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53
553화
45장 불안
모월 모일.
늙은 원가 놈의 말이 이번에도 맞았다. 근래 들어 카라콜룸에서 군수물자가 모이고 군마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쟁이 도래한 것 같다. 고대한 전쟁이지만 추수하고 전쟁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추수까지 가축을 먹일 수가 있으니, 추수까지는 기다렸다가 이후 치는 것이 약탈품이 더 늘고 이쪽도 안전히 추수를 끝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명령은 명령이다. 준비해야지.
그래도 나는 낫다. 원가 놈의 말을 듣고 나름 준비를 해서 양마를 최대한 헐값에 구할 수 있었으니까. 원가의 덕을 많이 봤다고 생각해서 내가 자비를 베풀어 원하는 것이 없냐고 하자. 원가 놈은 문방사우와 빈 책을 하나 달라고 했다. 이상한 놈이다.
모월 모일.
준비가 한 창일 때, 친카이 님께선 나 보고 동요에 가서 신속히 가서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직감했다. 진짜 전쟁이구나. 추수기가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까?
* * *
고려 고종 32년(1245년), 남송 순우 5년, 을사년(乙巳年). 6월 25일.
“왜국은 과거 고백제(온조 백제)가 멸망했을 때 수만의 병력을 동원한 적이 있는 만큼, 몽고와의 전쟁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인데 내란으로 동원할 수 없으니 딱한 노릇이오.”
잠시 사냥을 일단락하고, 잡은 사냥감으로 식사하면서 이용상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용상과 대화를 나누는 내내 화산 이씨 족보에 적힌 장수로서 인상을 이용상에게서 받을 수 없다는 생각만 거듭 들었다.
뭐, 이 시기 이용상은 아직 제대로 된 장수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대월의 왕자로서 지내다가 고려에서는 군호만을 받은 외국 왕족 내지는 귀족으로서 실권도 없었으니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다만, 기대하던 장수로서의 모습은 없더라도, 인자함과 나이에 걸맞지 않은 사고…. 속되게 말하면 나잇값 못하는 망상과 공상이고, 좋게 말하면 풍부한 발상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말하는 일본의 이야기도, 발단은 이용상이 먼저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일본을 언급해서다.
그는 번국인 일본이 회맹에 참석하지 않고 군대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몽고와 고려 사이를 저울질하는 것일 수 있다거나, 어쩌면 전쟁 중 뒤를 돌릴 수 있는 것이니,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북벌이 시작하기 전에 원군을 받아낸다는 서약을 받아 충정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럴 턱이 있나?’
당연하지만 일본이 고려의 번국이라는 프로파간다와 달리 실제로는 고려의 번국도 제후국도 아닌 일본이 이쪽에서 원군을 요청한다고 삼국시대 백강 전투 때처럼 대군을 보내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현재 ‘진짜 내란으로 한 창인’ 일본의 사정상 지금 고려를 건들 가능성도 적다.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우리 쪽에 지원이든, 침략이든 군을 보낸다고 해도 그런 낌새를 확인하기 위해 보낸 게 잇키(일기도)에 주둔 중인 고려 수군의 존재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고려를 친다는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쇼군이 대놓고 싯켄을 초청하여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싯켄도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쇼군을 가마쿠라에서 죽이지 못하고 도주하게 만들면서 벌어진 내란이다.
이제 최소한 싯켄이나 쇼군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완전히 몰락하지 않으면 내란이 끝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끝난다고 해도 당분간은 그것을 위한 수습에 바쁠 테니 당장 이쪽에 신경 쓸 상황은 아니야.’
물론 이런 사실을 이용상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할 이유는 없는 만큼 그저 우리 고려는 일본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여 아량을 베풀어 원병을 청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솔직히 나로서도 일본이 백강전투 때처럼 진심으로 돕기 위해 원군을 보내준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못 돕더라도 더 이상 신경 안 쓰게 해줬으면 하는 심정이라서 이번 내란에 대해서도 놀라고 의아스러운 한편, 다행이라는 감정도 없잖아 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린다고 할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덴노구나. 싯켄과 쇼군의 대립이야 정략혼이든 뭐든 언제 깨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설마 덴노가 교토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도망가면서까지 쇼군을 지지하는 의사를 천명했다니….
그 결과 쇼군은 덴노의 지지를 받으며 싯켄에게 없는 명분을 등에 업게 되면서 정말 본격적인 내란이 된 건데, 쇼군과 덴노는 처음부터 동맹이었던가? 그러면 지난번 동경에 왔던 쇼군의 밀사라고 한 것은 진짜 쇼군의 밀사인가?’
세력으론 싯켄의 호조 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당대 싯켄이라는 점과 쇼군과 쇼군인지 덴노 측인지 모르는 큐슈의 어가인들은 덴노가 지지한 쇼군을 지원하는 듯하며, 기존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정말로 혼란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아니, 일본에 대해선 신경 끄자. 사정을 알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걸 알 수 있는 수단도 없고 쉽지도 않아. 무엇보다 지금 일본의 권력을 누가 잡는가가 우리 고려가 크게 신경 쓸 요소도 아니다. 누가 됐든 일기도에서 사태를 주시하면서 불똥이 튈지 말지만 보면 그만이야.’
“정말로 왜가 역심을 품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만….”
이런 이유로 이용상의 걱정은 허무맹랑한 발언이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과정이나 근거는 허무맹랑해도 전란 중 일본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고 진지하게 염두에 두었다는 점은 소 뒷걸음에 쥐를 잡은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개 권신 때문에 나라를 잃었으니, 고려도 번국이라는 일본에 제대로 충성을 확인 받지 못하면 크게 데일지 모른다고 걱정한 것인가?’
뭔가 알수록 색다른 면을 점점 알게 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몽고와의 전쟁에 대해 논하고 싶은데, 개전이 되면 공에게는 차장군(借將軍)의 지위를 내리려고 하는데, 공은 어찌 생각하시오?”
차장군의 차(借)는 나라에서 은사를 베풀거나 특별한 업무를 맡길 필요가 있을 때 임시로 빌려서 제수하는 직위에 붙인다.
이용상의 병력이 볼품없긴 하나 일단 회맹에도 참가한 군후(君侯)인 만큼 장군보다 미만의 지위를 줄 수는 없지 않은 노릇인가?
“이 늙은이가 장군 정도를 바란다면 장군의 지위로 주시옵소서.”
이 말은 한신이 자기 용병술 역량은 다다익선이라는 말 정도로 광오한 발언이고 다른 말로는 ‘내가 장군 정도로 되겠냐’는 말이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군후에 망국의 왕자라는 점을 거론하면 장군이 적당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정해졌다.
“회맹에서 말한 대전에선 제후의 위엄도 중요하나 양민과 노비조차 역량이 있다면 장상(將相)이 될 수 있을 것이오. 공은 저 장수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겠소?”
위계를 정하고 선전도 좋지만 여몽대전은 진짜 실력이 요구되는데 이미 훈련과 경험을 쌓은 저 장수들과 비교해서 장군으로서 능력이 되겠냐는 반문이다.
“…고려 황상의 자비로 과분한 대접을 받은 늙은이입니다. 공도 없는데 어찌 젊은 장수들과 겨루어 증명하겠습니까? 조정에서 당장이라도 삭탈관직을 요구하더라도 납득할 뿐입니다.”
한발 물러나 군권을 얻을 생각은 없지만 군후라면 군후다운 대접은 해달라는 말이었다. 대월의 유민들이 오기 때문인가 묘하게. 명예욕 같은 게 있는 건가?
“…공은 한라산에서 함께 맹약을 하며 삽혈을 한 아조의 군후인데 어찌 삭탈관직을 논하겠소. 내 대장군의 지위를 주겠소. 공은 공의 병사들을 조련하며 개전을 고대해 주시오.”
그래 내가 졌다. 처음에 이걸로 줄까 하다가 병력이나 군재는 크게 보이지 않아 관둔 ‘임시 대장군(借大將軍)’의 지위로 주마. 그래도 기본 병력은 대월국 사람들과 기존 봉토에서 징발한 사병들로 참아라.
“병사의 적음에도 과히 대접하시니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이건 지금 자기가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이 너무 적다는 말이다.
‘이 인간이… 차장군은 임시나 명예직이라니까. 대집성이 차장군 지위 받고 지휘할 자기 부대 없다고 강제로 동원했다가 바로 잘린 거 못 들었나? 못 들었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한 거겠지? 아니면 알고도 제후니까 좀 더 신경 써달라는 거냐?’
“개전 후 여차하면 근방의 장졸이 공을 믿고 맞서 싸우니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비상시 근방 지휘권은 보장해 주겠다는 말이다.
‘이 어르신. 대화를 나눌수록 장군이 아니라 그냥 문신으로 기용하게 만들자고 생각하게 만드네….’
그렇게 대화하며 다시 사냥이나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파발이 급하게 다가오다니 오자마자 내려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급보이옵니다. 지금 안동성과 발해서경 곳곳에서 북조에서 요하를 넘어 요동으로 집결하는 낌새가 보인다는 장계가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뭐라?”
* * *
서경.
“전하. 지금….”
화산후 이용상을 돌려보내고 서둘러 서경성으로 귀환하자 김경손이 심각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내게 파발이 왔다는 시점에서 서경유수 김경손도 들었겠지.
“알고 있다. 지금 북방에서 장계가 올라왔다지?”
“예.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요동(동요를 말함)에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단 말이냐?”
내가 동요에서 사화까지 일으키며 고려의 간섭을 받게 한 이유가 뭔데!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고려 사람과 조정에 군을 주둔한 건데 이런 중차대한 일을 보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안 그래도 방금 동요에 있던 세작들의 보고가 올라왔사옵니다. 한데….”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동요 조정에 있던 아국과 연이 있는 이들의 운신이 제한되고 의도적으로 아조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도록 차단되고 있다는 듯합니다.”
“전하. 거란이 배신한 것 같사옵니다!”
유갑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확실히 이렇게 신속하게 동요에 만든 끈들이 끊기고 있다는 것은 동요국에서도 이 처사를 협력 혹은 방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야율수국노라면 이런 짓을 단독으로 할 자가 아니다. 만약 했다면 이건 고작 동요의 배신이나 야율수국노의 반항 같은 귀여운 것이 아니라….
“…거란은 갈대와 같아서 북조의 힘이 거세지면 거기에 붙는 것쯤은 모두 예상한 바이니 놀랄 것은 없다. 그러니 지금 사태는 거란이 아닌 북조에 집중하라.”
몽골이 요동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대한 이유가 동요의 탈환 내지는 합병인지 아니면 우리를 치기 위해 몰래 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칸이 서정 간 지금 누가 주도하여 고려한테 덤비는가인데, 일단 나와 지긋지긋한 악연을 가진 옷치긴 왕가…는 아니다.
설령 참가했다고 하더라도 동요와 마찬가지로 이제 스스로 일으켜 주도할 입장도, 힘도 없다.
그럼 카라콜룸? 아니면 옷치긴 외 다른 동방 2왕가인가? 딱히 명확히 누구라고 확신이 안 된다.
“…소식이 끊어지기 전 동요에 있던 친고려의 인사들이나 군에서 올라온 마지막 보고는 뭐였지?”
“하북에서 전령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북에서 전령? 하북이라면….
“…아!”
“전하?”
하북에는 친카이와 아리크 부카가 있다. 그리고 아리크 부카가 벌인 것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현 사태의 아귀가 맞춰진다.
구유크가 떠난 지금 몽골에 다른 자가 이 짓을 벌이고 있다면 아리크 부카나 혹은 동요에서 빠르게 귀띔이라도 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몽골 내에서 어느 누구보다 나와 친밀하다고 알려진 아리크 부카 본인이 이 일을 벌였다면 몽골 내에서 내게 알려줄 이는 없다. 심지어 현재 아리크 부카는 위치상으로도 요동에 가깝다.
“…그래. 그럼 하북에 군을 집결하던 것은 그건 송이 아니라 우리 고려에 대한 준비였단 말이군.”
아리크 부카가 전쟁을 걸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치 믿는 도끼에 발등…까진 아니지만 노심초사했던 일이 생각보다 이르게 터진 느낌이다.
“…지금 즉시 북계와 동계, 그리고 서해도에 전시체제를 선언하고, 조정에도 파발을 보내 북조가 요동에 군대를 집결하는 중이라고 전하라!”
“예!”
여몽대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만큼 아리크 부카와의 관계도 결국은 파투 날 관계가 될 것은 각오했지만, 이렇게 이르게, 그것도 일방적으로 박살 내다니….
‘오냐. 아리크 부카야. 네가 무슨 생각으로 지금 전쟁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고려는 구유크면 몰라도 너한테 질 정도로 약한 게 아니란다. 어디 이 전쟁이 끝나고도 네가 툴루이의 적법한 후계자라면서 품은 야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나 보자고.’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