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162
‘단지 그 무엇도 아니라······이것인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가벼운 존재감에 그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문득 파츠 베이스를 일으켜 세울 정도로 뛰어난 능력자이셨던 어머니를 떠올려 보았다.
아담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단지 기억에서만 아득할 뿐이었다. 영상 자료만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흐릿한 기억 속에서 스스로가 짜맞춘 것 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기억일 뿐이었다. 영상 자료를 통해서든지 아니면 자신의 거의 지워진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꽤나 아름다우셨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처럼 신성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담 자신에게는 어쩔 수 없는 친어머니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여러가지 분석과 판단, 그리고 비평을 필요로 하는 대상이었다. 아담은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는 어머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들을 모두 들어 알고 있었다.
한동안 어머니에 대해서 부끄럽게 여기기도 했지만 그는 지금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삶을 사시는 동안 파란이 많으셨던 것이다. 아직 세상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때부터 좋지 않은 면만을 거듭 보아오신 것이다.
‘나는 그것에 비하면······무엇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그는 한숨만 내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 비한다면 자신은 아직 가능성이 많았다. 어머니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서른살이 넘어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22살일 뿐이었다.
신병들에게 강의를 마친 라디아 파드 중위가 경례를 받고 돌아 섰을때, 아담이 생수병과 수건을 가지고 그녀의 옆쪽으로 다가왔다.
“마셔······수고 많았어······”
아담의 배려에 라디아는 고맙다면서 빙긋 웃음을 지어 주었다.
“아기들 키우는거 힘들지?”
그의 물음에 라디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신병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렇게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이 한 사람 몫의 파일럿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짧게 한숨을 내쉬는 아담이었고 신병들은 다소 불쾌한 표정들이었지만 상급자가 그렇게 말을 하니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좀 자극이 되었을까?”
나직한 라디아의 물음에 아담은 모르겠다는 말을 하면서
“하지만 뭐 어떻게 하겠어?”
그의 말에 라디아는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지휘관이 욕을 먹더라도······한놈이라도 더 살아 남으면 좋겠는데······”
짧은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말에 그는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런 말들을 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디아 괜찮다면 점심 먹고 나서······내 방에서 영화 보지 않을래? 괜찮은 거 구했는데·····”
아담의 제안에 라디아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또 전처럼 포르노 영화?”
그가 피식 웃어 버리자 라디아는 으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방에 브랜디 병을 빼돌려 놓은 것이 있는데 같이 마시며 보자고 말했다. 아담이 고개를 끄덕이자 라디아는 잠시 몸을 좀 씻고 싶다면서 그 자리에서 위쪽으로 뛰어 올랐다. 라디아가 캣워크쪽에 닿는 것을 보고 아담도 몸을 날려 위로 올라갔다.
3월 15일 에이센과 파츠 베이스 사이에는 묘한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소와 다름 없는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지만 양측은 꾸준히 전투물자를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12시 30분 아세라 세라 우르반 대위는 일찍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하기 전에 집에다 편지를 썼다. 페넬로페와 같이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그녀의 중대는 보충병들을 받아 현재 훈련 중에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편지를 써야 했다. 집에다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건은 되지 않았다.
“죽을 맛이다.”
편지 디스켓에다가는 별일 없고 페넬로페하고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집어 넣었다. 한번 다시 본뒤 흰색 규격 봉투에다 넣고 그것을 봉했다. 그리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세면장에서 이를 닦고 있던 아세라는 방송으로 쉬린 소령이 자신을 호출하자 무슨일인가 싶었다.
아세라가 쉬린 소령의 방에 도착했을 때 13시 1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른뒤 쉬린 소령의 방으로 들어섰다.
“아세라 우르반 대위. 부르심 받고 왔습니다.”
경례를 올리자 소령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척이나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세라로서는 이럴때 마다 쉬린 소령에게서 섬틋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10분 전······파츠 베이스군 함대 약 2천 척이 국경 지역에 출몰했다.”
쉬린 소령의 말에 아세라는 또다시 전투가 벌어지겠구나 싶었다. 파츠 베이스군의 국경 도발이 요즘들어 너무 자주 일어 난다는 생각을 했다.
“침공입니까?”
아세라의 물음에 그는 자신으로서는 알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하지만 적이 2천 척이나 되는 함대를 동원해 국경 지역에서 무력 시위를 벌인다는 것은······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일이네······아직 적의 움직임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지만 각급 지휘관들에게는 이 점을 주지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왔네······우르반 대위 자네는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쉬린 소령은 잘 이해했냐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나가보라는 태도를 보이자 아세라는 경례를 올리고 되돌아 나갔다.
쉬린 소령은 자신의 자리에 앉으면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어릿광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 부터인가 아세라를 가까이에서 보면 기분이 좀 이상해 졌다. 무슨 야릇한 흥분 같은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지금도 아세라와 단둘이 방안에 있게 되니 기분이 묘해져서 서둘러 그녀를 밖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쳇······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쉬린 소령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허튼 생각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녀는······부하일 뿐이야······’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혀를 찼다. 그리고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서류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쉬린 소령으로부터 또 다시 정보를 전해 들은 아세라는 짧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파츠 베이스군이 또다시 도발을 해온 것이다. 이번에는 2천 척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함대를 동원해서 말이다.
‘빌어먹을 자식들······’
아세라는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적이 출현한지 10분 만에 어떻게 적의 규모등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최하급 지휘관인 자신에게 까지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나 싶었다.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어머니는 장교가 된 자신들에게 병사의 입장에서는 의심을 품지 말라고 당부 하셨다. 병사로서 의심을 품게 되면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회의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장교라는 것은······’
하지만 장교는 보다 앞을 내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세라는 지금 자신이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병사의 입장인지 아니면 장교의 입장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앞을 내다 보라······’
하지만 아세라는 상부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의도를 보여 준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의사결정 과정에 자신은 관여할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이 세는 숫자로 표현될 뿐이었다. 자신과 동료들의 희생은 지엘하르트 함대에서 바리스타 몇기 출격해서 몇기 손실 입었다는 식으로 나올 뿐이다.
‘숫자라······’
병사의 입장에서 지휘관의 입장까지 되셨던 어머니는 자신도 그렇게 되어 버리더라고 말씀하셨다. 자신들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숫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아세라는 자기 자신의 하찮음에 한숨이 내쉬어 졌다. 그렇지만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이런 정보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정도면 그마나 나은 편이라는 생각을 했다.
15시 정각 지엘하르트대장의 육성 연설로 파츠 베이스군이 2천 척 정도의 함대로 국경 지역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상황이 전 함대 장병들에게 전달 되면서 전투 준비 태세가 하달 되었다. 그리고 파츠 베이스군의 무력 도발에 대해 전 경비함대도 비상 준비태세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전달 되었다.
“또 전쟁인가······”
이 소식을 듣고 있던 고참병들은 짤막하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파츠 베이스군들이 도발해 오는 것이야 하루 이틀도 아닌데 불평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무려 2천 척이나 되는 함정들로 국경 지역에서 도발을 해온다는 것은 명백한 도전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녀석들은 아예 전쟁을 바라는 것인지······’
이런 상황에서는 발언에 매우 신중해야 했기 때문에 고참병들은 불안해 하고 있는 신병들이나 헌병, 정훈 장교들 앞에서는 이런 발언을 조심했다.
전투 대비가 하달 되고 아세라는 자신의 중대원들을 불러 들였다. 반수 이상이 신병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새로이 배속된 맥클레런이나 비스톡의 경우는 중대원 대다수가 신병들이니 아세라는 그나마 나은 편이엇다. 그녀는 일단 중대원들에게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경거망동 하지 말도록 했다. 그리고 첫실전이 될지 모르는 신병들에게는
“배운것의 10%만 제대로 발휘하면······첫 전투에서 죽지 않게 된다. 이것은 꼭 명심해 둬라······가만히 서 있으면 죽는다. 알겠지? 결코 멈추어 서지 말고 움직여라. 그러면 살수 있다.”
경험자로서 아세라는 신병들에게 늘상 이점을 강조하고 있엇다. 신병들 대부분이 전투장에 나가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표적이 되어 죽어 버리고 만다. 상대는 고속으로 움직이면서 전장을 누비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으면 적의 움직임을 따라 갈 수 없다.
“전투가 벌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가 전투에 투입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면······조금이나마 살아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명심하도록!”
아세라는 다시 한번 중대원들에게 끊임없이 움직이라는 것을 강조한 뒤 전투 준비 태세를 하달했다.
중대원들이 모두 각자의 위치로 흩어지자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의 복도에서 페넬로페와 무엇인가 길게 말을 나누고 있던 비스톡 중위를 볼 수 있었다.
“아? 언니?”
페넬로페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빙긋 웃으며 왼손을 들어 보여 주었다.
“전투 준비 태세다. 또 전쟁 하려나 보다.”
그녀의 말에 비스톡 중위는 으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위에서 싸우라면 싸워야지요. 않그렇습니까?”
중위의 대답에 아세라는 으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맞는 말이라고 했다.
“파츠 베이스놈들은 어째서 이렇게 전쟁을 못일으켜서 안달인가 싶어서 하는 말이네!”
아세라의 대답에 비스톡 중위는 맞는 말이라고 대답하면서
“아이크에서도 이 자식들 제법 날뛰고 있습니다. 망할 녀석들이죠······”
이렇게 말하는 비스톡 중위는 신족이었다. 파츠 베이스가 바로 신족의 독립을 위해 일어섰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비스톡 중위나 맥클레런 중위 같이 에이센군 내부에서는 많은 수의 신족 출신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세라는 어머니는 다곤행성계 출신의 마족인이었고 아버지는 베르베라 출신의 사람이었다. 이렇게 따진다면 아세라나 페넬로페도 혼혈인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한번도 자신이 혼혈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 내부 고위 장성 중 신족 출신으로서 현재 통합작전 본부장을 지내고 있는 쿠르트 지겔마이어 원수 같이 아이크 출신에 그의 아내도 아이크 출신의 신족인 사람도 있었다. 지겔마이어 원수는 더욱이 신족인 부친이 반역에 가담해 파츠 베이스의 국내 경제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에이센군의 요직에 앉아 있었다.
================================================================================
꽤 많은 분들(독자수가 적으니…비율상)이 ‘크라우프 어디있냐?’는 질문을 해 주시는 군요….
음…이 허접설을 턴제 시뮬 게임으로 만든 상태라고 가정할 경우…현재 크라우프의 상태는…
…’移動中’…이라는…퍼걱~!! <(#.ㅠ) 아야야…
재판에서 이동명령 받고…가는 도중에 부하들과 합류하고…전투에도 휘말려 죽을 뻔 하기도 하며…이동중이지요…ㅡ_ㅡ;
위의 비스톡 중위의 대사중에…'아이크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나오죠…;;
크라우프의 새로운 부임지가…아이크라는…
아마 아세라의 이야기가 조금(…어이…작가씨…정말 조금이야?) 정리되고 나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간간히 얼굴이야 비치겠지만요…^_^;;
오늘도 한편 올립니다. Next-87…
후덥지근 하군요…좋은 밤 되시길…
드디어 "소"제목을 바꿀때가 되었군요…^_^)/
쿠르트 지겔마이어 원수는 에이센에서 입지 전적의 인물이었다. 그는 올해 64세로서 7년 전쟁의 시작시 변방 군사 기지에서 바르디아군의 공격을 처음으로 받은 군기지 소속의 파일럿이었다. 파일럿으로서도 유능했고 지휘관으로서도 매우 탁월한 그였지만 당시 게르트 황제나 백효연 원수처럼 그렇게 주목을 받던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에이센의 통합작전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부친이 반역자였지만 그 아들인 지겔마이어는 에이센의 게르트 황제에게 부친의 반역에 대한 사면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그만큼 게르트 황제게 인정받고 그의 충성을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런 것에서 아세라는 파츠 베이스가 신족의 독립이니 뭐니 하면서 내세우는 명분들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만일 게르트 황제가 신족들을 차별하든 아니면 신족들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벌였다면 몰라도, 게르트 황제는 신족이라고 해도 능력이 있고 황제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반역자의 가족이라도 통합작전본부장이라는 현직을 내려 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분 없는 싸움······’
신족인 비스톡 중위같은 사람을 보아도 차별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파츠 베이스는 신족의 독립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면 이런 시대에 그런 종족의 구분같은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종족이라······’
페넬로페와 비스톡 중위에게 전투 준비태세이니 신병들을 좀 잘 돌봐야 겠다는 말을 하면서 마족인인 어머니와 보통 인간인 아버지의 피가 뒤섞인 자신은 무엇이냐는 생각을 했다. 이런 쓸데없는 종족의 구분같은 것은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신이나 페넬로페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마족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 때문에 굳이 자신이 무슨 종족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모두 같은 인간들이었다. 비록 사람들마다 조금씩 그 특징들이 다르고, 고유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인간이라는 개념 아래 모두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아세라는 파츠 베이스의 위정자들이 신족의 독립이라는 것을 내세운 것이 에이센의 황제에 반역을 일으키고 내세우는 그럴싸한 거짓된 명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파츠 베이스인들에 대해 혐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파츠 베이스인들 보다 파츠 베이스인의 위정자들이 보다 책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군에 있을 동안 파츠 베이스라는 것을 완전히 몰아내 버리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 아세라가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적을 죽여야만 의미가 있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을 죽임으로서······’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런것보다 일단 부하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당장에 전쟁이 다시 벌어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당장 아세라 휘하에 있는 중대원들이 죽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녀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코프는 뭐하고 있을까?’
자신의 방에 들어와 잠시 자리에 앉아 있을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라도 곁에 있다면 지금 보다는 보다는 마음이 좀 덜 불안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어버린 자신에 씁쓸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아세라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18시 10분 아담 조슈아 디제 중위는 공격 항공모함 운터 발디스호의 식당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파일럿들을 바라보았다. 운터 발디스호도 신병들과 더불어 파일럿들을 가득 싣고 프로스베인과 근접한 주역에서 훈련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미 에이센군에 통보된 훈련이었다고는 하지만 접경 지역에서 2천 척이나 되는 함대가 훈련을 벌이는 것이 충분하게 에이센군에게 자극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군 사령부에서는 이번 작전을 그대로 밀어 붙였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담을 비롯한 고참 장교들은 짧게 투덜거릴 수 밖에 없었다. 현재의 이런 행동이 에이센군에게는 전면전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군 사령부는 왜 모르나 싶었다. 짧게 혀를 차고 있던 아담은 잠시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면서 식당에서 내준 저녁 식사를 먹었다. 신병들은 최전선에 나와 있었지만 긴장감 같은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노래를 흥얼 거리면서 저녁으로 나온 푸짐한 식단을 뱃속에 흘려 넣고 있었다.
3월 16일 5시 20분 공격 항공모함 운터 발디스호의 파일럿 숙소의 자신의 방에서 아담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가볍게 하품을 하면서 다시 깊게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빌어 먹을······’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취침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자신의 옆에서 쌕쌕 거리면서 잠들어 있는 라디아의 따뜻한 몸의 감촉을 느끼고 있었다.
라디아라는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를 안고 이렇게 같이 지낼때마다 다른 생각들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