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43
443화
45장 남번(南藩)(2)
“감찰사가 어인 일로 나를 찾은 것인가? 감찰사의 성격상 그저 승전을 축하고자 온 것은 아닐 터이고, 뭐 긴히 하실 말씀이라도 있는가?”
아직도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여 골치 아프던 오키나와 호족들을 전부는 아니라곤 하나 중부 지역은 사실상 진압하고 그 수괴들도 순천성에 압송된 것에 기뻐하던 유구방어관 송송례는 자신을 찾아온 김구에게 물었다.
“다른 게 아니라, 요청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감찰사가 내게 요청이라… 내가 돕지 않으면 안 될 일이오?”
“예. 유구방어관이신 송 장군님의 인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군을 움직이는 일이오?”
일반 판관과 달리 상당의 권한을 부여받은 김구가, 구태여 찾아와 방어관의 인가가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뿐이라고 판단한 송송례는 즉시 정색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고, 김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장군께서도 일전에 유구 성주들의 일에 왜국의 상인들이 끼어 있었다는 것은 들어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남벌군의 군함이 왜국에 가서 그 상인들을 돌려주는 것으로 본국으로 돌아온 일 말입니다.”
“지금 난을 일으킨 유구 성주들도 왜국과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하여 달라 이거군?”
송송례 또한 아지들의 군대 속에서 일본인들로 보이는 무사들이나 무기나 복장 중에 일본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상당수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김구가 요청한 이유를 바로 이해했고, 김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번 일에 왜국 상인들이 또 연루된 것인지 아니면….”
“내 안 그래도 이에 대해 이상하다고 여기던 찰나였네. 병사들과 북부 호족들로 하여금 그를 조사토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 * *
정안연의 요청에 정리한 글들을 보고 난 후 정안연이 내게 정리를 부탁한 이유를 알게 됐다. 근래 들어 빈공과에 응시하는 일본인들이 급격히 늘었다는 점이다. 그 수는 광종 이후 동경빈공과가 생기기 전까지 응시한 일본인들을 평균은 가볍게 넘고, 현재 동경 빈공과에 응시하는 탐라인의 숫자도 가볍게 넘어서 오키나와인들과 비슷할 지경이다.
그러나 오키나와인들 경우에는 지금 정벌이 한창이고, 통일신라 시기 6두품 출신 신라인들이 당나라 빈공과에 응시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일시적인 ‘빈공과신드롬’ 같은 거다. 이마저도 오키나와 본섬의 북부를 정벌하고 주변 열도를 장악하면 결국 시간이 흘러 빈공(賓貢)에서 향공(鄕貢)으로 바뀔 문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사실상 동경빈공과에서 가장 많이 응시하는 외국인이 일본인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나 김해가 지근거리라서 다른 두 곳에 비해 빈공과를 치르기 쉬운 위치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응시하는 일본인의 수가 너무 많다.
‘애당초 대마도와 큐슈 지역에서 바치는 조공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과 남송의 해금령 문제로 차선책으로 교역하게 된 것이지. 일본 조정과 공식적으로 국교를 맺은 게 아니고 일본의 공식적인 국가 방침은 여전히 쇄국(鎖國)이다. 단순히 무역과 하사품 목적인 조공이라면 몰라도 타국의 관리가 되기 위해 빈공과에 응시하겠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원 역사에서 이 시기 일본이 외국 빈공과에 얼마나 응시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고려보다도 봉건제 성격이 강한 일본이라면 조정과 별개로 지방 성주들이나 무사의 자녀들이 응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비슷하게 당을 ‘서국(西國)’ 또는 ‘서토(西土)’라고 하고 중국의 학문을 ‘서학(西學)’이라고 하던 신라도 귀족들의 자제들이 빈공과에 응시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쪽이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설득한 끝에야 형식적 조공을 할 정도로 해외에 별 관심이 없는 최근까지의 일본이 구태여 지금 갑자기 외국의 문화나 학문에 관심이 있는 것인가? 하면 그건 그것대로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것은 지금 일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데.’
일본의 조짐이 이상하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조짐이 보였다. 대마도 도주의 청이나, 큐슈 내 동태가 이상하다는 듯한 보고 말이다.
그리고 나라가 어수선할수록, 불만이 생길수록 그를 타파하고자 개혁을 하려는 의지는 나온다. 당장 신라말 3최 중 하나인 최치원도 당에서 배운 것으로 혼란기의 신라를 쇄신해 보려고 하지 않았던가.
해금으로 가기 힘들어진 남송 대신, 맹렬히 국위를 떨치는 고려에 와서 배워가려고 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반쯤 우발적으로 가게 된 동경행이지만 가길 잘한 것 같군.’
“…동경에 가면 별시(別試)를 치러봐야겠군.”
“별시? 동경에서 별시를 치르겠다는 건가요? 아버지.”
“그렇단다. 황상께서 환도하시었으니 그를 기념하여 동경에서 별시를 열어볼까 한단다.”
내가 중얼거린 것을 들은 왕야가 즉각 반응하며 물었다. 참고로 지금 나는 평소처럼 말을 타고 이동하지 않고 왕야와 함께 마차에 타고 있다. 달구지 같은 게 아니라 엄연히 지붕까지 달린 마차다.
마차에 탄 이유는 어린 왕야를 말에 태운 채 동경까지 가는 것은 보기에도 그렇고, 체력도 많이 소모하게 되는 이유도 있고, 가면서 서류들을 읽고자 한다면 말보다는 마차 안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아비가 네가 무관심했구나.”
“아니요. 괜찮아요. 아버지께서 지금 보신다는 것은 중요한 일인 것이잖아요.”
마차에서는 가족이고 단둘밖에 없으니 편하기 말해도 좋다는데 편하게 한 게 저거다. 역시 수아가 태어난 이후 아빠에서 아버지로 호칭이 변하고, 말하는 것도 존칭으로 변했다. 조금 더 어리광부리는 아들을 보고 싶었는데, 아빠 조금 섭하다.
“그보다 아버지. 동경에서 별시를 친다면 전부 치는 것입니까? 아니면 무과만 치는 것입니까?”
이것 봐라?
“야(惹)야. 그 답을 하기에 앞서 너는 어째서 아비가 둘 중 하나만 친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느냐?”
“그것은 아버지께서 무를 중시하는 듯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너가 보는 앞에서 군무(軍務)와 무(武)에 관련된 일을 자주 보고는 있으나, 자고로 군왕(君王)이 되는 자. 무위를 떨치는 데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나라가 피폐해지고 백성들이 고단해지는 법이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오늘날 아조는 강병을 양성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서 아버지께서는 무를 중시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면 오늘날 아조의 처지는 어찌하여 이 아비가 군을 양성하고 무를 중시한다고 생각하느냐?”
하니, 왕야가 답하니,
“북조의 위협에서 완전히 탈(脫)하지 못했고, 남조와의 관계도 결(結)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요.”
“탈하고 결하기 위해선 무가 필요하다는 것이냐?”
“자신을 지킬 힘이 없으면 문(文)이 있어도 의미가 없어요.”
“하면 오늘날 아조의 문(文)은 경시해도 되는 것이냐?”
“아니요. 문을 경시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무보다는 중요하지 않아 보여요. 하여 아버지는 서경에서도 무과를 더 많이 받았고, 이번에 동경에서 별시를 치른다고 하더라도 무과만을 치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
그렇게 말한 왕야는 아주 미세하지만 자기 답이 어떠냐? 는 듯 나의 대답을 기대하는 듯 보였다. 어린아이가 하는 답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요전부터 왕야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습이 보여주고 있다.
그 대답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은 것이 느껴지지만, 이것은 문자 그대로 왕야의 경험이 적고, 왕야가 있는 위치에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미흡한 정보 내에선 그 나름의 판단을 했다고 해줘야 할 것이다.
“네가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그 모습은 싫지 않구나. 하지만 네가 지금 말하면서 이 아비에게 친부로서 답이 아니라 고려 태자이자 위정자로서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정당히 판단을 내려주기를 원하니 이 아비는 그에 응해 답해주도록 하겠다. 괜찮겠느냐?”
“예!”
“너의 답은 외세에 대한 생각은 나름 그럴듯하나 그 내실과 아조의 실정을 몰라서 말하는 것이로다.”
“예?”
“너는 이 아비가 군무를 보는 일로 무를 중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이 아비는 계사년(癸巳年)에 역신들을 벌한 이후 줄곧 문무양도(文武兩道)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런 아비가 무만을 편향한다면 신료들은 어찌 생각하겠느냐?”
“불만을 가질 것이나, 그저 불만만을 가질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을 폄하해도 된다는 소리는 되지 않는다. 도의적으로나 순리적으로나,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말이다.
“너는 이 아비의 권세와 힘만으로 문무를 가르고 중시한다고 하는데, 이 아비가 무를 중시하기 위해서라도 문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법이다.
일당백(一當百)의 강병(強兵)이 10만이나 있다고 한들, 그들이 먹을 밥과 무장할 병장기가 없다면 그러한 강병도 농병에게도 지게 된다. 전쟁을 하여 100승, 1000승 하여 천 리와 만 리의 땅을 정벌한들 그 땅을 관리하고 통치할 수 없다면 그 전쟁은 무만을 뽐내기 위해 많은 자원과 인명을 소모한 전쟁이 된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문(文)이며, 일을 하는 자가 문관(文冠)이다. 하여 지금도 북방의 영토에 병사들과 함께 호구를 조사하고 관리하기 위해 지방관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병사들을 양병하는 일과 무과가 열리면 다른 시험들보다 자주 참관하시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문보다는 무를 중시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그것은 네가 아비의 모습은 보되, 이 아비가 태자가 되기 전, 계사년 이전 아조의 사정을 몰라 아비의 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니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모르며 대양을 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
내 말이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왕야를 두고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비가 계사지주에서 역신들을 벌하고 황실의 벌하고 조정을 바로잡았다는 이야기는 너도 들었을 것이다. 그 후 아비가 무엇을 하였느냐?”
“아버지께서는 예종 대왕님 시절 있던 무학재를 무과로 부활시켰어요.”
“하면 계사년 이전 아조의 상황은 아느냐? 난신적자가 권력을 쥐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느냐?”
“그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국정을 제 마음대로 다루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혈을 빨고 어떻게 국정을 제 마음대로 휘둘렀겠느냐?”
“당연히 창칼을 비롯한 병사들로 겁박하여….”
순진무구하게 묻는 왕야. 이런 면에서는 아직 어린아이답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귀엽지만 지금은 흐뭇하게 지켜볼 때가 아니다.
“그것도 너가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기간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네가 말한 대로 오직 힘만으로 조정을 휘두르며 국정을 농단한 것은 경인년의 난 직후 초기에나 해당하는 일로 역적 이고와 이의방의 세력이 강했을 때에 불과하다. 마저도 이의방부터 문신들과 마찰을 자제했고, 난신 정중부부터는 문신들과도 포섭하기 시작했다. 최충헌에 이르러선 문신들마저 산하에 들여 국정을 농단하였다. 그리고 무신들이 정권을 잡고 시간이 수십 년이 흘러 무신이 권력을 잡을 당시 그들과 손을 잡은 문신들도 대다수가 숙청되거나 퇴직하거나 수명이 다해 죽었다. 그런데 어째서 최씨 일가는 대를 이어 국정을 농단하였겠느냐?”
“…과거(科擧)인가요?”
왕야 똑똑하다.
“그래. 경인년의 난 이후로도 과거는 계속 치렀다. 과거란 능력 있는 인재를 뽑아 관직을 내려 나라를 통치하는 데 일조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는 난신적자 권신은 이를 두고 어찌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급제한 이들을 포섭하였을 것입니다.”
“그래. 그중에는 재물로 청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포섭되지 않고 재물로 청탁도 하지 않고, 청렴한 자들은 어찌 되겠느냐?”
“…아!”
잠깐의 침묵 후 왕야의 입에서 이해한 듯 탄성을 흘린다. 아직 10살도 안 된 아이가 고작 이 정도의 대화로 말의 요지와 원인을 이해했다는 것 자체가 왕야의 명석함은 사실이라고 입증해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인년 이후 과거에 급제는 했으나 관직에 얻지 못한, …조정의 문관이 될 인재들은 이미 아조에 있다는 말이군요.”
“그래. 그렇다면 지금 이 아비가 문무양도를 논하면서 무과를 더 집중하는 이유는 이해했느냐?”
“…소자가 잘못 이해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것이 있어요. 아버지의 말씀은 문무양도를 추구하면서도 결국 무보다 문이 중요한 것인가요? 결국 문이 없다면 나라를 통치할 수 없고, 국무를 행사할 수 없으니까요?”
문(文)과 무(武) 중 문(文)이 더 중요하다. 이 시기 식자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고 무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중요하다는 말도 그렇게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왕야에게 단순히 맞다. 아니다. 라고 짧게 답해주는 것은 왕야의 사고가 닫힐 우려가 있다고 보인다.
“그렇게 속단해서도 안 된다.
야야. 너는 방금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문이 있어도 무슨 소용이냐고 하였다. 그 말대로 문이란 나라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나, 아무리 나라가 평안하다 하더라도 외침이나 내란에서 무색하게 피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의 평화나 다를 바 없다.
일찍이 마원(馬援)이 제 조카들을 보고 두계량(杜季良)과 용백고(龍伯高) 중 두계량을 본받는 것은 화호불성반류구(畵虎不成反類狗)라 하여 용백고를 본받으라 하였으나 그것이 두계량이 용백고보다 못한 사람이고 악인이라서겠느냐?”
#작가의 말
*참고로 왕야는 작중 1235년에 태어났습니다. 지금 배경은 1242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