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80
80화. 72장 팔관회(3)
두만강 강변.
“음? 저기 있는 거 아새끼 아닌가?”
“아, 물에 빠졌다가 물살에 밀려 떠내려온 건가? 재수도 없지. 쯧쯧.”
“누가 그거 보래냐? 차림새를 보라고 비단이잖아. 딱 봐도 귀한 집 자녀잖아!”
“비단 옷이긴 하지만 저리 넝마가 되어서 제값이나 받겠어?”
“야. 이 멍청아. 머리카락이 없으면 생각이라도 있어라. 누가 저 옷만을 팔자고 했냐! 귀한 집 애로 보이니 금붙이나 옥가락지 한두 개는 들고 있을지 모르니까. 그거 뒤지자는 거잖아!”
지나가던 둘은 2인조 사냥꾼이었는데 이 날은 허탕만 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강변에 떠내려온 소녀의 복장은 대충 봐도 고급진 비단이었기에 욕심 많은 사내 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소녀의 시체에 다가가 뒤지기 시작했다.
“호오. 이것 봐라. 금가락지야. 금가락지.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팔면 제법 돈이 되겠어! 그래! 낄낄낄!”
값비싸 보이는 금가락지를 찾아낸 그는 낄낄 웃으며 관찰하였는데 그때 다른 사내 하나가 죽은 줄 알았던 소녀가 움직이는 것을 깨닫고는 동료를 불렀다.
“어, 어이. 이 아이 살아 있는 것 같은데?”
“뭐어? 그게 사실이라면 이 계집애 운 하나는 지지리 좋구만. 저 절벽에서 떨어졌는데도 살아 있다니…. 아니 잠깐. 헤에. 야. 이 계집애. 옷도 자세히 보니 겉은 몰라도 속은 멀쩡하구만? 어이 저것도 팔자구!”
“아니. 그 전에 치료해야 하는 게….”
“에라이. 치료는 뭐하려고. 귀한 놈일수록 세상 물정 몰라 가르치는데 돈도 들고 됐지. 걍 가질 수 있는 거 다 가지고 버려!”
눈이 매서운 사내는 다른 동료의 말에 인상을 구기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의 눈에는 이미 소녀의 안전 따윈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 * *
“그대의 공이 분명 적지는 않으나, 조정의 청하상국이 보기엔 자신이 선정하여 보낸 지휘관의 공을 마지막에 뺏었다는 오해나 억측을 할지 모른다. 즉, 상국과 그 당여들이 그대를 좋게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알겠는가? 내가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공을 세운 그대가 말도 안 되는 누명에 당하고 폄하되어 그 능력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것을 관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주면 모를까 이곳 삼척에는 정착한 지 오래되지 않아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 아니다. 그래도 이안사가 의주로 도주했을 때 따라갔던 수가 170호라고 했으니 리더십이나 통합력이 좋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거절할지 모르니 빨리 말을 이어 붙여 설득을 계속하자.
“그러나 제대로 된 상을 주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워 그대를 보고 북방으로 가는 것이 어떠한가? 권한 것이다. 그래야지만 역적의 수급을 자른 상에 맞는 것을 내리고, 그대의 능력 또한 제대로 살릴 기회를 줄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북방으로 전가사변이 어찌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상식을 논하자면 나라의 인사권은 정방에서 결정되기에 과인은 그대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내줄 수가 없다.”
“…북방으로 가면 달라지는 것이옵니까?”
“그대가 갈 곳은 북방이나 동북면도 서북면도 아니기에 달라지는 것이지.”
“그렇다면 어디로 가면 되겠사옵니까?”
“그대는 갈라전으로 가야 할 것이다.”
갈라전이라는 말에 이안사의 안면이 다시 어두워졌다.
이 시기 갈라전은 동하국의 잇따른 침범으로 살기 좋다거나 그곳에서 살라는 말에 흔쾌히 답장할 자는 없었다.
비록 동하국이 멸망하였다는 소식은 전국에 퍼졌겠으나 그럼에도 선호할 만한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갈라전이었기에 지금의 나는 이안사를 꼬드길 수가 있었다.
“하오나 갈라전은….”
“본래 인사권은 정방에서 결정되는 것이 상례이나 내가 이곳을 위무하러 오기 전 조정에서 서경과 갈라전의 일들은 과인에게 일임하겠다는 명을 받았다.”
과연 여기까지 말하자 이안사도 눈을 반짝이고 귀를 다시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갈라전의 인사권 또한….”
“물론 그 또한 과인이 일임하고 있다. 더군다나 갈라전의 여진인들은 유례없이 과인의 눈치를 보고 신임을 받으려 하는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과인의 명을 받은 그대가 가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한다면 이것이 무슨 뜻인지 그대도 알겠는가?”
이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깃들어져 있는지 이안사라고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효과가 컸다. 인사권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조금 더 고민하는 듯한 이안사였으나 이 말이 나오자 곧바로 좀 전의 어두웠던 표정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즉시 답했다.
“가솔만 데려가면 되는 것입니까?”
“…가솔 외에도 최대한 많이 이끌고 가라. 그리고 갈라전을 아조의 영토로 만들어라.”
그렇게 이안사는 원 역사보다 일찍 삼척을 떠나게 된 것이다.
* * *
“하하하.”
시끌시끌.
팔관회의 첫날 소회(小會)가 끝이 나도 그 흥겨움은 밤이 되고도 이어졌다.
원래 팔관회 기간에는 밤에도 흥겨움의 나날이 지속된다고 하나 오늘 밤은 그 흥겨움이 종래의 배는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경 주민의 대부분이 바라마지않던 길보. 서경 팔관회 부활을 축하하는 기념해야 할 밤이었으니 말이다.
“어서 오시오. 오늘은 기분이오! 술 1병을 주문하면 전은 덤으로 주리다!”
“쌉니다. 싸요! 은병이 웬 말이냐! 고기 1근이 사실상 공짜!”
“황도에서 내려온 옥 저고리 팝니다!”
밤의 거리 여기저기에서 환성과 술이 들어간 잔을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00여 년 만에 탈환한 갈라전의 길보에 서경에서 팔관회를 재개한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서경의 백성들과 호족들은 물론 북방의 사람들은 외우내환의 전란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밤은 그 1개월 뒤. 서경은 불야성(不夜城)이 되어 있었다.
왁자지껄한 술집 앞에도 횃불을 꽂아 넣었으나 거리에 매달린 연등들이 서경 거리 전체를 비추고 불야성의 거리로 만들며 졸음을 쫓아냈다.
당연하지만 그 장소에 있는 취객들의 경우는 세자의 승전과 갈라전 탄환을 축하하고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더욱 단순히, 서경의 부흥과 서경 팔관회 재개에 들떠 있다는 것 진상이었다.
“내 살다 살다 서경에서 팔관회가 재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니….”
“이해하네. 조부님의 말로만 들었던 서경의 팔관회를 이렇게 직접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지 않겠나.”
“이제 우리 서경도 다시 커지겠어. 안 그런가?”
“아암. 그렇고말고! 태자 전하께서 이곳에서 정무를 보시는데 어찌 안 그러겠는가!”
“거기 가는 형씨들은 이번에 귀부한 여진인들 아니오! 거 그중에 고려말 할 줄 아는 이가 있으면 그대들도 여기 와서 한잔 받고 이야기나 좀 해주시오! 이제 우리와 하나가 되었는데 술 정도는 나눠야 하지 않겠소이까! 껄껄껄!”
“그거 말 되는군그래! 여기 와서 북방 이야기나 좀 해주게! 껄껄껄!”
“…라고 하는데 어찌할까?”
“공짜로 술을 준다는데 거절하면 사내의 수치지! 마시러 가세!”
“어허. 그러나 내일 격구 시합이 있는데….”
“한 잔만 마시자구. 우리가 언제 또 고려국의 서경에 온다고 그러겠나.”
“그럼 딱 한 잔만 마시자구.”
“오오오! 아무래도 저들도 승낙한 것 같군! 어서 와서 이야기 좀 해보게!”
“좋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소!”
“아, 나부터. 나부터 청하겠소. 우선 우리 태자 전하께서 활약한 것을 듣고 싶소이다.”
“흑태자 전하 말이오? 거 멋진 선택하였구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동하국 정벌 때 태자 전하와 함께 공성전에 참가했다는 것 아니오!”
“오오옹!!”
여진인들도 딱히 고려인의 청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공짜 술을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술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양자는 얼마 안 가 친해졌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에해라-디야!”
“해동의 천자는 현세의 신령과 부처님이니, 하늘을 도와 교화를 펴러 오셨네. 세상을 다스리는 은혜가 깊으시니, 원근과 고금에 드문 일이네.”
“맑은 아악 소리는 하늘을 흔들고, 많은 함성 소리는 땅을 흔드네! 껄껄껄!”
“얼쑤!”
“큭크하하하하. 노래 좋다! 고려 사람들이 노는 걸 좋아하여 같이 있으면 흥이 끊이지 않는다는데 사실이었구만!”
“어이쿠! 자네. 감히 천자님을 칭송하는데 웃었구만! 거기 고려 형씨. 여기 우리 되놈이 무례를 범했소. 벌을 줘야 하지 않겠소?”
“무엇이? 우리 여진 형씨 말이 사실이렷다! 감히 천자님을 칭송하는데 웃다니 무례하니 벌주를 마시게! 껄껄껄!”
“어이쿠! 내가 잘못했네. 했어. 고려 형씨 주는 벌주 기꺼이 마실 터이니 고려 형씨도 봐주시구려! 낄낄낄.”
“오냐. 이놈아! 흘리면 한잔 더 갈 것이다! 껄껄껄!”
그들은 술자리에서 웃으며 밤을 지새울 수 있었다. 동하국도, 고려국도, 금나라도 없이 그저 술친구들로서 진심으로 웃으며 수다를 떨며 밤을 지새웠다.
그러나 이런 모두가 술에 취해 흥겨운 서경 밤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것은 백성들과 여진인들만이 아니었다.
* * *
“이것이 그간의 일들을 정리한 글인가?”
“그렇사옵니다.”
잠행을 나와 서경의 객잔의 별실 하나를 빌려 탁자 위에 올려진 자료들을 읽었다.
그 종이에는 올해 생산된 용강현의 염전 소금의 이용 내역과 기록상 없는 손실액. 염초 제작 현황 기록들 등 내가 용강현에 발령 가기 전 정안연과 서경의 측근에게 부탁한 정보들이다.
“적지만 어쩔 수 없군. 유황은 어떻게 되었지?”
“예. 벽란도 시장에서도 모아보았지만 역시 쉽지가 않았습니다. 약재 용도로 들고 온 것이 전부라 유황은 100근 정도밖에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적군. 혹시 전매했나?”
“아니옵니다. 시선이 집중될 것과 개경과 심도(강화도)로 갈 약재도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7할만 취하였습니다.”
“…잘했다.”
염초는 조선 시대에서 사용된 염초제조법을 이용해 은밀히 만들게 했다. 역수와 대붕이에게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前煮取焰硝方諺解)’와 ‘신전자초방(新傳煮硝方)’에서 나온다는 염초 제조법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러나 유황만은 어쩔 수 없었다. 전매를 하면 십중팔구 들키게 된다. 아마 이번 7할조차 정안연 나름 북방의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재니 뭐니 변명을 해서 구한 것인 만큼 이후로도 이만한 비율로 구하는 것은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적긴 하나 어쩔 수 없지. 이 일은 절대 밖으로 내보내선 아니 된다. 알겠나? 그리고 이 사록(司錄) 서경에서 용강현을 오가는 ‘제물’은 어떤 상황이지?”
“아무것도 모른 채 용강현의 몰래 바치는 돈 외에도 자체적으로 용강염(龍江鹽: 용강현의 소금)을 빼돌려 부를 축적하고 있사옵니다.”
“염초에 대해서는?”
“전혀 짐작을 하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서경의 일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집에 오래 있지 않고 용강현을 오가고 있사옵니다.”
“짐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좋은 소식이나, 출입이 잦는 것은 좋지 못하다. 우선 이대로 제물의 살을 찌우게 하되 혹여라도 제물이 제 운명을 알게 되거나 이 사업을 알게 되어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대비하고 언제든지 제물로 바칠 수 있게 준비하라.”
“본부 받잡겠사옵니다. 전하.”
눈앞에 있는 이는 서경사록(西京司錄) 이장용이다. 지난해 살리타이의 군대를 막기 위해 서경에 왔다가 만난 이후 재빨리 내 밑으로 들였다.
어떤 의미론 제1번 수하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이장용은 역수가 내게 설명할 때 극찬을 한 여몽전쟁시기 위인 중 하나다.
이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알았을 때 주저 않고 수하로 포섭했다.
덧붙여 개경에서 정안연이 용강현에 발병되었을 때도 그를 돕기 위해 서경에 사람을 보냈는데 그 연락도 이 이장용에게 갔다. 즉, 정안연 이전부터 내 수하였던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둘의 중간 보고를 들었다.
이후 둘이 떠나려 할 때 정안연만은 불러 세웠다.
“정 남작. 그대도 이번 갈라전의 탈환과 오늘 팔관회에서 여진인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사옵니다.”
오늘 낮에 내 덕분에 더욱 시선을 받은 것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정안연의 얼굴에 순간 질려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들을 조심하라.”
“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정안연은 잘 알 것이니 구태여 더 설명해봐야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와 별개로 여진인들의 모습을 보고, 정안연까지 보니 도저히 떠올리지 않을 수도,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는 존재가 떠올라 물었다.
“그 날 이후 금 선자는 용강현이 묵고 있었느냐?”
“…그렇사옵니다.”
정안연의 답변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할 말이 많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것은 결국 딴소리였다.
“금 선자는 이번 팔관회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냐?”
“최대한 귀를 막고는 있으나….”
뒷말을 흐리는 것을 보니 정안연 본인도 그녀의 비상함과 눈치라면 이미 눈치챘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데려 달라거나 팔관회로 가자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안연이 한참을 내 눈치를 보며 고민 끝에 말한 것은 설령 눈치챘더라도 그녀가 서경에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미 짐작했을 것이라는 그녀가 오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그녀가 오게 된다면 소문의 진상이 밝혀져 갈라전 여진족들과 완안자연 등의 문제에서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리 생각한다면 그녀가 지금 서경에 오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백번 천번 이로운 것이다.
만일 그녀가 와서 나와 관계되는 모습이나 추측이라도 생긴다면 상황은 더욱 급변하게 된다. 그것을 감수하며 그녀를 불러올 이유는 없다. 없는데….
“…….”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전하.”
정안연도 마치 내게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듯 보였다.
나도 내 상태를 제대로 평가 못 내리는데 그가 어떻게 내 심정을 이해하고 바른 조언을 하겠는가. 결국 결정을 하고 의사를 보이는 것은 내 몫인 것을….
“용강현개국남 정안연.”
“예!”
비장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
#작가의 말
*해동의 천자 운운은 . 맑은 아악은 운운은 에서 팔관회 관련 나온 가사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