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04
504화
16장 동호문답(東胡問答)
고려의 왕태자가 돌아간 다음에는 남송 황제 조윤은 왕태자가 남송에 기거하고 있는 동안 나눈 문답을 발췌한 기록을 받고는 직접 정리하여 (뭔가 대화를 나누었던 왕검이 보면 요지는 맞지만 이렇게까지는 안 한 것 같은데? 라고 할 만한)《동왕문답(東王問答)》이라는 책을 냈다.
그리고 이 책을 인쇄하여, ‘학식이 해박한 신료 일부’에게만 나눠주었는데, 이를 읽은 신료들은 모두 감탄하였고, 그 내용은 얼마 안 가 임안의 많은 사대부들의 인기 저서가 된 것이다.
신료 일부에게만 하사한 책이 어째서 임안의 사대부들의 인기 저서가 되었는가 하면 여기에는 황제가 인쇄를 내관이나 내시가 아니라 일부러 인쇄를 맡는 곳에 맡긴 것이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받은 신료의 소감에 자신도 보고 싶어 하는 다른 신료들이나 사대부들이 인쇄를 맡은 곳에 가서 은밀히 증보를 원하니 마치 복제본인 양 늘어나 퍼진 것이다. 물론 이런 사태를 황제라고 모를 리 없었으니 사실상 노린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여튼 그렇게 읽은 ‘《동왕문답(東王問答)》’, 속칭으론 ‘《동호문답(東胡問答 동쪽 오랑캐와의 문답)》’으로 알려진 그 내용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도 명성으로만 듣던 흑태자의 대한 평가를 단순한 무부가 아니라고 수정하게 만들 정도는 되었다.
하물며 사대부나 식자에 이르러선 훨씬 감명과 탄성을 자아내는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어. 문무양도를 추구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그저 포부는 크다고 생각했는데, 고려 태자 본인은 진심으로 문무양도를 추구하는 것이었구려.”
“듣자 하니, 황상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자 《사서》와 《오경》은 물론, 경서와 농서들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동방의 고려에서 호학(好學)과 도학(道學)의 군주가 나왔소이다.”
“‘문무 둘 중 하나라도 버릴 수 없다.’ 말이야 쉽지요.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쉽게 되는 일이겠습니까? 하나 왕태자 본인부터 실시하고 있으니 이는 성패(成敗)를 떠나 왕태자 본인은 참으로 진실된 자인 동시에 욕심이 많은 자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대의 고려가 큰 진척이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오. 그리고 여기에 왕태자와 고려의 강병의 요결(要訣)이 적혀 있지 않소? 보시오. 태자 본인도 ‘학문의 중요함이야말로 부국의 길입니다.’라고 상답(上答)했다고 하지 않았소?
하물며 지금 고려에서 흥하고 있는 학문이 휘국문공(徽國文公 주희)께서 이룩한 것인데, 개국 이래 고려 태자 본조에 입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오. 저들이 이전보다 더욱 천조를 존숭(尊崇)하는 예를 알게 된 것에는 이러한 정학(正學)이 해동에 건너간 것과도 전혀 상관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오.”
“나도 그리 생각하오. 그리고 그것은 본조도 마땅히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오!”
“맞습니다! 예로부터 이적이나 어린아이, 천한 인간이 상대라고 할지라도 배울 것이 있으면 마땅히 배우고, 그렇게 배우는 자세를 부끄러워해서는 아니 된다고 현인들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더욱이 저들의 도학(道學)이란 본조에서 나온 신유학(新儒學 주자학을 말함)입니다. 그것을 선제 시절 수용되었다가 권신들의 횡포에 실패한 것이니, 저들의 행보야말로 본조가 가야 했던 길입니다.”
“아, 오호통재라, 만일 선제께서 권신들의 간언에 속지 않으셨다면 본조도 저 고려처럼 진작에 수신(修身)하고,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하여 강병을 양성한 뒤 금을 처단하고 고토를 수복하였을 것을….”
고려가 한 일이 주자학을 높이 기용한 덕분이라고 생각한 주자학의 선비들은 모두가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러한 아쉬움마저도 그들은 행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니 더욱 주자께서 정리하신 정학을 드높이며 바로 세우는 것이 오늘날 본조의 길이 아니겠소!”
“그렇소!”
“그렇소이다! 주자께서 하신 것을 행하는 것이 본조의 흥망이 걸린 것이오!”
저들에게는 그것이 정학을 바로 잡고 드높이며, 나아가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부들과 유학자들의 고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는 것이다.
* * *
평소 남송으로 오고 가는 고려의 국신사는 남송에서 느긋이 있다가 지낸다. 여기엔 사신단 일원들이 기껏 남송에 온 만큼 유람이나 후한 접대를 즐기는 것도 있었지만 사행무역과 내가 시킨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인데, 이번 고려 국신사는 유달리 할 일만 하고 돌아온 경우에 속한다.
가장 큰 원인은 일국의 태자인 내가 외국에 오래 머무는 것도 어렵고, 이쪽도 바쁜 일로 한창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맹을 언급한 것에는 여러 의미로 북벌 회맹만이 남송의 폭주를 제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가 몽골에 직접 간 것과 내분을 제지한 것에 크게 의심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고려를 믿어 보겠다. 라고 하려면 저들이 안달 난 북벌에 대한 확답이 필요했다. 여기서 회맹을 언급한 것은 보다 더 열성적으로 북벌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저들에게 불안을 주기 위해서기도 했다.
저쪽에서 이쪽을 의심하면 의심하는 대로 당장의 북벌을 벌이지 못할 것이고,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회맹에 참석할 제후들 문제로 당장 북벌을 벌이지 못할 것이라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회맹은 양날검이다. 몽골과 적대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내부적으론 해동천자(海東天子)로, 남송에서도 해동을 관장한다고 하여 ‘동평왕(東平王)’이란 작위를, 제후들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패자(霸者)’라는 작위까지 받은 고려가 회맹까지 주청해놓고 해동에선 제후가 없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쪽팔린다.
아무리 형식상과 명목상의 패자지만, 그래도 패자이고, 회맹인데, 그만한 모양새는 내야 하지 않는가?
“남조는 당분간 회맹의 준비나 북벌을 위한 재정비로 홀로 북벌을 벌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느긋이 있을 시간 따윈 없다.”
물론 고려는 남송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은 편이긴 하다. 제후라곤 막대한 회사품을 미끼로 명목상의 조공 관계를 수립하는 제후들밖에 없는 남송과 달리 고려는 상(商 은나라), 주(周) 시기 수준의 제후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탐라 성주(星主)에겐 이미 남조에 가기 앞서 회맹에 대해 알려준 만큼 성주와 세자 모두가 참가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은 회맹에 대해 전혀 모르는바, 지금부터라도 부산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로다.”
“탐라국 말고도 참가시킨다는 말입니까?”
김방경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탐라 성주와 세자만 해도 면을 세우긴 충분하지 않냐는 논리였고, 틀린 말은 아니다. 탐라국만 하더라도 성주와 세자만 올려도 패자(霸者)로서 체면은 세운 것이다. 하지만 그거론 섭하다.
“왜(倭)가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남조에서 불안하게 여길 것이 분명하니, 우산국주(于山國主)와 ‘안원자(安遠子)’도 참석시킬 생각이로다.”
안원자는 작년에 조공을 하고, 형식상 고려의 외번으로 편입된 3번. 옛 발해의 솔빈부와 동평부, 안원부 중 안원부를 맡고 있는 지영주사(知寧州事)와 영원장군(寧遠將軍) 겸 미주태수(郿州太守) 작위를 받은 여진 추장 흑고대를 말한다.
올해에 여름에 흑고대가 안원부 지역에서 승전소식과 함께 올린 조공을 받고는 ‘안원자(安遠子)’라고 자작(子爵)의 작위를 내린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안원부를 완전히 장악한 것도 아니지만 이미 나와 조정 내에서는 잠정적으로 흑고대가 안원부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고 그에 준하는 지위를 내리기로 했다.
그만큼 안원부 지역에서 그의 세력이 크고 장악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정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춘추시대에 왕이 곧 황제고 제후들은 오등작의 작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작(子爵)’의 작위만 있더라도 회맹에 참가할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흑고대는 아부한 두문 같이 형식적으로 직할지인 갈라전이 아니라 형식상으로도 외번에 속한다.
품계로 따지면 정 5품에 불과해도, 세력으로 따지면 우산국은 물론, 탐라국과 비교해도 위일 것이다. 이리 보니 번한(藩翰 제후)이니 어느 의미에선 가장 고려의 제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산국주는 몰라도, 흑고대. 그가 쉬이 오겠습니까?”
“안원부를 대가로 참석시켜야지. 회맹을 언급하며 공적으로 안원백(安遠伯)으로 승격해 준다면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녀석이 아니다.”
“…전하. 요왕은 부르지 않는 것입니까?”
잠자코 듣고 있던 유갑수가 조용히 물었다. 동요국도 이제는 우리 고려의 속방에 가깝긴 하다. 이쪽에서 요청하는 것은 그대로 따라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논할 가치도 없다.
“거긴 부르지 않는다.”
거긴 몽골이랑 너무 가깝다. 지금이야 바싹 엎드리고 있는 야율수국노지만, 그가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뭔지 아는 이상, 몽골의 행보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문제를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데, 굳이 왕인 그를 불러 탐라국까지 소환시켜 보낼 이유는 없다.
사실 흑고대를 부르는 것도 불안하긴 하지만, 거긴 그나마 갈라전이 완충지대로 있고, 아니더라도 멀리 떨어진 변경이라 위험이 덜하다는 것과 안원백으로 올리면서 동북쪽에서 지들끼리 쌈박질이나 하며 여길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안원부가 오면 다른 이번(二藩 옛 발해의 솔빈부와 동평부 지역을 말함)에서도 참석할 의향을 보이겠지.’
탐라국과 우산국도 그렇지만, 동북 삼번은 오늘날로 치면 연해주와 북만주 동쪽으로, 몽골이랑도 옷치긴 왕가 빼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옷치긴은 이제 큰 힘이 없다. 증원은 큰 기대가 안 되지만 그들이 몽골에 습격 받을 가능성도, 그들이 고려를 습격할 가능성도 적다.
그 외 유구는… 생각 좀 해보자. 순마준희를 유구국주로 인정하고 데려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의 아들을 의본을 임시적으로 국주로 삼아 참석시킬까? 아니면 그냥 뺄까?
참고로 일본도 회맹에 참석시킬 생각이 없다. 아니, 다시 말하지만 거기는 불가능하다. 덴노, 쇼군, 싯켄은 물론이고, 거기 조정의 대신을 데려오는 것도 무리다. 그렇다고 적당히 일본 관리나 일본인을 데려와 연기하게 하는 것도 어렵다.
탐라나 우산이 최근 재건되었다고 알려져도 큰 문제 없다. 춘추시대 패자가 회맹에서 계절존망(繼絶存亡)으로 소국(小國)을 복국(復國)시켜 주는 것은 일상다반사요. 오히려 패자의 의무이기도 하다.
흑고대를 비롯한 동북 3번도 신흥 제후라고 하면 그만이다. 금이 얼마나 몽골에게 갈려 나갔는지 아는 남송이라면 만주 쪽에 금과는 다른 새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크게 의심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선 어설프게 말을 지어내 맞추려다간 발각당할 위험이 크다. 나는 일본이 북벌에 참가한다고 하면 남송이 나름 기대할 만한 국가라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는 일본의 저력은 삼국시대 말기에 백제가 멸망 당하자 원군을 보낸 백강 전투 기준일 건데, 이때 일본이 보낸 병력은 적게 잡아도 1만 이상 크게 잡으면 약 4만 이상이다.
여러 번 말했지만 본래 수만 대군을 동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나만 해도 국가 총력이 아니고, 단기전과 즉각 대응한다는 전제라고 하더라도 10만 대군을 넘은 적은 한 번도 없고 4만 대군을 넘은 것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남송에서 일본 사신이 참석하면 일본은 얼마나 동원할 것이냐는 등 말을 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심할 경우 일본의 조공을 받는다면서 무역을 재개할 우려도 있고 말이다. 이 때문에 데려오는 것부터 어려운 만큼 그냥 참석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만약 남송에서 고려는 해동의 패자인데 왜 일본을 참석시키지 않았냐고 하면 일본이 지금 개판이라 참석할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할 것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다.
‘일본은 치세라도 참석해줄지 애매한데, 내란으로 한창인 지금은 지원군은 꿈에도 못 꾸지.’
원 역사에는 없던 일본에서 터진 덴노, 쇼군, 싯켄 등의 내란에서 누가 이길지도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들이 내란으로 한창이니 회맹에 참석시키지 못함과 동시에 후방의 안전은 보장했다고 봐야겠지.
#작가의 말
*패자라고 하니까. 초패왕 항우 때문에 무력을 휘둘러 자비 없는 패왕의 모습만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의외로 계절존망(繼絶存亡)이라고 멸망한 나라들을 부흥시켜 존속시키는 것도 천자나 패자의 업무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