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60장 번한정책(蕃翰政策)(2)
오늘도 화살 50순(*1巡=5矢)을 쏘고, 서연(書筵)을 들으려는데, 북경에서 장계가 올라와 먼저 읽었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볼 만했다.
초반 내용들은 굳이 내게 보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북경의 토지 문제와 현지 주민 간의 판결 문제였는데, 일단 그 내용들 끝에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글들이 첨삭된 것을 보니 목적은 지원이라고 판단된다.
지원을 요구하면서도 내용들에 일하는 자의 성실함이 드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으나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런 것보다 이번에 북방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일에 대한 북방 무관과 유수의 안변책(安邊策) 내용이었다.
========================
(전략) …무릇 국가에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양계(兩界)를 도통(都統)하고 5도(五道)를 안찰(按察)하게 한 것은 관리의 간악함을 억제시키고 백성들의 고통을 막아보려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북경 밖 미타호에는 여전히 본조에 귀부하지 않은 호인(胡人)들이 많사옵니다.
본조가 전쟁에서 승전을 하고 북방으로 위명을 떨친 지가 수 해가 지났으나 갈라전 전부가 온전히 평정되지 못해 병사들이 아직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군량의 소모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동북쪽 야인들과 이웃하여 경비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북경 병마판관(兵馬判官) 명준은 금년 본조가 북왕가를 토벌한 호수(미타호)에서 군을 조련하고자 진군하였다가 호인(胡人)들과 마찰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작금의 고단함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미타호를 비롯한 북경 이동 갈라전의 귀속 문제는 북주(北主 여기선 몽골의 대칸을 말함)가 귀환한 후 결정되는 일이라곤 하나, 귀환하기 전까지 그곳에 군을 보내 군사를 조련하자는 것은 다름 아닌 전하의 뜻이며, 조정에서도 결정한 것입니다. 하면 이후로도 보내고, 야인들이 그곳을 점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곳에서 세를 거두는지는 차차 하더라도 요충지에 군진을 설치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토착인 가운데 아조에 귀의하려는 자를 그 지역의 호족으로 삼고 스스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시옵소서.
이는 문종대왕 시절 번인들이 귀순을 청하자 문종대왕께서 그들을 번한(蕃翰: 천자를 호위하는 제후국)으로 만들어 국토와 변방을 평화로이 다스린 것과 같사옵니다. 대체로 이번의 문제 또한 그와 같으니 번인들에게 주기(朱記)를 하사하고 귀순주(歸順州)에 소속시키십시오.
이번에 저들을 토벌한 병마판관 명준 또한 여진 소우나를 북경에 보낼 때 올린 보고에 의하면 (미타호)이동에는 이들 부족 외에 강대한 부족이 있을 것을 경계하여 이들을 미타호는 아니더라도 인근에 정착시켜 귀순주로 편입하여 이동의 야인들이 내려오는 것을 견제하고 그들도 본조의 번한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하였사옵니다.
전하. 병마파관의 말대로 미타호에 군진(軍陣)을 설치하고, 이곳에만 군을 보내 주둔시킨 후, 주변은 귀순한 번인들에게 도맡아 다스리게 하면 경군(京軍 여기선 북경의 군대를 말함)들은 교대로 경비하는 고생을 면할 수 있으며, 말먹이와 군량을 급히 운반하는 데에 드는 비용을 덜 것입니다. 하니 이것은…(이하 생략)
========================
이 글을 읽고 내가 여태까지 북쪽과 서쪽에 대해선 신경 썼으면서 동북쪽에 대해선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옷치긴 왕가와 동요, 몽고 등이 강적이니 그곳에 신경 쓰는 게 당연하고, 동북쪽 동만주 지역은 전근대 대부분 땅이 척박하고 사람도 적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그리고 내가 한 짓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동쪽으로 도망간 잔당들에 의해 기존 동만주(연해주) 지역의 인구가 급증하고 외부의 문물도 강제로 들어갔으니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떠올릴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몽골과 옷치긴에 신경 쓰고, 원 역사에 기록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으니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만일 명준이 이번에 미타호에서 대패했다면…
북방에 힘들게 쌓아온 고려의 위상이 바로 무너졌을 것이다.
—같은 일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체면이 손상되고 이것을 복구하기 위해, 그리고 생각보다 커진 동만주 문제에 무력 토벌도 진지하게 논의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준이 승리하면서 적어도 위신 회복 및 서열 확인을 위한 무력 동원에 대해선 다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입장을 만들어주었다.
‘옷치긴 왕가 문제를 해결한 이상 동북쪽은 더 이상 신경 쓸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내가 역사를 개변한 일로 동북쪽에 새로운 세력이 탄생하여 고려가 곤란해질 뻔했다니 웃을 수가 없군.’
그리고 그런 예상하지 못한 동북의 신진세력들에 대한 대비와 관리에 대한 왕해와 명준의 의견도 제법 공감이 간다.
북경 이동은 영토적으로나 현 고려 상황으로나 거길 직접 관리하는 것은 힘들고 불필요하다. 그래서 그냥 놔두려고 했으나 그것도 이번 소우나라는 여진 기병 사건으로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고작 9백 명이 뭐라고 불안하냐고 할 수 있는데, 그 9백 명이 전부 전투의 경험도 풍부한 기병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 수가 고작 한 부족에서 나온 것이며 전력도 아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리고 그런 세력이 동북에 더 있다면, 북경 이동의 여진들이 고려라는 나라와 대적할 수준은 안 되더라도 변방을 위협하고 전쟁에 영향을 줄 정도는 돼버린다.
그렇다고 군대를 보내 토벌하고 그 빈 땅에 남, 북 갈라전처럼 백성들을 이주시킨다면, 당장의 세금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고려가 송화강 이동 전역을 분쟁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모습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안 그래도 패해서 기분이 상해 있는 옷치긴 왕가에 빅엿을 먹이는 짓거리다.
옷치긴 왕가와는 이제 나름 화합하고 카라콜룸의 오르도들을 견제해야 하는 상황에 불화는 바둑으로 비유하면 악수(惡手)에 해당한다. 적어도 직할지로 만드는 것만은 피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기미주(羈縻州) 그러니까 자치주(自治州)로 만든다면 고려가 직접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서 변명할 요소는 되고, 고려 내부로도 기미주로서 고려의 동북번(東北藩)이라고 하여 오히려 북진정책을 한 것으로 선전할 수도 있다. 또한 그들 중 친고려파를 골라 원역사에서 없는 새 군벌들을 견제시킬 수도 있다. 뭔가 금나라나 명나라가 몽골과 여진 부족들에게 한 것이 연상되는 느낌이 들지만, 다르다. 그리고 적어도 여몽 대전에 집중할 시간은 벌 수 있다면 된다.
‘이것에 대해선 옷치긴 왕가에게도 적절히 설명해 줘야겠지. 저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각장도 추가로 열고, 설득을 위한 재화도 소비해야 하니 결국 예상에 없던 지출이 또 늘었군, 그래도 숨겼다가 들키는 것보다는 나으니….’
* * *
미타호에서 일어난 일들과 왕해가 올린 안변책(安邊策)이 적힌 장계를 받은 조정이었지만 바로 공감하던 왕검과 달리 이번 기회에 송화강 이동 동북여진을 토벌하고 복속시키자고 주장하는 강경파와 안변책대로 입조를 허락하고 귀순주로 자치주로 삼자는 온건파로 양분되었다.
강경파들은 말했다.
“장계의 내용을 보아도 저들의 본래 목적은 미타호를 취하려고 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소. 지금 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입으로는 입조를 원한다고 하지만, 그 속내는 이번에 패해 잡힌 제 부족의 사람들과 군마를 돌려받기 위한 것이 분명한데,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오?”
“맞소! 저들을 순순히 놓아주었다가는 사로잡은 도적을 그냥 놓아주는 꼴이 되는 것이오. 그것을 본 다른 야인들도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찌 장담하오? 호부에서는 토벌을 위한 군을 일으킬 시 소비되는 돈은 걱정하나, 조기에 잡지 않을 시 생기는 피해에 대해선 무지한 것이오?”
“지금 소관이 국비를 걱정해 나라의 변방 문제를 소홀히 한다고 말하는 것이오?”
“아니오이까?”
“폐하. 저들이 의도하였든 안 하였든 본조의 장병들을 살상한 것은 죄가 분명합니다. 하오니 저들의 입조를 받긴 하되, 이번에 잡은 이들은 놓아주지 않고, 추장의 아들이라는 소우나 또한 황도에 국자감에 들여 본조의 예화(禮化)를 익히게 하도록 하시옵소서.”
소우나로 하여금 황도의 국자감에 익혀 예화를 배우게 하라는 말은, 좋게 말하면 유학을 다니게 하라는 말이지만 그 실상은 인질로 잡자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얼마 뒤 북방에서 올라온 2개의 서찰로 싱겁게 해결되었는데, 이 중 하나는 미타호에 있던 병마판관 명준으로부터 보내진 서찰이었다.
서찰에는 소우나의 아버지 노추 흑고대가 미타호에 있는 고려군이 먹을 식량을 비롯한 모피를 선물하고는 미타호의 군진 설치를 도와주며 정식으로 입조의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흑고대 부족은 미타호에 이주하는 것을 단념할 것을 천명하고, 고려가 미타호까지 진출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이었기에 강경파들의 염려하던 미타호를 노린다는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이었고, 동시에 미곡 100석까지 선물로 보낼 정도로 식량이 충분하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더해 이어 날아온 서찰은 바로 북방 방면의 사실상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태자 왕검이었는데 거기에는
“북경유수와 병마판관이 직접 보고 판단한 것이라면 그 의견에 찬동한다.”
-라고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동의를 나타냈다는 점이다. 고려의 실권을 쥐고, 북방을 관리하는 흑태자가 동의하자 조정에선 더 이상 양립할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흑태자의 위세가 무서워 강경파들의 북벌론이 사그라든 것이 아니라 북방을 관리하고 실정을 잘 아는 태자가 동북토벌에 대해 미온적으로 보였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고려에서 제일 북방에 대해 잘 아는 장수가 지금 북벌을 할 상황이 아니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정은 즉시 안변책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시작되었다.
“저들의 설명과 학사들의 말들을 고려하면 지금 흑고대라는 야인이 근거지로 삼은 오소리강 의 장소는 옛 발해의 안원부(安遠府 오늘날 중국 헤이룽장성의 푸진일대로 추정)의 영주(寧州)가 아닌가 하옵니다.”
“저들의 정성이 갸륵하니 장차 극동북여진들을 통어하는데 다루고 싶도다. 어찌하면 좋은가?”
“우선 직첩을 하사한 뒤, 그의 속내를 파악함에 따라 미타호의 일부에 이주를 허락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미타호에 이주를 허락하자는 말이 처음 나왔을 때에 임금을 비롯한 신하들은 우려했지만 입을 연 판이부사(判吏部事) 최자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미타호는 넓고 크옵니다. 하여 옛 발해도 동쪽으로는 안원부(安遠府)의 미주(郿州)를, 서쪽과 북쪽으로는 동평부(東平府)의 타주(沱州)와 이주(伊州)로, 남쪽은 솔빈부(率賓府)로 비정되었을 정도입니다.
북경 병마판관 명준은 미타호에 군진을 설치하여 동북의 여진들을 통어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으나 현실적으로 아조는 미타호 전역을 군에 배치하는 것은 북왕가를 비롯한 북조와의 관계를 시작으로 여러 이유로 어려운바, 군진은 북경에 가까운 서쪽에 한곳에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대신 흑고대로 하여금 매년 군마를 바치고, 변경을 수호하기를 맹약하게 한 뒤에야 주기를 하사하여 미주를 관리하도록 하게 하시옵소서. 하면 흑고대의 세력은 미타호 동북에 위치한 아조의 번한의 형세가 되어 제 스스로 다른 호인들을 막아 번한의 역할을 다할 것이며, 아조가 이렇게 흑고대를 대접해 주면 다른 극동여진인들도 흑고대와 같이 귀의할 것이옵니다.”
만약 그곳에 왕검이 있었다면 최자의 말에 크게 공감을 하는 한편, 동시에 고려 땅도 아닌 땅을 주면서 최대한 뽑으려는 것에, 대동강 팔아치운 봉이 김선달 이야기를 떠올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