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93
93화. 83장 위기(1)
“네놈이 동하국의 잔적이었느냐?!”
“저, 전하. 그게 무슨 망측한 소리란 말입니까요? 저흰 그저 속빈로에서 조용히 살….”
“닥쳐라! 감히 대고려국을 우롱하고도 살아남을 성싶었냐!”
내 눈짓 하나에 척 인사의 대도가 번쩍였고 여진 추장의 목도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참변에 당황하는 여진 호위병들도 유산원과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전부 죽은 것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막사 밖으로 나가 외쳤다.
“여긴 고려와 예케 몽골 울루스에 반심을 품은 동하국의 잔적들과 내통한 소굴이다. 모조리 일소하라!”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고 있던 여진 기병들과 내솔부의 병사들은 부족의 집과 막사를 불태웠고, 아직 상황을 이해 못 해 어리둥절 하고 있는 부족민들을 잔인하게 도륙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돌변하는 여진족과 고려군의 모습에 그들은 당황하면서도 도주를 시작했으나 이미 준비를 마친 그들에게서 무사히 도주한 이는 정말 희박했다.
“태자 전하께 칼을 들이댄 자들이다! 모조리 참해라!”
여진인들과 고려인들은 내 명에 따라 그들의 죄를 열거하며 학살을 자행했고, 그들은 불신과 경악 공포 속에서 죽어갔다.
그렇게 소부족 3곳을 불태우고 약탈했다. 그들은 죄가 없었다. 설령 있었다 하더라도 부락이 일소될 정도의 죄는 결코 없었다.
그저 고려에 이주하거나 귀부하지 않겠다고 하자 계획대로 ‘억지로 죄를 씌워서 죽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아달의 부족도 지금껏 처리한 부족과 비교하면 조금 더 크긴 하여도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되려 몽골과 전쟁을 벌이다가 도주한 부족이다 보니 무기들은 모조리 철로 되어 있는 데에 비해 이 부족의 장정들을 보면 뼈로 만들어진 무기도 종종 보여 남은 병력들로도 문제없이 소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에 더해 여진인들 또한 탐욕을 품고 있으니 이전과 같이 약탈을 자행한다면 아달 부족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미래밖에 남지 않았다.
* * *
자행한다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히히히히. 소고기 맛있다.”
“아가. 흘리지 말고 먹어야지.”
“응! 응!”
“캬하아. 이게 얼마 만에 먹는 맑은 술이냐?”
아달의 부락민들은 때아닌 잔치에 마을 모두가 나와 배 불리 밥을 먹게 되었다.
저들이 먹고 있는 음식이나 술의 상당수는 내가 부담한 것이다.
“전하! 이, 이렇게 다 베풀어주시면 전하와 천군은 어찌하옵니까?”
“아니다. 이 정도쯤은 내게 큰 소모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 이토록 떨어진 곳에서도 아조에 대한 연모와 예를 잊지 않아 우리 군의 조사에도 순순히 따라주고 적들과 내통 또한 하지 않았잖은가. 순순히 협력하여준 그대와 부락민들에게 이 정도 치하는 당연한 일이로다. 여봐라. 소가 모자라지 않느냐! 더 잡아라!”
아달과 주민들은 내가 동하국의 잔적들과 내통하면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에 내통하지 않는다고 하고는 무례할 수도 있는 조사에도 순순히 응해주었다.
물론 갈라전에 보내지 않은 소와 닭들을 잡는 이유는 고작 그것 때문만이 아니다.
“아이고, 아이고. 전하. 무지몽매한 저희들에게 이렇게까지 대접해 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아달은 아까 마중을 나왔을 때 내게 대뜸 부락민들과 땅을 받아달라고 청했기 때문이다.
비록 수분하 이남까지가 갈라전의 영역이라고 보는 만큼 그 제의는 받아줄 수는 없었으며, 아달의 그 말 또한 단순한 빈말일 가능성도 높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는 말처럼 기분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특히 아달 부락의 위치가 현대에선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의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더욱 아달의 부락에 대해 호감이 갔다.
‘여길 어떻게 한다? 저들 요구대로 영역비를 세울 수는 없다 해도 친교를 빌미로 사실상 감찰관을 정기적으로 보내는 수는 있나? 아니면 각장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제어하에 두는 것도 한 방도인 것 같고….’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행정중심지이자 동쪽 도시 중 최대 거점 도시 중 하나다.
그런 곳에 아달의 부락이 위치하고 있다면, 아달을 살려둘 이유는 더더욱 커진 것이다.
안 그래도 갈라전을 떠나고 난 뒤 이후 지속적인 속빈로 정찰을 위해 중간 거점지를 만들 필요는 있었던지라 아달의 부족은 칠 생각이 없었긴 했다.
되려 지금 퍼진 소문에 겁을 먹었을 그들을 어떻게 달래고 설득하려고 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달의 이런 요청은 매우 반갑다.
특히 부족의 위치가 연안이다 보니 연안 항해를 할 때 기착지로 써도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달이 진짜 동하국의 잔적들과 내통하거나 고려에 뒤통수를 치려는 것이 아닌 이상 되려 이쪽에서 이 부족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것이다.
단지 아달의 이런 친화적인 태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아쉬운 점이 떠오른다.
‘테무케만 없다면 호협하(湖叶河)까지 기미주로 만들어 볼 법한데.’
갈라전을 받았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갈라전 밖의 영토는 테무케의 것을 인정한 셈이기도 하다.
동하국이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이런 최남단 변방에는 테무케의 지배력이라곤 쥐뿔도 없긴 하나 몽골 제국이나 동요국에서도 테무케가 옛 동하국의 영토들에 크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구유크도 나에게 순찰 도중 약탈을 허락했지 점유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 선을 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구태여 명령받은 것 이상으로 건드려 자극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구유크의 청을 들어주는 동안 동만주를 순찰하는 거점지로 써먹을 명분은 되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 * *
“태자 전하. 너무나 송구스럽사옵니다. 어젯밤 대접해 주신 것만으로도 과할 지경인데 어찌 이렇게 또다시 과분한 은혜를 거듭 내려주시는 것이옵니까?”
“흑심을 품고 분란을 꾀하는 여타 부족들과 달리 그대와 그대의 부족은 참으로 예와 충성을 다하였기에 나와 나의 병사들도 믿고 푹 쉴 수 있었기에 그런다. 그대의 선행과 선성이 이렇게 되돌아오는 것이니 사양하지 말고 이후로도 그 자세와 마음을 잊지 말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부디 천년만년 건강하시어 해동의 안녕을 굽어살펴주시옵소서!”
“태자 전하 천세! 황상 폐하 만세! 대고려국 만세-!!”
다음날 내게서 면포 50단과 비단 1필, 현미 10석과 일소한 부락을 처리한 후 얻은 전리품 중 병장기 일부를 하사받은 아달과 부락민들은 축수를 하며 배웅하였고 나와 군은 그런 배웅을 받으며 호합하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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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여기서 동해는 한반도+만주의 동쪽 바다) 건너에는 어부인(魚夫人)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어부인들은 용모가 몹시 추하고 눈썹이 없어 생선과 비슷한데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고 수맥질을 잘하여 어렵은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과거 아주 가끔씩 요동으로 넘어와 생필품을 구하고 돌아가기도 하나 근처 사람들이 사는 섬이나 해안가와 관계를 맺고 친밀하게 지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부인들과 긴밀하게 지내며 안으로 들인 섬과 마을은 시간이 흐르면 어부인들밖에 안 남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기괴한 족속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어부인은 이번에 동봉하는 물고기 사신(邪神)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명백한데 전에 상보께서 궁금해하시던 그 괴상과도 연관되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드옵니다. 이것에 대해선 좀 더 조사 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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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이번 보고서로 적당하긴 한데… 이 보고서 같지도 않은 보고서는 언제까지 만들어서 적어야 하는 걸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글 자체는 나도 구유크도 본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속빈로 정찰의 빌미는 형식상으론 구유크에게 받은 이 문어 관련 정보를 조사해달라는 청을 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 말은 반대로 해석한다면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종교를 조사하고 결과물인 보고서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여기엔 대붕이에게 그거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곤 해도 그대로 적기엔 용어나 설명이 이상한 게 많았다.
이 때문에 너무 대충 적어 작위인 게 티가 난다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그런 설화가 정말 있었다는 것처럼 보이게는 적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고려 것도 조사하라고 구유크는 말했기 때문에 모양새를 내기 위해 이연년의 난 진압할 때부터 호족들에게 야사나 설화 관련을 수집하도록 명도 내렸다.
괜한 우려면 좋겠지만, 대충 적어 보냈다가 나중에 구유크나 몽골 놈들이 안면 바꾸고 ‘고려 세자 놈이 우릴 기만했다’라는 빌미로 쳐들어오거나 따지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약간의 리얼리티가 필요한 보고서를 적어야 하는 것인데 그게 귀찮다.
‘고려 왕태자가 돼서 전쟁 준비로도 고욕인데, 여진족, 고려 야사, 설화를 섞어 잘 모르는 신화까지 창작까지 해야 하다니….’
심지어 이딴 글을 빨리 적고 끝내고 싶은데 보고서가 완료되면 그 순간 갈라전 밖 순찰의 빌미가 적어진다는 것 때문에 이 원고(?)는 장편 연재가 확실히 돼버린 것이다.
설화들을 조사한 이들도 정리하는 것은 나 혼자라 내가 마음대로 지역 설화를 지어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령 최측근들이라 할지라도 이 설화가 내가 전부 창작(?)한 글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사실상 없다.
‘괜히 조각상 하나 만들어 가지고 이게 뭔 개고생인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처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후로도 이런 글을 적긴 하겠지만, 저 꼴도 보기 싫은 저 조각상만큼은 다시 구유크에게 돌려보내야 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문득 밖이 소란스러운 것이 들렸다.
“…음. 밖이 소란스럽구나?”
“소인이 나가서 확인해 보겠사옵니다.”
이미 달이 중천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울 일이 있는 걸까?
이상하게 여겨 마휘에게 물으니 마휘가 고개를 숙이고는 확인해 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불과 1각도 되지 않아 헐레벌떡 들어오며 주저앉았다.
“전하! 전하! 큰일 났사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포, 포포, 포, 포포. 포위되었사옵니다.”
“뭐라?”
포위라니? 서둘러 막사 밖을 가보니 그 말대로 전방 여기저기에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불 하나를 들고 있지 않은 이상 저 불 밑에는 하나당 수십 명의 병사들이 있을 것이니 포위한 수는 수백을 너머 수천은 되어 보였다.
그러나 뒤는 호랍하에 막혀 있으니 우리 군은 영락없이 포위되어 배수진에 처해진 형국이라 할 수 있었다.
“저들은 어느 군대이더냐?”
내 물음에 마휘가 답하기도 전에 저 측에서 쩌렁쩌렁한 고함이 들려왔다.
“거기 있는 고려 세자는 듣거라! 우리는 대하(大夏)국의 천군으로서 아국의 영토를 침범하고, 죄 없는 백성들을 학살을 벌인 도적들을 단죄하고자 태자 전하께서 친히 군을 이끌고 왔다. 만일 고려 세자가 죄를 뉘우치고 아태자(우리 태자) 앞에 부복하여 항복을 한다면 관용을 베풀 것이나 만일 오지 않으면 즉시 대군을 움직여 지금까지 벌인 죄에 대해 용서함이 없이 살육(殺戮)으로 답할 것이다!”
“와아아아아!!!”
밤이라 그런지 그 소리는 더욱 울려 퍼졌고, 그 호통과 함성에 여진 병사들은 더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마휘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하. 어찌하옵니까?”
“숫자가 적구나.”
“예. 우군의 수가 적사옵니다. 적은 수천인데 비해 우군의 수는 수백에 불과하오니 어찌 답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다. 아군의 수가 적은 것은 맞으나 적의 수도 불빛에 비해 많지는 않은 것 같단 말이다.”
“예?”
얼떨떨한 마휘가 내게 되묻기도 전에 각자의 막사에서 잠을 청하려고 있던 이안사를 비롯한 제추, 제장들이 빠르게 다가와 군례를 올렸다.
“전하. 속빈로에 있던 동하국의 잔적들이 모두 모여 포위를 하고 있사옵니다. 부디 속하들에게 지시를 내려주시옵소서!”
“무얼 묻는가? 당연히 잔적들과의 전투가 아니겠느냐. 분명 방책과 거마창들은 제대로 설치하였으렷다?”
“예. 지시한 대로 해놓았습니다.”
호합하에 오자마자 이럴 것을 대비하여 언덕이 있는 곳에 진영을 잡고는 진영 주변에 고려에서 만든 거마창과 방책들을 설치하라 지시를 내렸다.
더욱이 아달 부족에 갔을 때 부족 내에 있는 모든 수레들도 비싼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수레들을 세워 방벽으로 사용하라. 다행스럽게도 적의 수는 그리 많지 않고, 아군은 갈라전에 갔던 병사들도 이미 돌아와 합류한 상태다. 적을 격퇴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적이 적단 말이옵니까?”
이안사의 물음에 나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를 내렸다.
“밤이라 소리가 울리긴 하나 결코 수천의 군대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니, 적들은 허장성세의 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야습을 하지 않는 것도 어리석다. 저들은 수가 적고 지략도 모자라니 모두 겁을 내지 말고 각자 맡은 지역의 방어에 집중하라. 예비전력으로 20명과 기병 40명만을 남기고 모두 방책에서 적을 막아라. 여진인들은 사전에 논의한 대로 내솔부 송 낭장의 지휘에 맡긴다. 예비전력으로 둔 남은 부대는 적이 우회하거나 후방을 교란 혹은 방책이 무너질 때 그 즉시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라!”
“존명!”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적의 수가 우리보다는 대군이 맞다.
게다가 이 일대 지리도 이쪽보다 저쪽이 더 밝으니 이런 야밤에 제대로 된 작전도 없이 무턱대고 진영 밖으로 나가 야전을 벌인다는 것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나 수비라면 해볼 만하다.
이 전투는 우리가 버티느냐, 못하느냐. 시간 싸움이다.
#작가의 말
*작중 어부인 운운은 작가가 예전에 구상만 하고 말았던 에 나오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