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08
408화
20장 해동(海東)의 패자(霸者)(1)
“카툰은 이번 전쟁에서 공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일들로 알 수 있을 것이오. 병력을 가지고 있던 이전까지도 이번처럼 하였는데, 병력마저 사라진 공이라면 어떠할 것이라 생각하오?
필시 공을 제거하기 위한 빌미만을 기다릴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공은 우리에게 당당히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는 것이오?”
“…한데?”
“목단강 이동은 아조와 북왕가 사이에 소유권을 두고 다투는 곳으로 지난 전쟁 이후로 쌍방 건너기 힘드나 아조는 이전 상보에게 받은 청으로 인해 ‘조사를 위해 보낼 명목’이 있소.
이러한 조사를 위해 보내진 아조의 사람이 우연히 길을 잃어 공의 땅에 간다면 공께선 길을 잃은 아조 사람을 아조 땅에 안내해 주면 좋겠소?”
“음?”
거기까지 말하자 카시다이의 머릿속도 두뇌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고려 태자가 원하는 것이 목단강 이동 지역을 이용하여 몰래 사람을 교환하자는 것임은 분명했다.
비록 이전과 같은 고려의 일방적인 소통에 가깝지만, 태자의 말대로 카툰의 의심을 피한다면 일방적인 소통이라도 하는 것이 나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목단강 이동을 아예 고려 땅으로 인정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너희가 말한 갈라전이 그곳 모두를 차지한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전쟁에 피했고 손을 벌려야 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카시다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아니, 옷치긴 왕가는 이미 1차 옷치긴 전쟁 이후 고려에서 말하는 목단강이 어디까지인지 확인한 뒤였다.
그들의 예상을 넘은 지류와 본류를 합친 목단강의 장대한 길이를 생각한다면 아무리 불리한 입장이라도 태자 말 한마디로 그 넓은 땅들을 순순히 넘겨주는 것은 그야말로 호구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걸 순순히 동의한다면 나는 두고두고 비웃음을 당할 테지! 저 솔호 놈이 무슨 속내를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데 호락호락 넘어갈까 보냐!’
쉽지 않을 것을 짐작했는지, 아니면 그런 카시다이의 태도도 짐작했는지, 카시다이가 반대의 뜻을 내놓자 태자는 바로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추가 조건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내용을 한 가지만 더 추가하도록 하겠소. 대국의 서정군이 복귀하여 이에 대해 재조정을 하기까지만 그대들은 사람을 보내지 않고, 이후 조정에서 이를 논할 때,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오. 하면 공은 목단강 이동을 명확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것이 되고, 아조는 그동안 승전의 대가로 아조의 사람이 가는 것에 대해 묵인받는다는 명목으로 관리하는 것이오….”
“…음? 으음. 좋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도 너의 의도가 그 땅 자체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만약 그래도 내가 싫다고 한다면 어쩔 셈이냐?”
“싫다면 말이오?”
카시다이 눈을 반짝이며 왕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렇다. 네가 우리를 살리는 목적이 카툰들에게 이용당한 것을 보복하고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이제 나도 이해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키지 않으니 거절한다면 어쩔 거냐?”
당장에라도 거절할 것처럼 은근슬쩍 미소를 짓는 카시다이의 모습에 왕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죽일 것이오. 내가 갑옷을 벗지 않은 채 공에게 검을 준 이유 무엇이라 생각하오. 공이 거절한다면 지금 당장 아까 전의 대결을 재개하여 공의 사인을 전사(戰死)로 만들 생각이오.”
“뭣!!”
“공도 이번 전장에 임하였을 때 죽을 각오를 하지 않았소. 어차피 이 조건으로도 수립이 안 된다면 번거롭더라도 공을 죽인 후 아조만으로 대응할 뿐, 그 외에 무엇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리 말하며 천천히 검 자루에 손을 대는 흑태자의 모습에 진심을 느낀 카시다이는 혀를 차며 수락했다.
“…알겠다. 나도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울루스를 보존하고, 저년들에게 한 방 먹이는 것이 더 나으니까.”
“그럼 이후 조건은 후에 이쪽에서 마련하여 보내드리리다. …그런데 그년들이라 말이 너무 과한 것 아니오?”
“껄껄껄.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물론, 태자와 나눈 이야기를 아는 이도 나와 태자 말고 없는데 무슨 대수란 말이냐?”
“하긴 그건 그렇소.”
“-라고 합니다.–아?! 자, 잠깐. 카시다이 님. 태자 전하. 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
거기까지 자연스레 통역하고 있던 옷치긴 왕가의 역관은 그 말까지 다 통역하고서야 제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변명을 해보려 했으나, 그때는 이미 왕검의 검과 카시다이의 검이 그의 목과 가슴을 베고 난 후였다.
* * *
미타호 전투를 끝으로 2차 옷치긴 전쟁 자체가 끝이 났다. 고작 한 번의 전투로 끝이 나는 것이 이상하긴 했으나, 애당초 양측 모두 사전부터 급히 군대를 모은다고 부족한 보급과 요동 처리 문제 때문에 한 번의 회전으로 끝을 낼 생각으로 벌인 전투였다. 그런 배경에서 그 한 번의 전투에서 나온 승패와 피해조차 명확하니 연전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전후(前後 전쟁 전과 전쟁 후) 양자 합의 아닌 합의가 있었다 한들, 이 전쟁으로 인해 요동에 끼친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상대적 우위를 얻은 것에 그친 지난 1차 옷치긴 전쟁과 달리 이번 전투로 명확히 해동의 절대 강자로 등극한 고려와, 그런 고려에 대한 주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우선 이번 전쟁의 발단이 되는 사건이 벌어진 요동의 동요국에서는 가장 먼저 고려의 승전 소식을 듣고는 즉시 축하하는 사신을 보냈고, 연이어 오늘날 북만주와 연해주 지역 고려의 관리 밖에 있던 여진족들의 추장들도 찾아와 공물을 바쳐왔다.
그들도 이제 옷치긴을 상대로 1, 2차 전쟁 모두 승리한 고려가 요동(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패권이 완전히 손에 쥔 것을 인식한 것이다.
동요국 다음으로 고려의 번국인 탐라국에서도 성주 고적과 왕자 부천이 승전을 듣고는 말들을 바치며 승전을 찬양하는 표를 올렸다.
그렇게 태도가 달라진 것은 패자(霸者)의 등극을 목격한 주변 나라들만이 아니었다. 패자로 등극한 고려 또한 유일하게 남은 적수 옷치긴을 약화시키면서 태도도 달라졌다는데 전후로도 이어지는 옷치긴과의 교류에서 확고한 우위를 갖추고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승전 후 목단강 이동, 아달 부족이 있는 곳을 비롯한 기존 북갈라전 근방이지만 국외지역이었던 곳에 사람들을 보내 부족들의 조공을 받거나, 부족의 호구를 조사하고, 일단 ‘동요국’의 땅에 해당하는 발해 시절 서경압록부(오늘날 중국 지린성)로 불렸던 곳에도 사람과 고려 관아를 설치한 것이다.
고려의 이러한 대응은 고려가 주도하는 해동의 질서를 만들 것이라는 뜻이었고,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갈라전 인근의 확장과 영향 영토의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서 말한 동요의 땅에 관아를 설치한 것에 이어, 고려 태자가 승전 후 이 소식을 고려와 카라콜룸, 그리고 동요국에 전하는 동시에 본인은 병력을 이끌고 동요국으로 간 것을 꼽을 수 있었다.
* * *
“어, 어서 오시오. 고려 태자.”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한 채 당황하며 나를 맞이하는 야율수국노. 그도 전쟁이 끝나자마자 내가 즉시 동요국에 온 것에 무척이나 놀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놀란 만큼이나 찔리는 것도 있을 것이다.
“전하께선 뵙지 못한 사이 신수가 많이 어두워지신 것이, 아무래도 전하께 많이 심려하신 듯합니다.”
“아, 아니오. 그보다 전쟁이 이렇게 빨리 끝이 났으니 참으로 다행이오다.”
수국노가 찔리는 게 있다곤 했지만 사실 전쟁 자체에서 찔린다 싶은 것은 우리 쪽에게 중원의 옷치긴 병력이 몽골을 경유해서 천산으로 간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건데, 이건 이쪽의 피해가 커지길 바란다는 심보가 있을 수도 있고, 정말로 몰랐을 수도 있는 일이다.
‘즉, 회색(그레이존)이니 우리가 동요국에게 확실히 잘못했다고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이놈아!’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하. 다행히도 이번 사건에 대해 북왕가에서는 그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문제를 아조에 맡겼습니다.”
“그렇소? 그렇다면 과인도 힘껏….”
“예. 그러나 오해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이번 문제는 ‘아조’에 맡긴 것입니다.”
“윽!”
은근슬쩍 협력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자 다시금 해결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강조해 주자 수국노도 그제야 이해했는지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하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전쟁에서조차 저울질, 어쩌면 저울질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의심 받게 된 것이 야율수국노 너의 불운이다. 아니, 수국노야. 솔직히 말할게. 너는 너무 많이 컸다. 정치질도 적당히 해야지. 나까지 끌어들여서 왕권 강화라니…. 나랑 고려를 얼마나 만만하게 본 거냐?
섣불리 외국의 핵심인사를 끌어들였다간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거 몰랐냐? 나도 옛날에 구유크 상대로 그 짓거리 했다가 몇 번이고 간담이 서늘했는데…. 나는 몽골을 앞두고 나 같은 적을 두고 싶지 않아. 그래도 정 우리와 같이하고 싶다면 좋다.
‘이제부터 동요국을 정말로 고려와 일련탁생(一蓮托生)으로 만들어주마!’
* * *
“으아아아악!!”
“크음.”
왕검과 함께 국문장을 함께 지켜보던 야율수국노는 저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크아아악. 어, 억울합니다. 전하!!”
“소신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나이다!!”
수많은 사람이 형틀에 묶여 무릎에 단근질(인두로 지져 고문하는 형벌)과 압슬(무릎과 허벅지 위에 벽돌이나 무거운 물체를 올리거나 널빤지를 깔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타서 압박을 가하는 형벌)을 당하며 고통으로 울부짖는다. 고문당하는 이들은 모두가 자신들의 무고함을 주장했으나 고문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여기에 너희의 전모와 이름이 다 적혀 있는데 어디서 거짓 고변을 하느냐!”
국문을 담당한 자리에는 고려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자국의 문제기도 하여 동요국의 관리도 부사 범주로 참석하여 담당하고 있었고, 지금 카시다이가 직접 적은 이번 모변에 엮인 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국문을 하는 자도 동요국의 관리였다.
물론 실권을 가진 이와 많은 이들이 고려인으로 구성된 것은 사실이었던 만큼 지금 담당하는 동요국 관리는 이번 사건의 전모를 모르고 그저 시킨 대로 하고 있을 뿐인 자리 채우기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모르오. 정말 모른단 말이오. 나는 그런 작자들과 만난 적이 없소이다!!”
“모함입니다. 전하. 신들은 결단코 그런 역적들과 모의를 한 적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문초를 당하는 동요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지난 사건에서 살아남은 옷치긴과 관련 있는 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카라콜룸 및 몽골과 연관 있는 이들과 야율수국노가 포섭한 인사들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것이 그저 몰락한 옷치긴 왕가가 벌인 물귀신 작전이라고 판단하며 진심으로 자신들의 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야율수국노는 국문을 그만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네 이놈! 아직도 이실직고하지 못할까! 뭐 하느냐. 더더욱 지져라!”
‘이, 이게 아니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냔 말인가. 이게 아니란 말이다!’
어디까지나 자국과 자신의 왕권 강화와 정적 제거를 위해 끌어들여 이용할 뿐이던 고려 태자였다.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 경우도 상정하긴 했으나 이렇게까지 상정 범주를 훌쩍 넘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야율수국노는 진심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북왕가가 대왕 전하와 고려 태자 전하를 시해하려다가 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장정들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도 아직도 제 목숨만을 구하고자 거짓을 말하느냐! 어서 이실직고를 하라!!”
지이이익.
벌겋게 달군 인두가 형틀에 묶인 자의 무릎에 지져지며 살 탄 냄새가 다시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인두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포박당한 상태에서도 몸부림을 치는 동요국 관리. 압슬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혼절하는 관리. 그들에게 걸린 죄명은 모두 역모였다.
단순 요동만의 역모도 아니라 우방국인 고려도 엮이게 된 문제라 담당하는 동요인들은 이 문제를 동요국의 뜻과는 다르다는 것을 전하고자 국문을 담당한 동요국 관리들의 고문은 더욱 거침없었다.
그러한 수많은 고문이 벌어지는 현장을 야율수국노는 침묵을 고수하려다가 결국 끔찍해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야율수국노는 그들의 무고함을 알고 있었으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여기서 그들을 옹호하는 발언했다가, 자신마저 의심을 받는다면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과인을 용서해다오. 과인이, 과인이 실수로 그대들의 죄 없는 목숨이 전부 사라지는구나.’
속으로 신하들에게 사과하면서 수국노는 이런 일을 벌이는 고려 태자에게 학을 떼며 떨었다.
이 일은 왕검이 주도한 것이 분명했다. 설령, 정말로 카시다이가 물귀신 작전으로 벌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번 사건의 전모를 아는 왕검이 그의 의도를 따라준다는 것 자체가 동요국 내 인사들을 숙청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크아아아악! 몽고. 몽고 놈이!!”
“억울하오.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래. 죽여라. 죽여! 내가 죽어서 원귀가 되어 너희 몽고와 고려 놈들도 죽여주마!”
“어찌 나를 버릴 수 있소! 나라를 버리고 몽고에 붙은 대가가 이거란 말이오!”
한참을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들은 아무것도 같이 고문당하는 친몽골파에 대한 원망과 증오를 쏟아냈다. 친몽고파들 또한 몽골에 대한 배신감에 원망을 쏟아낸다. 고려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이가 없진 않았으나 몽골에 대한 원망보다 적은 것은 당연지사고 왕의 무정함과 어리석음을 원망하는 이들보다 적었으니, 수국노는 더욱 눈앞이 깜깜해지는 듯했다.
이 끔찍한 국문이 다 끝나면 자신이 고려 태자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인사뿐이며, 그 일이 끝난 후 동요국 내에는 고려의 말을 저항할 이들이 없어진다는 미래로, 완전히 고뚜레가 꿰인 것을 이해하면서 수국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전하?”
“…괜찮다. 계속… 하라. 서둘러 이번 사건의 죄인들을 모조리 파악하라.”
눈을 감은 채 손을 저으며 이어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수국노. 고문이 약해져서 거짓 이실직고로 자신까지 엮인다면 더 큰 일이 된다. 하여 수국노는 며칠 전처럼 모른 척해야 했다.
그때와는 다르게 속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충격 속에서 충신들과 인재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제 입으로 내리고는 눈을 감은 채 저 광경이 어서 끝나기만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