장 빼어난 이적이 본조에게 충성을 하며 번신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 이적이 해동을 통치한다면, 그 이적이 섬기는 본조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허락하는 것이 가할 듯하옵니다.”
정청지도 여기서 다시금 허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말하자, 남송 황제 조윤도 고개를 끄덕이곤 고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손을 들었다.
“옳다. 해동은 예로부터 고려에게 맡기었던바, 하물며 지금은 고려의 힘이 요한 지금, 그것을 막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연호는 허락할 수 없으나 그 대처할 것을 구하는 것은 허락할 것이다.”
“하오나 폐하. 저들이 내부로 연호를 사용한 것은 스스로를 권위를 해동 내에서나마 높이려는 심산인데, 고려왕은 이미 ‘대왕’으로 왕호를 늘리고, 평왕이라는 관작까지 내렸는데 여기서 또 무엇으로 그들의 권위를 더 높인다 할 수 있겠습니까?”
유사의 말대로 이미 사위 중 동쪽(해동)을 관리한다는 동평왕이란 왕작에 이어, 왕호마저 정식으로 대왕으로 올려 부르고, 그 사신단의 대우도 번국들 중 으뜸으로 둔 지 오래였다.
이에 공을 기리는 시나 수를 놓은 의복을 내리는 것이 가하다는 말이 나왔으나, 잠자코 있던 정청지가 그때 입을 열었다
“신이 감히 생각건대, 이에 대해 한 가지 ‘작은 책략(小策)’이 있나이다.”
“상책(上策)도, 하책(下策)도 아닌 소책이라?”
“그러하옵니다. 도리에는 맞지 않으나 동시에 도리에는 맞으며, 이치에는 맞으나 이치에는 어긋나는 바이며, 전례는 있으나 이후로도 남겨 본받게 할 만한 전례는 아니옵니다. 하여 신은 소책이라고밖에 할 수 없나이다.”
“…호오. 우선 말해보도록 하라.”
#작가의 말
*북위 세종의 말은 위서 동이전 고구려전에서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