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61
61화. 55장 사냥개
그것은 불상도 선상도 아니다.
일단은 일견 인간과 닮은 윤곽을 띠고는 있으나 수많은 촉수가 달려있는 얼굴에 문어와 같은 두상, 비늘로 뒤덮인 몸통에 앞과 뒷다리에는 거대한 발톱, 그리고 등에 돋아난 길고 폭이 좁은 날개가 그 형상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절대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이런 생물의 형상 자체가 신을 모독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괴기한 형상을 본 사람은 제정신을 차릴수 있는지 검사해야 할 것이다.
“이… 것은?!”
그 이형의 동상이 탁자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장내 모두가 숨을 죽이며 침묵을 고수하였음에도 반응을 숨길수 없었다. 역관은 눈을 의심하고 꺼림칙한 것을 보는 시선으로 동상을 살폈고, 호위무장들은 양측 모두 미간을 찡그렸다. 구유크만이 말을 더듬는 나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 멀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태자도 이 괴기한 것은 처음 보는 것이겠지. 나 또한 이것을 보았을 때는 놀랐다. 이런 괴상망측 한 것 흉상이 주르첸(여진족 이 경우 동하국)의 보물고에 있었다니… 만약 보물고에 있던 것 만이 아니라면 가차없이 버렸을 것이다. 이것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아. …예.”
구유크는 동상을 찾고 난 뒤의 이야기를 이쪽은 신경 안쓰고 내뱉고 있었지만 나는 그 설명에 집중할수가 없었다. 분명 구유크 입장에선 처음 보고 전혀 모르는 생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알 수 밖에 없다.
‘생물이고 자시고 간에 이거 크툴루 동상이잖아.’
크툴루 라는 것은 미국의 공포 소설 작가 ‘러브 크래프트’가 인지를 초월한 미지의 공포를 주제로 만든 공포 소설에서 나오는 사신(邪神:사악하고 기괴한 신)이라 불리는 괴물 중 하나이다.
그가 만든 소설에서는 이 문어 괴물 외에도 여러 사신들이라고 부를만한 괴물들이 나와왔고 그 양이 방대해 ‘크툴루 신화’라고 부른다고 대붕이가 설명해준 적 기억이 있다. 그리고 크툴루라는 이름에서 알듯이 이 문어 괴물 또한 그 크툴루 신화에서 매우 유명한 그 캐릭터인데, 구유크는 지금 그 크툴루 동상을 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동상에 이상한 글자가 있는데 이것은 주르첸의 문자도, 서하의 문자도, 한자도 아니다. 왕태자는 이 글에 대해 무엇인지 알겠는가?”
구유크의 말대로 그 괴기한 문어 불상이 걸터앉은 바위 밑에는 기괴한 글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분명 한자도, 여진 문자도, 서하 문자도 아니였으며, 이 세상 어디에서도 쓰지 않는 문자일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 또한 그 글자를 모르는 것은 매한 가지지만 뭐라고 적혀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저 동상에는 ‘위대한 옛 신. 르뤼에의 지배자. 위대한 크툴루.’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아는지는 너무나도 간단한 이유다.
‘엿이나 먹으라고 만들어서 보물고에 넣은 건데 이걸 이렇게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경주에서 출발하기 전에 강제로 북정을 하게 된 것에 최우는 물론, 애꿋게 요청해서 국외로 가게 만든 몽골 놈들도 미워서 장난을 치기로 했다. 물론 과하게 장난칠 능력도, 시간도 없고, 뒷 감당도 힘들어서 최대한 들키지 않고, 큰 영향도 없는 사소한 장난을 치기로 했다.
내가 경주에서 징발한 병사들 중 석공 출신들에게 은밀하게 명을 내려 작은 동상을 만들게 시킨 것도, 구태여 쿠툴루를 모델로 시킨 것도 큰 이유가 아니였다.
그저 예전에 역수에게 몽골이나 유목 민족들은 해산물, 특히 연체동물을 혐오한다는 것과 대붕이가 종종 말하던 크툴루라고 하던 문어괴물이 떠올라 크툴루를 넣고 그 문자를 넣으면 고려에서 만든 것으로는 생각하기 힘들고 실제 이런 종파나 종교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심에게 시켜 이것을 보물고에 넣게 했다. 보물고에 넣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다른 곳에 놔두면 무시하고 가거나 혹은 치워 버릴 확률이 높지만, 보물고에 있다면 일단은 보물이니 견식할 것이고 그 자리에서 쉽게 치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즉, 나름 ‘심혈을 기울인 뻘짓’으로 몽골에게 불쾌감을 주려고 했던 것인데 그게 여기에 있다.
‘이게 왜 여기서 나와? 설마 내가 한 짓인 것을 눈치채고 질책하려는 건가?’
“…태자! 태자 전하!”
“아. 예! 하명하시지요. 상보 어르신.”
젠장! 내가 미쳤군. 아무리 궁리한다고 그렇지. 구유크를 눈앞에 두고 역관이 나를 부르기 전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니… 이런 건 외교적으로 큰 결례다. 다만 다행히도 구유크는 나의 이런 모습에도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되려 웃음을 터트렸다.
“껄껄껄! 용맹한 왕태자도 이 괴상에는 정신을 못차리는 건가. 그래. 이 동상에 이상한 글자를 왕태자는 알겠느냐?”
“그, 그게 저도 모르겠습니다.”
글자 자체는 나도 잘 모르니까. 구라는 아니다. 구유크는 어째서 이것을 가지고 묻는 걸까?
‘역시 이쪽에서 만들어서 보물고에 놓아두었다는 것을 눈치채고, 질책하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장난을 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구유크는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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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방으로 돌아와 시선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젠장. 제대로 당했다!’
크툴루 동상을 꺼낸 것은 이쪽이 장난 친것을 눈치챈게 아니다.
몽골의 부하들이나 휘하에 있는 여진인들에게도 이 동상에 대해 물었는데 아무도 모른데다가 꺼림칙한 모습이라 두기도 싫은데 일단 보물고에 있던 거라 감히 버리기도 뭐하니 결국 고려 세자인 나에게 이것이 뭐하는 것인지 알아봐달라고 내놓은 것이다.
—라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속내는 따로 있었다. 물론 크툴루 동상을 둔 것이 나라는 것은 들키지 않은 것 같지만 애초에 크툴루 동상에 대해 묻고, 조사를 해달라는 것 자체가 구실에 불과한 것이다.
“득은 있다. 분명 득은 있지만….”
구유크는 그 동상을 내게 맡기면서 이 생물의 모습이 문어인 것을 보면 바다 생물 같은데 이 근방에는 아는 자가 없으니 고려나 갈라전 동쪽 솔빈로, 혹은 솔빈로 더욱 동쪽에 관련된 것이 있을지 모르니 필요하다면 사람을 보내 조사를 하는 것도 허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알아낸 자료들을 때때로 보내달라고 했다.
당연하지만 이건 결코 말 그대로 정보만 알아봐달라는 게 아니다.
국외인 이상 조사를 시키는 사람을 보내도 그 조사하는 사람을 호위하고 위한 문제를 처리할수 있는 병사들을 보내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런데 호위병력과 문제 처리에 대해 이러다할 제한도 주지 않았다? 문제 처리에 대해서도 이것을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동하국의 동쪽 영토에 상주하는 여진족들을 이쪽이 어떻게 처리해도 터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통 유목민들이 부족 간 전쟁을 하면 상대 부족을 침략후 그 일대를 불태우고 그 부족의 여자와 아이들을 자신들의 부족으로 데려가 아이를 만들게 하거나 병사들로 키워 세력을 성장시킨다. 그것처럼 내가 솔빈로와 그 너머 있는 여진들을 그렇게 해도 건들지 않겠다는 뜻이니 이건 최소 국토 확장은 안될지언정 고려의 세력, 정확히는 내가 힘을 기르는 것을 봐주겠다는 뜻이다.
어째서 구유크는 나에게 이렇게 까지 하는 것일까? 앞서 갈라전의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구유크는 고려 세자인 나를 통해 몽골 내부에서 태자로서 입지를 인정받으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그에 대한 답례이자 보상.
—-같은 것이 아니라 또다른 목적인 대(對) 옷치긴 왕가 견제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동하국이 멸망한 이상 솔빈로와 만주 일대는 가장 근처에 있고 연공서열이나 제국 내의 입지도 높은 옷치긴이 확장 시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내가 솔빈로의 여진족들을 미리 제거 및 처리한다? 옷치긴이 먹을 것을 내가 먼저 먹거나 지워버리는 것이니 당연히 그의 성장은 축소 혹은 둔화되는 것이다.
즉, 구유크는 나에게 갈라전과 공적, 그리고 솔빈로 너머의 원정 권리를 주고, 나는 구유크의 입지를 인정하고, 옷치긴을 견제한다.
그야 말로 상부상조의 관계다.
—라고도 할수도 있으나 나로서는 결코 최선의 결과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신중한 구유크가 이렇게 맡긴다는 점에서 구유크가 뭘 더 신경쓰고 있는지 알수 있다. 나보다 옷치긴을 더 경계, 신경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묻고 권한다는 것 자체가 이것은 거래가 아닌 구유크의 ‘일방적인 통보’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옷치긴과는 자신 사이에 간볼 생각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결정하라는 말이 었다. 그것을 내가 그 자리에서 어떻게 거절을 할수 있단 말이야!’
내가 갈라전의 설명으로 옷치긴 왕가 견제를 언급하긴 했으나 내 진짜 목적은 견제를 하되 힘을 기를 때 까지 몽골 제국 내부의 문제에 최대한 간섭안하려는 것이다.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 구유크는 그 자리에서 사실상 제대로 견제 한다는 확답을 요구를 시킨 것이다. 거절하는 그 순간 카라콜룸 행인데 내가 어떻게 거절할수 있단 말인가?
‘갈라전… 갈라전 때 부터 이미 이를 염두했단 말인가. 구유크는 절대 방심해서는 안되는 인간상 일지 모른다는 역수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구나.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되려 이쪽이 당하는 것 밖에 없겠구나.’
겨우 어찌 넘어갔나 했더니 결국 한방 먹었다. 갈라전 값 하나 제대로 치룬 셈이다.
‘잠깐. 구유크에게 보내는 자료들은 내가 알아서 적어야 한다는 건데. 이 경우에는…’
어우 씨. 괜히 장난쳐가지고…
* * *
“주군. 정말 이대로 고려 태자를 고려로 돌려보내도 괜찮겠습니까?”
“문제 없다. 내가 저것을 건넨 진의도 모르는 멍청이라면 모를까. 알 정도의 머리가 있다면 내게 반항하는 어리석은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 늙은이는 너무 커졌어.”
“테무케님 말씀이십니까?”
“그래. 안그래도 다른 어른 들보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아 세력도 큰데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 그 늙은이다. 이제 포선만노 놈이 죽었으니 십중팔구 이 땅에도 손을 뻩치겠지. 이번 동정(東征)에 군을 대거 지원 해준만큼 성과를 가지는 것은 막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통째로 줄 이유도 없지. 이를 생각하면 설령 고려의 군대를 주르첸(금) 놈들을 잡는데 동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늙은이를 견제하는데 쓸수 있다면 나쁜 장사는 아니다.”
구유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유주를 홀짝 였다.
“하오나, 고려 태자는 비범한 자입니다. 이대로 돌려 보내는 것은…”
“그래. 비범하지. 우두머리 늑대와 같이 용감함과 통솔력을 갖춘 녀석이야. 후일 대랑(大狼:큰 늑대)이 될 재목이기도 해. 그러니 구태여 이 자리에서 확답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확답을 한 이상 그 녀석은 함부로 그 늙은이에게는 붙지 못할 것이니 말이야.
그 늙은이가 지금은 능청스럽게 대칸이신 아버지를 돕고는 있지만 우리들이 안보이는 곳에서는 자기 배를 불리는데 여념이 없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실정이다. 만일 이후 아버지께서 먼저 병사라도 하시는 날이라도 올 경우, 그리고 그 늙은이에게 기회가 생긴다면 분명 그 탐욕이 가득한 송곳니를 드러낼 자가 그 늙은이지.”
“고려 태자는 그때를 대비하여 둔 것입니까?”
“그렇지. 고려 태자가 비상하다곤 하나 오래 살아 능구렁이 같은 늙은이와 비교한다면 별 문제도 없는 상대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나와 고려 태자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 있지. 나는 몽케 놈이 송곳니를 드러내도 대응할수 있으나 고려 태자는 자국의 권신에게서 살아남기도 급급하다는 것이야.
알겠나? 자신의 신변과 입지를 위해서라도 내 말을 거역 못하는 것이 그 녀석의 상황이란 말이다. 제어할수 있는 입장에 있다면 장차 대랑이 될 놈을 키워 나의 충실한 ‘사냥개’로서 기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느냐?
나의 개가 고려를 다스리고 그 주인인 나는 장차 예케 몽골 울루스의 주인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큰 도움을 줄 대랑을 살려두고 개로 기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지.”
구유크의 야심에 얄라타는 침묵하였다. 말해야 되는가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고민을 했으나 결국 걱정에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고려 태자가 주군께 송곳니를 드러낸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너는 내가 주인을 무는 개를 어떻게 훈육 시키는지 모르거냐?”
일체의 주저도 없이 즉답하며 마유주를 들이키는 구유크의 답변을 끝으로 얄라타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 * *
남경성을 함락하고, 몽골과 고려군들이 승리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완안자연은 누군가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오오! 왕 재상 무사하여 참으로 다행이오.”
“총관.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완안자연은 은밀히 도피시키는데 성공한 동하국의 재상 왕회에게 다가가 두손을 잡으며 반겼다. 그러나 왕회는 심각한 표정으로 완안자연에게 물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도총관. 어찌된 일입니까?”
“들으신 대로요. 몽고 놈들에 의해 우리 대하가 멸망 되었소이다. 이거 참. 망해가는 금국을 대신하여 천년만년 살아가자고 세운 나라가 설마 금나라보다 먼저 멸할 줄이야!”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완안자연에게 왕회는 떨어져서 재차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정녕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병마사가 몽고놈들에게 붙어 갈라로의 군대를 이끌고 황도를 쳤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왕회의 지적에 자연은 잠시 난색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러자 왕회는 큰 목소리로 호통을 치듯 되물었다.
“그렇소. 몽고군과 함께 이곳 남경을 쳤소이다.”
“어째서! 어째서 황상 폐하를 배반하고, 나라를 배신을 하였습니까? 몽고에게 붙는다면 저 간악한 몽고 놈들이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었사옵니까? 잊지마십시오. 총관의 피에는 금 황실 완안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몽고 놈들이 증오하는 것이 여진인이며, 가장 증오하는 것이 금 황실의 핏줄입니다. 어리석은 짓을 하였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소. 결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고려에서 군을 보내왔소. 그것도 그 유명한 고려 세, 아니 태자가 직접 왔단 말이오!”
고려에서 세자가 군을 이끌고 왔다는 발언에는 화를 내던 왕회도 잠시 난색을 표하였고, 이를 눈치챈 완안자연은 곧바로 이어 주장했다.
“재상도 알고 계시지 않소이까? 몽고의 군대도 막기 급급한 이때 고려군까지 맞서 싸운다는 회생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말이오. 만약 내가 그곳에서 맞서 싸웠다면 갈라로의 백성들은 물론, 전쟁이 장기화 되어 대하의 모든 백성들이 죽었을 것이오.”
“그래서 나라를 배신하고, 몽고에 붙었단 말이오!!”
고려 때문에 항복한 것을 정당화하려는 그의 말에 왕회는 발끈 하며 소리쳤고, 그 호통에 완안자연은 움찔 했으나 재차 변명했다.
“재상! 진정하시오. 진정하고 나의 말을 들어주시오. 재상께서도 아시다시피 갈라로는 고려에 귀속되어 있었던 땅이고. 안그래도 몽고의 공격에 힘들어 민심이 어지러운 이때 고려의 태자가 직접 오게 되었단 말이오. 재상도 내가 무슨 일로 갈라로에 갔는지 알고 있지 않소?”
“듣기 싫소! 그러고도 총관이 대금국 황실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할수 있만 말이오!!”
이미 열이 날 때로 열이 난 왕회는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완안자연 또한 자신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 재상의 모습에 울컥하여 되물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내가 하나라를 배신한 것은 사실이나, 그 전에는 나는 물론 재상과 포선만노도 대금국을 배신한 것 아니오!”
군주의 이름은 함부로 말하거나 적어선 안되기에 피휘를 하는 것인데 대놓고 말을 하자 왕회는 놀라 바라보았지만 자연은 더욱 뻔뻔하게 언성을 높였다.
“총관! 지금 황상 폐하의….!”
“포선만노는 이미 죽었소이다! 천하의 순리가 이미 기울었는데 어찌 불필요한 희생을 강요하는 자를 황제라고 칭할수 있겠소! 재상도 이제 순리를 깨닫고는 이만 미련을 버리시오!”
자연의 그 말에 왕회의 얼굴은 대추처럼 붉어지며 노기를 띈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총관! 내가 분명 조국을 배신한 것은 사실이고, 두고 두고 욕을 먹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오. 이 죄에 대해선 이전에도 그랬으며 이후로도 피할 생각은 없소이다. 허나, 내가 금국을 나와 황상을 따른 것은 기울어져가는 금국을 대신하여 여진인들을 구할수 있다 여긴 것이지 제 목숨 하나 건사하고자 한 것이 결코 아니란 말이오! 내가 내 목숨 하나 아까워 몽고에 붙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당장 집어치우시오! 이 이상 모욕하지 말고 당장 나의 목을 쳐란 말이오!”
“나 또한 마찬가지란 말이오! 나는 몽고에 붙지 않았소. 고려 태자에게 붙은 것이오.”
“…추한 변명은 이제 그만 때려 치우라고 하였…”
“고려 태자는 완안부의 피를 품고 있단 말이오!”
“…뭐, 뭣이…지,지금 그것이 무슨 소리요?”
그 발언에 왕회가 크게 당황하였고, 그 반응에 완안자연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