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52
552화
44장 사냥을 벌이다(2)
-고려 고종 32년(1245년), 남송 순우 5년, 을사년(乙巳年). 6월 25일.
우연히 돌아가던 길에 목격해서 아이는 물론, 물린 부친 쪽도 시기적절하게 조치해서 죽진 않았으나 대낮에 금수가 사람을 덮친 거다.
전근대 산길을 넘을 때는 맹수의 습격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라는 상식적인 지적 따위는 의미 없다.
왕태자인 나의 눈앞에서 벌어졌고, 내가 그걸 목격한 거다. 그렇다면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는 충분하다.
물론, 부자 단둘이서 산을 넘으려고 하던 것이 문제없다고 하진 않는다. 제아무리 북방에선 사냥과 도적 소탕을 자주해서 치안이 좋아졌다곤 하더라도 둘이서 넘는 것은 확실히 무모했다. 그런데 저들이 둘이 산을 넘게 된 이유가 있었다.
산 너머 마을에서 잔치가 있어서 초로의 아버지와 늦둥이 자식과 함께 사람들과 함께 넘었다가 잔치를 즐기던 도중, 집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알려준 이는 우연히 그들 마을에 들렀다가 여기로 온 방물 상인이었으나, 그도 다른 상인들과 함께 건너온 것이고, 다른 상인들은 다시 그 마을로 가지 않기에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부자는 단둘이서 산을 넘으려고 한 것이다. 심지어 그 이유가 ‘(서)경기는 관군들이 맹수들과 도적들을 잡아서 이제 대낮에 사람이 산길을 넘을 수 있다.’는 평판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걸 듣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꾸에에에엑!”
고라니가 무릎에 화살이 박히면서 꼬꾸라졌다. 곧이어 다가온 병사들의 창이 고라니의 배를 찌르며 숨통을 끝낸다. 여기저기서 동물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사슴이나 고라니를 잡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금수를 우선적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오랜만에 견룡군과 서경의 호족들 사병까지 소집해서 대대적으로 서경기의 산들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사냥이 우발적인 성격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나쁜 결정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소집과 산발적인 조치. 또한 산들을 사냥하며 지리를 익히고, 짐승들을 유도하고 추격하는 것은 엄연히 군사훈련 중 하나니 말이다.
부자의 사정을 처음 들었을 때 민간에 퍼진 조정의 공을 찬양하는 평판과 그 평판만 믿고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을 알고는 뿌듯함과 그런 믿음을 배신시킨 것 같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미 전국적으로 해수 구제를 시도하고 있는 내가, 자기 근거지 근처도 관리 못 한 꼴을 관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족으로 그때 구한 부자는 부친을 포함하여 무사히 살아 있고, 준마와 함께 호위병까지 붙여 집까지 무사히 보내줬다.
“범은 없지만, 이리나 늑대, 멧돼지들이 범이 있을 때보다 많이 잡히고 있군. 어찌 생각하시오. 화산후(花山侯)?”
“산군이 죽어 왕좌가 비게 되니 이리, 승냥이 같은 놈들이 기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옹진현(甕津縣)에 있던 화산후도 불렀다. 화산후도 사병을 마련해서 참가했는데, 아마도 본인은 사냥을 빙자한 무장으로서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소환한 것이라고 본 듯하다.
실제 그런 목적도 아주 없진 않으니 다 틀렸다곤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하면 범을 살려두는 것이 나았다고 보시오?”
“아닙니다. 큰 도적이 있으면 작은 도적들이 준동하지 않는다고 큰 도적을 놔두는 것은 사도(邪道)이며, 임시방편이오, 큰 도적과 작은 도적 전부를 처리하는 것이 정도(正道)입니다. 마땅히 주기적으로 사냥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근절하여야 할 것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대규모 사냥일수록 제대로 된 군사훈련이 된다. 전장 경험이 없을 이용상의 병사들을 빠른 시간에 병사로 만들려면 이런 대규모 사냥에 참가시키는 것이 제격이다.
“제 병사들이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 이번 구제사업에 지장만 주는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되옵니다.”
“공의 밑에 있는 병사들은 대개 전장의 경험이 없는 자들이거나 혹은 안남국에서 살던 이들인데, 이곳의 지리를 어떻게 잘 알겠소?
그리고 실력이 없다면 갈고 닦으면 그만이오. 사냥은 예로부터 군사훈련이라 하여, 아조는 강무에서도 사냥을 하는 것이오. 공이 데려온 병사들도 경험을 하면서 갈고 닦는다면 어찌 동궁의 병사들과 비교해도 뒤처짐이 있겠소?”
드라마나 소설에서야 의병이나 민란이 일어나면 적군과 관군들을 상대로 호각으로 싸우거나 우위를 점하지. 실제로 의병군이나 농민군의 전투 능력은 그리 높지 않다.
왜냐? 그들이 본래 일반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사냥꾼인 사람들이나 조선 시대 백정 같은 두꺼운 고기나 뼈를 써는 사람들이나, 무거운 짐을 옮기는 등 개인의 기술이나 용력 등에선 병사들보다 뛰어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이라는 범주로 말한다면 전쟁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이다.
전술, 전략 등의 병법 교리도 모르며, 진법 훈련도 안 해본 이들이 정식 군대를 상대로 이긴다? 험한 지형지물 등을 이용하거나 혹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습이나 함정 등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론 관군이 더 강하다.
막말로 의병과 농민군은 일반적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떠나 군대로서는 ‘의기 있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니까.
조선시대 의병 홍의장군 곽재우가 괜히 제 고향 친구를 죽이고, 김덕령은 무력으로 심하게 휘두르면서까지 위계와 규율을 만들어보려고 했고, 홍경래는 10년 동안이나 몰래 군사훈련을 시켰겠는가? 병력도 병력이지만 규율과 체계도 군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용상의 병사들은 빈말로라도 잘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 이 정도면 이 근방에서 사냥에 참가해서 몰이해 본 경험이 있는 민간인들이 더 잘할 정도니까.’
지금 이용상의 병사들은 전 민간인 출신이라곤 하나, 명목상 제후의 병사들이요, 화산후가 받은 봉토의 관군이다.
단지 근래 창설되어 경험이 없다는 것으로 관군보다는 의병이나 민병 수준이라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그런 건 앞서 말한 대로 군사훈련을 받으면 해결될 일이다.
‘…자주 사냥에 동원시키거나 다른 주현군(*서해도는 주현군이다.)과 함께 훈련하거나 혹은 때때로 북계의 군대와 같이 훈련을 시켜야겠지.’
사실 대규모 사냥이 군사훈련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사냥에만 동원하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사냥은 동물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진법이나 진형, 맞서 싸우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끽해야 도주하는 적들을 유인하거나 추격하는 용도가 더 부각돼서 회전이나 야전 등에서 정면승부를 할 병사들을 양성하는 데에는 사냥은 그리 좋은 훈련법은 아니다.
‘그런데 이용상의 군대를 고려군의 주력으로 쓸 것도 아니고, 민병 수준만 넘겨도 된다면 이쪽으로 개발하는 게 더 낫잖아?’
여차 사태에 따라서 화산후에게는 해당 봉토 근방의 지휘권 혹은 참가자 중 나름의 지위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오합지졸을 두면 안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제 와서 그들을 고려군의 주력으로 삼는 것은 정치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무리고 장기적으로도 제후의 군대라는 점에서 운용에 무리다.
‘화산후의 병사들의 문제는 이대로 하면 그만이긴 한데…. 활을 전혀 안 잡는다라….’
이용상의 연세는 이미 환갑(60세)은 물론, 70세를 넘겼으니 체력이 부치는 것도 이해는 한다. 애초에 현대에 남은 그에 대한 기록에서도 무용을 떨친 무장이 아닌 신묘한 계책으로 몽골군을 소탕한 지장처럼 묘사되니 기량에 대해서도 애초에 큰 기대도 안 했다.
다만 사냥에 와서 활에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는 것은 무장으로서 ‘기량’ 이전에 ‘기질’ 자체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고려의 강감찬이나 명나라의 원숭환도 문신이었으니까.’
* * *
모월 모일
나 ‘글사물’은 자랑스러운 예케 몽골 울루스의 자우트(百戶長 백호장)이자 툴루이 울루스의 전사로서 아리크부카 님께 동행하여 중원에 넘어온 지도 수개월이 지났다.
처음에는 한인들의 집을 허물고 게르(몽골식 막사)를 설치하고 말과 양들을 풀어 지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양과 말들이 먹을 목초지(牧草地)의 목초가 전부 사라졌다. 이런 경우는 보통 다른 목초지로 가야 하는데 아리크부카 님이 계속 상주하시니 돌아갈 수 없었다.
고갈된 처음에는 그나마 근방에 괜찮은 땅까지 몰아서 버텼지만 얼마 안 가 근방 목초지 전부가 황폐해졌다.
때문에 양마(羊馬 양과 말)에게 먹일 목초를 준비한다고 비축한 재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을 하거나 만자나 한인 놈들을 약탈하면 재물은 금세 충당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것이 금지다. 이러면 초원으로 가야 하는데 아리크부카 님께서는 여전히 가시지 않으니 나도 갈 수가 없다.
결국 가진 양들의 일부를 처분하거나 팔았고, 번 돈으로 남아 있는 양마를 먹일 목초를 사야 했다. 굴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전에 내게 일기를 쓰는 재미를 알려준 늙은 만자(蠻子) 노예 녀석이 나보고 소유하고 있는 땅의 일부를 전답(田畓)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재물이 쌓일 것이라고 말과 함께 말이다.
처음에는 당나귀처럼 자리 잡고 밭이나 가는 미련한 정착민을 흉내 내라는 말에 혼쭐을 내려고 했지만, 이대로라면 가축들도 줄어드는 것이 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거기다 그 노예 놈 말을 따랐다가 일기도 쓰게 됐으니 이번에도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노예를 부려 일부 부지에 전답을 만들어 경작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다만 실패한다면 처분할 거다. 노예 놈은 너무 오냐오냐하면 안 된다.
모월 모일.
만자 노예 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밭에서 경작한 것을 팔아 목초를 구했다. 거기다 남은 걸로 또 장터에 팔아서 재산이 늘어났다.
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동하지 못하는 이상 저놈이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재산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맞다.
늙은 만자 노예 녀석은 이제는 말과 양마 몇 마리를 빼고는 대부분을 초원에 있는 내 집으로 보내고 이곳은 그냥 전답으로 만들어 운영한다면 부가 쌓일 것이라고 했다.
모월 모일.
늙은 만자 노예의 말대로 한 결과. 재산이 더 불어났다. 한 번에 팍 늘어나진 않지만 전쟁이나 약탈을 하지 않아도 재산이 늘어나는 것은 확실히 마음에 들긴 한다.
한인 놈들이 농사를 잘하는 것 같은데, 이후 만자나 한인 노예들은 농사일이나 시킬까?
모월 모일.
그 늙은 노예 놈… 아니, 원가(元哥)의 말대로 해서 늘어난 재산으로 주변 동료들도 내 재산을 부러워했다.
원가 녀석이 내게 다른 동료들 중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부지도 전답으로 만들어 큰 전답(大田畓)으로 공용 운용하면 더 많은 작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해줬는데 이번에 주변 녀석들도 재산이 줄어드는 게 멈췄다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내 재산이 또 늘어났다.
원가 놈이 말하길 자기가 한인(漢人)이긴 하지만 만자(남송인)는 아니라고 한다.
중원에선 금인이라도 주르첸과 한인으로 구별이 있고, 한인은 만자와 같은 족속으로 보는 이들도 많기에, 만자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단평입락) 함께 송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군의 추격에 다시 끌려오면서 만자로 취급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원가 놈의 출신이 만자든, 한인이든, 주르첸이든 내게는 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원가 덕분에 나는 근처에서 사냥만 해도 재산이 알아서 늘어나니 편하다는 것이다.
늘어난 재산으로 양마를 사서 초원으로 보냈다. 전사로서 은퇴하면 여름에는 초원에서 겨울에는 중원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모월 모일.
이제 주둔 중인 주변 전사들 중 전답을 가지지 않은 녀석이 적다. 원가 놈은 한인 출신 전사들 사이에서 묘하게 인기가 있다. 원가 놈이 적은 글들을 그들은 돈이나 그 외 값을 내면서 받아갔다. 나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보기에는 마음에 드는 시조라고 원가 놈은 말했다.
모월 모일.
어느 날 아리크부카 님과 친카이 님께서 나를 불렀다. 어쩌다가 자우트나 아르간(十戶長 십호장)이나 전답을 가지고 있고, 양마들 상당수는 어디로 갔냐고 묻기에 우여곡절의 일들을 전부 설명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것인가 걱정했지만 두 분은 별말 하지 않고, 이제 다시 양마들을 들고 오라고 했다. 양마를 줄인 게 문제였나 싶어서 원가 놈을 질책하며 이 일을 말하자 원가 놈은 말했다.
“두 분이 주인님께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양마를 들고 오라고 한 것은 전답을 만들어 농사를 한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서 양마는 단순히 먹는 식량이 아니라 군량입니다. 옮기기 편한 군량인데 지금 주둔 중인 식량을 위해 군량을 보낸 것 때문에 다시 들고 오라고 한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여 무슨 말이냐고 으름장을 내자 원가는 말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주인님께서 출병하실 것 같습니다.”
출병이라면 전쟁인가? 분명 전쟁을 기대했지만…. 싫지도 않긴 하지…. 그래도 추수는 하고 가면 좋을 텐데….
#작가의 말
*글사물은 저번에 나온 몽골인입니다.
오고타이 시기부터 몽골인들은 한인들을 다루거나 한인 문화에 대해 점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만 1부에서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고타이 시기 유목민 성격이나 관습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오고타이의 방침이 정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정주민화 혹은 한화나 정주화 할 경우 얻는 장점과 이점을 이해하는 유목민들이 점점 생겨나고 있습니다.
작중 글사물은 그렇게 정주민과 한화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는 몽골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중 나온 ‘원가’는 아직 성씨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실존 인물입니다. 그런데 원 역사에선 이 시기 노예는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