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54
454화
52장 종친불사(宗親不仕)
“오늘날 아조는 새로이 정복한 강역에 주현(州縣)과 진(鎭)을 설치하며 그 지역에 기존 성이 있다면 그것을 보수, 증축하고, 없다면 우선 성벽(城壁)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관(土官)의 제도를 마련한 뒤에, 주민들을 이주시켜서, 농사도 짓고 수비(守備)도 하게 하고,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고 세금을 적게 받습니다.
이 조치는 그들의 생계가 넉넉해지도록 만들어 장차 그들이 은성(殷盛 번화하고 풍성함)하여 지기를 기다리기 위함입니다. 이때 만약 보낼 민호(民戶)를 구할 수 없다면,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등 사람이 많은 남방에서 자원하여 이주할 사람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원한 이가 양민(良民)이라면 그곳의 토관직을 주어 포상하고, 향리(鄕吏)라면 그곳의 토관직과 함께 지금 지위 이상의 무산계를 내려주어 현지 번인들에게 움츠러들지 않게 하며, 노비(奴婢)라면 영구히 풀어주어 양민이 되게 하여 이주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토관(土官)은 본토의 백성들만이 아니라 귀부한 현지의 번인들에게도 내리니 번인들로 하여금 인솔하고 나누어 지키게 하고 있으니 이는 계사년부터 이어진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방도 그러한 것인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을 지나면 안무사(安撫使)를 파견하여 현지의 백성들과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남북 변경의 통치하는 상례가 되어가고 있사옵니다.”
“거기에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이미 아는 사실을 구태여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왕의 하문에 입을 평장사 이규보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책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를 행하는 이에게 큰 문제가 있사옵니다.”
“업무를 게을리하는 이가 있단 말인가?”
“아니옵니다. 성실함과 그 의지를 논하자면 어느 신료와 비교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능력이 부족한 자인가?”
“그것도 아니옵니다. 특출나지는 않을지언정 큰 흠이 있지도 않사옵니다.”
“하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성실하고 의지도 갖추었고 능력도 크게 흠이 없다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왕이 궁금증에 답답하여 묻자 이규보는 대답했다.
“자격의 문제입니다.”
“자격이라니? 도대체 그자가 누구인가?”
“안경공(安慶公)이옵니다. 폐하!”
“!!”
자신의 아들이 거론되자 왕의 모습은 크게 흔들렸다.
“폐하. 태조 황제 이래로 아조는 종친불사(宗親不仕 왕족은 조정의 일을 맡지 않는다.)의 원칙을 지켜 왔사옵니다. 이는 신라가 종친들에게 관직을 내린 결과 왕조가 망하였기에 세운 것이며, 아조는 오랫동안 이 원칙을 준수하였사옵니다.
하온데 오늘날 안경공은 벌써 여러 번이나 안무사의 일을 대신하고 군을 이끌고 전장에도 참여하였으니 이는 태조 황제께서 내린 종친불사의 원칙에 위배한 것이니 어찌 신이 이를 상고(上告)하지 않겠사옵니까?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종친불사의 원칙을 어겼다고 지적하는 이규보의 말에 왕은 난감한 감정을 금치 못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안경공이 분명 불사(不仕)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짐이 심도(강화도)에 있는 동안 짐을 대신하여 태자와 함께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함이며, 변경으로 간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군을 움직인 것은 모두 태자가 지시를 내리고 안배한 것인데, 이는 북방의 군무에 직결하는 일이며, 북관도(오늘날 북한 자강도)의 문제 또한 북방의 일로 태자가 맡은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선 태자에게 묻는 것이 옳을 것이로다. 추후 태자를 불러 묻도록 하겠다.”
처음 안경공이 언급되었을 때, 무신정권 시기 권신들이 정적이나 위협이 될 만한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렇게 언급한 사례를 떠올리며 크게 긴장한 왕이었으나, 생각해 보니 제 아들 왕검은 아비인 자신과 한 약속으로 안경공을 해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거기다 안경공이 안무사의 일을 하거나 군을 움직인 것도 태자의 일에 관여되어 있었으니 크게 벌하지는 못할 것이 뻔했다. 거기다 과거와 달리 (왕)창을 구심점으로 추대하려고 해도 (왕)검의 세력을 넘을 수 있을 리 없으니 왕검이 걱정하여 처리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왕은 태자를 언급하며 신하들이 함부로 안경공에 대한 흠을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안경공이 이대로 종친불사의 원칙을 어기는 것을 가만두지도 않겠다며 왕검 일파를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평장사의 말대로 불사의 원칙을 계속하여 어기는 것은 후에 본보기가 되지 않는다. 짐이 환도하여 나라가 치세를 되찾은 지금은 자제하게 하는 것이 옳다. 추후 이런 일이 없도록 안경공을 불러 타이르겠노라.”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안경공을 아끼고 사랑하는 왕이었으나 보위의 문제에 대해서는 안경공이 아니라 태자가 반드시 보위에 올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창이, 그 아이가 앞으로 아조에 닥쳐올지 모를 모진 풍파를 무사히 넘길 역량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구나. 창이를 위해서라도 다음 보위는 왕검이 오르는 것에 불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야.’
오히려 안경공 본인이 형을 생각하는 형제애가 너무 심해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자제할 차례라면 차례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행히 이규보도 안경공을 폐서인 시키거나 유배 시켜 제거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의시키려는 목적이었는지 왕의 말에 순순히 넘어갔고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안경공의 일은 이것으로 끝내기로 하고, 이제는 나라의 수어책(守禦策)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하오. 경들은 양계와 경기를 비롯한 전국의 성채들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가?”
“폐하. 어찌 생각하시냐 물으심은…?”
“추후 전란이 일어날 경우, 지금의 성곽들로 전란을 견딜 수 있는지, 버틸 수 없다면 증축하거나 성을 새로 쌓아야 할 곳이 없냐는 말이오.”
못해도 북방이요. 넓게는 전국에 성을 건설하겠다는 왕의 말에 대전은 술렁였고, 호부상서 경번이 당황하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폐, 폐하. 지, 지금 나라가 태평한데 성을 증축하겠다니요. 겨우 안정을 되찾은 백성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아가 민심이 흐트러질 것이옵니다. 부, 부디 통촉하여 주, 주십시오!”
혹시라도 전국에 성들을 설치하고 증축하겠다고 한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나갈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런 항변에 대해선 왕은 호통을 치며 성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경은 경인, 신묘, 임진년(1230~1232년 1, 2차 여몽전쟁)의 일을 잊었단 말인가! 아니 어디 그때뿐인가! 정묘년에서 기묘년(1216~1219년 대요수국의 난)도 적들을 제때 막지 못해 나라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지금의 성벽들로 저 북조의 수십만 대군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런 뜻이 아니오라, 이미 성을 증축하고, 새로 넓힌 영토에도 성을 설치하는 데 또다시 증축과 설치를 하는 것은 백성들을 고난하게 하는 것이….”
“듣기 싫다! 당장의 치세만을 보고 장구(長久)한 앞날을 대비하지 않는 것은 옛 백제의 의자왕이 성충과 흥수의 충언을 무시하고 향락에 빠진 것과 같다.
짐이 지금 성을 세우려는 것은 궁궐을 만드는 사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옛날 신라 자비왕(慈悲王 자비 마립간)과 문무대왕(文武大王)이 고구려와 당을 대비하며 성을 세운 것과 같은 뜻이다. 나라의 사력을 다해서라도 태묘사직(太廟社稷)과 백성들을 북조에 넘겨줄 수 없다!”
대놓고 북조를 적으로 언급하며 크게 성을 내는 왕의 질책에 경번은 고개를 숙였고, 예부상서 추영수는 왕의 말을 동의하며 진정시켰다.
“실제 북조가 움직이면 나라가 형세는 다시 위태하고 민심도 요동칠 것이니, 성상께서 태묘사직의 근심하시어 국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시는 것에 이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사옵니다. 그러나 양계를 비롯한 북방의 성에 대해서는 이미 증축하고 있으며, 새로이 성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명장인 수문하시중 겸 병부상서 박서의 말에 왕은 어째서 최전선인 북방을 두고 그렇게 말하느냐 되물었고, 이에 박서는 대답했다.
“폐하. 양계와 서해도는 이미 임진년(1232년) 이래로 태자 전하의 뜻에 따라 파손된 성들을 보수한다는 명목으로 보수와 증축하였고, 지금도 종종 북방을 순시하고 계시옵니다. 그러니 나라에서 양계와 서해도의 방어요충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다름 아닌 태자 전하이옵니다. 부디, 북방의 요새를 설치하는 일에 대해선 태자 전하에게 일임하소서.”
“으음. 그것은 박 상서(박서)의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로다. 양계와 서해도의 문제는 태자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하옵고, 여태까지의 일을 고려한다면 전하가 군과 국방에 대한 대사를 결정하고 장계를 올리면 그 일들은 대부분 즉시,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국사(國事)에 드는 비용이 적지 않고, 현재 장성이북과 유구도의 문제로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이대로 지출을 계속한다면 국고가 텅텅 비게 될 것인데, 그때 북조가 쳐들어온다면 아조가 오래 맞서 싸우는 것이 힘들 것입니다. 신은 이것이 크게 염려되옵니다.”
“으음. 하면 나라의 세를 늘리는 것이 좋은가?”
성을 쌓고, 증축하고, 병력들을 조련하고, 무기를 제조하는 일들에는 모두 돈과 인력이 소모된다. 그리고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면 재화와 식량도 비축해야 하는데, 병행하면 모이는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많다는 것이었다. 왕은 고심하면서 세금을 늘려야 하는 것이 어떤가? 물었지만 박서는 고개를 저었다.
“전조 문무왕 시기 당과의 전쟁 중에 세를 늘리긴 하였으나, 지금 아조는 북조와 화친을 맺었으니 신라와는 상황이 다르옵니다. 폐하께서는 금(金)이 화친을 맺고 난후 성을 증축하고 천도하자 북조가 금을 의심하여 즉시 침략을 재개한 일을 잊으셔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아조가 장성 이북 새 영토에 성을 쌓는 것과 기존의 성들을 보수를 목적으로 증축하는 것은 몰라도, 그 외에 새로이 성을 쌓고자 세를 늘린 일이 저들에게 알려진다면 화를 부르는 일이 될지도 모르니 섣불리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옵니다.”
“세를 늘리지도 말고, 나라 내에 성을 쌓는 것도 북방(장성이북, 양계, 서해도)과 서해도만이 가능하다는 건가?”
“아니옵니다. 정묘년(대요수국의 난)과 임진년(여몽전쟁)에서 외적들이 당도한 곳을 보수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으로 되겠소?”
이른바 고려의 전역에 새 성을 쌓기보다는 과거의 성들을 복구를 핑계로 증축하는 선에서 그치자고 말한 것이다. 이는 결국 전국에 성을 쌓아 몽골과의 전쟁을 대비하자는 왕의 요구를 보수만 하는 것으로 보류 & 거절을 하는 의견인 듯했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하옵고, 폐하. 계사년 이전에는 난신적자들로 인해 국정이 농단 되어 나라에는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한 성곽과 관아들이 많다고 들었사옵니다. 그중에는 오래전 고구려와 옛 백제, 신라가 대립하던 시기의 성은 물론, 태조 황제께서 삼한을 다시금 통일하였을 시기의 성들이 군사적 요충지에 있음에도 상태가 나쁜 것이 많다고 하니 부디 그중 순위를 정해 보수를 하시옵소서.”
“…오호. 그러면 되겠구나. 수문하시중의 말이 참으로 옳도다. 아조는 그저 국정을 농단하여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옛 성들을 보수하는 것이니 뭐라 하지 못할 것이로다.”
이른바, 중부와 남부 등지에서도 방치했던 성들 중 요새로 쓸 만하다 싶은 것은 보수하거나 증축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에 각자 북방을 대비한 성곽이 많았으니 그 의도를 이해한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하면 이번에 올라온 왜국의 일은 어찌해야겠는가?”
그 순간 대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째서 갑자기 왜국을 거론하는가? 라는 의미의 침묵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던 것이 결국 왔다는 답답함과 착잡함에서 나온 침묵이었다.
얼마 전 동경으로 내려갔던 태자로부터 일본의 밀사에 대한 장계가 올라왔는데, 그 내용이 황망하면서도, 민망하고, 거슬리면서도 귀를 씻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고려를 망국의 위기로 보내고 수틀리면 임금조차 갈아치울 정도로 만인지상의 권력을 가진 무신정권의 집권자들조차 나라 간의 외교에 있어선 군주의 이름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 왜국의 사신이라 자칭한 자를 보낸 것은 왜왕(덴노)이 아니라 일개 대장군(쇼군)이었고, 당당히 온 것도 아니고, 고려와 왜국. 양국 모든 사람들 몰래 도둑놈인 양 은밀히 온 밀사라는 것이다.
그래놓고 부탁한다는 내용은 군사 파병 요청이었으니 일본에 대해 내심 변방이나 시선 밖으로 생각하던 고려의 신하들에게 이 문제는 그냥 무시하고 넘기고 싶을 따름이었다.
“왜국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생각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믿기지 않는 자의 목소리에 정전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놀란 것은 신하들만이 아닌 이에 대해 물은 고려왕도 마찬가지였다.
“수문하시중은 왜국 대장군이 청하는 대로 군사를 보내자는 말인가?”
일본에 대한 개입에 가장 반대하리라고 생각했던 박서가 파병에 긍정하는 빛을 내비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