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58
558화
終章 외전
시간은 구유크가 아직 유럽에 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아가시오! 예로부터 ‘충신불사이군 정녀불경이부(忠臣不仕二君 貞女不更二夫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숙한 여인은 지아비를 두 번 바꾸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였소, 내가 비록 능력이 부족하여 포로로 잡혀 이 먼 타지까지 오긴 했으나 내 마음은 여전히 대송에 있거늘 어찌 귀국의 조정에 출사한단 말이오.”
작은 서당에서 근방의 (주로) 자신과 같이 동방에서 넘어온 이주민들과 유럽인 아이들, 혹은 호기심을 가진 아이를 가르치던 훈장은 몽골 관리의 제의를 호통치듯이 단호히 거절하고 있었다.
훈장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식량이나 돈 등을 받고는 있지만, 받는 양이 많지는 않았고 학도들도 중원도 아닌 이 먼 타지에선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에서 그가 세운 서당은 타타르인 같이 생긴 이민족의 학문이었다. 이색적이라서 시선이 가고, 호기심을 가질지언정 들어도 본 적 없는 것에 존경심을 품을 이유는 없었다.
실제 그의 서당에 있는 학도들이라고 해봐야 훈장과 같이 금나라나 송나라 출신 혹은 중화권의 사람이 대다수였고, 간혹 어쩌다가 유럽인이나 중동인들이 있다고 해도 고아였다가 동방인에게 주워진 뒤 양자로 받아들여져 서당에 보내진 것 같은 특수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단적으로 말해 한인 훈장은 유럽에 온 후 비도(非道), 비례(非禮)라는 현실에 유럽인들을 포함하여 개도(開導)하기 위해 서당을 만든 것이지만, 정작 현지인들에게 전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훈장은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학자나 주교를 흉내 내는 ‘주제도 모르는 이민족 학자’였고, 서당은 학교를 자칭하는 볼품없는 ‘야만인 교육 시설’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렇게 배운다는 것도 풍문으로 듣고는 실상에 큰 도움도 안 된다고 보며, 현실에서 철학과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보며 서당에 다니는 사람들을 전부 바보 취급하며 비웃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주제도 이민족 학자가 타타르 관리의 말을 거절하는 모습은 유럽인들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 이민족 학자가 드디어 미쳤나?’
‘저러다가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몽골제국의 현 통치 방식은 봉건제(封建制)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정도는 고려보다도 심했다.
그리고 유럽의 나라의 통치방식도 봉건제였기에 몽골은 순순히 항복하여 기존 권리와 재산은 쉽게 허락해 줄 수 있었고, 항복한 유럽 영주들과 기사들도 생각보다는 당장 큰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몽골이 지배 전후로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대표적으로 몽골 관리의 능력과 권위는 기존 왕국, 공국은 물론 제국에서 보낸 사자나 징세관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정의 권위와 힘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는 당대 동양과 서양의 봉건제에서 위치한 조정의 위상 차이였으니, 금이나 고려보다 봉건 성격이 강한 몽골조차 춘추 주나라 시기 봉건제보다는 중앙의 힘과 권위가 강했고, 당대 유럽의 봉건제보다는 더더욱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럽인들의 눈에는 더욱 저 주교 흉내 내는 이민족 학자의 태도는 미친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상당수가 저 학자는 조만간 타타르인들에게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관리가 보여준 것은 가히 기사에게조차 보이지 않을 예우였다.
“강한선생(江漢先生)의 명성과 충정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나, 지금이 먼 이방에서 이학(理學)이 꽃필 마지막 기회입니다. 선생께서는 정녕 이 기회를 버리고 이학이 근절되길 바라시는 것입니까?”
일개 가난하고 미친 학자를 두고 존대를 하며 설득하는 관리의 모습을 두고 주변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는 차치하더라도, 관리의 이학이 근절되길 바라는 것이냐는 말은 강한선생이라는 학자를 흔들어놓기에는 충분했다.
“…돌아가시오.”
“다시 올 것입니다.”
이후 더 대화를 나누었으나 결국 거절의 답변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관리는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그저 다시 오겠다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 떠날 뿐이었다.
* * *
“신이 보건대 북진국(北秦國 신성로마제국)은 물론, 진(秦 로마를 말하지만 이 경우 유럽을 의미)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태생의 신분과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평생을 일하다가 죽을 뿐입니다.
이들이 집안의 일에서 벗어나거나 신분을 이동하기 위해선 우연히 제후나 무사의 눈에 띄어 출사하여 공을 세우는 것 말고는, 출가하여 승려(주교)가 되거나 용병이 되어 무훈을 쌓고 눈에 띄는 것뿐입니다.
지금 본국이 서정으로 전쟁을 벌여 동원되고 있어 저들 입장에선 출사의 기회는 늘어나긴 했으나, 전쟁을 바라지 않는 이들도 있고, 이마저도 지금같은 전시라면 몰라도 평시에는 기존 북진국과 다름없사옵니다.”
“이전과 같은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아량이고 자비다만?”
야율초재의 말에 구유크는 무슨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시선과 목소리로 답변했고 야율초재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전근대에서 태생의 신분이 평생의 신분이 되어 죽을 때까지 고정되는 것이 정상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유크는 자신들은 항복하면 기존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말을 지킨 것에 찬사나 칭송을 받았으면 받았지 불만을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자 했다면 굳이 이런 말을 건네지도 않았던 야율초재는 구유크의 대답에 긍정하면서도 그것이 문제라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말씀대로입니다. 하나, 그렇기에 저들은 ‘과거를 그리워할 것입니다.’ 차이가 없는 생활 속에서 이민족이 위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이후 폐하께서 자리를 비울 때 역심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진의 사람들에게 북진과 다르면서도 나은 것을 주어야 합니다.”
“저들에게 그만큼 배려하라고?”
재차 무슨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거냐는 구유크의 시선과 목소리에서 야율초재는 과거 자신을 보고 헛소리나 말만 번지르르한 인간으로 보던 몽골인들의 시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시에도 여유롭게 반박한 야율초재는 지금 ‘백성을 노예라도 되는 것인 양 취급해선 안 된다’는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더 좋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 저들의 인심을 얻으면서 저들을 더욱 알차게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일거양득이 아니겠습니까?”
“…인심을 얻으면서 더욱 알차게 쓴다고? 말해봐라.”
흥미가 있다는 듯 대답하는 구유크의 반응에 야율초재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 * *
“말씀하신 대로 권해보았으나 계속 거절하고 있다고 합니다. 곱게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면 그냥 강제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야. 오히려 저게 나아. 우리가 유자는 대우한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한인들은 물론, 색목인들도 유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야.
그리고 그 관심을 이용해서 이 진(秦 유럽) 땅에서 태수(영주)나 무장(기사)외에도 본국에 충성할 기회를 색목인 백성들에게서 내려주는 것이야.”
“유학…으로 말입니까?”
부하는 미심쩍다는 듯 반문했지만 야율초재는 그런 초치는 듯한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아직까지도 몽골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문관이나 유자를 우습게 본다는 것을, 아니, 유학을 모르는 이들은 저런 반응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 몽골국은 분명 강력하여 능히 천하를 정벌할 수 있어, 하지만 천하를 정벌하는 것과 통치하는 것은 방법이 다른 법. 천하를 통치하기 위해선 옛 현인들의 조언에 따라 명군들이 하였듯 백성들의 충성을 얻어야 하는 것이야!”
“하면 금나라에서 도사들이나 승려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그들이 믿는 신앙을 이용하는 것은….”
“하하하. 본국이 언제는 저들의 신앙을 부정했던가? 지금도 저들이 말하는 성자(예수)를 부정하지도 않고, 저들의 신앙을 막지도 않지 않는가? 하지만 진과 법국에선 그들과 달라.
지금도 그렇지만 법국이나 진국의 주교라는 것들이 요구하는 바는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더군. 다른 신앙을 배척하고 오직 자신들의 신앙만을 믿으라고 말이야.
이 시점에서 그것을 주(主)로 이용하는 정책은 불가한 것이네. 단순히 신앙을 허락하는 것이야 문제없지만, 다른 지역의 신앙을 모조리 부정하고 배격한다면 누가 진 외의 땅에서 반발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진국조차 제대로 통치한다고 할 수는 없지. 법왕의 책봉을 받지 않으면 황제나 왕도 되지 못하는데, 그것이 무슨 황제란 말인가?
아니면 너는 황상께서 저 법왕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할 셈이냐?”
“무, 물론 아닙니다! 어찌 그런 터무니 없는 말씀을….”
야율초재의 반문에 부하는 깜짝 놀라며 신속하게 부정했다. 야율초재가 보기에 이 진국(=유럽)의 습속과 교황이라는 법왕의 존재는 참으로 이상하기가 그지없었다.
진국이 분열되어 쪼개지면서 천자의 권위와 힘이 많이 사라져, 작금의 법왕은 춘추시대의 패자(霸者)와 같으면서도 주(周)의 천자와 같은 행위를 하는 존재였다.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특권을 부리고 있으나 정작 법국 자체의 무력은 없었다. 그저 진국의 여러 제후들을 소집하고 그 제후들을 책봉하는 것이다.
이 비상식적인 체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왕은 그를 파문이라는 이름으로 책봉한 것을 취소하고, 그렇게 되면 일국의 왕조차 국내의 제후나 신하들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송 양공이 죽지 않고 제와 초를 이용하여 패자의 지위와 권위를 누비고 있는 것 같구나.’
송 양공은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으로 춘추시대에서 회맹을 주도한 적이 있어 간혹 춘추오패 중 하나로 거론되는 송나라의 군주였다.
그러나, 그 실체는 제와의 인연과 뇌물로 초를 설득하여, 두 강국의 힘과 명분을 이용하여 회맹을 소집한 것일 뿐인 송 자체의 국력은 몹시나 약해 패자로 인정받지 않는 경우도 왕왕한 이였다.
야율초재가 교황을 두고 송 양공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가 보기에 법왕은 자체 군사력이나 천자라고 할 법한 근본적인 정통성은 없으면서도, 과거 천자(로마 황제)에게 인정받은 권위와 정통성으로 진의 여러 제후와 군왕들을 책봉하고 진 천자의 후인인 북진주(北奏主 신성로마황제)와도 맞먹거나 부리려는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렇네. 만약 황상 폐하께서 저들의 습속대로 하여 백성들과 신하들의 인망을 얻으려면 법왕이 내리는 책봉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말이 될 소린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천하를 지배하는 예케 몽골 울루스의 대칸이 일개 색목인 무당(교황) 따위에게 휘둘린다는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글로 사서에 남게 된다면 후대에 분명 두고두고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야율초재는 확신했다.
“하여 진의 땅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저들의 신앙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한 것이네. 저들의 법왕과 그 신앙에 상관없거나 본조에 충성을 우선으로 할 자를 고르고 인망도 얻는 방도가 말이야.
그리고 이 계획안에 대해선 설재(雪齋 요추의 호). 아, 그러니까 요추 녀석도 거유(巨儒) 조복(趙復)을 통해 한인들을 보다 끌어당기고 이어 색목인들에게도 출세할 길을 만들자고 하였지.”
“…하나 저들에게 출세할 길을 준다면 자칫 저들이 모여 반란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중원도 아니고 이 땅에서는 힘든 법일세. 이미 죽은 북진주에게 붙을 것인가? 아니면 괴력난신인 법왕을 충성하겠는가? 그것도 아니면 이 먼 타지에서 색목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나라를 만들겠는가? 일반 색목인들에 이르러서는 태수보다 위에 있는 황상 폐하께 충성할 기회를 줄 수 있으니 이 계획은 시도해 봐도 나쁘지 않은 것이야.”
서정 중 죽은 빈 땅에 다루가치들을 파견하고 이주민들을 정착시켜 영향력을 확대시킨다고 한들, 현지민들이 느끼는 불안은 그대로였다.
안전보다 공명심을 추구하는 이들은 일단 전쟁에서 활약하면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환영하고 있으나 제아무리 몽골제국이라고 해도 영원히 전쟁을 벌일 수는 없는 법이다.
물론 몽골 전사들 중 평생 전쟁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고 진심으로 세계 정복을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론 무리고 그런 나라는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야율초재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여, 초재는 다른 몽골전사들이 전쟁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홀로 남몰래 이 거대한 대국의 유지를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을 우선으로 고민했으니, 그 결과는 과거 있었던 대국들의 지혜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바로 만들기 위해 중국의 유구한 시험제도인 ‘과거제(科擧制)’를 유럽에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조 학사가 완강히 거부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명예 때문인지 아니면 의무 때문인지는 차치하더라도 서당을 만든 시점에서 저자는 결국 받아들일 것이야. 내가 장담함세!”
야율초재는 그가 결국 권유를 받아들일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얼마 뒤 요추의 방문을 끝으로 조복이 몽골조정에서 내리는 관직을 받는 것으로 그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작가의 말
작중 나온 조복은 실제 당대 남송의 유명한 유학자입니다. 그는 원 역사에서도 단평입락 시기 몽골군의 포로로 잡혔는데, 요추(姚樞)에게 설득되어 원의 서원에서 유학을 강학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와 그가 양성한 제자들은 원나라 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원나라 유학사에선 나름 큰 비중과 위치를 가진 인물입니다.
작중에서도 단평입락에서 끌려왔는데 역사개변으로 유럽에 강제 이주당하는 이주민들 사이에 끼여 유럽까지 오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