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63
63화. 57장 업보
-심도(강화도) 조정
“폐하.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벌써 몇 주일 째 제대로 드시지 않고 계십니다.”
“맛을 보았으니 상을 치우도록 하라. 나라 밖에서는 나의 태자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짐이 무슨 면목으로 배불리 식사 할 수 있단 말이더냐.”
“폐하.”
궁녀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결국 상을 치워야만 하였다. 상이 치워지며 문이 열리자 밖에서 노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신을…. 소신을 보내주시옵소서!!”
많이 약해질대로 약해졌으나 그 소리에는 여전히 꺾이지 않는 각오가 서려있었고,
“김 문하시중은 아직도 밖에서 짐의 부름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러하옵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어제부터 식음도 전폐하고 있다 하였습니다.”
“연세가 이미 환갑을 넘은 문하시중이 단식까지 하며 나라를 위해 저리 청해오고 있는데 만인의 어버이 천자라는 짐은 이러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며 자책하는 고종의 말에 환관과 궁녀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폐하-! 소인들을 죽여주시옵소서!”
“죽여주시옵서서!”
“그대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가. 모두 나약한 짐의 탓이로다. 용서하지 마라. 모든 것은 짐이 무능하기에 일어난 일이다.”
“크흑.”
“폐하아…”
“……청하상국은 어디 있는가?”
“상국은 지금 별궁에 있사옵니다.”
“그곳에는 무슨 일로 갔다 하느냐?”
“안경후를 보러 간 듯 하옵니다.”
당연 하다는 듯 하면서도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 말하는 고종의 모습에 주변은 다시 비탄에 빠져들었다.
“상국은 어찌하여 안경후 그 아이를…… 아니, 아니다. 태자를 대신 하기 위해 간 것이겠지. 상국은 이미 태자에 대한 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구나.”
“폐하! 흐흐흑.”
“문하시중을 안으로 들여라.”
“하오나, 폐하. 그러시다면.”
“상국을 치죄하거나 적대 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일평생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쳐온 문하시중을 생각하면 저렇게 오래 놔두는 것은 충신에 대한 예가 아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고종은 이어 말하기를 주저했지만 결국 솔직히 고백했다.
“이 조정에서 태자를 잊지 않고 솔직히 짐과 대화를 나눌 충신은 그 뿐이지 않느냐.”
“흐흐흑.”
“폐하아아!!”
고려왕의 말에 장내는 다시 슬픔의 바다로 잠겨 들었다. 주저하던 환관 또한 그 말을 듣고서는 결국 김취려를 부르기 위해 밖을 나섰다.
* * *
금은 여진시절만 하여도 고려를 부모의 나라[父母之國]으로 섬기었고, 에도 완안부의 시조 함보를 고려에서 넘어왔다고 기록했다. 이게 진짜 고려를 신봉하였는지, 그리고 실제 고려 출신인지와는 별개로 에서도 금 나라 사람은 시에서 삼한을 부모의 땅이라고 부르는 말이 있다라고 적혔을 정도로 당대 금에서도 형식상이나 명분적으로는 특별히 생각하긴 한듯 하다.
이에 대해 대붕이는 당시 금나라는 중원을 부모로 삼기에는 남송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하였고, 정복해야할 국가로 보았고, 요를 시조로 삼기에는 태조 시절부터 적성국이었기에 불가하며, 서하를 시조로 삼기에는 거리와 연이 옅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도 가깝되, 자신들을 정복하지 못하는 고려를 삼아 그 정통성과 명분을 키운 것이 아닐까 말한 기억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던 아니던 요약하면 당시 금국에선 실제 감정과는 별개로 고려와 미약한 연고 의식이 명분적으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만세! 만세!! 만만세!!”
“금 황실의 일인인 총관께서 금 황녀를 언급하시 었다면 태자 전하께 얽혀 있는 소문이 사실이란 말 아닌가?!”
“이럴 수가. 설마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나라를 회생할수 없다 여겨 고려로 도피시킨 황녀가 고려 태자와…. 이것이 사실이라면 금나라가 무너지면 완안부의 정통성은 진정으로 고려 황실이 잇는 것. 아니 품은 것이 된다!”
이거 상당히 곤란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내가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확산 될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안자연이 이렇게까지 나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소문으로만 있던 금수유의 금 황녀 설이 진짜 완안씨인 완안자연의 발언으로 신빙성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가짜가, 거짓말이 진실처럼 포장되어 가고 있다. 더럽혀진 완안씨(완안자연)가 아니라 깨끗하고 동정을 할 수밖에 없는 순수한 완안씨(금수유)의 등장에 여진족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명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오늘은 실로 기쁜 날이옵니다. 전하!”
“그렇사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진다면 갈라로 밖의 여진들도 기꺼이 고려에 귀부해올 것입니다!”
“태자 전하는 금국 황실의 후인이라고 하실수 있습니다. 본래 고려에서 나온 금이 다시 고려 황실로 돌아가게 되었으니 양국의 어느 누가 기뻐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지금 금 황녀가 고려에 들어갔다는 말을 언급하는 면면을 자세히 보니 얼굴을 많이 못 외운 것을 감안해도 처음 보는 추장들이 많다. 바람잡이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것 때문에 완안자연 나를 연회에 부른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출처도 불분명하고 이름도 모르면서 일단 인정하는 법이 어디있냐?’
금수유의 금 황녀 화 이것이 퍼진다면 분명 고려에 이득 자체는 있다. 적게 잡아도 지금껏 눈치보거나 몽골을 두려워하던 여진족들은 물론, 중국의 금나라에서도 유민들이 더욱 넘어올 것이다. 금 황녀가 고려에 귀부하여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혹은 세자비가 되었다는 소식은 귀부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여지껏 갈등하던 이들에게는 좋은 이주 명분이 될 것이고, 희망도 가지게 될것이니 말이다. 그것 자체는 좋다.
나 또한 애초에 그런 것을 목적으로 소문을 퍼트렸으니 그것에 대해선 문제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의 범주여야 한다.
‘소문’의 범주가 아닌 ‘진짜’가 되어 버린다면 차마 좋아만 할 수도 없다.
누누이 말하지만 몽골 놈들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고려도, 서하도, 남송도 아니다. 바로 금나라고 그중에서도 가장 증오하는 것이 금 황족들인 완안 씨다.
그들이 다시는 부활 못하고 근절 시키기 위해 금 종친 들중 남자를 모조리 죽이지 않았는가? 그런 몽골 놈들인데 고려에서 금 황녀를 세자비로 삼으려 한다?
이게 알려지면 옷치긴 왕가는 좋다구나 이걸 빌미로 공격하려 들 것이고, 구유크도 나에 대해 좋게 보지는 않을 것이며, 최우 또한 마찬가지다.
“만세! 만세! 만만세!!”
* * *
“전하께서는 정말로 그 선자를 참으로 총애하시는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러한 무례한 짓을 하였음에도 용서해주시고 그런 소문을 내시지는 아니하였을 테니 말입니다.”
거복의 난을 점령하고 개경에서 출발한지 첫날 밤 양영지 밖을 돌아다니던 도중 유갑수가 내게 그리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녀를 싫어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도 할수 있다.
호불호를 논하자면 개인적으론 호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좋아하였기에 무례한 것을 놓아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그럴 상황이 아니고, 굳이 할 필요도 없었기에 놔둔거 였지. 그녀가 무례를 범한 상대가 ‘송악산의 왕 서방’이 아니라 ‘고려의 세자’ 였다면 결코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낀다는 말에 이르러선 되려 쓴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당사자인 그녀조차 그 소문만을 듣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처했는지 아는 듯 보였는데 측근이라는 유갑수만은 현 사태를 정녕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매국노 홍복원을 충신으로 남긴 채 죽였고, 도적에 불과한 거복을 진짜 반역도당으로 만들어 죽였다. 그리고 정안연에게 전해준 계획에도 원 역사와 다른 평가로 받아 사라지게 만들 인간을 준비 시켰고, 이후로도 더 구상중이다. 내가 이런 구상을 한 것은 그런 계획을 함으로써 고려가 더 나아질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금수유를 아꼈다면 구태여 그런 소문에 당사자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니 말이다.
* * *
“태자 전하 천세! 고려국 만세!!”
지금까지 일부러 소문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완안자연은 능청스럽게 사실인 것 마냥 선전하고 있다. 여기서 대놓고 부정 한다는 것은 완안자연이 금 황녀와 교제를 하고 있다고 속여 데려온 여진 제추들의 귀부 명분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꼴이 된다. 나아가 갈라전 밖여진인들 대처에도 차질이 올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완안자연이나 호응하는 꼬라지들을 보면 갈라전을 통과하였을 때 완안의 피에 충성 운운하던 것도 완안자연이 아닌 금수유를 말하는 것일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여기서 전면 부정한다? 그들 또한 명분이 없어 나갈수가 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긍정해야 하나, 부정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그렇다고 무턱대고 긍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고민하던 끝에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하하하. 병마총관의 말이 맞다. 돌이켜 보건대 그 옛날 예종 대왕께서도 금국은 아조에서 나왔음을 명시 하시었고, 금의 강종 대왕(금의 추존황제, 금 태조 아골타의 형) 또한 금국이 만들어지기 전 금 황족들이 있던 완안부 또한 우리를 부모지국이라고 인정하였다. 이 전례를 따져 보아도 그 금국의 뿌리가 아조임을 어찌 부정할수 있겠는가?
한 때 금국이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며 출세가도를 누벼왔으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 와서는 십수년 전부터 암군들이 나와 나라를 휘청이더니 결국 북조(北朝:몽골)에 의해 망국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이것이 삼라만상의 이치이자 금국의 운명이 그런 것이라 하여도 금국의 백성들이 아조로 다시 귀부하려는 것을 막는 것이 어찌 부모 된 도리라고 할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금국의 완안의 피가 정말로 과인의 품에 들어왔으니 금국과 아조가 하나가 되지 않았다고 할수 있겠는가.”
완안의 피가 들어왔음을 인정하는 듯한 나의 말에 여진인들은 무척이나 기뻐하였다. 물론 완안자연은 내가 말하는 것에서 허점을 눈치를 챘듯 했으나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내가 말을 전부 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약싹빠른 놈이 아닐수 없다.
‘오냐.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마.’
“또한 과인이 생각건데, 예로부터 아조의 동북은 여진, 말갈이 우리나라의 울타리로서 존재하였으나 금국이 나타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금이 사라져 가고, 하국도 사라졌으니 지금 다시 본래의 임무를 다시 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과인이 천자가 아니기에 정식으로 ‘주호'(州號:주의 이름)와 ‘주기'(朱記:해당 주를 다스리는 자의 인장)를 하사하고 임명을 할 수는 없으나 이번 북정의 책임자로서 정식 건의를 올리고 황명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임시적으로 배치를 하려고 한다.
-하여, 갈라로 총관부 병마도총관 완안자연은 명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옛 동하의 남경에서 ‘갈라전병마사'[曷懶甸兵馬使]로서 아조에 귀복하는 이들을 관리하도록 하고, 다른 제추들과 성주들 또한 조정의 명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종래의 관작과 임무를 다하라!”
“소인 완안자연 태자 전하의 명에 따르도록 하겠나이다!”
완안자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완안자연이 어째서 이 자리에서 완안의 피를 운운하고 터트리는 것인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첫째는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서다. 동하 정벌이 끝난 지금 내가 자신을 몽골에 보낼지 겁을 먹고, 금나라 황실을 운운하면서 선수를 쳤을 확률이 높다.
둘째는 당연히 자기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다.
금나라 황실이 고려와 하나가 되었다고 운운하며 인근 여진족들의 귀부를 끌어모았고, 내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끌어모을수 있음을 내게 보여준 것이다. 동시에 부정하면 ‘나를 버릴거면 저들도 전부 버릴 것을 각오해라!’ 는 뜻이 되니 자기 나름 도박을 한 것 같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선 진짜 X 같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하여 갈라로가 아닌 남경으로 보내기로 했다. 남경이면 웃치긴과 동요국, 몽골의 시선 때문에라도 함부로 굴지 못할 것이며 최악에 배신을 하더라도 압록, 두만강 너머에 있어서 고려에선 방어하기가 편하다는 계산이다.
그리고 차마 2품직인 총관으로는 둘수가 없어 일단 3품 병마사로 두기로 했다. 솔직히 말해 3품도 아까운 감이 크지만 이 상황에선 어쩔수가 없으니…
“그리고 동하국의 남경은 아조에게 있어서 남쪽의 수도가 되지 않으며, 경(京)의 지위는 과하니 그 지명을 철폐하도록 한다.”
“하오면 뭐라고 부르면 되겠사옵니까?”
‘이 지명도 조정에서 정해야 하는게 정론이긴 한데. 남경이라고 하면 서울과 중복되니 임시로 붙여야 할 것 같다. 내 이름을 따서 붙이는 건…… 너무 근대 사고 방식이니 이게 적당하려나?’
“물론 그 또한 조정에 정식으로 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서울의 칭호는 과한 만큼 당장이라도 다르게 함이 옳다. 하여, 과인은 이번 북정에서 ‘그대들과 만난 행운를 기념하고 앞으로도 이 길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연길'[延吉]이라고 부르려고 하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참으로 멋지신 작명이시옵니다!”
“태자 전하의 깊으신 생각과 하늘과도 같은 은혜에 감복할 따름이옵니다.”
내가 자신들과 만나는 것이 행운이고 이를 기념으로 표현해주자 제추들은 감동이라도 먹은 듯 희희낙락한다. 물론 실제로 연길이라고 붙인 건 별 이유가 아니다. 동하국의 남경이 현대에선 연길이라 굳이 작명을 새로 만들기 귀찮아 연길이라고 붙였을 뿐이다. 그래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그냥 그렇게 붙였다는 것은 모양새가 안나서 자기들과 만난 것을 행운이며 긍정적이라고 표현 해주니 여진인들은 좋다구나 호응했다. 저들이 희희낙락 하는 것을 보니 1차 위기는 벗어난 것에 안도했다.
‘어찌 구라는 안치고 넘기긴 했구나.’
나는 금수유가 황녀라는 말도, 고려에 금 황녀가 있다는 말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눈가리고 아웅 같지만 일단 아 다르고 어 다른 만큼 빌미를 잡힐 때 친자,애자 사건 처럼 어찌 변명은 할수 있으리라.
물론 완안자연은 이에 대해 눈치 챈 듯 하지만 구태여 지적을 하지 않았다. 끝까지 가게 되면 나랑 대립한다는 뜻이니 그 경우 누가 더 손해이고, 누가 더 위험하게 되는지 본인도 알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 외에 눈치챈 이들도 아마 귀찮거나 스스로 도피할수 있는 명분을 지우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 할뿐 근본적으로 해결 된 것은 아니다. 완안자연이 공식적으로 말한 이상 이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불이 지펴질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무엇이든 간에 조치를 취하거나 대안을 모색하면 안된다.
‘끝까지 잡아 때거나 되려 내세우거나 혹은….금수유를 죽이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