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122
“내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말하는 군······나를 잘 알지 못하면서······”
“······하지만 느껴지는 것 같아요······소령님은······아마도 누군가의 강요로 군대에 오셨을 것 같아요······자기 스스로 자원해서 온 것은 아니겠지요. 아마 충분한 각오를 하시지 않았을 것 같아요······충분하게 각오를 하고 왔다면······부하들이 죽는 것 쯤은 아무 생각도 안들텐데 말이죠.”
“······각오가 모자라다는 건가?”
그녀의 말에 씁쓸이 웃고 있는 크라우프였다. 발레리는 으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휘관으로서 부하들을 희생시킬 각오가 서 있지 않으면 괴롭고 고독한 법이에요······어디 탁 터놓고 말을 하기 힘드실 테니까요. 그 같이 있는 여자도······부하죠? 그러니 이런 말은 하지 못하고······있으신 것 같군요.”
조금 차분하게 말을 하는 발레리에 크라우프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것 같군······조금은······아니 많이 기분이 편해 진 것 같아······”
크라우프의 대답에 발레리는 엷게 웃어 주기만 했다.
“걱정과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소령님······”
그녀의 말에 크라우프는 피식 웃었다.
“걱정과 고민이 없으면 지휘관이라고 할 수 있나?”
원론적인 크라우프의 대답에 발레리는 그가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 앞에서는 살아 남은 사람들을 위해 축하하고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크라우프 자신은 지금 스스로 하는 일을 무척 괴로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앉아 어색하게 웃고있는 크라우프를 살며시 미소 띈 얼굴로 바라보았다.
발레리는 이런 것을 알게 되니 크라우프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소령님······죄책감을 가지실 필요 없어요.”
발레리의 말에 크라우프는 짧게 숨을 들이 마셨다. 그녀는 이런 사람들을 가끔 보아 왔었다. 그들 모두 젊고 유능한 지휘관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중에는 전투를 거듭하면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견녀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육체적인 고통과 상처야 참고, 치료할 수 있었다. 세포재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팔다리가 잘려져 나가도 원상태로 복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수족이 잘려 나가는 부상쯤이야 아무런 문제도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죽음만큼은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알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이 모습들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 그또한 사람이었다.
발레리는 크라우프를 보면서 그가 자신이 원해서 군인이 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지휘관이라는 의무감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도 전투가 계속되면서 부하들이 죽고, 알고 있던 사람들이 사라져 감으로서 차츰 의무감 보다는 괴로움이 더해졌을 것이다.
발레리는 이런 식으로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었다. 레온시티 보급기지는 후방기지였기 때문에 후송되어 오는 많은 부상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사이에서 부상이 아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있던 그런 사람들도 자주 목격하고는 했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위로해 주고 보듬어 줘도 재부분의 사람들은 그대로 우울증에 빠지고는 했다. 그녀는 문득 크라우프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 되었다.
“······고맙네. 걱정해 주어서······”
그의 말에 발레리는 엷게 웃었다. 크라우프의 표정에서 어둠이 조금은 걷힌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걱정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나?”
크라우프는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쑥쓰러운 듯 말했다.
“이거······너무 이런 얘기만 했군 그래······”
“그러네요. 죄송하네요.”
엷게 웃고 있는 발레리를 바라보며 크라우프는 다리를 꼬며 너지시 물었다. 춤울했던 표정이 많이 사라지고 장난기가 살짝 감돌았다.
“음, 발레리가 나보다 나이 많지?”
“······이제 25살을 바라보고 있어요······에휴······”
그년가 왼손을 얼굴 높이로 들어 좌우로 흔들며 한숨을 내쉬자 크라우프는 핏 웃음을 지어 보여 주었다.
“군인한지 오래 되었나?”
“16살때요······달리 할 일이 없어 제대 안하고 있어요.”
다시한번 짧게 한숨을 내쉬는 발레리의 말에 크라우프는 엷게 웃음을 지었다.
“빨리 의무 복무기간 채워야 할텐데······”
크라우프의 말에 발레리는 으쓱한 표정을 지었다.
“군대 의무 기간 끝나시면 바로 제대하실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크라우프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제대할 수 있으면 제대하고 싶어.”
크라우프의 약간은 어중간한 대답에 발레리는 그러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서로 웃으며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어느새 다 마셔버렸었는지 두 사람의 손에는 빈 캔만이 만져지고 있었다.
“······괜찮다면······같이 술이나 한잔 할래?”
그의 물음에 발레리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데······괜찮다면······”
먼저 손을 내미는 크라우프에 발레리는 어떻게 할까 생각을 했다. 지난번에는 황당하게 헤어 졌었는데 이번에는 좀 길게 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20시 10분 크라우프는 발레리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별로 장식이 없는 방이었지만 사물함에는 숨겨둔 브랜디가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술을 감추어 놓고 마실 수 없고 걸리면 처벌되지만, 엠더의 사령관실을 뒤질 수는 없었다. 크라우프는 한잔 하라면서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브랜디를 따라 주었다.
“술이라······형편이 괜찮은 곳만 일주일에 한번 마실 수 있을 정도인데······”
발레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음을 띄운 술을 한모금 마셨다. 오래간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진 몰라도 맛이 아주 좋았다. 크라우프도 한잔 따라 마시면서
“맛이 어때?”
“아주 좋네요.”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그의 소파에 걸터 앉았다. 크라우프도 그녀와 마주 앉으면서 술병을 가운데 내려 놓았다.
“참, 발레리는 가족들······자주 봐?”
“아니요······만나면······시집가라고 하도 성화여서. 그래서······”
그녀는 술때문인지 약간 볼을 붉히고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질린다는 얼굴을 했다.
“하핫······나도 집에 가보고 싶네. 여동생은 이번에 군대에 들어갔다는데······어디로 배치되었는지 모르고······”
“해군?”
“보병······”
끝을 살짝 내리며 웃는 크라우프에 발레리도 피식 웃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보병은······거의 죽을 위험 없잖아요. 그래도 동생이라 걱정되시는 거죠?”
“맞아······”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발레리는 이런 크라우프가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제······전쟁이 없었으면 좋겠군······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까지는 말야.”
크라우프의 말에 발레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습니다. 이제는 좀 쉬었으면 싶어요.”
발레리는 그렇게 말을 받았다.
그후로도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30분 정도 대화를 나누던 발레리는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즐거웠어요. 소령님······”
“또봐!”
서로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레리는 술기운으로 좋아진 기분을 가지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크라우프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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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와 섬씽을 바라셨던 분들은 설마…없었겠지…요…?
…하긴 저도 수정하면서 ‘어허, 이넘이 또…’ 했지만요…^_^;;;
뭐, 남녀가 만나서 술마시고 얘기만 나누다가 헤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핫…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죠…쩝…ㅡ_ㅡ;
오늘도 한편 올립니다. Next-47…
100회 맞이 제목 대 변경!!!!!!! ^_^/
22시 10분 다이레아는 부대를 한번 돌아 보고는 가볍게 하품을 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규정된 취침시간이었기 때문에 파일럿들 대부분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한 뒤였다.
오늘 다이레아가 한번 파일럿 숙소를 돌아 보았을 때, 시에나는 피곤한지 자기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며칠간 크라우프의 방에서 자고 나면 이틀정도는 자기 침대에서 잠을 자고는 했다. 그 둘이 같은 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뻔한 일이었기 때문에 다이레아는 피식 미소 지었었다.
숙소로 돌아온 다이레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손으로 한번 쓸어 넘긴 그녀는 군복 상의를 벗어 벽에 걸어 놓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샤워라도 해두고 싶었지만 시설이 부족해 그럴 수 없으니 좀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의 엠더 공략시에 파괴된 시설중에서 중요한 것만 복구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다이레아는 잠자리에 들기에는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로 모아 묶은 머리끈을 풀고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추어 올리면서 다시 한번 입을 벌려 하품을 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가 싶어 나가 보니 뜻밖에도 크라우프가 서 있었다. 그는 술을 마셨는지 술냄새가 풍겨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아마도 술마시다 여자 생각이라도 나서 온 것인가 싶었다. 크라우프도 남자였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을 쉽게 생각하고 원하면 아무 때나 섹스를 할 수 있는 그런 상대로 밖에는 보지 않나 싶었다. 자연스럽게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무슨 일이시죠?”
다이레아는 좋게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불쾌한 기분이 반쯤 녹아 있는 다소 사무적인 어투로 물었다. 경계하는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역력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잠자려고?”
“아니요······업무에 관한 일인가요?”
다이레아의 물음에 크라우프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괜찮다면······야식 먹으려 하는데 같이 먹을까 해서······”
“야식요?”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에나를 생각해서 크라우프를 멀리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가 앞에 서니 쉽사리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미안하다며 문을 닫는 다면 물러설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가 이런 제안을 해오자 오히려 조금 설레여졌다.
“야식 먹으면 살찔 것 같은데요······”
원래는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마음 내키기는 해도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라우프는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오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서 다이레아에게 나오라고 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거절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은 그녀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사실 뭐 좀 먹고 잠자려고 했으니까요······”
이래서는 안된다고 머릿속에서는 계속해서 떠들어 대고 있었지만 몸은 크라우프를 따라서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 바보······사무적인 일 이외에는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으면서······’
다이레아는 계속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였다. 그리고 크라우프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같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돌아설 수 있었다. 결국 끝까지 반대의 말을 내뱉지 못한채 크라우프의 방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누군가와 술이라도 마셨는지 술잔이 두개 테이블에 놓여져 있었고, 반쯤 비워져 있는 브랜디병이 보였다. 다이레아는 슬쩍 침대쪽을 훑어 봤지만 별로 흐트러 진 것은 아니었다.
순간 크라우프가 다른 중대장들과 면담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순전히 여자였을 것이라고만 생각한 자신이 좀 우습게 느껴졌다. 부끄러움에 다이레아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아마도 크라우프가 무슨 얘기라도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얘기가 아니었으니 이런식으로 불러온 것인가 짐작했다. 괜히 전에 자신이 만났던 남자들처럼 섹스나 하자고 불렀다 생각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크라우프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다이레아의 앞에 야식으로 먹으려 했던 인스턴트식품을 내려 놓았다. 그는 정해진 투입구에 물을 붓고 용기의 상부에 있는 가열선을 잡아 당긴뒤 5분 정도 기다리면 물이 뜨거워져 면이 익는 군용컵라면과, 시큼한 맛이 나는 식초에 절인 무를 내놓았다.
소령인 그가 직접 이것들을 내 주면서 다이레아의 앞에 앉았다.
“같이 야식이나 먹자고 저를 부르신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물을 붓고 가열선을 잡아 당긴뒤 면이 익기를 기다리면서 다이레아가 빙긋 웃으며 크라우프에게 먼저 물었다. 여러가지 자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크라우프에게 묻는 것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하핫 웃으면서 똑같이 라면을 데우며 젓가락으로 절인무를 한개 집어 입안에 넣었다. 잠시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아니······전에······말했던거······원한다면······이곳이 아니라 후방으로 보내 줄께. 다이레아······”
크라우프의 말에 다이레아는 순간 잠시 잊고 있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너무 일에 파묻혀 지내는 것 같다고 크라우프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아니······다이레아는 충분히 이곳에서 고생할 만큼 했는데······너무 전쟁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그리고 아니······다이레아는 자신을 너무 학대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녀는 크라우프가 무엇을 바라는 것인가 의심부터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 바로 뒤 슬몃 이런 자신이 부끄러워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크라우프는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만난 사람들 모두 자신과의 섹스만 원했지 이런 걱정을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눈이 조금 부드러워 졌다.
“아니······저는 갑자기는 아니지만 그간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녀의 말에 크라우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술을 마신 사람 같지 않아 오히려 섬틋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족들 만나본지 오래 됐지? 내가 알기로 이제까지 휴가간 적이 딱 한번 있었다고 들었는데······”
“······몇달 휴가라도 주시게요?”
하핫 웃으며 얼버무리려는 다이레아에 크라우프는 그것을 바라냐고 물었다.
“아?”
과잉 친절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잠시 그를 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저한테 친절을 베풀고 원하시는게······뭐에요?”
다이레아의 말에 크라우프는 하핫 웃기만 했다. 그러한 그의 반응에서 생각을 읽기 매우 힘들었다.
“다이레아가 자신감을 되찾았으면 해서······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사랑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그의 말에 다이레아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상대는 진정으로 호의를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별로······소령님······그것이 저하고 관계를 가진 보답 같은 건가요? 제가 그냥 좋아서 한거에요······아니 그냥 남자가 생각나서 그런 거에요······”
그의 친절이 부담스러워 졌기 때문에 다이레아는 애써 그를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신경써 주는 크라우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