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468
468화
63장 후일담 외전(1)
요양성.
“고려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고 들었는데?”
“고려와는 국경을 마주한 이웃 나라로서 교린을 하는 것뿐입니다. 고려도 대국(몽골)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거늘, 아조가 어찌 대국을 두고 고려에 빌붙겠으며 나아가 다른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들과 각장과 무역하는 일도 선대 칸 시절부터 대국에서 내린 지시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고려와의 관계로 책이 잡히지 않기 위해 야율수국노는 창자가 뒤틀리는 마음으로 마음에도 없는 고려의 무고함도 변명하였다. 다행히 아리크부카는 그 이상은 묻지 않은 채 그대로 대접한 양고기를 뜯어 먹으며 넘어갔다.
“알았다.”
“예.”
도저히 일국의 왕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위였으나 야율수국노는 아무런 항변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 내에도 중원식 외교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들도 있었지만 아직은 여전히 유목민 시절의 태도와 사고를 고수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눈앞의 아리크부카는 명백히 후자에 속했고 말이다.
그런 유목민 황자의 방문은 안 그래도 고려의 문제로 혼란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던 동요국의 조정과 수국노를 더욱 고난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아조와 고려의 관계를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듣건대 몽고 황자 아리크부카는 지난 고려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웠으며, 본인 또한 고려에도 적지 않은 반감을 가진 자로 알고 있사옵니다.”
그 와중에 동요국의 몇 남지 않은 반고려파의 인사가 몰래 수국노를 찾아가 자기 나름 충언을 간했다.
고려의 간섭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지금, 강국인 몽골을 끌어들여 고려를 몰아내자는 그 주장은 일견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으로 동요국은 별 힘 안 들이고 고려를 몰아낼 지혜로운 지략 같다고 그들은 판단하였고, 수국노도 잠깐 생각해 봤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였다.
“그럴 수 없다. 몽고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으나 과연 몽고가 제힘만으로 고려를 치러 들겠느냐? 십중팔구 아조에도 병력을 차출하라고 지시를 내릴 것이다. 그러나 작금 아조는 지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로 병력이 부족하고, 얼마 남지 않은 병력도 서정에 차출되었다. 여기에 이번 사화(士禍)로 많은 선비들과 장수들까지 목숨을 잃었는데 무슨 병력이 있겠느냐?”
“우리가 줄 것이 없으니 저들은 결국 제힘만으로 해결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근시안적 판단이다.”
수국노가 반대하는 이유에는 이미 한차례 어부지리를 노렸다가 겨우 구축한 세력이 죄다 날아간 경험을 하고도 또 비슷한 책략을 시도하는 것에도 주저함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고려만 몰아내면 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가 얼레빗(梳子)이라면 몽고는 참빗(篦子)과 같다. 잘못하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는 일을 순간의 치기로 할 수는 없지. 거기다 이번에 온 몽고 황자는 그 유명한 몽고의 탕아(蕩兒).
고려와의 전쟁에서 승전을 거둔 장수라고 하지만, 정작 그 전투 자체가 쓸모없다 못해, 되레 몽고를 난처하게 만든 것이라고 선왕께 들었거늘, 하면 전략적 식견은 부족한 자가 아닌가?
그런 자를 믿고 고려와 다시 부딪히는 것은 아니지. 아니야. 설령 그가 승리하더라도 그것이 여진놈들을 끌어들인 송과 같은 것이라면 안 하니만도 못한 것이야!’
* * *
4차 여몽 전쟁 이후 아리크부카의 평판은 다양하게 있었다. 일단은 전쟁 당시 유일하게 승전을 거둔 것은 사실인지라, 그것만을 보고 ‘위대하신 칭기즈칸의 손자다운 몽골의 맹장’이라며 옹호하거나 찬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반대로 쓸데없이 움직였다가 골치 아픈 일을 만든 망나니에 불과하다며 질타하는 자들도 많았었다.
대개 전자는 당시 전쟁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이나 아래에 위치한 이들이었다면, 후자는 그 전쟁에 참전한 머리 있는 장수들과 대칸의 측근들과 아리크부카의 형제가 ‘속해 있었던’ 툴루이 울루스 측이었다.
특히 그때의 일을 무마하기 위해 아들뻘에 가까운 조카 구유크와 재혼하게 된 친모 소르칵타니와 구유크의 아들이 된 형제들 사이에서 아리크부의 취급은 이전과 달라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대칸의 조카’에서 ‘대칸의 손자’가 되었으니 일견, 신분이 상승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정작 새 아비가 차기 대칸이 될 가능성이 낮은 구유크라, 그냥 거대한 세력인 툴루이 울루스의 주인 툴루이의 자식일 때가 훨씬 나았다.
실제 그것을 알기에 소르칵타니도 첫 재혼은 거절하며 톨루이의 아내라는 신분을 고수한 것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대칸에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구유크가 서정에서 대칸에 등극하게 되면서 계승권과는 전혀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한 소르칵타니의 친자들도 졸지에 ‘몽골의 황자이자 대칸의 자식’들이 된 것이다.
물론, 대칸의 자식이라고 해도 친자가 아니었으며, 구유크의 친자가 나이도 어린 만큼 막내도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계승권에서 까마득히 멀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가까이 접근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소르칵타니 일가가 이전보다 대출세를 했다고 할 정도도 아니었고, 아리크부카 또한 손가락질 받던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은 대칸의 아들이 되면서 다소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었는데 어느 날 소르칵타니가 아라크부카를 부른 것이다.
“근래 요하 이동에 고려인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네가 요동에 가 보거라!”
“가서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돌아보고 그곳의 일을 알려다오.”
“알겠습니다. 어머니.”
소르칵타니가 구태여 아리크부카를 부른 것은 제 아들이 그 일 이후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지만, 세간에서는 대고려전에서 승전한 장수라는 헛된 명망도 있으니 요동에 가면 무엇인가 반응이나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과 함께 이번 공적을 거두면 지금 받는 시선이 조금이라도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모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간 아라크부카는….
“이럇!”
“아리크부카 님! 거기로 가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것으로… 11마리!!”
부하의 몰이로 사냥감이 지척에 당도하며 기회를 잡은 아리크부카는 재빨리 말 위에서 활을 쏘아 토끼를 쏘아 잡았다.
“과연 아리크부카 님이십니다!”
“예.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 아리크부카 님보다 사냥을 잘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흠흠. 아부가 과하군. 내일은 저기서 사람을 모아 크게 해보고 싶군!”
소수의 인원으로 사냥을 즐기던 아리크부카는 이번에는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몰이 사냥을 해보고 싶었기에 사냥하다가 도착한 안동성에서 인원을 모아 사냥을 하자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부하들은 우려의 반응을 내비쳤다.
“아리크부카 님. 저곳은 동요의 성이 아니라 고려의 성입니다. 소르칵타니 님께서는 동요에 가보라고 한 것이지. 고려에 가보라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칫 고려와 마찰이 생겼다가 일이 생기면 아리크부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지만 아리크부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보고 요동에 가라고 하셨지. 딱히 동요국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려가 뭐 어쨌단 말이냐! 고려는 몽골에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느냐? 잔말 말고 내 말을 따르도록 하라.”
* * *
“송구하오나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아리크부카의 방문에도 유준공은 친히 객관까지 안내하며 융숭히 대접했지만, 사냥하기 위해 병사들과 사람들을 달라는 아리크부카의 요청에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뭐라고?!”
“분명 아조는 제후국으로, 소관이 이렇게 전하를 대접을 한 것도 대국의 태자를 접대하는 예를 다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전하의 사냥을 위해 성의 병사들을 차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옵니다.”
“네 이놈! 죽고 싶으냐!”
“네놈 따위의 의견을 구했더냐?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이다.”
안동성에 가려던 아리크부카를 말리던 부하들도 ‘안동성각장한림태수(安東城 榷場 翰林 太守 안동성의 각장도 담당하는 한림직과 태수)’ 유준공의 단호한 거절에, 이전의 우려한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노기와 함께 살의를 드러냈다.
아리크부카도 입은 열지 않지만 그의 단호한 거절에는 불쾌감을 느끼며 노려보았는데 유준공의 대답을 철회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각장을 열어 관리하기 위한 병력만 하여도 벅찬 상황인데, 여기서 외국에서 사냥할 병력까지 보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닥쳐라! 솔호(고려) 놈들이 몇 번 승리를 하니 건방지기가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라고 들었으나 이 정도로 건방지단 말이냐!”
그렇게 말하고는 부하들은 주먹으로 유준공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유준공도 설마 정말로 때릴 줄은 몰라 맞았는데, 그것을 보고도 화를 풀리지 않은 다른 부하는 외쳤다.
“비켜! 내가 저 솔호 놈을 베어버리겠다.”
“흐윽!”
그리 말하며 정말로 칼집에 손을 대자 유준공은 깜짝 놀라 빠르게 일어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객관 문밖으로 달아났다.
“하하하. 저 꼴을 보게. 완전 토끼나 다를 바 없군.”
“몰이 잘하는 놈들로 데려와라! 이놈!!”
꽁지 빠져라 도주하는 그의 모습에 아리크부카의 부하들은 비웃었고, 아리크부카도 그제야 노기가 풀렸는지 히죽 웃으며 부하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웃었다.
“흠흠. 그만두거라.”
문이 닫히고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
문밖으로 도망간 유준공이 문의 자물쇠를 채운 것이다. 당연히 이번에는 그곳에 갇혀 있던 아리크부카 일행은 당황할 차례였다. 어느 누가 몽골 제국 황자 일행을 가둘 것이라고 예상을 했겠는가?
쾅! 쾅! 쾅!
그리고 그 당황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었다. 부하들은 주먹으로 문을 두들겼으나 두꺼운 참나무로 만든 문은 요동도 하지 않았다. 영락없이 감금된 것이다.
“이, 이놈들이! 진짜 미쳤구나!!”
그래도 저 고려인이 아무리 미쳐도 자신들을 굶겨 죽일 생각이 아닐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킨 그들은, 문이 열리는 즉시 자신을 가둔 유준공을 죽이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예상대로 문밖에서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부하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감히 우릴 가뒀겠다!!”
쾅!
서서히 열리는 문을 거칠게 발로 차서 연 뒤, 검을 빼 든 부하들. 그것은 당연히 유준공을 위협하고자 한 행위였고, 막을 자는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으나 그들은 얼마 안 가 이상함을 느껴야 했다.
“…….”
“…….”
문밖에는 적게 잡아도 수십은 되는 장정들이, 그것도 한 명 한 명이 모두 제대로 된 갑옷과 무기를 갖춘 병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칼을 뽑아 든 아리크부카의 부하들을 보곤 즉시 창을 들어 당장에라도 찌를 듯 자세를 갖추었다.
“이놈! 누구에게 창칼들을 들이미는 것이냐!”
“네놈들. 설마 정말로…!”
자신들을 가두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무장한 병사들을 데려온 유준공의 처사에, 진짜 죽이려는 것이라고 판단한 부하들은 즉시 아리크부카를 지키기 위해 문을 사수하였다. 거친 성정과 별개로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쉬이 방어하기 위해 좁은 문을 가로막은 것은 그들이 진짜 뛰어난 전사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오냐.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너희들을 조금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 주마!!”
그리고 뒤에서 그걸 지켜보던 아리크부카도 어차피 도주할 곳도 없다고 확인하고는, 함께 싸우기 위해 칼을 뽑아 들어 앞으로 나섰는데,
“그만! 모두 그만 무기를 내려라!”
‘그’는 창칼을 들이밀고 경계하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서 검은 망토와 도포(道袍)를 흩날리며 걸어 나와 아리크부카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모든 이목은 그에게 집중되었고, 정면에 있던 아리크부카와 부하들은 그가 누군지 눈치채고는 안동성에 들어온 이래 가장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는 아직도 당황하며 검을 내리지 않는 아리크부카 일행들에게 다가가, 검의 거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멈추고는 그들과 같이 무기를 들고 있는 채 대치하고 있는 고려 병사들을 보며 짐짓 꾸짖듯 지시를 내렸다.
“너희도 무기를 내려라!”
“하지만 전하!”
“내리라고 하였다!”
그의 말에 고려 병사들은 당황하면서도 하나둘씩 무기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그는 이번에는 아리크부카의 일행들에게 고개를 돌려 무언으로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쪽은 무기를 내렸는데 그쪽은 계속 무기를 들고 있을 것이냐? 는 듯한 그 시선에 아리크부카도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니 부하들도 이어 내렸고, 일촉즉발의 칼부림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이 된 것이다.
사태가 무사히 해결되자 그는 아리크부카에게 인사를 건넸다.
“고려국 왕태자 왕검. 대몽골국의 황자. 아리불가(阿里不哥) 전하께 인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