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60
60화. 54장 진상
“내가 어째서 갈라전을 태자에게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구유크는 어느 때 보다 진지한 어조로 물었고, 그를 호위 하던 무장 넷 중 둘이 어느 사이에 입구를 가로막기 시작 했다. 갑자기 변한 상황에 같이 대동한 김방경과 척인사의 얼굴에도 다소 당황하는 기색이 드러냈으나 왕식은 아무런 명을 내리지 않은채 구유크를 멀뚱 멀뚱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약간 숙이며 답했다.
“상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사옵니니까?”
“그렇지. 상 이지. 상 이야. 그래서 그게 전부인가?”
“……”
시선을 보내며 재차 물었으나 왕식은 침묵하였다. 그 침묵에 구유크는 결국 포기했다는 듯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런가. 그게 전부인가. 그렇다면 이만 나가게. 아무래도….”
“단순히 상이란 이유만으로 내린 것은 아니라고 짐작하고 있사옵니다. ”
“음?”
축객령을 내리려던 구유크는 갑자기 일을 여는 어린 세자의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보냈다. 그렇다면 상이란 이유 외에 다른 이유를 말해보라는 듯 하자 왕식은 말하기를 주저하다가도 결국 다시 입을 열어 되물었다.
“여기 있는 자들은 모두 상보 어르신의 사준이며 사구들이옵니까?”
꿈틀, 순간적으로 막사 안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통역을 한 역관의 얼굴도 당황하며 몽골의 태자와 고려의 세자를 번갈아 보았다. 역관은 비로서 자신이 있는 이 자리가 보통 중요한 자리가 아님을 눈치 챈 것이다. 그러나 구유크는 아랑 곳 하지 않고 답했다.
“능력이 사준사구에 미치지는 못할지 모르나 입이 무겁고 충성심 그리고 쉽게 짓지 않는 녀석들인 것은 확실하지. 그렇다면 고려 태자 쪽은 어떠한가?”
“척가는 저의 갑옷이고, 김가는 또다른 저라고 할수 있습니다.”
“호오.”
한치의 주저 없이 대답하는 왕식의 말에 둘은 감동하였고, 구유크도 미소를 짓고는 재차 물었다.
“덩치 큰 자가 척가 인가?”
“예. 서경성 전투에서도, 이번 전투에서도 언제나 용감히 싸우는 충복입니다.”
“그러고 보니 고려 태자 곁에는 언제나 대도를 휘두르는 맹장이 있다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용장을 부하로 소유하고 있다니 부럽구나.”
“상보 어르신의 밑에는 더 많은 용장들이 있사옵니다.”
“…그런가. 그렇군. 그럼 내가 갈라전을 준 진짜 이유에 대해 왕태자의 생각을 듣고 싶군.”
“그것은 우선 대국에게 있어서 이롭기 때문입니다. 앞서 그 자리에서 설명 한대로 갈라전을 아조에게 맡긴 다면 대국에 저항을 하던 두려워 하던 많은 여진인들이 갈라전에 모일 것이고, 그 경우 가까이 있는 아조와의 마찰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요국에게 맡기는 수도 있긴 하나 요국 또한 금국 정벌과 나아가 서역으로 향하는 군마들까지 지원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구태여 갈라전의 잡무를 맡겨 공급을 늦출 필요는 없지요.
특히, 비록 갈라전의 땅이 작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한들, 요동 서부와 화북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고, 금국 정벌을 앞둔 시점에서 대국에서 굳이 취할 정도로 비옥한 땅도 가치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포선만노가 살아있다면 혹은 다른 자에게 하 나라를 맡겨 부용국(附庸國)으로서 놔두는 수도 있겠으나 이미 포선만노는 죽고, 다른 여진인들 또한 그 자리에는 없습니다. 구태여 꼽자면 카라콜룸에 있는….”
왕식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구유크는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
“아, 알겠다. 예케 몽골 올루스의 이로움으로 내렸다는 말은 알겠다. 그래서…. 왕태자는 갈라전을 준 이유가 그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말하기 송구하오나 테무케 옷치긴(=옷치킨=웃치킨=웃치긴=오포적)님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빼두려고 하는 것도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호오?”
통칭 동방 3왕가라고 불리는 칭기즈칸의 동생들은 동북 영토를 할양 받았느데 이중 테무케 옷치긴은 칭기즈칸의 막내 동생으로 말자상속제도 덕분에 3왕가 중 가장 많은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다.
또한 현 대칸인 오고타이의 왼팔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으며 본인의 세력 도한 요동 송화강 이북 일대를 차지하고 있어 동방 3왕가중 가장 강하고, 몽골제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동하국이 멸망한 지금 동하국에 입은 피해를 복구, 보상 명분으로 동하국의 영토 상당수를 거머 쥐게 되다면 그 강역과 힘은 이제 단순한 동방 3왕가 중 하나라는 틀이 아니라 가히 4칸국에 필적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테무케님은 이미 대왕의 자리에 오르시고 수천리의 영토를 가지신 분입니다. 물론 그분이 대국을 배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태여 세력을 더 쥐어 분란과 의심을 받게 할 필요도 없다고 배려하고자 상보께서는 아조에 갈라전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저는 감히 짐작할 뿐 이옵니다.”
왕식의 말을 전달한 역관의 안색은 새파랗게 변해가며 굳어져 갔다. 들어서는 안되는 말을 듣고 해서는 안될 말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황금씨족 내부의 문제를 발각되었음에도 구유크는 화를 내기는 커녕 도리어 소리 없이 웃으며 더욱 노골적으로 물었다.
“만약 어르신께서 반란을 일으킨다면 어찌하겠느냐?”
왕식은 그런 구유크를 보며 말하기를 주저했으나 결국 이어 말하였다.
“…그럴 일은 없으시 겠지만 아조가 승복한 것은 대몽골국이며, 제가 상보 어르신으로 삼은 것은 눈앞에 계신 구유크 님이시지 몽케님도, 테무케님도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시지요.”
왕식의 광오한 말에 역관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전달하였고, 구유크는 웃음을 터트렸다.
“껄껄껄! 말하는 것 또한 전장에 보여준 모습 못지 않게 담대하구나. 알았다! 고려 태자의 설명을 잘들어 나 혼자서도 대칸께 제대로 보고할수 있을 것 같구나. 태자는 후일 고려에 돌아가서도 번국의 임무를 결코 잊지말도록 하라!”
“상보 어르신의 성은에 망극할 따름이옵니다!”
“자, 그럼. 대화도 다 끝이 났으니 충견을 제외하면 처리해야 맞겠지.”
거기까지 통역한 순간 역관은 그것이 자신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는 사색이 다 된 얼굴로 바닥에 고개를 박았다.
“구유크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절대 이곳에 있었던 일을 내뱉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소, 소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사옵니다. 부디, 부디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눈물, 콧물을 질질흘리며 머리를 박으며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구유크의 손에 자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의 손짓 하나에 땅에 머리를 박은채 벌벌 떨고 있는 역관의 머리 위로 무장의 칼이 떨어졌다. 그리고…
“방이 더러워 졌구나. 시종들을 불러 치우도록 하라. 그리고 새 역관도 부르고.”
“예.”
아직 식지 않은 피가 바닥을 적시어 가도 구유크는 미동하지 않았다.
* * *
찻잔에 담긴 잔을 한 모금 천천히 삼키며 나는 생각한다.
‘위험했다!’
어쩐지 너무 쉽게 갈라전을 넙죽 준다고 했다. 내 예상이지만 아마 이번에 제대로 설명을 못했다면 나는 카라콜룸에 끌려가 그대로 인질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갈라전 관리를 맡겨야 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을 수도에서 재차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고 강요를 했다면 나는 영락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다. 고려의 의사를 묻겠다고 한들, 최가 놈이 그것을 막겠는가. 그랬으면 이쪽에 보내지도 않았겠지.
‘지금 생각하면 갈라전을 줄려고 뜸을 들인 것 자체가 여차하면 카라 콜룸으로 끌고 갈수 있게 준비한 함정이었구나.’
뭣도 모르고 땅을 줄 테니 설명 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을 들은 사람이라면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고 설명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설득을 하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할 것이다. 그게 함정인 것이다.
그 자리에서 허락하더라도 확실히 하기 위해 직접 가서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이쪽에선 거절할 수가 없다. 뒤늦게 거절하는 것도 앞서 말한 설명을 부정하면 자신을 능멸했으니 그 죄로 데려갈 것이고, 그것을 강행할 힘이 저 쪽에 있는 이상 이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관의 최후도 그렇다. 몽골어를 모르지만 통역하는 내내 보인 역관의 안색과 마지막에 역관의 모습을 보면 그가 살기 위해 목숨을 구걸한 것은 불보듯 뻔하다. 즉, 그는 아무것도 모른채 이 자리에 불려왔고, 할일을 다하게 되어 쓸모가 없게 되자 바로 처리당한 것이다.
전장에서 사람이 죽인 적도 있고 죽는 것도 본적 있지만 전장에서 사람이 살해당하는 것과 이렇게 살해 당하는 광경의 감상은 전혀 다르다. 그리고 구태여 이 자리에서 역관을 죽이는 것 또한 구유크는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 생각하면…
‘구유크는 내 예상 이상으로 위험한 자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막사 안으로 역관이 새로 들어왔다. 새 역관은 바닥에 뿌려진 피를 보고 흠칫 하였지만 이내 벌벌 떨며 고개를 숙이고 구유크에게 인사했다.
* * *
“부, 부르셨사옵니까. 전하.”
“앞서 있던 놈이 통역을 제대로 못하고, 고려 태자에게 무례를 범하여 죽였다. 너는 실수하지 말도록 하라.”
“예. 예. 결코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나이다.”
역관은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그러나 이세상에는 파고들면 안되는 것이 있고, 모르는 게 약인 경우도 수두룩 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엔 지금이 딱 그 상황이라고 확신했다.
“그럼 다시 이야기를 해볼까? 그래. 고려 태자는 고려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수 있겠나?”
새 역관이 들어오고 왕식과 구유크는 잔을 나누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거의 대부분은 구유크와 왕식이 전장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 전장터외의 얘기도 많이 오갔다.
“그런가. 고려에는 대신이 국정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청하상국(淸河相國))은 아조 내에서도 명문가의 출신이며, 은문상국(恩門相國:최충헌)을 이어 아조의 치세에 크게 일조하고 있나이다.”
“이번 원정에도 그가 도움을 준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청하상국이 아조를 굳건함과 대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의견하였고, 저도 그에 찬동하여 역적들을 크게 토벌한후 그대로 이곳에 왔나이다.”
“…흐음. 그거 참 관심이 가는 이야기구나.”
“예. 상보 어르신을 뵙게 된 것도 청하상국이 없으셨다면 힘들었겠지요.”
“하하하. 그거 참 기특한 짓을 해구나. 태자가 고려에서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으데 나도 못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 전에 몽케 녀석이….”
둘의 대화는 어느 사이에 양국의 상황까지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각국의 병력의 규모나 배치 사항등 기밀 정보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을 나누는 대화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그곳에 있는 상당수가 이해하기는 너무나도 힘든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언뜻 들으면 각자의 정적을 높이 평가하는 호걸들인듯 하지만 자세히 들으면 그 둘의 직설적인듯 하면서도 돌려말하는 듯 하기도 하며, 내포된 의미가 담긴 대화는 계속되었다.
이윽고 달이 중천에 걸렸을 때 구유크는 대화 도중 뭔가를 떠올렸다는 듯 부하를 불러 함을 들고 오게 하였다.
“아, 이번 남경성을 함락하였을 때 고려군이 보물고에서 우리 군이 올 때 까지 주르첸 녀석들이 약탈하지 못하게 지켰다고 들었다. 일부 전리품을 취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 거늘, 어찌 그렇게 행한 것인가?”
“과찬이시옵니다. 상보 어르신. 무릇 성의 전리품은 승전군의 것 아니옵니까? 우리 군은 그저 조그마한 보탬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찌 작은 공으로 남의 것을 탐하겠습니까.”
“하하하. 겸허하고 기특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거둬들인 전리품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는데 도통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나.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에서는 전혀 찾을수가 없는 지라 그러한데, 혹시 고려에서는 이것에 대해 아는지 왕태자가 대신 봐줄수 있겠는가?”
“제가 알아도 얼마나 알겠습니까만은 아는 지식내에 있는 것인지 확인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식이 허락하자 구유크는 미소를 지으며 함을 열어 그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헙!”
절로 숨소리가 먿었다. 함에서 꺼내진 것은 좌상(坐像)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상도 선상도 아니였다. 그 이전에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았다. 일단 일견 인간과 닮은 윤곽을 띠고는 있으나 수많은 촉수가 달려있는 얼굴에 문어와 같은 두상, 비늘로 뒤덮인 몸통에 앞과 뒷다리에는 거대한 발톱, 그리고 등에 돋아난 길고 폭이 좁은 날개가 그 형상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이런 생물이 실존하고 있다면 생각한다면 절로 소름이 돋게 만드는 그런 이형의 괴생물을 재현한 동상이었다. 불교, 도교는 물론 민간신앙에도 여러 환수들과 요괴들이 많이 있었으나 최소한 왕식은 이것이 불교도, 도교 어디에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했다.
“이…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