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1
51화. 45장 북진
‘미친…’
불안하다고는 했는데 진짜 씨가 되다니… 이건 최악 중 최악이다.
동하국은 동만주와 함경도 일대에 자리잡았고, 수도도 오늘 날 연길시에 있다. 즉, 두만강 너머에 있다는 것인데. 조선시대 기준으로도 국경 밖에 위치한 나라이며 경주 기준으로 수천리 밖에 있는 먼 곳이다. 그런 곳을 고작 15살도 안된 꼬맹이보고 가서 정벌하라? 그것도 왕족을 빨리 인질로 보내라는 몽골군이 있는 곳으로? 이건 그냥 나가 죽으란 말이나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고려왕은 이런 명령을 내린 걸까? 뻔하지 않은가?
‘최우 그 새X. 뇌물은 다 받아놓고…’
원 역사에서도 몽골이 동하국 정벌 때 지원 요청하긴 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밀어서라도 결국 지원하지 않았던 고려가 동경의 난이 진압되었다고 원병을 보내기로 했다고? 당연히 나라를 좌지우지 하는 권신이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 뻔하다.
“황명이 내려진 이상 따르는 것이 옳으나 과인은 걱정이오. 주변에서는 과인을 보고 이번 반란을 진압하였다고 하지만 과인이 보기에는 아직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중 하나인 최산을 잡지 못하여 안심하기엔 이르다고 보오.”
그렇게 부질없는 저항을 시도 했보았으나 말하기 무섭게 대집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수사공 대집성. 태자 전하께 아뢰옵니다. 이곳의 일은 소인들에게 맡겨주시옵소서. 반드시 최산을 잡아 전하의 불안을 종식토록 하겠나이다.”
“…수사공께서 그리도 자신있게 말하니 과인도 한 시름 덜고 출병을 할수 있을 것 같소.”
빠드득.
‘즉, 네놈은 이걸 알고 있었단 말이렸다. 오냐. 이번엔 내가 한방 먹었다만. 이대로 팽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나와 함께 동북면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있는 동하국 원정을 가는 병력으로 약 2천 정도 모을수 있었다.
북벌을 듣자마자 경상도 일대에서 동원한 보병 1천 5백에, 거제를 비롯한 양마장이 있는 섬들과 반란에 가담한 호족들이 가진 군마들 털어 조달한 기병이 3백이다. 그리고 남은 것이 기존 견룡군들이자 이제는 내솔부다.
최우는 조정의 정예군을 보내주긴 싫지만 그렇다고 내솔부만 딸랑 붙여서 보내는 것도 무리수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일국의 세자가 이끌고 가는 군대인데 2백여명만 보내는 것은 또 아니라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일단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라는 직위를 내려주며 북벌에 관련된 대처를 상당수 내게 일임했다.
물론 동경의 난이 완전히 종식 되지 않은 이상 주현군을 많이 동원할 수는 없었다. 고로 주현군 외에도 새로 선발해야만 했다.
“반란에 가담하여 노비가 된 자들에게 과인을 따라 행군에 참여하여 공을 세운다면 면천을 시킬뿐만 아니라 후한 상을 내릴 것이라고 전하라!”
내가 주현군들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눈여겨 보며 선발 한 것은 반란에 가담했던 자들의 부하였거나 군졸로 일했던 이들이다. 실제 주현군 외에 모인 병력들중 상당수가 물주였던 귀족들이 재산을 빼앗겨서 알거지가 되자 해고 당하여 먹고 살기 이해 입대한 이들이거나 반란군에 있다가 포로가 되어 노비로 떨어져 면천 받고자 자원한 이들도 많았다.
이들을 눈여겨 본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상당수가 전 사병들이었던 만큼 양민들보다는 그나마 뛰어날 것이라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도 많이 못미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저들이라고 직접 전쟁을 겪어본 자들은 얼마나 되고, 전선에서 싸운 자들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이번에도 그나마 정예인 이들을 이용하고 수준이 낮은 이들은 그들을 보조 시키는 방식을 경험 시켜야 하나.’
덧붙여 일단 외정을 책임지는 사령관인 만큼 대집성이 들고 있는 부월(鈇鉞)의 소유권은 어떻게 되는가 싶었는데 결국 내란 진압도 중요하다면서 받지 못했다. 거의 다 진압되었다고 세자를 밖으로 보내놓고 무슨 개소리냐 싶지만 말이다. 대신 옥대[玉帶]를 내려주며 기존에 받은 사진참사검과 함께 고려왕을 대신하여 군을 통솔하라, 고려의 위상을 떨쳐라.이미 그 신임과 아량이 이렇게 크다느니 부월급으로 상징성을 부여해줬다.
‘그럴거면 걍 나한테 부월을 주던가.’
이렇게 해서 나와 함께 동북면을 넘고 두만강을 건너 만주에 있는 동하국 원정을 가는 병력으로 약 2천 정도 모을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2만명이 아니라 2천명이다. 원역사에서 공민왕 시기 원나라가 ‘장사성의 난’ 진압한다고 고려에 지원을 요청하자 고려에서 보낸 병력이 2천명이라고 하지만 그건 최영을 비롯한 유능한 장군들이 지휘를 맡았고 그 2천명도 전부 정예병이라고 했다. 그에 비해 이쪽은 정예병이라고 묻는다면…
하다못해 혹시나 해서 동경의 난도 사실상 끝났다 싶어 박문성. 그러니까 박서를 데려 가도 되냐고 대집성한테 부탁해봤다. 대집성 본인은 이미 다 끝난 상황에서 박서가 없어도 상관없다 싶었는지 쉽게 허락했지만 김약선이 적극적으로 막아서 무산 됐다. 박서를 보낸 것은 조정이고, 조정에서도 인근 일대에서 모집해도 좋다곤 했지만 기존 보낸 인사를 데려가도 된다다고는 하지 않았다나…
‘빌어먹을 놈.’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2천여명 남짓한 병력이다. 적지는 않으나 일국을 멸하려 가는 군대 치고는, 하물며 적성국이었으며, 잠재적으로는 여전히 적성국인 몽골군의 진영에 세자가 합류 해야 한다는 사실에 그 곳에 있는 모든 장수가 불안해 하며 걱정했다.
“소인도 따라가겠나이다.”
“소장도 따라가고 싶나이다.”
김총과 그리고 금주의 장정들은 눈물을 흘리며 합류를 청하였으나 나는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병력이 증강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금주는 이제 막 동경이 된 상태다. 거기에, 그럴 일은 적지만 도주한 최산이 만에 하나라도 군사를 이끌고 경주로 내려 온다면 이를 견제하는 구심점과 세력은 신 동경 금주였다. 안그래도 신어산 전투로 잃은 피해와 수년후 있을 전쟁을 대비한다면 이 이상, 이 시기에 뺄수는 없었다.
“경들의 마음은 잘 아나, 아직 도주한 역적을 잡지 못하였는데 어찌 함부로 밖으로 가려고 하는가. 경들은 이후 이 경상도를 수호하며 혹시 모를 역적들과 분란을 신경쓰도록 하라.”
“크흑. 전하-! 부디 옥체 무강하소서!”
“옥체 무강하시옵소서! 전하!”
울면서 작별 인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게 아니란건 아는데 괜시리 더 죽으러 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울적해졌다.
“출병하라!”
* * *
그렇게 군은 동경을 출발하여 동계를 통해 동북면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고려를 떠나기 전 의주(宜州:동북면 의주. 오늘날 함경남도 원산시)에 머물렀다가 서경에서 추가로 지원을 받았는데, 병장기와 식량은 물론 소금 5백석을 얻을수 있었다. 이걸로 마지막 지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정말 고려를 떠나 동하국으로 가는 것만 남았다.
동하국 정벌에 대한 소식은 내솔부 내에서도 불만과 우려가 팽배하다. 막말로 내부 안정에도 신경쓰기 바쁠 판에 땅 한뺨도 먹지 못할 전쟁에 동원되는 것에 누가 기뻐하겠는가? 하물며 이 시기 고려는 외왕내제라곤 하나 황제국이며, 실제로도 황제국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던 국가였다. 거기에 휴전을 한 것도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응어리 진 상황에서 왕태자 인 내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나가게 북방에 가게 됬으니 불만이 안나오겠는가?
당장 나만 하여도 원정가라는 소리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게 최가 놈이 작정하고 나를 내보냈다라는 감상 밖에 안드는 상황이다.
오죽하면 그 김방경이 당-발해 전쟁에서 신라의 사례를 들어 ‘출병은 했으나 피치 못한 사정으로 두만강을 건너지 못하고 다시 돌아갔다고 보고하자’고 했을 정도다.
당과 발해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때 당은 신라에게 발해의 배후를 쳐달라고 요청했고 신라는 이에 응하여 군사를 출병했으나 때마침 불어온 폭설 때문에 싸워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붕이와 역수는 실제론 이때 신라가 굳이 타국의 전쟁에 끼여들기 싫어 그렇게 변명하고 돌아왔을 확률도 크다고 했다.
신라는 그렇게 하고도 결국 당에게 문책을 받지는 않았고, 전쟁도 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이 생겨 정작 싸우지 못하고 돌아왔다. 같은 짓거리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단순한 후방 안전만을 바라고 만주에 대해 잘모르는 당나라와 달리 몽골은 동하국 정복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날씨에 대해서도 당에 비해 잘 알고 우리보다 평균적으로 더 추운 지역에서 살던 놈들도 많다.
원병을 보내겠다고 한 이상 가지 않는다면 쿠빌라이 칸 시절 단순한 협박문구로 썼던 원병 안보냈다가 서하 꼴이 된다. 운운하는 것이 실제로 벌어질지도 모를 노릇이다.
하물며, 지금 동하국 원정에 참가한 몽골의 지휘관은 다름 아닌 예케 몽골 올루스의 태자 ‘구유크’. 현 대칸인 오고타이 칸의 아들이자 오고타이 칸 사후 칭기즈칸이 이룩한 몽골 제국의 3대 칸이 되는 인물이다. 대붕이가 말해준 바로 의하면 구유크는 병약한 몸을 가진데 비해 신경질적이고 완고하며, 자신감도 세서 바투에 대해 사사건건 강경하게 나갔다고 했다. 어딜 어떻게 들어도 인자함보다는 패도(覇道)를 지향하는 자다. 그런 인물이 고려의 세자가 직접 오겠다고 해놓고 안온다면 가만히 넘어가겠는가?
차라리 처음부터 못간다고 했다면 몰라도 지금 안간다는 것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원 역사 기준대로라면 2년 후 전쟁이지만 지금 눈 밖에 나갔다가 서방원정이 아니라 동방 고려 원정이라도 나온다면…’
앞으로 2년 동안 내란을 진압하고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동방 3왕가를 위시한 수부타이의 맹공 앞에서 고려가 무사히 격퇴할수 있는가. 고민 해보았지만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기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겨도 피로스의 승리. 아니 피로스의 승리 수준이 아니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이긴 스파르타 꼴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몽골의 태자 귀유[貴由 구유크=귀위크]가 이번 동하 정벌에 참가한 이상 우리도 빨리 합류 해야 한다. 그런 고로 우리 군은 문종 대왕 시절 아조에 귀순한 기미주의 기록을 바탕으로 갈라전을 통해 빠르게 진군하여 두만강을 건널 것이다.”
금나라가 세워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동여진과 동만주는 고려의 관할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 거란은 동북여진을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고 고려에 허락을 구하였으나 거절되어 무산이 되었고, 발해의 상경용천부도 고려의 강역으로 봤다고 한다. 물론 상경도, 동북 여진도 고려의 직할령은 아니었으며, 숙여진 같이 서북면의 여진족들은 대개 거란의 휘하에 있었다.
그러나 간접영토던, 영향 영토이던 실제 여진족들은 전성기의 고려에 신속하거나 붙으려는 자가 많았고, 특히 문종 대왕 시절에는 고려에 귀순하고자 자처하는 부족들도 많아 국경 밖에 자치를 허락하며 ‘변경 15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변경 15주 및, 국경 밖 영토들은 금나라를 세운 완안부의 발흥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화약은 당연히 없고 신기전도 1발 뿐.’
사지인걸 아는데도 가지 않을 수도 없고, 늑장도 부릴수 없다. 군대에 입대할 때 와 첫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던 날의 기분에서 수십배 더 나빠지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크…아나. 진짜 개떡 같은 상황도 아니고… 뭐하나 되나 싶으니 이렇게 빅엿을 먹게 되네. 만약 내가 무사히 돌아오게되면 최가와 대집성만은 반드시 죽인다!’
* * *
왕식이 이렇게 이를 갈고 있을 때, 육지의 소란은 별세계라는 듯 지내는 심도에서는 왕식의 출병 소식이 전해져 왔다.
“청하상국. 경주에서 태자 전하께서 출병하셨다고 합니다.”
“끄응. 내가 너무 서둘렀어. 서두르고 만거야.”
“상국. 이미 지난 일 아니옵니까. 고정하시지요.”
“이게 고정할 일이란 말인가. 이 장부와 보고를 보게.”
최우는 욕망과 함께 안타깝다는 듯 아직 동경이었을 때 경주에서 올라온 장부와 보고서를 바라보았다. 그 보고서에는 어마 어마한 양의 재산과 동경 계획안이 적혀 있었다.
“상국. 이미 지나간 일 아닙니까? 이 장부를 받았을 때는 이미 몽고에 태자 전하의 친정을 전한 뒤였습니다.”
“그러니까. 안타깝다는 게야. 지금 전하께서 내게 보낸 이것을 보게. 지금 까지의 실수를 눈감아 달라는 동시에 힘을 합치자는 신호로도 해석 할수 있네. 태자 전하께서, 그것도 영명하시며, 인망도 갖춘 태자 전하께서 먼저 나에게 굽히시며 팔을 벌리셨는데… 이를 잘 받았다면.”
“물론 상국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전하께서 제대로 처신을 못한 탓이옵니다. 본의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은근슬쩍 정치에 간섭을 하거나 떠맡으려고 한 시점에서 청하상국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것이 원인이…”
“알았네. 알았어. 쯧. 이럴 줄 알았다면 일짜김치 인척들의 자녀와 혼약을 맺게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이미 쏟은 물을 다시 주워 담을 바에는 새로운 물을 담그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태자 전하께서 동하에 가신다면 십중팔구 몽고 놈들에게 붙잡히거나 혹은 변을 당하실 것 입니다. 빈 자리를 둘 바에는 어서 안경후[安慶侯] 님을…”
골칫 덩어리로 성장하던 세자를 국외로 쫒아내 차도살인지계를 성공하여 기뻐하던 최우였으나 몽골에게 세자가 직접 친정을 나갈 것이라는 말은 전부 전달하고 동경에서 올라온 보고를 보고는 크게 후회 할수 밖에 없었다. 이에 측근들과 스스로도 이미 늦었음을 인지하면서도 덜떠름한 표정은 쉽게 사라지지 못하였다.
“전하께서 전쟁에 돌아오시지 못하게 된다 판단되면 바로 안경후 님을 보위에 올리실 준비를 마칠수 밖에…”
“전하께서 돌아오실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한들 바로 행동에 옳기는 것은 모양새가 나쁘지 않은가. 본격적인 행동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체 된 후로 하게.”
“알겠습니다.”
당여를 떠나보내고 최우는 한참 동안이나 안타깝다고 중얼 거렸다.
“모든 것은 전하께서 자초하신 일이나 조금만 빨리 이것을 받았더라면, 조금만 더 대화를 나누었다면… 아깝다.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