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68
568화
終章 외전
“…여기가 정말 낭트란 말인가? 전부 다 불타 버렸구나.”
낭트 성으로 당당히 입성한 헨리 3세는 영국군의 방화로 전소된 낭트 거리를 천천히 지나가며 둘러보더니 이내 자신의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몽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루이는 어디 있지?”
“죄송합니다. 폐하. 루이 왕은 성을 벗어나 도주한 것 같습니다.”
시몽은 떨리는 목소리로 용서를 구하자, 헨리는 노골적으로 책망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물었다.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설마 왕인 자가, 병자를 희생시켜 도주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죽는 순간까지 루이를 원망하거나, 강제로 희생당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 적 없었지만, 시몽은 마치 루이 9세가 살기 위해 불쌍한 병자를 희생시킨 것처럼 말했다.
이건 루이 9세를 음해하기 위한 시몽의 저열한 복수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헨리 3세의 기분을 해소시켜 그 진노를 피하기 위한 변명에 가까웠다.
“성군이니 뭐니, 소문은 무성하더니만 결국 위기에 처하니 드러난 본성은 추악할 데가 없군. 뭐, 됐다. 루이를 놓친 것은 아쉽지만, 어쨌든 낭트를 점령한 공은 크다. 시몽, 너의 지위와 재산을 모두 돌려줄 것이다. 다시는 나를 모욕하거나 배신하지 마라!”
실소하며 이곳에는 없는 루이를 비웃고는 시몽의 본래 지위를 인정하겠다는 헨리의 말에 시몽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다시는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루이를 놓친 것은 아쉽군. 녀석이 살아 있다는 것이 전해진다면, 남부의 귀족들이 다시 군을 움직일 텐데….”
시몽의 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헨리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아쉬움을 표하자, 시몽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폐하. 남부 귀족들이라면 별 걱정하실 필요 없사옵니다. 이곳 낭트에 있던 전력이 프랑스가 현재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의 전부입니다. 설령 남아있더라도 그들은 더 이상 우리 왕국을 위협할 수준이 되지는 못합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곳과 브르타뉴의 지역이지. 거리가 있다고 해도 남부에는 아직 병력이 온전한 영주들도 적지 않을 텐데? 너가 전에 내게 용서를 빌면서 보낸 편지에 따르면 남부의 문제는 맡겨달라고 적었다. 성공한 것이냐?”
시몽은 자신 있게 긍정했다.
“예! 남부의 영지들은 아직도 카타리파를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카타리파의 교도들은 지금도 남부 귀족들과 주민들과 관계가 밀접하여, 그들을 통해 남부에 카타리파의 활동을 방임하는 대신, 카타리파를 배척하는 루이 9세를 돕지 않도록 설득하였습니다. 남부 영주들은 이에 대해 생각한다고 하였지만, 그 의도는 낭트에 소집되는 프랑스의 병력이 우리 잉글랜드를 격퇴하고 다시금 내려와 자신들을 칠 것을 경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낭트에서 그런 프랑스의 병력이 모두 상실됐습니다. 그런 지금, 남부의 카타리파 교도들과 영주들은 구태여 루이를 도울 이유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카타리파는 ‘이단(異端)’이다. 정말로 그들을 용서하란 말인가? 그대 마음대로?”
시몽이 말한 카타리파는 간단히 말하자면 기독교도 중에서도 극도로 금욕적인 계율과 사상을 가진 일파다. 그리고 동시에 헨리 3세의 말대로 카타리파는 지금 이단으로 찍혀 있기도 했다.
그것도 단순히 이단으로 주의받는 수준을 넘어 이미 십자군까지 편성되어 그들과 전쟁을 벌여 대대적으로 소탕했고, 지금도 적잖게 남은 이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이단심문관들이 파견되고, 병사들도 그들의 잔당을 발본색원하고 있는 중이다.
과거 루이 9세도 신성로마제국이 몽골과 전쟁 중일 때 준비를 위해 신성로마에 원군을 보내지 않는 빌미 중 하나로 카타리파의 소탕이었으니 그들의 존재는 작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만, 시몽의 아버지와 형이 그 카타리파 소탕에서 지휘한 장군이었는데, 정작 가족인 시몽이 그런 이단의 선교를 허락했다는 것은 폭탄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시몽은 비죽 웃으며 대답했다.
“신은 그들에게 딱히 전역의 선교를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이미 직간접적으로 활동 중인 남부 지역에 한하여 선교를 허락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부에 있는 것이 우리 잉글랜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여겼기에 둔 것이지. 만일 폐하께서 문제가 된다고 하신다면 신이 군을 지휘하여 그들을 소탕하겠습니다.”
헨리는 그들의 선교를 그들이 과거 활동하던 남부지역과 남부에 있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유의했다.
과거 카타리파들의 전성기에 그들의 본거지이자 주 활동지는 톨루즈 지역이었는데, 톨루즈는 지금 몽골의 땅이었다.
그런 그들을 남부에 둔다는 것은 자연히 그들의 활동은 톨루즈로 집중될 것이고, 앙주 동남부와 이탈리아반도 사이에 위치하는 톨루즈는 교황청에서 십자군을 보낼 시, 그들이 있는 영역이 완충지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동시에, 여차하면 영국령 내에 있는 그들을 토벌하는 것만으로도 교황청과의 화해의 패가 된다는 의미였다.
상황에 따라 어떻게든 쓸 수 있는 패라는 것을 이해한 헨리 3세는 비죽 웃고는 카타리파들에 대한 처우를 일단 애매모호하게 넘기기로 했다.
“이단이라고 하더라도 영주와 주민들이 많이 믿고 있는 이상 섣불리 무력으로 제압하면 소란이 일어나겠지. 우선 말로 설득해 보거라.”
“폐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굳이 ‘우선 말로 설득해 보라’는 의미 자체가 에둘러 시몽의 작전을 받아들이겠다는 대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남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이제 정말 서쪽의 브르타뉴만이 남았구나. 루이는 그곳으로 갔겠지?”
“예. 그리고 브르타뉴에는 더 이상 병력이 없으니 루이 왕을 잡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그만 잡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폐하. 어서 가시지요.”
“그렇군. 어서 전쟁을 끝내 이 혼란을 끝내야 죄 없는 백성들도 평안해지겠지. 좋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진군한다!”
대화 중 갑자기 진군을 결정한 것처럼 말했지만, 사전에 이미 주요 귀족들과 장군에게 브르타뉴로 진군할 것이라고 지시를 내린 상태였기에 헨리의 군대는 즉시 낭트 성에서 나가 진군을 시작할 수 있었다.
* * *
얼마 뒤, 브르타뉴 지방은 영국왕 헨리 3세의 군대와, 예정보다 이른 헨리의 진군 소식을 듣고 뒤늦게 합류한 앙주왕 리처드가 이끄는 군대는 병력이 많이 빠진 브르타뉴를 무난히 점령할 수 있었다.
이윽고, 브르타뉴 전역이 전부 점령되고, 마지막 남은 브르타뉴 성벽마저 영국의 깃발이 꽂히며 헨리가 입성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도 루이가 없어? 여기도 없다면 도대체 루이 놈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지금까지 점령한 성들에선 죄다 브르타뉴 성에서 루이 왕이 ‘돌아올 때까지 성을 굳게 지키고 있으라!’라는 명령을 전령을 통해 받았다고는 하는데, 정작 루이 왕은 브르타뉴 어느 곳에도 없으니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러나 헨리 3세나 리처드나 모두 마지막 성을 함락하는 순간까지도 루이 9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낭트 성이 함락된 이후, 루이의 전령이 브르타뉴 성에 당도하여, 돌아올 때까지 수성을 지시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루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귀신 곡할 노릇인 상황에서 헨리는 결국 인상을 찡그리며 루이 9세의 추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지긋지긋한 놈.”
루이 9세를 확실히 끝내지 못한 것은 헨리 3세로서는 불씨를 완전히 끄지 못한 것 같은 찜찜함 섞인 결말이었지만, 어쨌든 영몽 연합군의 프랑스 전쟁은 끝났다는 점에서 일단 루이 9세에 대한 관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몽골은 툴루즈 백국 및 블루아 백국 동쪽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절반을 점령하였고, 영국은 그 서쪽으로 앙주 제국 시절의 영토를 전부 수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멸망했다. 루이 9세의 행방불명은 분명 찜찜했으나, 그가 살아 있다고 해도 이 상황을 당장 역전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즉, 헨리 3세가 당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군대도 영토도 없는 프랑스의 루이 9세가 아니라 몽골의 칸이 회군한 뒤 보여줄 유럽의 반응과 대비였다. 그리고….
“…….”
헨리는 저 멀리 성으로 먼저 들어가고 있는 동생과 그 군대를 바라보았다. 야만인에게 무릎을 꿇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동생을 보냈다가 야만인들에게 어마어마한 것을 받게 된 자신의 동생. 리처드.
이번 영, 몽 – 프 전쟁에서 영국군이 점령한 땅들도 명목상 몽골 칸에게 서임 받은 앙주왕의 자리에 있는 리처드의 것이었으니, 헨리 3세로선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저 사절로서 보낸 동생에게 야만인들에게 받은 작위 외에도 적지 않은 병력까지 소유하고 있다면 더욱이 말이다.
‘리처드 녀석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타타르 놈들은 모른다. 그놈들이 말하는 앙주국의 영토가 어디까지인지도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겠어. 자칫 프랑스 땅에 있던 모든 영지를 앙주국의 땅이라고 해서 앙주왕이라는 직위 아래에 둘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게 된다면…. 아-! 리처드. 나의 동생이여! 부디 이 형에게 괴로운 선택을 하게 만들지 말아다오!’
형제간에도 권력은 나누기가 힘든 것이다. 그것이 왕권에 관계된다면 더더욱….
* * *
한편, 헨리가 그토록 찾고 있던 루이 9세는 상파뉴부터 이어진 연이은 패전과 낭트 성의 야습, 등으로 이제는 백여 명 남짓한 규모로 줄어든 일행들을 이끌고 톨루즈 남부 오드강에 이른 상태였다.
“…허어.”
낭트 성에서 벗어난 후, 루이 9세 일행들은 많은 사람의 예상과 다르게 서쪽이 아닌 남부로 이동했다. 푸아티에 및 남부는 전쟁이 이미 끝난 상황이니 관리나 경계가 소홀할 것이고, 톨루즈도 타타르군 대부분이 회군한 상황이니 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낭트의 전력을 상실한 지금, 어떻게든 남부로 가서, 아직도 지지부진한 남부의 병력을 이끌고 북진하여 브르타뉴를 치고 있는 영국군의 뒤를 친다는 마지막 작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과감한 남행(南行)의 시도는 정말로 톨루즈 남부까지 통과하며 성공했지만, 오드강에 당도하면서 알게 된 중남부의 상황은 루이가 생각한 것을 훌쩍 넘었다.
이단인 카타리파는 루이 9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이 있었고, 영향력도 강했고, 루이 9세가 연신 패전했다는 소식으로 남부의 많은 귀족들과 백성들 사이에서 적잖은 수가 루이에 대해 별 관심이 없거나 경계, 혹은 그냥 무시하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중남부에도 루이의 선정에 지지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반대나 무관심이 많은 시점에서 남부에서 영국군을 칠 병력을 규합하여 브르타뉴를 구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기야 이미 브르타뉴도 점령됐다는 소문도 있다는 보고를 듣고 만 루이 9세는 드디어 참담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처음으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큰일을 이룰 인재인데, 나와 함께 한다고 많은 고생을 겪었구나. 이제 내 한 몸 지낼 땅도 없는데, 너희들을 어떻게 데리고 있겠느냐?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줄 테니 너희들은 각자 마음대로 가라. 만약 뜻이 있는 기사들이나 귀족들이 있다면 이후 저 이민족과 배신자들로부터 땅을 되찾아 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사실상 유언이었다. 넓은 영토와 막대한 재화, 수많은 군대를 모두 잃은 루이는 몽골군에게 쫓겨 다니다가 초토화된 나라를 목격한 여타 나라의 왕들처럼 쪼그라든 자신의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고, 정말로 그들을 떠나보낸 뒤 남방의 귀족들에게 죽든 말든 정체를 밝힐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럴 수 없습니다. 폐하!”
하지만, 루이 9세의 포기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연이은 패전과 도주로 이제 ‘이게 정말로 프랑스 왕의 무리가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볼품없이 줄어든 규모였지만, 이 과정에서 일원들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괜찮나? 내 손을 잡고 일어나게.”
“가, 각하? 저 같은 것에게….”
“각하. 잠시. 비켜주십시오. 그곳을 치운 후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음. 부탁하지.”
많은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도주하지 않은 그들 사이에선 신분과 지위를 떠나 끈끈해졌고, 루이 9세에 대한 충성도 더 이상 단순한 계약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나약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 루이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넨 것은 루이에게 주변 상황을 보고한 병사였으며, 낭트 성에서 탈출하려던 루이 9세 일행을 발견한 영국군 병사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
*작중 395화 4부 26장 ‘멸망하는 신성로마(2)’(문피아 기준)에서 신성로마제국이 멸망 당하고 있을 때, 루이 9세는 이단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신성로마로 원군을 보내는 것을 거절할 것이라는 언급이 나온 적 있습니다.
**루이 9세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고 많이 나오고, 편의적인 전개도 종종 있는데, 이건 작가가 초반에 구상했던 설정에선 유럽 파트에서 유럽 진영의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캐릭터로 루이 9세를 구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설정이 달라져서 전개가 많이 달라지긴 했습니다만, 지금도 그 잔재가 있으며 여전히 유럽에선 중요한 비중에 있습니다.
루이 9세 관련 파트는 다음 편으로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