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70
570화
終章 외전
구유크가 회군을 최대한 은폐하며 신속히 실행한 것은 여태까지 요리조리 피하거나 알아채 대비하는 고려를 막기 위한 조치인 동시에 이번에는 고려를 확실히 친다는 의지 표명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구유크의 선택은 이후 왕검과 고려의 반응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병귀신속(兵貴神速)의 논리가 예로부터 당연하고도 필수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실천되지 않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나는 것은 하지 못한 장수들이 병귀신속을 몰라서만이 아니다.
“칸. 너무 빠릅니다. 이래선 뒤처지는 이들이….”
“뒤처지는 자들은 이후 따라오라고 전해라! 지금은 당도하는 것이 우선이다!”
군사를 신속히 움직인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병귀신속은 신속한 용병술이 중요하다는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라는 말이기도 하다. 결코 그저 무작정 빨리 저지르라는 말이 아닌 것이다.
그 증거로 당대 세계 제일인 몽골군의 기동력이지만, 그것이 전근대, 아니, 현대에서도 서둘러 진군을 할 시 일어나는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칸! 이대로라면 요동에 당도했을 때에는 절반, 아니, 3할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단순히 기동만을 생각하고 움직여도 정작, 목적지에 당도해서 싸울 병력이 없다면 말짱 꽝인 것이다.
“상관없다. 차카타이 울루스에 병력을 준비하라고 지시를 내렸으니 그들을 합류시킬 것이고, 동요(東遼)에서도 다시 보충한다면 고려를 칠 병력은 충분하다!”
하지만 몽골은 왕검이 몹시 부러워하는 오고타이 시절부터 구축되고 있었던 역참제도로 그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회군 전에 출발한 전령은 차카타이 울루스에서 모은 병력을 대기시키되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전달했고, 구유크의 군대가 당도하는 순간 즉시 합류하여 그날 바로 동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루도 채 멈추지 않은 채 신속히 동쪽으로 돌아가는 구유크의 회군은 이미 회군하는 군대가 아니라, 기동전을 위한 초대규모 기동부대다 다를 바 없었다. 실제 구유크의 목표를 생각한다면 그 평가도 딱히 틀렸다곤 할 수 없기도 했다.
그리고 정예 몽골 전사들조차 뒤처지는 것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훈련도 받아본 적 없는 고려의 질자(인질) 영녕공과 그 일행이 구유크의 진격 같은 회군을 따라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들은 구유크의 본대에 뒤처졌다가 겨우 차카타이 울루스에 당도하고는 체류 중이라는 사죄 섞인 보고를 보내야 했다.
“고려 왕자 일행이 차카타이 울루스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본의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영녕공의 행동은 질자(인질)로서 결례적인 행동이었으나, 구유크는 그들의 체류를 질책하지 않았다.
“알았다. 무리하게 급히 쫓을 필요 없다고 해라.”
고려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간자가 될(혹은 이미 간자일) 확률이 높은 고려 왕자를 군중에 둘 필요는 없었다. 하물며 죽이지도 못하는 질자라면 더더욱 군중 밖에 두는 것이 나았다.
“고려인들이 빠졌으니 조금 여유가 생겼군. 카라콜룸에 당도하는 즉시, 고려에 통하는 정보를 차단한다면, 군이 모이는 동안 잠시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아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차카타이 울루스를 비롯한 예케 몽골 울루스의 전역에 미리 준비시키고 지나갈 때마다 합류시킨 것은 그저 현지의 병력(사람)만이 아니다.
인류 최대, 최강의 유목국가답게 합류한 기병들의 수 이상으로 군마들도 준비시켰으니. 그 장대한 말들의 질주를 보았다면 왕검도 순간 말문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합류한 말들은 그 성능을 톡톡히 발휘했다.
“푸르르르.”
“지쳤군. 슬슬 바꿔야겠군.”
그리 말한 몽골인은 그대로 끌고 다니는 말 중 가장 쌩쌩한 녀석을 옆으로 끌고 왔다.
그런 기병은 한 명이 아니었다. 회군 중인 모든 기병이 여러 필의 말을 끌고, 다녔는데, 그들은 말이 지칠 때마다 건장한 다른 말로 교체하고 질주를 계속한 것이다.
심지어 유목민족(혹은 유목민족 출신은 아니지만 구유크의 회군에 뒤처지지 않은 기병이) 아니랄까 봐 말을 교체할 때도 따로 말을 멈추지도 않았다. 그 결과 몽골군의 질주와 같은 속도는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10만이 넘는 기병들이 넘는 대군과 수십만 필이 넘는 군마들이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그 모습은 인류가 말을 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광경일 것이다.
“…후우. 뻐근하군.”
“일단 당도하면 쉬고 싶어.”
하지만 아무리 말 위에서 먹고 자는 게 가능한 유목민족이라도 단순히 말 위가 아니라 밤낮으로 달리고 있는 말 위에 계속 있는 것에 피로를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이동하면 할수록 전투력은 조금씩이나마 저하되고, 피로는 축적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고려에 들키지 않고 신속히 가겠다는 생각 하나로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게 가능했던 것은, 당대 몽골의 기동전 같은 회군을 막을 나라가 유럽부터 카라콜룸까지 이미 하나도 없다는 몽골의 확신 어린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이대로 바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카라콜룸에 당도하면 재정비를 위해 말에서 내려 주둔하여 상태를 회복할 것이라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
.
.
그러나 구유크와 몽골기병들의 그러한 계획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이상한 방향으로 수정되었다.
* * *
아리크 부카는 친카이의 책모에 크게 감탄하며 자신에게 전쟁에 엮인 정략적인 부분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는 것도 많이 실감했다.
만약 친카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고려와 전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령 무리하게 고려와 전쟁을 벌였다고 하더라도, 친카이가 마련한 만큼의 병력을 준비하지 못했을 것이고, 정치적 부담을 감소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목적도 확실한 승리 말고는 초점을 주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친카이의 지모에서 나온 것이고, 그를 곁에 들인 것만으로 자신은 지난 실수를 반복하는 우를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온갖 준비를 마친 끝에 힘들게 마련한 군대는 무려 3만 명이고 출진까지도 불과 며칠 남지 않았었다. 고작 며칠, 그 며칠이란 시간만 지나면 아리크 부카의 군대가 고려를 넘으면서 ‘아리크 부카와 고려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었다.
“대칸께서 카라콜룸으로 돌아왔습니다.”
“…뭐?”
“아리크 부카 님께서는 군대를 이동하지 말고, 요동에서 대기하시랍니다.”
그런데 갑자기 카라콜룸에 대칸이 회군하여 도착했고, 자신에겐 요동에서 주둔한 채 기다리라는 전령이 당도한 것이다.
친카이도 구유크의 회군을 예상 못 했는지 허탈함과 당혹함이 섞인 표정을 지었지만 노련한 노신답게 즉시 표정을 풀고는 칸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건의했다.
“아리크 부카 님. 통탄스러운 심정은 이해하오나, 대칸께서 카라콜룸에 오신 이상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번 전쟁은 포기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다.”
아리크 부카도 칸인 구유크가 직접 온 이상, 사전에 제왕들이나 제추들의 ‘제 살이나 깎아 먹을 전쟁’이라는 감상으로 받은 묵인도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유크는 자신에게 소환령을 내리지 않고, 요동에서 주둔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이제 곧 대칸께서 지금 모인 병력을 활용하기 위해 지시를 내리실 것입니다. 운이 좋다면 칸께서 군대의 지휘를 아리크 부카 님께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으나,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친카이의 말대로였다. 군대를 해산하지도 소환령도 내리지 않았다는 말은 그들이 준비한 병력과 전쟁 준비를 그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였지만, 가장 중요한 지휘권은 구유크의 마음대로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준비한 것을 두 눈 뜬 채로 구유크에게 ‘자신의 전쟁’을 빼앗겨도 어쩔 방도가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준비를 마치자 그제서야 나타난 구유크의 뜻대로 지휘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현실에 아리크 부카가 울화가 치솟지 않을 리 없었다.
이전 그의 행적과 진짜 성정을 아는 이들은 아리크 부카가 또 사달을 일으키지 않는가 걱정부터 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날이 섰다.
“…수고했다. 아리크 부카. 너 덕분에 다소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뒤 아리크 부카는 터질듯한 울화는 물론 핏기조차 싹 사라진 상태로 얌전히 군말 하나 없이 새로 온 이에게 군의 지휘를 양보했다.
“가, 감사합니다. 대칸.”
대칸인 구유크가 대군을 이끌고 요동에 직접 왔기 때문이다.
* * *
“아리크 부카 녀석. 내가 없는 사이 이런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거냐?”
구유크의 회군으로 놀란 것은 아리크 부카 일행만이 아니다. 구유크도 회군 후 아리크 부카의 행동을 듣고는 적잖게 놀란 상태였는데, 양측의 차이가 있다면 아리크 부카는 당황과 낭패감이라면 구유크는 황당함은 있을지언정, 낭패감은 없었다는 점이다.
“명분과 준비, 방법…. 흠잡을 데 없군. 이게 정말 아리크 부카 녀석이 했다고?”
그들이 이번 전쟁을 위해 준비한 전략은 구유크의 전략과 흡사했다. 고려를 치기 위해 미리 정보를 차단하고 이곳은 급히 병력을 증대한다.
심지어 아리크부카의 전력과 지위상의 한계라고 해도 전쟁의 목적이 고려왕의 양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구유크와 비슷했다.
단지 구유크의 지위와 힘으론 단순한 양위 요구가 아닌 직접 실천이 가능하다는 점과 약탈만이 아니라 정벌도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 아리크 부카 님에게 진해(=친카이) 공이 동행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진해 공의 지모에서 나온 것일 겁니다.”
야율초재는 아리크 부카가 아닌 친카이에게 나왔음을 설명했지만 구유크는 단번에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느냐? 그 친카이를 아리크 부카 녀석이 자기 밑으로 들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가 알던 그놈에겐 친카이를 영입할 능력이 없었다. 아니, 친카이가 동쪽에 온 것을 두고 영입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지조차 의심스러운 놈이었다.
그런데 봐라. 지금 친카이는 아리크 부카 녀석을 위해 내가 준 직위를 이용하여 군대를 만들고, 임무를 이용하여 전쟁을 준비시켰고, 통제를 빌미로 고려에게 가는 정보를 모조리 차단시켰다. 그리고 나는 여기 올 때까지 그것을 몰랐지.”
“아무래도 친카이 공이 서정 중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이 매우 충격이었나 봅니다.”
야율초재의 말은 무책임하고 어리석게 들렸지만 요지는 달랐다.
“그래서 내가 아닌 녀석을 따르겠다고?”
“…그저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닌가 싶어 말씀드렸습니다.”
“야율초재. 나는 너의 능력을 높이 사지만, 그 만자(蠻子 남송인의 멸칭. 이번 경우에는 한족도 포함) 같은 말버릇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야율초재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야율초재가 구유크를 시험한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족의, 아니, 정치를 하는 사람답게 은유적인, 그리고 암시해 주는 화법을 쓴 것뿐이다.
그러나 직설적인 것을 좋아하는 몽골인 주군이 그것이 싫다고 한다면 신하인 자신이 시정해야 한다.
하물며, 자신의 주군인 구유크는 분명 타 민족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기용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시험하거나 이용하려 드는 것을 매우 고깝게 여기는 사람.
여태 이 조건 속에서 구유크의 진노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자는 오직 고려의 왕태자뿐이었고, 이마저도 이제 그 대가를 치를 상황이 아닌가?
‘빈말로 수만 대군을 마련한 진 공이 무능해서 여기로 좌천되었던가? 심지어 그는 성길사한(成吉思汗 칭기즈칸) 시절부터 복무했던 총신인데도, 좌천되었으니, 나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물론, 그렇다고 야율초재에게서 구유크에 대한 충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자신의 알아주는 사람을 주군으로 따른다고, 사내라기보다는 노인에 가까운 야율초재도 어느 몽골인들보다도 자신을 알아주는 구유크를 계속 따를 생각이었다.
“하온데, 대칸. 요동에 있는 고려군의 처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 시옵니까?”
야율초재가 말한 고려군이란 동요의 요양성에서 주둔 중인 북방의 고려군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