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571
571화
終章 외전 完
동진국의 일 이후 옷치긴 왕가 테무케와 고려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 오고타이 말년에는 노왕과 흑태자 양자 모두 사생결단을 내고자 친군(親軍)을 각오할 정도였다.
그런 전면전쟁이 무산된 것은 순전히 오고타이 칸의 죽음이 덕분이었다.
서정에 갔던 칸의 죽음에 공백이 된 카라콜룸에 누구보다 먼저 당도하여 쿠릴타이의 주도권을 얻으려던 노왕 테무케 옹 입장에선, 고려에 붙잡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전쟁은 무산되고 먼저 물러난 만큼 테무케는 고려의 ‘요동에 고려군 주둔’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렇게 고려군이 주둔 되면서 친 고려파와 영향력이 거세졌고, 여기에 임인사화(壬寅士禍) (혹은, 고려가 일으킨 사화(士禍)라고 하여 ‘고려사화(高麗士禍)’)라고 불리는 사건과 고려가 2차 옷치긴 전쟁에도 승리하자 동요국 내의 조정 인사는 명백히 친 고려파로 치중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사화 당시 친 몽골파들도 줄줄이 숙청되던 상황에서 반몽이면서 반고려이기도 한 어느 쪽도 아닌 이들의 처우도 말할 것도 없었다.
이후 고려에서도 굳이 많은 병력이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둔하고 있던 고려군도 많이 줄어들었는데, 여전히 백여 명은 주둔하고 있었으니, 그 군대가 바로 야율초재가 말한 요동에 있던 고려군이었다.
수적으로 보자면 요동에 있는 고려군 100여 명은 큰 수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른데, 사화 이전부터 요동에 주둔하던 군대는 ‘태자견룡군’ 혹은 북방군이었고, 지금도 그 인원은 달라진 것이 없다. 즉, 정예군이다.
“길라잡이로 쓰거나 항복을 권유하게 만들거나, 하다못해 화살받이로도 쓸 수는 있습니다.”
항복하거나 잡은 포로들을 길라잡이로 쓰거나 화살받이로 쓰는 것은 몽골은 이미 여러 번 해본 일이다.
당장 1차 여몽 전쟁에서도 홍복원의 아버지 홍대순(洪大純)이 항복하면서 근방 현령들과 호족들을 설득하거나 길라잡이가 되어 몽골군을 안내했고, 조충의 아들 조숙창(趙叔昌)도 몽골에 잡히자, 몽골원수 카치운과 의형제의 연을 맺은 제 아버지 조충을 거론하며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선두에서 고려의 북방 성들에게 항복을 권유하였는데, 둘 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정예라는 말은 그만큼 전술, 전법 등 정보들을 숙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고려군을 이끄는 중랑장(中郎將) 최영(崔瑛)은 무려 태자견룡군 소속이다. 중랑장의 품계는 정5품이지만, 무관으로서 ‘정5품 무인’은 결코 낮은 지위가 아니다.
문무양도(文武兩道)라는 취지로 신설된 무관의 최고직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있긴 하지만, 수문하시중을 뺀다면 일반적으로 무관 최고직은 여전히 정3품 상장군이 한계다.
그리고 중랑장은 겸직이나 임시직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보면 상장군, 대장군, 장군 다음가는 무관의 지위다.
상장군과 대장군처럼 총군을 총지휘하는 경우는 없어도 군의에서 그들과 동석하여 작전을 짜고 낭장과 더불어 전장에서 군을 직접 지휘하며 움직이는 지위다.
그런 지위의 장수를 구태여 태자견룡군에서 배출하여 보냈다는 점에서 왕검이 요동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높은 녀석만 회유해 보고, 병사들은 일단 둬라.”
“정 탐탁지 않으시다면 우선 중원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고문하여 정보를 알아내거나 화살받이나 길라잡이로도 쓰지 않겠다면 차라리 전장에서 멀리 치우는 것도 방책이라는 야율초재의 제안에 구유크는 고개를 저었다.
“만자 놈들을 견제하러 보내는 것이 과연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리크 부카와 야율초재가 구유크가 없을 때, 자의로 전쟁을 치르려고 했지만, 아무런 명분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후 구유크가 문책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명분만은 확실히 준비했고, 그 명분은 구유크가 사용하려던 명분 중 하나와 비슷했다.
명분 중 하나라는 말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구유크와 왕검의 거래는 고려에게 큰 이익을 줬지만 그만큼 고려도 몽골에게 고려를 칠 명분들도 제공했다.
덕분에 구유크는 언제든지 고려를 칠 명분들이 있었고, 왕검이 구유크의 회군만은 어떻게든 막으려 한 이유도 이러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구유크가 고려와의 전쟁을 위해 왔다가 아리크 부카가 준비한 병력들을 자신의 전쟁에 활용하기 위해 검토하던 중 이상함을 느꼈다.
서정 중에서도 보고로는 들었으나, 보고로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과 의심되는 일들이 보이는 것이다.
“…금 잔당이 했다는 말이 신경 쓰이십니까?”
고려가 남송과 회맹을 하고, 금나라 잔당과도 연계하여 자신들을 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맹에 참가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일전에 넌지시 알린 송을 속이기 위한 술책… 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왕검을 어느 몽골인보다 잘 아는 구유크만은 그 가능성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돌아와서 동방의 변화를 확인한 이후 더욱 강해졌다.
“고려의 영토가 많이 달라졌군.”
“이미 옷치긴 울루스와 합의를 하였고, 수분하 이동의 부분은 대칸께서 오신 후 논의한다고 하였습니다.”
“요동의 주르첸들은 옷치긴 울루스보다 고려에 조공을 많이 보낸다고?”
“예!”
“여기 적힌 이름들이 전부 요양성 내에 있는 고려 놈들에게 붙은 놈들이란 말이냐?”
“예. ”
“…고려가 언제 여기까지 커졌단 말이냐?”
3차 여몽전쟁에서부터 왕태자의 우선은 몽골보다 자국인 고려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구유크였던 만큼, 남송과의 수교에도 고려의 이익이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서정 중 보고를 들으며 서정을 우선하여 넘어가면서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오고 나니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서정을 가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고려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금나라의 옥새나 남송에 왕태자가 직접 갔다는 이야기 등을 듣고도 금과 남송과 연계한다는 이야기를 두고 고려가 몽골을 위해 간자 역할을 하다가 일어난 일일 뿐이다라고 넘어가긴 힘들었다.
“그저 낭설로만 치부할 수 없지. 차라리 모조리 죽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간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저울하고 있었던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중 간자였던가? 아니면 지금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인가?’
확실한 것은 왕태자의 속내가 무엇이든 현재 고려의 모습은 구유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구유크는 은혜를 베풀고, 후하게 대접해 준 대가가 이것이라면 결코 가만둘 수 없었다.
쉽게 말해 처음부터 전쟁할 생각이긴 했지만 더더욱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 것이다.
“하오나 저들을 요동에 두는 것보다는 그래도 중원에….”
“아니, 그건 고려만을 친다는 전제에서다. 아리크 부카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하면 이렇게 생긴 여유를 적절히 이용해야지. 이번 기회에 중원에 있는 주르첸 놈들을 완전히 지워 버린다! 저들의 정보를 그들 전원이 있어야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내뱉게 만드는 이중전선을 이야기하는 구우크를 두고 야율초재는 평범하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넘기고는 차선을 내밀었다.
이중 전선이 어렵다고 해도 예케 몽골 울루스 입장에서 금나라 잔당 처리를 두고 이중전선이라고 하는 것은 예케 몽골 울루스를 무시하는 행위였으니 말이다.
“폐하께서 여전히 고려 태자를 포섭하고자 하신다면 이후 태자의 전력이 될 저들을 죽이지 않고 돌려주는 것이 태자를 부리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멍청한 놈. 나중을 생각하자고 저들의 전력을 줄일 기회를 포기하라고?”
전쟁에 있어선 야율초재의 의견 따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구유크는 쌍심지를 켜며 노려보자 야율초재는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즉시 설명했다.
“물론 아닙니다. 전쟁 중에 돌려줄 이유는 없지요. 다만, 고려 태자의 병력을 처리하는 것은 이후 고려 태자가 고려를 장악하는 데 불편함이 있지 않을까 하여 말해본 것입니다.”
“왕태자는 이미 고려를 장악했다. 그저 왕 놈이 끝까지 왕좌를 고집해서 그런 것이지. 그리고 그때까지 어디에 두란 말이냐? 서쪽으로라도 보내랴?”
“예. 서쪽으로 보내는 겁니다.”
“뭐라고?”
“고려 병사들을 손톱 속의 가시 같은 존재로 두기 싫다면 차라리 차카타이 울루스에 있는 영녕공의 호위를 명목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하면 공적으론 질자의 안전을 위해 보내고, 사적으로도 태자의 병사들을 숙청하지 않기 위해 보낸 것이 됩니다. 이후 전쟁이 끝난 후 태자를 설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조금 생각해 볼 만하군.”
최영을 비롯한 고려군은 야율초재의 제안에 구유크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되겠지만, 동시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요동에 있던 고려군이 전쟁 중 고려에 돌아갈 일은 없어진 것이다.
* * *
“자, 잠깐. 놓아주시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오!”
“고려에 붙어 배를 채울 때는 기뻤겠지? 칸께서 돌아오시는 날을 두고 보자고 분명 말했을 터다!!”
“어, 억울하오! 나는 그저 조정을 위해…!!”
“시끄럽다. 어서 끌고 가라!”
동방에서 일어난 일을 확인한 구유크가 동요국 내 고려파 인사들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리크 부카도 동요국 내 친고려파 인사가 많다는 것을 알았지만, 숙청한다거나 처리는 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아리크 부카에게 그만한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황자로, 동요왕인 야율수국노보다 지위가 높더라도, 그게 동요국 내정에 강하게 간섭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리크 부카가 고려와 전쟁을 하더라도 멸망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보면 왕태자와 협력을 유지 혹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었던 만큼, 왕태자(고려)의 모든 힘을 철저히 박살 낼 이유가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구유크의 경우는 다르다.
고려를 멸망 시킬 수 있었고, 정벌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런 생각과 목적을 가지고 칠 병력과 전력이 객관적으로는 있었다.
무엇보다 서정을 끝내고 돌아온 이상 고려의 힘이 다소 많이 떨어진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동요국이 임인년(1242년)이후 다시 외국에 의해 강제로 사화(士禍)를 당하고 있는 사이, 몽골군도 전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 준비에 아리크 부카의 공이 작지 않다. 하여 너희 형제들에게 기회를 내리도록 하겠다. 이번에야말로 지난번의 오명을 만회하도록 해보거라!”
유럽에서 출발했을 때 구유크의 회군 병력은 기병 20만이었다. 그러나 그가 요동에 당도했을 때 그를 호종한 병력은 9만도 되지 않았다. 회군 도중 각 울루스나 부족에게 증원을 받았는데도 그것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는 카라콜룸에 당도할 때쯤, 아리크 부카의 전쟁 준비를 듣고는 요동에 갈 때쯤엔 가장 멀쩡한 이들로 다시금 줄였다는 점도 있었으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구유크의 대륙 질주에 뒤처진 병력이 많았다는 것이다.
“끄응. 나도 여기서 주변 군대를 모았다가 이후 가도록 하지.”
“나, 나도 아직 부하들이 다 모이지 않았어. 여기서 기다렸다가 다 오면 그때 갈 것이다.”
그리고 이 무리한 회군의 피로는 지위의 위아래를 가리지 않았다. 제아무리 유목민족, 기마민족이라고 해도 질주하는 말 위에 계속 타 있는 것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유럽에서부터 온 이들만이 아니라, 어지간한 회군 초부터 있었던 장수들은 일말이나마 쉴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구유크는 그들에게 휴식을 주었다. 실제 뒤처진 병력도 있고, 전쟁 중 동방에서 다시금 병력을 동원하는 것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고려가 눈치채기 전 바로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저희 형제들에게 기회를 준다니 칸의 자비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케 몽골 울루스의 군대에 부끄럽지 않은 성과를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때 유럽에서부터 따라왔거나 도중 합류한 장수들을 대신하여 고려 전쟁에 선봉군을 맡게 된 장수들이 바로 몽케 형제들이었다.
아리크 부카의 독자 판단으로 전쟁을 모색하고 준비한 것이지만, 그 준비가 누가 봐도 결과적으로 구유크의 동정(東征)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인바, 구유크도 이것을 문책하지 않는 이상 동정 준비의 공으로 인정해야 했다.
그런 이유로 카라콜룸에 있는 형제들도 끌어들여, 아리크 부카에게는 그가 준비했던 3만의 병력을, 몽케와 쿠빌라이에게도 구유크와 함께 온 병력 9만에서 3만씩 나눠 군을 맡긴 것이다.
“믿고 맡기도록 하겠다.”
그렇게 요동에서 총 9만의 군대가 3군으로 나뉘어 진군을 시작했다. 이때 아리크 부카의 군대는 가장 가까운 안동성으로 향했고, 몽케의 군대는 갈라전. 즉, 동만주 쪽으로 향했으며, 쿠빌라이가 이끄는 군대는 북관도로 향했다.
* * *
몽케 형제들이 이끄는 군대가 출진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구유크에게 야율초재가 입을 열어 물었다.
“굳이 3군으로 나눌 이유가 있사옵니까? 허를 찌른다면 대군이 하나가 되어 쐐기가 되어 치는 것이 낫지 않사옵니까?”
실제 거란이 고려를 쳤을 때, 그러했고, 이전의 여몽전쟁에서도 군을 나누되 주력부대는 단숨에 쳐내려 갔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구유크는 떠나는 군대를 그대로 주시하며 대답했다.
“이전과 같았다면 그랬겠지.”
대답은 그뿐이었지만, 야율초재는 이해했다.
“…존의(尊意)하겠나이다.”
이번 전쟁에 선봉군으로 형제들이 발탁된 것은 명목상으로는 아리크 부카의 공을 높이 사서 그 형제들에게도 지난번의 불명예와 무훈을 쌓을 기회를 준 것이지만 당연히 다른 이유들도 있었기에 선택된 것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아직 동방의 군대가 완전히 소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그 군대를 지휘할 숙장(宿將)들이 급한 회군으로 생긴 피로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고, 세 번째는 생각 이상으로 어수선한 동방의 상황을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조금이라도 더 둘러볼 필요를 느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서정에 간 동안 어느 사이에 옛 툴루이의 제장들을 규합시킨 몽케 형제들과 못 본 사이 맺혀진 고려와의 인연을 이번 기회에 단절시키기 위해서였다.
“하나 그들이 이것을 안다면….”
“안다고 뭐가 달라지느냐?”
구유크 말마따나, 몽케 형제들이 구유크의 속내를 안다고 해도 대칸인 그의 명령을 거부할 방도는 없었다.
구유크가 당도하기 전에 몰래 준비하고, 묵인시킨 전쟁을 대칸이 오자 거부한다는 것은 스스로 이 전쟁의 준비가 옳지 않았다는 죄를 인정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들도 대칸의 명령을 받아들여야지. 대칸이 이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 되니, 몽케 형제들도 고려와의 인연은 청산되더라도 받아야 했다. 지금 받아야지 공훈을 세울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상대를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취하면서도, 일말의 상은 내려주니, 상대하는 이들로선 무작정 적대만은 할 수 없다. 이것이 폐하의 용인술(用人術). 정말 적대하고 싶지 않군.’
거절하기엔 잃는 것이 막대하고, 수락하면 얻는 것이 있긴 하니, 상대는 강적인 구유크에게 불만을 가질지언정 반항까지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런 구유크의 정치 능력에 야율초재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구유크의 표적이 된 몽케 형제들과 고려 왕태자에게 연민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군대가 모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구유크는 게르로 돌아갔다.
“하면 슬슬 나도 오랜만에 고려 아들(高麗子)을 만나볼 준비를 해야겠구나.”
고려를 뒤엎을 것이다. 그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을 선언해 놓고, 당사자는 웃고 있었다. 도저히 혈겁을 일으키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상쾌한 미소로 예케 몽골 울루스의 대칸(구유크)은 고려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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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기념 이모저모
1. 원래 설정대로 금수유가 제거되었다면 주인공의 배우자는 누가 되었는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금수유 생존이 확정 돼서 딱히 누구라곤 말 못 합니다. 김약선의 딸이 초반에 잠깐 결혼까지 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론 왕실의 여인 한 명과 이어지는 족내혼(族內婚 근친혼) 전개였습니다.
당연하지만 고려 시대에선 왕가는 족내혼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중 시작 시점에서 무신정권 등으로 실추된 왕실 권위를 위해서라도 왕실에서 배우자를 뽑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계획대로 집필했다면 아마도 희종(熙宗) 계열이나 연관된 쪽에서 나왔을 확률이 큽니다.
다만 설정이 변경되면서 왕가의 여인을 들이면, 금수유를 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뺄 수도 없고, 어쨌든 ‘여인천하’ 찍을 확률이 커져서 금수유만 남겼습니다.
2. 원 역사에서 원종의 아내인 정순왕후(靜順王后 김약선의 딸)와는 이어질 생각이 없었는가?
->정순왕후(靜順王后)와 이어지는 것은 극초반에 잠깐 생각했지만 바로 폐기했습니다.
잠깐이나마 생각한 이유는 원 역사대로 하자기보다는 고려 시대에는 친자식 외에 사위도 후계자가 될 수 있고, 작중 시점에선 김약선이 최우의 후계자다보니 최우->김약선->주인공으로 스무스하게 무신정권의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우와 김약선의 사이가 결국 흐트러진다는 것과 그것을 무마시키면서 전쟁 대비는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냥 폐기했습니다.
3. 주인공은 일부일처제로 계속 가는가?
->[고려 흑태자]는 이걸로 완결 났으니 ‘결국 없었다.’로 결론이 났고, 후속작에서도 그런가?에 대해선, 언제나처럼 ‘스포성 질문은 노코멘트’를 유지하겠습니다.
4. 구설정에선 [고려 흑태자]에서 주인공이 일부다처제로 가는 전개도 구상한 적 있었습니다.
정실 외에도 대충 5명 이상의 부인을 더 들이려는 구상은 했습니다. 장르를 갑자기 하렘물로 변경하려던 것이 아니라, 태조 왕건이 난세를 빠르게 종식시키고 쉽게 통치하기 위해 각지 호족들과 정략혼을 맺은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주인공이 각지에서 현지에 힘과 인망을 갖춘 귀족(호족)들의 여식과 혼인하여 시급히 전국의 안정을 추구하려는 전개였습니다. 대충 5도 양계인 만큼 각도에서 한명 꼴로 받아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개를 구상할 수 있었던 전제는 어디까지나 ‘1번’ 설정이 체결되었을 경우였습니다.
이 경우 족내혼으로 정실 자리는 이미 왕가 사람이 차지하며 누름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외척들도, 눈앞에서 무신정권이 갈려 나간 것을 보고 권신 의혹받지 않으려고 무리하게 정실 자리는 노리지도 않게 된다는 전개였습니다.
물론 정실인 왕가 출신 부인이 아들을 못 낳고 다른 부인이 아들을 낳는다면 왕건만큼은 아니지만 후사 문제가 일어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금수유가 살고 왕가 출신 부인이 안 들어오면서 이 하렘 전개는 1번 이상으로 문제가 될 것이 뻔하기에 폐기했습니다.
5. 현실에서 주인공의 정체는 뭐길래 애깃살을 쏠 줄 알고, 창이나 칼 등을 다루고 전술에 대해 아는가?
-> 주인공이 지내던 할아버지의 별장에는 전근대 병서(兵書)나, 병법서, 농사직설, 화포식언해 등이 있으며, 그중에는 상당수가 조선 시대에 만든 사본 등으로 박물관에 기증해도 될 만한 역사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을 어릴 때 보고 할아버지에게 무술도 배웠습니다.
작품 연재 배경과 작품의 배경이 그렇다 보니 처음부터 주인공을 현대인으로 하되 ‘일반적이지 않은 현대인’으로 설정했습니다.
6. 비하인드 설정으로 주인공의 조상 중에는 ‘이인좌의 난’에 가담했는데, 그냥 가담한 것이 아니라 이인좌의 충직한 호위무사였다는 게 있습니다.
대충 이인좌는 잡혀가기 전에 죽을 것을 직감하고, 죽을 때까지 싸우려던 주인공 조상에게 쓸데없이 목숨을 버리지 말고, 자기가 죽고 난 후 나라가 막장이 될 것이니, 저들이 약해졌을 때 궐기하여 대의를 바로 잡으며, 그때를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하라는 유훈을 남겼습니다.
그는 주군의 명을 충실히 따라, 신분 세탁 후 일생 준비를 하다가 죽었는데, 자기가 죽을 때에도 그 원한을 자손들에게 전하며 반드시 거사를 준비하라며 유언을 남겼으며, 후손들도 그 유언을 따랐습니다. 그 준비가 당대 병법서나, 잡서 등을 싸그리 망라하고 수집한 것이 할아버지의 별장에 있던 것입니다.
이후 잡스러운 설정이 더 있는데 ‘결국 사족 설정이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입니다.
재차 말하지만 [본편에서도 길게 나올 이유가 없고 앞으로도 길게 넣을 생각이 없습니다.]
요지는 이런 조상들 때문에 주인공 할아버지 별장에 옛 병법서나 도구들이 있었고 주인공도 이차저차 한 일로 알 수 있었다는 편의 설정으로 매꾸려 했다 정도로 아시면 됩니다.
7. 현대에 있던 주인공 이야기나 설정이 잘 안 나오는 이유가 있는가?
->위에서도 말했지만 굳이 나오지 않아도 작중 전개에 큰 문제가 없어서& 위에 말한 이인좌의 난 가담자 후손이라는 설정을 몰라도 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듯이, 쓸데없이 긴 설정이라 굳이 낼 이유가 없어서입니다.
어차피 독자분들도 주인공이 뛰어난 건 편의주의적 설정인 걸 이해하는지라, 위의 설정들은 굳이 만든 거지. 딱히 꼭 나올 필요는 없는 설정이라서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많이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8. 작중 몽골의 서정은 예정대로였는가?
->서정의 전개는 고려 흑태자를 본격적으로 적기 전에 이미 대략적으로 해둔 게 있어서 서정이 시작하는 과정은 대략 거의 구상한 대로 전개됐습니다. 다만, 서정이 시작한 이후는 손을 본 게 조금 많습니다. 프랑스나 영국 등은 확실히 초반 설정에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9. 초반에 구상한 설정에선 루이 9세는 장차 ‘프랑스 왕이자 신성로마 황제이자 기독교의 수호자이자 서로마 황제이자 백성들의 보호자 성왕 루이 9세 황제’가 되는 전개였습니다.
초창기 기준으론 루이 9세가 프리드리히 2세 파문되고 갈려 나간 신성로마제국의 명목상 ‘신성로마황제’이자 서로마 황제로 등극하고, 언젠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를 탈환하기 위해 남송처럼 준비를 하는 전개였습니다.
때문에 초기 구상한 설정대로 갔다면 유럽의 강대국인 ‘프랑스가 작중 몽골의 서정으로 이득을 본 영국 포지션’으로 5부 완결 시점에는 작중 ‘유럽의 남송’으로 자리 잡게 됐을 겁니다.
그러나 초창기 생각하던 거랑 집필 중 조사 후 알게 된 루이 9세와 프랑스의 차이가 커서 전개가 다소 달라졌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루이 9세는 초기 구상한 서쪽에서 서로마 황제의 주인이 아닌 동쪽의 로마로 갔습니다.
10. 주인공은 어떻게 고려로 떨어졌는가?
-> 보통 대체역사물에서 나오듯 산신령 같은 초월적 존재가 주인공을 과거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중 주인공도 비슷합니다. 단지 산신령처럼 선하고 신령스럽다기보다는 크툴루 같은 위험하고 성격이 나쁜 사신(邪神) 부류가 주인공을 납치해서 원종(元宗)과 몸을 바꿨다는 설정입니다.
여기서 굳이 사신으로 설정한 이유는 주인공의 목표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대량의 희생이 생길 것인데, 그런 희생이 뻔한 트립을 ‘산신령 같은 존재가 좋다고 보내는 건 좀 아니다.’ 싶어서 한 바퀴 돌아 사신으로 설정한 겁니다.
물론, 이것도 본편에서 굳이 많이 묘사할 이유가 없고 안 나와도 전개에 문제가 없는지라 본편에 제대로 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11. 금수유 관련 본편 에피소드가 없었나?
->일단 이어진 이상 주역 에피소드 몇 개 생각한 게 있긴 한데, 대부분 뇌절이나 전개가 느려질 것 같아서 폐기했습니다. 대부분 금-고려 황실 프로파간다 용 강화로 귀결되는 에피였습니다.
12. 설정을 바꾼 거나 스킵한 게 있는가?
->앞서 글들에서 말했듯 바뀐 게 은근 많습니다. 그러나 설정은 그대로인데 작중 스킵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류큐 원정 에피소드도 그렇고, 일본 파트도 그렇고 구 설정을 폐기하고 신 설정을 바꾼 후 루이 9세 관련도 전부 다 묘사했다면 거의 한 부작을 차지할 정도의 분량이었습니다.
루이 9세 관련은 유럽 파트에서 중요하다 보니 넣긴 해야 해서, 줄이고 줄여서 넣은 게 종장 외전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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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인사
그럼 이것으로 오늘을 마지막으로 4년 동안 적은 [고려 흑태자]가 끝을 맞이하였습니다.
[고려 흑태자]는 처음 적어 보는 대체역사소설로, 근본이 지름작이나 다를 바 없어 처음에는 적잖은 당황을 많이 했으며 부족한 점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그래도 기왕 시작한 거 수익을 떠나 적을 만큼 적어보자와 완결은 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새 4년.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적고, 무사히 완결까지 적을 수 있었던 것은 연재 중 독자 여러분들과 편집자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부터 말한 후속작의 제목은 [이 고려에 원 간섭기는 필요 없다!]로 정했습니다.
후속작이 언제 올지는 아직 미정입니다만, 가능하다면 올리는 날이 정해질 때 [고려 흑태자] 작품란에 공지로도 올려 전하고 싶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봐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길 바라며 정말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