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54장 수군(水軍)
선병도부서(船兵都部署)가 새로이 설치된 인주(仁州 인천광역시)의 해안가에서 수부들의 두 손과 두 발은 쉴 틈이 없었는데, 이때 중랑장 원민성(元敏成)은 해안가에 정박 된 다른 선박들보다 큰 함선을 보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저 배가 그 판옥선(板屋船)인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선병도부서 혹은 도부서(都部署)는 고려 전기부터 있던 해안의 방어를 위한 수군 전담 관서(官署)다. 이 도부서는 동북양계(東北兩界)의 도부서(都部署)와 동남해도부서(東南海都部署)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번에 인주에도 새로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이 인주선병도부서는 이번 고려 수군 재편 & 개편의 일부에 불과했다.
이시기 고려는 수군이 있으나 수도의 경군 6위 중 하나인 천우위(千牛衛)에 있는 해령(海領) 2천을 제외하면 조선 시대처럼 명확히 편제된 것이 아니라서, 전국의 수군은 육군이 수군을 겸하고, 선박도 필요에 따라 민간선박을 이용, 개조하여 사용하는 것이 다수였다.
그러나 이번에 조정에서 정식으로 수군 창설을 결정하면서 전국의 해안의 요충지에 수군 진영을 설치하고, 함선도 배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전국에 편제된 수군의 병력은 1만인데, 조선 시대 세종 시기 조선의 수군 병력이 5만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조선 수군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규모였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고려가 수군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작다고만 할 수도 없었던 것이 원 역사에서 고려의 중앙군 2군 6위가 장부상으로 봐도 4만 5천 명이라는 점이었다.
거기다 조선의 5만 수군은 어디까지나 태종~세종이라는 2대를 거쳐 이룩한 규모였기 때문에 몽골이란 강적을 앞두고도 수군에 1만이나 편제한 고려의 결정은 오히려 과감하다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었다.
“저 함선을 탄 아조의 대군이 왜(倭)를 정벌하는 것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원민성은 저도 모르게 오한으로 느꼈다. 과거에 없었던 거대한 함선과 바다를 메우는 함선들이 대대적으로 남정을 한다고 상상하니 전율한 것이다.
물론, 이런 원민성의 일본 정벌 상상은 망상에 가까웠지만 저렇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도 고려의 정식 수군은 1만일지라도 실제 원정을 한다면 1만이 아니라 수만 이상은 족히 가능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고려의 수군은 지방에서 민박 선박이나 기존 함선에 병사들을 급조하여 운용하였는데, 정식으로 수군을 편제한 지금도 그 급조하여 움직이는 이 방식을 완전히 폐하지는 않았다. 기존과 달리 상황에 따라 정식 수군을 중심으로 급조한 수군들이 더해져 운용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덕분에 만약 고려에서 바다 밖으로 원정을 나가고 대대적인 해전을 벌인다고 한다면 정식 수군 외에도 더 많은 수군들이 운용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던 것이다.
* * *
“이번 왜국의 일. 설마 전하가 꾸미신 것은 아니겠지?”
평장사 이규보가 반쯤 진심이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인지 질문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문하시중 최종준은 차마 아니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끄응. 만종, 만전의 사례나 구주나 동요, 남조의 사례를 생각한다면….’
최종준이 생각하기에도 이제껏 왕검이 보여준 행적들을 생각하면 아니라고 확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크흠. 이 인간이… 늙어서 노망이 들었나.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잊지 말게.”
“에구구. 늙어서 오늘내일하는 몸인데 이제 뭐가 무섭겠나.”
“무서울 거야 많지. 말년의 실수로 참수된 후, 그게 틀리기까지 하면 두고두고 우언거사(愚言居士)라고 불리면 창피 당할 테니 말이네.”
“…이, 이 인간이….”
우언거사라는 별칭은 이규보가 종종 스스로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소개한 것을 빗대어 어리석은 말이나 하는 거사라는 놀림이었으니 이규보는 얼굴을 붉히며 성을 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게. 자네가 보기에도 이번에 수군이 창설된 일은 크게 의심할 만하지 않는가?”
김방경의 수적들을 근절하고 탐라 왕자의 난을 진압했을 때에도, 송문주가 오키나와를 정벌했을 때에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에 북조로부터 목재를 값싸게 얻어 함선을 건조할 때부터 태자가 수군과 바다에 신경 쓰는 것 같은 모습들을 종종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정식 수군이 창설되었으니 이번 문제도, 왜국을 빙자해서 수군을 만들려는 태자의 계획이 아니냐고 의심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정에서는 전하께서 안배하신 해상정책을 보조할 수군을 만들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두 전하께서 안배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솔직히 말하게. 자네는 전하께 뭔가 들은 게 있지? 나보다 자네가 전하께 더 신임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도 묵비니 뭐니 하면 나도 자네와의 우애를 묵비해 버릴 줄 아세.”
“미안하네만. 이번 일은 나도 정말로 모르는 일이네.”
“진짜인가? 이후 사실 알고 있었다느니 말하면 자네와 나 사이 우정은 금 가는 줄 알게나.”
이규보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받은 최종준은, 자신이야말로 당장이라도 서경에 가서 왕검에게 이번 왜국의 일이 진짜가 맞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하였다.
* * *
서경.
“전국에 수군부(水軍府)를 설치하고 이미 지상군(地上軍)과 따로 수군을 편제를 시작하고 있다니 이 과감함과 신속함에 대해서는 참으로 대단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구나.”
수군 창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수군 편제의 발안자가 누구인지 들었을 때는 더 놀랐다.
“전하께서, 수문하시중한테 귀띔한 것이 아니옵니까?”
수문하시중 박서가 수군 창설을 건의하고 그게 넘어간 상황에 탄성을 내뱉는 내게 이장용이 놀라 반문하는데, 내가 박서에게 귀띔? 그런 거 없다.
“아니다. 나는 수문하시중에게 수군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언질을 준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이전부터 현재 고려의 수군에 대해서 개편의 필요성을 느끼고는 있었다.
해상왕국 고려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상권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판옥선도 그렇고, 4차 여몽전쟁에 배를 통해 군대를 움직이듯 나름 수군에 신경 쓰고 강화를 꾀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건 용강현의 군대 및 북방군 일부에 한정된 것이지. 조선 시대처럼 수군을 따로 편제하는 일에 대해선 당장 시행할 생각은 없었다.
이유는 내게 허락된 북방의 병력을 수군으로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전력이 분산된다는 점과, 이 시기 수군의 강화는 판옥선, 화포 구비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다는 점.
무엇보다 원 역사에서 이 시기 고려와 적이 될 이들 중 강력한 수군은 없었고, 해전이 커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당장 급한 것은 육지로 이어진 북방의 문제고 말이다.
그런데 해상무역에 이어 이번에 일본에서 온 밀사의 파병 요청 등으로 수군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강화되자 박서가 먼저 수군 편제를 건의한 것이다.
“전하. 이 시기 수군을 편제한다는 것은 조정에서는 왜국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방경은 수군이 편제된 것보다는 그 편제가 의미하는 문제를 상기시켰는데, 맞는 말이다. 수군도 수군이지만 지금은 수군 편제보다 일본의 문제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왜국의 일에 개입을 하게 된다면, 개입해 주는 대가를 왜국의 조정에서 얻는 것보다는, 그 옛날 구고려의 장수대왕(장수왕)께서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의 요청을 받아 군대를 지원한 것처럼 하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한 용성왕 풍군은 과거 중국 하북, 요서 지역에 있던 북연(北燕)의 3대 ‘황제(皇帝)’ 풍홍(馮弘)을 말한다. 북연이 북위에 밀려 위기에 처했을 때 풍홍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구원을 청했고 장수왕은 2만 대군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당시 북위의 군대가 강성하여 북연의 수도인 화룡성(和龍城 오늘날 중국 요령성 차오양시)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 피해가 클 것을 염두에 둔 장수왕은 화룡성에서 북위군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풍홍을 비롯한 화룡성에 주거하는 백성들을 고구려로 이주시키는 것으로 목숨을 구원해 주는 식으로 대응했다.
이때 고구려군은 풍홍과 북연의 백성들을 이주시킨 후 화룡성 내에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고 방화까지 저질러 일종의 청야전술(淸野戰術)로 북위에게는 타버린 성만을 남겨두고 돌아왔다고 했다.
다만, 북연의 입장에선 애초에 고구려에 파병을 요청한 것은 북위와 맞서 싸워달라는 뜻이었는데, 고구려의 대군은 성 밖을 나가 싸워주기는커녕 자신들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수도를 불태우고 약탈까지 하며 강제 이주를 시킨 것이다.
풍홍도 발등에 떨어진 불인 북위군을 피해 고구려가 시키는 대로 고구려로 망명하긴 했으나 세상사 망명 온 군주의 대접은 나라가 성할 때와 다른 법이었고, 부흥에 성공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법이다.
대개 망명 군주가 나라를 재건하는 방법은 외국의 군대로 본국의 땅 점유한 적들을 격퇴하거나 쫓아내는 것인데, 풍홍을 반강제로 망명시킨 고구려는 북연의 재건을 위해 군대를 일으키지 않고 그저 풍홍을 비롯한 그 왕족이 지낼 땅을 빌려주는 정도만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풍홍은 불만은 불만대로 쌓인 상태였는데 황제로서 고압적인 자세도 계속 고수했고, 장수왕은 장수왕대로 그런 풍홍을 비꼬는 겸 경고하였으니 그게 바로 방금 말한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라고 운운한 것이다.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이곳까지 와서 노숙하느라 군사와 말이 고달프겠소.
여기서 용성(龍城)은 북연의 수도 화룡성(和龍城)을 뜻하고, ‘풍군(馮君)’의 ‘풍(馮)’은 북연의 국성(國姓)이다. 비록 북연이 북위보다 국력이 약하여 북위에 조공을 보냈다곤 하나 황제를 자칭했고, 고구려와는 광개토대왕 시절부터 그럭저럭 우호적인 나라인 이상 제대로 예를 보인다면 상전인 황제라고 인정해 주지 못할지라도 옛 연나라 일대의 왕이란 의미로 ‘연왕(燕王)’이라고 불러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장수왕은 구태여 수도인 화룡성을 나라로 취급하고 그 나라의 왕인 용성왕(龍城王)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국왕(國王)도 아닌 지방의 우두머리급인 군왕(郡王)에 가까운 취급이었던 것이다.
이런 취급에 풍홍은 크게 화를 내고 계속해서 고구려의 땅에서 독립 세력의 군주인 양 행동하였고, 장수왕은 장수왕대로 태자를 인질로 잡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후 풍홍이 송(오호십육국시대의 송)에 몰래 망명하려고 하자 살해했다고 한다.
사실 고구려 입장에서는 군대를 보내긴 했으나 전투는 벌이지 않고, 약탈과 방화를 하였지만, 풍홍을 비롯한 북연의 지배층과 백성들의 목숨은 구해주고, 심지어 북위의 요청에도 번번이 거절했으니 북연의 요청에 체면치레할 정도는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손해보다는 이득이 컸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도움을 요청한 북연이 자의적으로 준 것은 없었고, 나라가 망해서 얻기도 힘든 상황에서 장수왕은 알아서 뜯어내(?) 이익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개경에서 박서도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는 것 같은데 나도 일본에 군대를 보낼 경우에는 이처럼 일본 조정에서 줄 것보다는 자체적으로 이득을 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솔직히 그냥 무시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진짜 쇼군이 보낸 것이고 이걸 무시했다가 대마도, 큐슈의 조공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차질이라도 생기면 이쪽도 손해니…. 쩝. 정말 굳이 보낸다면 이런 자세로 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유갑수의 들뜬 목소리가 내 귀에 파고들어 왔다.
“과연! 군을 보냈는데 저들이 풍군처럼 오만방자하고 배은망덕하게 군다면 저들의 도성을 불태우면 되겠습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