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55
455화
53장 이국원정(異國遠征)?
놀라 묻는 왕에게 박서는 대답했다.
“신도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아 쉬이 파병을 결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저간의 사정을 듣고 보니 파병의 문제를 무작정 배제하기보다는 우선 중신들과 많이 논의하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뿐이옵니다.”
즉, 파병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생각은 해볼 만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파병에 대해선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신료들과 왕에게는 충격적인 답변이었던지라 정전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 수문하시중께서는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겨우 전란을 끝냈는데 다시 군을 보내자니요. 거, 거기다 왜국이라면 유구와도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까?”
박서 덕분에 축성 비용을 그나마 절감했다고 안도했던 경번은, 다름 아닌 그 박서의 파병을 찬성하는 듯한 말을 듣고는 배신이라도 당한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박서에게 따지듯 물었고, 그 기세에 박서도 약간 당황하면서 설명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도 반드시 군을 보내자는 말이 아니오. 어디까지나 무작정 배제하기보다는 일단 논의를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냐는 말이오.
그리고 호부에 속한 경 상서가 내게 말을 걸었으니 나도 경 상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지금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세익(稅益) 중에 왜국, 왜인과 관련되어 들어오는 수익과 만일 왜국의 군대가 아조를 침탈할 경우 나라에서 그에 대응한다면 얼마나 지출될 것 같소?”
전쟁을 암시하는 박서의 말에 대전 안은 더욱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 수문하시중께서는 저, 전쟁을 여,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것입니까?”
“내 물음에 우선 답해주시오.”
“아, 알 수 없습니다. 왜, 왜국이 어떻게 해, 행동할지 모르는 이, 이상도, 동경만인지 아니면 경상도 전부인지….”
“석두창(石頭倉), 통양창(通陽倉), 해룡창(海龍倉), 장흥창(長興倉), 해릉창(海陵倉), 부용창(芙蓉倉), 안흥창(安興倉), 진성창(鎭成倉) 이상 나라의 조창이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소. 이 수는 계사년 이전 전국의 13조창 중 8창으로, 오늘날 북방에 세워지고 있는 조창을 포함해도 절반이 넘는 수요.
여기서 해룡창과 해릉창을 제외하면 죄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이 두 창 또한 바다에서 강 하구를 통해 올라오는 것이 어렵지 않으니,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여길 필히 방비해야 하오.
그렇지 않다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조세는 황도에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 국사를 보는 데 큰 지장이 생길 것이오. 그러니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아조의 번국인 탐라를 침략할 경우를 기준으로 해주시오.”
그 직후 경번은 속으로 계산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와락 찡그려져 더욱 울상이 되었다.
실제 고려 후기 대대적인 왜구의 침략으로 조운선들이 약탈되고 일부 조창도 공격을 받으면서 일부 조운은 일시적으로 멈추고, 개경에서는 조세를 거둬들이지 못해 큰 곤욕을 겪은 것을 생각한다면 박서는 제대로 잘못될 경우 위험과 피해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 잠깐만 기, 기다려 주십시오. 으음. 음.”
그 직후 경번은 입을 꾹 다물고 속으로 이것저것 계산하더니 더욱 울상인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에서 대답을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박서는 말했다.
“때문에 마침 왜국의 상황이 상황이니 우선 논의나 해보자는 것이오. 저들의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사신이라고 자처한 왜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군대를 보내되 크게 싸울 필요는 없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이때 예부상서 추영수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수시중께서 하신 말은 왜국이 아조와 작정하고 전쟁을 할 경우입니다. 저들이 정말로 하려 들지와 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나 또한 왜국 사신의 20만 대군을 동원한다는, 이 말을 순순히 믿지는 않소만 과거 구백제가 망하였을 때 백제를 돕기 위해 함선과 함께 원군을 보낸 것은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오.
그때 왜국이 고백제를 돕고자 보낸 함선의 수가 천여 척에 달한다고 하였는데 왜선은 아조의 함선보다 작아 사람이 많이 타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20여 명일 족히 2만여 명은 되지 않겠소?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 왜인들의 수도 늘어났을 터이니 적잖이 4만에서 5만은 잡아도 무방할 것이오.
사실 정말로 20만이 동원되고 저들이 아조를 정벌하고자 침략하고자 한들, 아조가 격퇴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앞서 말한 조창의 문제와 저들이 정벌이 아닌 약탈일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약탈이 목적이라면 20만이 아니라 4, 5만 정도만 하더라도 남방 전역이 저 해구(海寇)들을 출현과 약탈에 신경을 써야 하니 여간 골치가 아닐 것이오.
이는 상장군 김방경이 수적들을 근절하기 전까지 전라도의 수적이 기승부린 것을 이상이 될지 모른다고 한다면 경들도 이해하기 쉬울 것이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조는 저들의 근거지인 왜국 혹은 근거지가 될 공산이 큰 대마도나 구주를 군을 보내 쳐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란 말이오.”
실제 고려 말과 조선 초 왜구가 계속하여 극성이자 고려에서는 박위가 조선에서는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을 감행하여 그 기세를 꺾었으니 박서의 주장은 또다시 맞았다고 할 수 있었다.
“즉, 저들이 진심으로 아조에 해구들을 보내 약탈을 하려 든다면 아조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결국 왜국에 군대를 보내야 한단 말입니까?”
호부의 조식이 요약하여 대답하자, 박서는 긍정하였으나 추영수는 여전히 불만 어린 목소리로 반대했다.
“수문하시중의 걱정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보기엔 역시 왜국이 아조를 건들지 않을 공산이 더 크다고 봅니다. 설령 저들이 오만방자하고 천지를 분간하지 못해 아조를 건드는 만용을 저지를 정도로 무지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저들 내부에선 권신들이 권력을 얻고자 하는 상황이 경인년의 난 이후 역적 이고와 이의방, 채윤과 같은 상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구태여 본국을 건드려 문제를 벌일 정도로 어리석겠습니까?”
추영수의 말도 옳았다. 일찍이 용강후 정안연이 밀사의 말을 허세라고 단정하고, 왕검도 이에 동의한 것처럼 현재 일본이 그만한 국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그 이전에 내부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외세와 분쟁을 만드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행위였다.
“정 저들과의 국교가 신경 쓰인다면 차라리 왜국에 자금을 지원하여 저들 스스로 부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성의는 다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병부의 관리 포석이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다. 굳이 외국으로 군대를 보낼 필요 없이 어느 정도 자금을 지원하여 구색을 갖췄다고 하자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듣는 직후 호부상서 경번은 빠르게 군을 동원하는 것과 돈만을 보내는 것에 무엇이 이익인지 저울질하였는데, 그 답이 나오기도 전에 박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좋은 책략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네. 동경에서 올라온 태자 전하의 글을 본다면 이번에 우리 군을 당도할 경우 그 군비는 왜국 대장군과 손을 잡은 구주절도사(진서봉행)가 부담하게 하겠다고 하였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자금을 내주었다가는 그 약속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니 아조만 손해 아닌가.”
추영수도 이에 대해선 따로 반박하지 못하자 박서는 이어 말했다.
“왜국에 자금 한번 내주고 이후 단교에 가깝게 요구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나서서 재력을 과시하는 것은, 추후 왜국에서는 추가로 비용을 애걸할지 모르네. 호부상서의 모습을 봐도 알겠지만 아조는 이미 해야 할 국책이 쌓여 있네. 그런 아조가 왜국의 일에 지속적으로 퍼줄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네.
무엇보다 자금으로 해결하려 든다면 왜국의 일이 무사히 끝나지 않는다면 왜국대장군의 적이 승리한다면 그에게 불만과 원한을 받을 것이고 무사히 끝나도 왜국 대장군이 우리에게 제대로 보답할지도 장담 못 하니 터럭만큼도 이익이 없네.”
대전이 일본의 문제에 개입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로 대전이 점점 가열되면서도 이야기가 좀처럼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지자,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최종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 문하시중이 아뢰옵니다. 왜국이 우리 군사를 차병(借兵)하려 한다는 이야기로 크게 고민할 필요는 아직 없지 않을까 합니다. 정식으로 사자를 보낸 것도 아니고 그저 왜국대장군의 밀사라고 자처하는 자가 동경에 와서 살짝 귀띔했을 뿐이니 좀 더 파악한 연후 결정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사옵니다. 태자 전하의 장계에도 추후 더욱 파악한 연후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이규보도 최종준의 말에 동의하였고,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옳다. 그러나 만약 왜국에서 정식으로 파병을 청한다면 어찌하는가? 엄연히 저들이 우리에게 먼저 차병(借兵)을 청한 셈이니, 당연히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저들이 말한 대가로는 부족하니 말이다.”
“물론이옵니다. 하오나 폐하. 지금 태자 전하도 우선 파악을 해야 함을 주의한 것에는 지금 왜국의 밀사라고 자처하는 자를 보낸 자가 정말로 왜국의 대장군이 보낸 것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뭐라? 구주절도사의 인주가 찍힌 것을 들고 왔다고 하지 않았는가?”
“장계에 적힌 바로 의하면 분명 구주절도사의 인장이 찍혀 있다고 하지만 그 구주절도사 소이자능(少弐資能 쇼니 스케요시)이 왜국대장군과 손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집권(執權 싯켄)이라는 난신(亂臣)과 손을 잡고, 우리에게는 왜국대장군이 요청한 것처럼 속이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하면 사자의 신분조차 거짓일 수 있다는 말이냐?”
“아직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만 저들이 말하는 차병에 대한 대가들은 하나같이 애매하고 너무나 낙관적인 것이 많다는 전하의 보고와 내부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의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배후를 의심하는 최종준의 말에 정전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왜국의 요청도 혼란스러운데 그 요청하는 자마저 거짓으로 고하였다니.
만일 사자가 자신이 왜국대장군이 보낸 사자라고 신분을 속인 타인, 그것도 왜국대장군과 적대하는 세력이라면 이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어부지리(漁父之利), 좌향기리(坐享其利)를 노리는 행위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에 당하는 입장에선 자신들을 이용하기 위해. 정사도 밀사도 전부 사기를 치는 그 행위를 달갑게 여길 리 만무했다.
‘의심하고 보면 이상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야. 그 옛날 무부 놈들도 금의 개입을 배제하려고 하면 했지. 끌어들이려는 짓은 하지 않았거늘….’
무신정변 이후 고려의 무신들이 의종을 폐위한 이후 이것을 빌미로 금나라가 끼어드는 것을 경계하여 금나라의 책봉을 무사히 받아낸 유응규(庾應圭)를 두고는 문신이면서도 무신들조차 경의와 감사를 표했을 정도였으니, 비슷한 상황인 일본도 고려는 끼어들지 않는 것을 더 반기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의 밀사는 차병을 원하면서 대가는 조위총이 서경 이북 40여 개의 성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우호를 맺기 위함이라니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하오니 폐하. 만약 차병을 한다면 대가는 왜국 대장군이 알아서 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을 중점으로 계획을 잡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쟁취하라고?”
“예. 저들이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스스로 쟁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국의 우호적인 교린(交隣)이 중요하긴 하나 저들이 정말로 아조를 속이고 기만하고자 한 것이라면 아조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으니 이득을 쟁취하되 저들로서도 크게 할 말은 없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