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
5화. 5장 어린 왕자의 어린 화살
“서경을 위무하러 가는 황자 전하의 호위무사로 둔다면 용호군 소속으로 배치하는 것이 나을터인데, 별장(정 7품)직으로 보내기엔 그가 하고 있는 감찰어사(종 6품)보다 품계가 낮으니 용호군 낭장(郎將 정 6품)직을 내리도록 하겠소.”
“청하상국의 뜻대로 하시지요…”
“그러면 이후 대비는 이것으로 마치고 현재의 문제를 논하려고 하네. 생각한 바는 있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자신이 총애하는 김방경이 승직된 것에 최종준은 기뻐하며 다음 책을 내놓았다.
“그에 대해선 서경으로 군대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군대를 보내라 하시었소?”
“그렇습니다. 황자 전하가 서경에 간 이상 몽고적들이 서경을 노릴 것은 당연지사. 또한 옛 현종 대제 시절 거란의 왕이 쳐들어오자 서경에선 배반을 하려 한적도 있습니다. 이를 대비해서라도 경군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 옵니다. 무엇보다 피해야 할 것은 전하께서 있는 상황에서 서경이 배반하거나 몽고적들에게 함락되는 것이온데, 그렇게 된다면 민심은 물론, 군의 사기도 흔들릴 것이니 서경의 성벽을 방패로 몽고적들과 싸워 다른 종친들을 올려보낼 동안 서경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수 밖에 없는 건가. 알았소. 그렇다면 도방에서는 이 일에 대해 논의를 하여 서경에 보낼 군을 정하도록 하게. 서방에서는 이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더욱 궁리하시오.”
“알겠사옵니다. 그렇다면 올려 보낼 장수로는….”
* * *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여몽 전쟁 시기 고려의 어린 왕자로 빙의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살아간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 동안 이 시대와 어린 몸에 익숙해진다고 정말 고생했다. 뭐, 진짜 고생은 시작도 안했지만 말이다.
“전하. 그 화살은 뭔가 짧아 보입니다만? 혹여 부서진 화살이라면 소장이 새로 만들어드리겠나이다.”
반란 진압의 공으로 승급한 척 별장이 내 말 안장에 걸린 화살통에 들어간 화살을 발견하곤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내 화살통에는 길이가 일반 화살의 반은 커녕 반의 반 남짓한 길의 짧은 화살들이 들어있었다.
“척 별장의 마음은 고마우나 그럴 필요없다. 그것은 부서진 것이 아니라 과인이 만든 화살이니라.”
“그 대나무 통은 작은 화살을 쏘기 위한 보조 도구인 것인지요?”
“그렇다. 눈썰미가 좋구나.”
척인사는 단번에 작은 화살을 이용하기 위해 필수 도구인 통아의 용도를 간파한 것이다. 내 화살통에 있는 것은 편전[片箭]으로도 불리는 ‘애깃살’인데, 대나무 관으로 만든 통아(덧살이라고도 한다.)를 이용하여 쏠수 있었다.
애깃살은 겉보기에는 일반 화살보다 작아 약해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멀리 날아가고 위력도 강한데다가 화살 길이가 짧기 때문에 보통 화살에 비해 날아오는 것이 잘 보이지 않으며 무엇보다 통아가 없으면 적이 줍더라도 사용할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서는 군사기밀로 다루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운이 좋게도 전생에 이 편전을 쏘아본 적이 있었고, 편전에 대해 알고 있어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역수 녀석의 말로는 이 애깃살이 나온 건 대몽항쟁 시기에 한 장군이 화살이 부족하여 4개로 잘라 사용한게 시초라고 하였는데, 여기선 내가 시초가 된걸로 전해질 것 같다. 공을 날치기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이건 쓰지 않을수가 없다. 다만, 아직은 시중에 내보내지 않았다.
“과인이 아직 어리다보니 일반 화살을 사용하면 빨리 지치어 이렇게 만든 것이다. 그대들은 이 화살에 대해 괘념치 말라.”
“알겠습니다.”
척인사와 달리 유갑수는 처음부터 편전에 대해 별것을 아낀다는 표정으로 짓고 있어 이 말에 정말 신경을 안쓰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이 둘은 개경에 머물러도 좋다는 내 말에도 나를 따라왔다. 그러나 척인사와 다르게 유갑수는 어쩔수 없이 온것처럼 불만의 기색이 종종 보이는데. 생각해보니 왕자를 호위하러 같이 돌아온 무인이 왕자를 두고 가만히 있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가시방석이긴 할듯 했다.
“그나저나 언제 도착하나. 늦지 않아야 할텐데….”
아직 말 타는 것이 미숙하다 보니 지체가 된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서경에 파발이 도착하여 내가 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 * *
지난 전쟁에서 몽고군을 상대로 함락되지 않은 굳건한 서경의 성벽도 발이 없는 말만은 막지 못하는지 서경 거리 여기 저기서 소문들로 들썩이고 있었다.
하나는 머잖아 작년에 고려 땅을 들썩인 몽고군들이 다시 고려로 쳐들어와 북방을 불바다로 태우고, 고려 왕실이 버린 서경도 불바다가 된다는 것이다.
“몽고군과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이야. 몽고군과 맞서 싸운 평주(平州)가 어떤 결말을 맞이 하였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정녕 황도의 군대가 우리를 구해주러 올 것 같은가?”
평주는 지난 1차 침략 때 살리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에 의해 불바다가 되었고 그곳의 주민들은 모두 죽거나 끌려갔는데 이런 몽고군의 악명에 서경의 백성들은 몽고군과 싸우는 것에 공포를 떨고 반발하고 있었다. 이 반응에는 한때 태조의 유훈으로도 중히 쓰라며 역대 왕과 왕족들이 자주 들락날락거리며 주거하던 서경이 묘청의 난 이후 모든 지위를 상실하고 이후로도 조위총의 난과 최광수의 난 등으로 등한시되며 사실상 반역향으로 찍혀 고려 왕실에 버려졌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고려 왕이 수도를 버리고 간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그 반발과 불신이 커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수 있었다.
“대장군! 거리에 퍼진 소문이 사실이 옵니까?”
그러나 불안과 공포만이 가득하던 서경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개경에서 온 파발이 전해온 소식 때문이었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무려 100여년 만에 일어나는 고려 왕족의 서경 방문이 되기에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고자 서경낭장[西京郎將:정 6품직]은 곧바로 중앙과 가장 밀접한 서경안무사[西京安撫使] 대장군인 민희를 찾아갔다. 그곳에는 자신만이 아니라 이미 서경의 여러 사람들이 시중에 퍼지는 소문을 파악하고자 찾아와 방안은 이미 가득 차있던 상황이었다.
“거리에 퍼진 소문을 들으셨습니까?”
“허허허. 설마 이렇게나 빨리 퍼졌다니 놀랍군.”
“대장군. 속시원하게 말하여주시옵소서.”
“그렇네 요전에 황도에서 전령이 내려와 장차 대고려국을 다스릴 황자 전하께서 서경에 오실 것이라고 전하였더군.”
“그, 그럴수가. 그렇다면 일황자 전하께서 직접 오신다는 것입니까? 믿기지가 않습니다.”
“허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 서경이 어디란 말인가. 그 옛날 우리의 전신국인 고구려의 수도였고, 태조 대왕께서도 중한 곳이라고 유훈을 남기신 곳이 이 서경이 아닌가? 비록 묘청이나 조위총 같이 난신적자들이 난을 일으킨 탓에 지금은 예전에 비해 대우가 박해진 감이 있으나 어찌 고려 황실에서 이곳을 저버리겠는가.”
“그,그런 것입니까?”
서경안무사 대장군 민희는 왕자의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현 서경의 불안한 민심을 진정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간파 하였다.
원래 서경은 고려 전기만 하더라도 고려의 왕과 왕족들이 숱하게 왕래하고 거주, 그리고 분사제도까지 실시 되었을 정도로 왕도에 준하는 취급을 받았던 만큼 서경 사람들의 자부심 또한 여타 어느 지역민들 보다 높은 편이었다. 그러한 서경이 묘청의 난 이후 수도로서 지위를 사실상 잃게 되면서 서경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서경 사람들 마음 속에는 고려 왕실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섭섭함 그리고 옛 지위를 다시 찾고자 하는 마음을 속 한켠에 품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애증의 감정 속에서 고려의 (사실상) 세자가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 방문한다는 것은 서경 사람들에게 아련한 옛 서경의 영광을 연상케 해준 것이다.
“암 그렇고 말고, 그것이 아니라면 어찌 일황자 전하께서 이런 상황에 서경을 방문하러 오시겠는가. 이곳이 어딘가?”
“그. 그렇고 말고요. 이곳은 고려의 서쪽 수도입지요!”
“맞습니다. 옛 고구려의 수도를 어찌 버린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모두들 생각해보게. 황상께서 강화로 가셨지만, 정작 일황자 전하께서는 중경에 환도한 뒤 곧바로 이곳에 오고 있는 의미가 뭐겠는가? 그것도 가까운 남경이나 안전한 동경이 아닌 구태여 이 서경에 온 의미가 말일세!”
“그, 그 말씀은…?”
민희의 말이 계속 될수록 서경의 귀족들과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점점 기대와 희망의 미소를 떠오르기 시작했다. 열기가 점점 가속화 되가는 분위기 속에서 그때까지 잠자코 듣고 있던 서경낭장은 다급히 입을 열었다.
“대,대장군. 황자 전하를 돌려보내셔야 합니다!”
“낭장.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그 발언에 장내의 시선은 모두 그 주장을 내뱉은 서경낭장에게 향했다. 그 시선들은 상당수가 놀라거나 혹은 적의가 들러났는데 그들의 입장에서는 100여년만에 일어나는 지위 회복에 초를 치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서경낭장은 그들의 시선 속에 담긴 감정과 생각들을 깨닫고는 당황하면서도 재차 주장하였다.
“화, 황자 전하께서 우리 서경을 바, 방문하시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오나 지, 지금 북방은 결코 안전하지가 않사옵니다. 혹여라도 전하께서 이곳에 왕림하셨다가 몽고적들이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서경의 평가가….”
“아, 그것이라면 안심하게.”
“그렇다면?”
안절부절하는 서경낭장[西京郎將:정 6품직]의 질문에 민희는 그 걱정 말라는 듯 느긋한 어조로 답하였다.
“지금 강화에서 이(李) 상장군께서 이끄시는 군대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네. 그들이 온다면 지난 전쟁에서도 이 서경을 함락하지 못하였던 몽고적들이 어찌 성벽을 넘을수 있겠는가?”
“그…그럴 수도 있사오나 그래도.”
“장군? 그 말씀은 황상에서 북방을 구하고자 군대를 보내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부처님께서 우리 서경을 버리지 않으셨구나.”
“살수 있어. 살수 있다고!”
“크흐흐흑. 황상 폐하께서 이렇게나 우리 서경을 신경써주시거늘. 거리에는 배은망덕하고 망측한 소리가 들리니… 같은 서경 사람으로서 부끄럽구나.”
“황자 전하 천세! 황제 폐하 만세!! 대고려국 만만세!!”
“만세! 만세!”
이에 서경 낭장이 당황하며 재차 뭐라 말하려고 하였으나 지원군이 온다는 말에 더욱 지위 회복의 꿈이 가까워진 서경 사람들의 열광과 기세에 묻혀 사라졌다.
왕자와 중앙에서 오는 군대의 증원. 만약 전쟁이라도 난다면 근방 군대와 지역에 영향력일 떨치는 곳이 어디가 될지는 일목 요연하다. 더욱이 무서운 몽골군을 격퇴하고 서경을 지키기 위해 군대가 온다는 것에 감정이 격한 자들은 아예 눈물을 흘리고 개경이 있는 방향으로 절을 하며 이 자리에 없는 왕자와 왕을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두가 열광하는 그 상황 속에서 서경낭장만이 뭐라도 씹은 표정을 지으며 침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