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2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쪽으로 되돌아섰다.
…복구합니다…^_^;;;
일단 ‘배경설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용이 조금 지루할 겁니다…^_^;;;
굳이 읽지 않아도 되니 넘기실 분은 넘기셔도 됩니다…
단지 나중에 “응? 이건왜 이렇죠?”라고 질문만 하지 않으신다면 말이죠…-ㅅ-;;;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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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태양계를 합쳐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분류하고 있는 이 시대. 인류는 우주의 광활한 지역에 걸쳐 그 활동 범위를 넓혀 놓고 있었다. 초장거리 워프의 항법이 발달하고, 한 행성계 내부는 1일 정도면 활발하게 움직일 수가 있도록 되어 있을 정도로 항성간 항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해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조되는 선박은 매우 거대할 수밖에 없었다. 오랬동안 우주에서의 항해를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배를 튼튼하게 제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이 넓은 우주에서는 항성간 단위로 국가를 건설하고 있었다. 인류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수많은 이민족들과도 교류하게 되었고 이들도 국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번식력이 가장 강력한 인류는 자연스럽게 전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에이센이라고 하는 국가의 주된 인구가 된 것이다.
그 옛날 에이센과 아이크, 다곤, 그리고 바르디아로 분리되어 있던 세력간의 끝없을 항쟁을 종식하고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했다. 결국 이 항성간 국가를 통합한 인물은 에이센에서 나오게 되었다.
에이센에서 황가를 이루고 황정을 수립한 초대 황제 안나 라스티어 펜 류픽크의 뒤를 이은 윌리엄 그레이트 황제가 다곤국을 멸망시키고, 다곤의 멸망과 함께 아이크는 4대황제인 볼프 리하르트가 멸망시켰다.
국가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큰 전쟁이 잊혀져 갈 무렵, 인류는 우주의 저편으로 떠나 버렸던 바르디아라고 하는 세력과 만나게 되었고, 이들 또한 막강한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 10대 황제 게르트 하우츠의 노력으로 오랜 전쟁을 거쳐 바르디아를 에이센의 영토로 만들었지만, 바르디아의 잔여세력들은 다시금 에이센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 발바이스를 건국했다. 또한 바르디아와의 오랜 전쟁으로 에이센의 힘이 쇠약해진 틈을 타 아이크의 신족들은 에이센을 몰아내고 파츠 베이스를 건국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인류는 다시금 끝없는 전쟁을 계속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랬동안 인간들은 우주로 나오게 되면서 어찌된 일인지 그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사람들이 있었다. 일반인들의 몇 배나 많은 삶을 누리게 되는 것으로써 이들을 장수족이라고 불렀다. 장수족들은 그 특권적인 생명력으로 여러 국가에서의 요직에 앉아 있었으나, 많은 전쟁으로 대부분이 죽어 없어지고 지금은 전혀 나이를 먹었다고 느낄 수가 없는 펜 류픽크황가의 직계 황족들만이 장수족으로 불리워 지고 있었다.
황제는 보통 2, 3천년 이상을 살아 있었고 그들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것 같은 이들은 에이센인들에게는 단지 황족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당연시되고 있었다.
인간들이 언제부터 우주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현재로서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오랜 전쟁으로 대부분의 자료가 소멸된 때문이었다. 다만 조금씩 다른 생명체들과 접촉하게 되고 이들과 투쟁하게 되면서 ‘보다 멀리, 그보다 더욱 멀리’ 라는 식으로 우주공간을 뛰어 넘어로 식민지 개척과 탐사 범위를 넓혀 갔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인류가 우주로 진출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을 때, 이들을 모두 통일하는 초거대 제국이 성립되었다고 했다. 우주로 진출하기 시작했던 인간들도 그 핏줄이 차츰 다른 이민족들과 섞여 가면서 조금씩 상이한, 본래의 특징에서 벗어난 변이들이 생겨났다. 가장 순수 혈통을 유지한다는 인간들과, 당시 인간들이 성립한 초제국에 가장 극렬히 저항했던 민족들과 혈통이 합쳐진 마족-당시 매우 극렬히 제국의 지배에 저항해 제국의 황제가 이들을 마귀같다는 뜻으로 불러 마족이 되었다고 한다-들, 그리고 보다 생명력이 강하고 보통 인간들 보다 2배 이상의 삶을 유지하게 되는 신족-신족은 인류가 다른 이민족과 결합함으로 나타났다는 설도 있고 황실에서 벌어진 생체 개조에 의한 것이라고도 한다-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나타나게 된것은 인류가 보다 한단계 발전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초거대 제국은 이러한 종족의 차이 때문에 통치에 불안감을 느꼈고, 이에 좀더 쉬운 통치를 위하여 각 종족별로 거주지를 정하고 자른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내부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정책적인 고립으로 인해 본래 종족별로 가지고 있던 특성이 다른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당시 매우 보편화된 혼혈인들에게서 볼 수가 없는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서 이전에 분류했던 것처럼 마족인들과 신족인들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것은 당시의 보편화된 혼혈과 장기간에 걸친 고립때문에 신체적인 특징이 변화하면서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초거대 제국이 어떻게 해서 멸망하게 된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마족들과 신족들이 서로 장기간에 걸쳐 고립화되면서 다른 민족적인 문화를 지니게 된 것과, 초 거대제국의 지배하게 있던 각 유인 행성과 소수민족들이 하나씩 자연스럽게 독립하게 되면서 어느덧 암흑의 시기가 도래하게 되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마족과 신족에 대한 제국의 고립정책도 제국의 몰락에 한 몫 했을 것이라는 설이 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제국이 통치력을 차츰 상실하면서 혼란이 벌어지게 된 것은 어지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혼란은 3명의 위대한 영웅들에 의해 차츰 진정되기 시작했다.
에이센의 경우, 그 성립되었던 때를 출신을 알 수가 없었던 그류네왈드 대공이 당시 극심한 혼란에 빠져있던 세계를 통합하기 위해 나타났을 때를 시작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전략가였기 때문에 수많은 소규모의 국가들을 통폐합해 나갔고, 이러는 도중 적국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류네왈드 대공의 뒤를 이어 안나 라스티어 펜 류픽크라고 하는 인물이 그의 뒤를 이어 에이센을 건국하게 된 것이다.
라스티어는 에이센을 건국하면서 초반 국가의 명칭을 빛나는 언덕이라는 뜻의 샤이닝 힐로 정했었다. 그리고 왕성하게 국가를 이룩해 나가 인간 세계에서 한 축을 이루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마족들을 통폐합한 다곤왕이 건국한 다곤제국, 신족들을 통일해서 건국된 신족왕 컬텍스의 아이크제국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소 세력들을 모두 자신들의 세력권 안으로 통폐합 시켰고, 결국 우주는 크게 3개의 거대 제국으로 구분되어 졌다.
결국 이들은 초거대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많은 행성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 나가기 시작했고, 초거대제국은 결국 이들 3개의 국가의 손에 멸망당하게 된 것이다. 거대한 제국의 멸망이라는 혼란의 와중에 제국의 황녀중 한 사람이 잔당들을 이끌고 도주했고, 이들은 저 멀리 우주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인간족이 중심이 된 샤이닝 힐은 라스티어 황제가 재위했던 기간동안 급격히 성장을 거듭 했고, 다곤제국과 아이크제국 또한 마찬가지로 대단히 거대한 제국으로 팽창되었다.
그런데 이들 세 국가를 이룩하게 된 황제가 된 사람들은 특이하게도 공통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들 모두 보통 인간보다 강인한 생명력과 너무나도 오랬동안 이어지는 수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의 초거대 제국의 황실의 혈통을 이은 자들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보통 이 혈통은 황족과 고귀한 귀족들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경우의 성장 장애와 같은 것이었다. 이들은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런 이유에서 에이센의 황제는 수백년을 살아와도 가장 활력이 넘치는 모습 그때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런 귀족들의 고귀한 혈통은 과거 초거대 제국의 황실에서만 이어져 나왔다고 했다. 과학 문명이 최고로 발달하고 수많은 이질적인 문화가 합쳐지면서 이들의 정점에 서게 된 초제국의 황제는 자신이 영생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수많은 실험을 반복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었다. 유전자 공학과 생명체 조작으로 새로이 탄샌된 종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과는 다른 높은 생명력을 지닌 발달된 사람이 탄생되었다. 이런 자들의 유전자를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 신족들이라고 하기도 했다.
어쨌든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은 각 국가에서 고귀한 자들이 되었는데, 현재는 그 수가 매우 적어졌다. 인간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 것도 있었고 오랜 정복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귀족들이 죽음을 맞게 된 이유도 그들의 수가 적어지게 되는데 한 몫을 했다. 특히 마족인들에 대한 에이센인들이 저지른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몰살시키다 싶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벌어진 처형과, 아이크를 정복했을 때 리하르트 황제가 행한 신족의 왕족과 귀족들에 대한 대대적인 처형이 그들의 씨가 거의 말라 버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현재 이런 혈통이 유지되는 곳은 에이센의 펜 류픽크 황가의 직계자손 이외에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류픽크 황가는 에이센에 오랬동안 지배권을 행사해 왔는데, 그들은 지극히 절대적인 전제권으로 국가를 통치해 왔다. 하지만 황제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이런 상황에서도 공화제가 싹트게 되었다. 초대 황제 안나 라스티어의 강권통치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민심이 피폐해져 갔는데, 이를 보다 못한 당시 황태자였던 윌리엄 그레이트가 어머니인 라스티어에게 공화제를 실시할 것을 건의했고, 그녀가 이것을 받아 들여 공화제가 처음으로 실시되게 되었다.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라스티어 황제는 당시 민회를 구성해 국가의 중요 위원회를 결성했고, 이 위원회 별로 국가의 내정을 나누어 분야별로 책임지도록 했다.
그렇지만 공화제에 무지했던 라스티어에 의해서 이들이 황정을 폐지하려 든다는 오해로 민회의원들이 전부 우주 공간에 산채로 내던져진 경우도 있었고, 의회가 수십년간 폐지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라스티어황제가 다곤제국을 멸망시키고 황위를 윌리엄에게 물려주고 떠나간 이후, 윌리엄은 에이센의 기초를 단단히 하기 위해 전제권을 강화하는 대신 오히려 공화제를 강력히 시행했다.
이때 국호를 에이센으로 개칭하면서 당시 신족들의 종교였던 지고신교를 받아들인 것도 윌리엄이었다. 그는 많은 개혁을 단행했는데, 이는 그의 황후였던 카츄아 파웰에 의해서 성공을 거둔 것이 많았고 많은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황후 카츄아 파웰은 지고신교의 최고위 사제로서 에이센에서 가장 널리 지고신교를 보급하는데 앞장섰던 인물로, 그녀는 황후로 있는 동안 수많은 봉사활동과 난민 구제활동을 통해, 민중들에게 고립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에이센 황실을 국민에게 보다 가까이 이르게 만들고, 폐혜가 많았던 많은 특권 귀족들을 없애고 황제의 전제적인 지배권을 보다 확고히 하게 했던 인물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이센에서는 황제와 일부의 황족들만 남아 있게 되었고, 귀족이 없이 황족 밑에 곧바로 평민으로 이루어진 사회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카츄아 파웰은 윌리엄 황제와의 사이에서 4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세 아이는 쌍둥이였다. 첫째는 공주인 보넬리아, 두 번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지고신교 최고 사제가 된 시스티, 셋째가 에이센 3대 황제가 된 아시우트였다. 그리고 10년 뒤에 태어난 넷째가 4대 황제가 된 볼프 리하르트였다.
윌리엄 황제의 개혁은 뜻밖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황후 카츄아 파웰이 갑작스럽게 피살되면서부터 였다. 이의 배후로 선대 황제로부터 내려온 귀족가문들이 강하게 개입되었다고 의심되었고 특히 황제의 친우였던 레딘 레하르트가 그 배후로 지목되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시 에이센을 양분하는 대규모의 내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윌리엄 황제는 반란을 진압하고 난 이후로 더 이상 황제로서 자신감을 잃었고, 결국 황위를 아시우트에게 물려주고 떠나 버렸다. 아시우트는 이 당시 위치가 매우 불안했는데 이 때문에 공화제를 폐지하고 국호를 잔스발로 바꾸는 등의 개혁을 단행했었다.
그렇지만 이 당시 수많은 공화주의자들은 이런 아시우트 황제의 조치에 크게 반발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아시우트 황제는 자신의 황권에 도전할 사람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곤 했는고, 이런 아시우트의 조치에 실망한 장녀 보넬리아는 어딘론가 떠나 버렸다. 그녀는 그 후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초거대제국의 황실이 그대로 이어졌다고 하는 바르디아제국의 황제 이슈탈에게 시집가 버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둘째인 시스티는 정치에 일절 관심을 두지 않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 지고신교의 최고 사제로서의 길을 가 버렸다. 막내 볼프 리하르트는 이 당시 서민이 되어 10년 넘게 초야에 파묻혀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전제권을 행사하면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던 시기에 이타르를 중심으로 한 과격 공화주의자들이 리하르트를 부추겨 공화제의 시행을 약속받는 조건으로 내전을 일으켰고 결국 아시우트 황제를 죽이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시스티는 비정하고 권력욕에 가득찬 동생을 저주하며 이후 황궁에서 완전히 떠나 버렸고, 후에 리하르트가 아이크를 멸망시키고 두번째 황후인 시린에게서 첫 번째 딸을 얻었을 때에야 겨우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제 4대 황제에 오르게 된 볼프 리하르트는 내정 부문을 전적으로 공화제로 구성해서 민회를 재구성하게 하고 5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직접, 보통, 비밀,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전국적인 총선거도 치르게 하는 등 공화제의 기틀을 잡아갔다.
이로서 현재의 에이센을 통치하는 제도가 완전하게 성립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완전히 황실을 폐지해 버리려던 극좌 공화주의자였던 건국 공신인 이타르등과 다시 내전이 벌어졌고, 황제는 공화주의자들에게 크게 밀렸는데 이런 와중에 첫째 아들인 지그프리드를 공화주의자들위 손에 잃게 되었다.
이런 충격 때문인지 리하르트 황제는 내전 진압 후 지극히 측근정치를 행했는데, 이때 권력의 중심에 등장하는 9명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황제 그 자신이 직접 키워낸 애첩들로서 9인 정치지도체제를 성립하게 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렇지만 공화주의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민정에 개입하지 않는 식으로 이들 9인으로 하여금 표면적으로는 군부를 확실히 장악케 하고 황실을 현재의 위치처럼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가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리하르트 황제는 수많은 기행으로도 유명했는데, 괴팍하다 싶을 정도로 처녀를 좋아해서 정복 전쟁을 수행할 때마다 수많은 처녀들을 황궁으로 잡아와 매일밤 이들에게 파묻혀 지내기를 좋아했다. 더욱이 서민들의 딸들을 끌고와 망쳐놓는 일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에 엄청난 원성을 샀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다. 종국에는 특별히 선발해 뽑은 매우 아름다운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강한 단련을 시켜 이들만으로 자신의 친위군까지 만들 정도였다. 이러한 기행을 일삼으면서도 그는 표면적으로는 내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러가지 특권적인 방법을 동원해 황실의 재산을 급격하게 늘려, 에이센에서의 모든 경제권과 금융권을 황실에서 틀어쥐게 만들었고, 민회 운영의 상당 부분을 황실에서 내려주는 하사금으로 충당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런 리하르트 황제는 착실하게 국력을 축적해 정복전쟁도 활발하게 진행했는데, 특히 그는 재위 말년에 벼르던 신족들의 국가인 아이크를 멸망시켜 버렸다.
그는 통합후에 벌어진 전국에 걸친 신족들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이때 앞장섰던 인물 중 하나가 쿠란과 기네스 엘드린 대원수라고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황제의 애첩이었고 심복들이었으며, 군 최고 지휘관들이었다. 이 정복전쟁 당시에 살해된 신족인들만 해도 에이센측의 발표만 1,750억명 이상이었다. 비공식적으로는 3,000억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숫자는 밝혀 지지 않았다.
이에 앞장섰던 쿠란은 황제가 어릴적 키워낸 특히 총애하던 애첩이었고, 기네스 엘드린은 마족인 출신으로 다곤 황가의 핏줄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로 오랬동안 삶을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선황제 윌리엄의 후첩이었지만 리하르트는 그녀를 당당히 자신의 애첩으로 삼았고, 그녀로 하여금 오히려 군부를 통솔케 했던 것이다. 에이센 역사상 현직에서 대원수의 지위에 오른 것은 기네스 엘드린뿐이었고 에이센 전군 총사령관이었던 사람도 기네스 한 사람 뿐이었다.
이 두 사람은 특히 앞장서서 신족들 중에서도 고귀한 혈통을 지닌 이들을 살해했고, 의심이 가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처형했다.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죽였지만 두 사람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리하르트황제는 이들 이외에도 포로로 잡혔던 신족 장군 시린을 황태후로 삼았는데 이것은 그가 빼어난 미인이었던 시린을 수차례 겁탈해 버렸는데, 그만 그녀가 임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아마도 첫번째 부인 이후로 최초로 아이를 임신시킨 여성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데 많은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었다. 어쨌든 강제로 결혼하게 되었던 시린은 이후 3명의 공주와 5명의 왕자를 낳게 되었다.
리하르트 황제는 이후에도 6명의 후궁을 새로이 들였는데 이들을 통해서 모두 24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다른 수많은 여자들에게서는 단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해서 14명의 공주와 10명의 왕자를 두게 된 그는 어느날 자신의 황궁에서 돌연 물러나게 되었는데, 이 이유에 대해서는 선대왕과 비슷하고 할 수가 있었다. 너무 오랬동안 황위에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그 자리에 미련을 갖지 않았고 물러나 버렸던 것이다. 물러서면서 그는 황궁에서 자신의 친위군들과 애첩들까지 모조리 데리고 퇴위했고 선대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머나먼 우주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이러는 와중에서도 공화제는 꾸준히 완전 전제주의 국가였던 아이크제국에서 민회를 구성하도록 했고 차츰 공화제를 전 우주에 뿌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제 5대 황제 알프레드는 당시 에이센 최고의 미녀였다고 하는 엘 페린을 황태자 시절 황제의 중매로 아내로 맞이했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지그프리드라고 하는 왕자를 낳았지만 알프레드 황제는 즉위 1년도 못되어 갑작스럽게 독살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에이센에서는 지극히 혼란스러운 시기가 이어졌는데 이때 오히려 공화제가 보다 확고히 자리 잡혔던 시기이기도 했다.
전무후무했던 황제 암살사건에 대해서 엄격한 조사가 이루어 졌고, 배후로 리하르트 황제의 장남이면서도 한때 황태자 위에 오를 뻔했던,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제 1황자인 레나르트가 지목되었으며 민회와 군부에서 그를 황제 시해범으로 몰아 자살케 했다. 황위 계승권 2위였던 카알은 계승을 거부했고, 3위 계승권을 지닌 구스타프가 제 6대 황제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선대 황제의 비인 엘 페린을 겁탈했다는 이유로 치명적인 도덕성의 공격을 받았고, 이를 비관하던 중 즉위 보름만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을 했다.
제 7대 황제는 황후인 시린에게서 태어난 황자들이 계승을 거부했고, 4위 계승자였던 게르트 하우츠가 실종상태였기 때문에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들이 황위를 이어 받았다. 제 7대 황제에 오른 욤 베르트는 즉위하면서 자못 선정을 폈지만 그도 또한 알프레드의 비였던 엘 페린을 능욕했다는 이유로 치명적인 도덕성에 공격을 받다가 괴로워하던 나머지 병을 얻었는데, 황위 계승권을 노렸던 제 8황자 자크라드가 그를 독살해 버렸다. 그렇지만 자크라드는 이 사실이 밝혀져 8대 황제에 오르지 못했고, 독살의 사실을 알게된 황실 친위대장 프랭크 해더스 대장이 격분해서 일으킨 쿠데타에 휘말려 죽게 되었다. 황실 친위대의 추대로 8대 황제는 제 9황자였던 막시밀리엄이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즉위 2년도 못되어 제 10황자였던 미하엘의 궁정 쿠데타로 몰락, 결국 유폐되었다가 살아남아 있던 다른 황자들과 마찬가지로 미하엘에 의해서 모조리 반역자로 몰려 처형되었던 것이다.
황위에 오른 미하엘은 당당히 선황제의 황후인 엘 페린을 자신의 첩으로 들이고 의회를 해산했다. 신하가 황실을 좌지우지해서는 안되다면서 이후 거의 10년 동안 강권으로 전제정치를 폈다. 그는 특히 5대 황제의 아들인 지그프리드를 살해하고 당시 단 하나 남아 있던 황후 시린의 황자인 게르트 하우츠를 찾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가 재위하는 10년 동안 살해된 사람이 무려 250억명에 육박할 정도로 그는 공포정치로서 에이센을 지배하려 들었다. 그는 황위에 올라 황실에 도전하던 세력을 모조리 잘라 버렸는데, 반역에 연루된 자들은 대부분이 가족들까지도 모조리 참살되었던 것이다. 이때 처형된 사람들 중에는 무고한 자들도 상당히 많았고 이 때문에 그는 수많은 원성을 사게 되었다.
이러던 시기에 오랬동안 잠적해 있던 게르트 하우츠가 다시 나타나게 되었고, 미하엘은 게르트를 죽이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는데 오히려 그를 죽이러 갔던 군대는 게르트에게 폭군을 몰아내 달라며 그에에 엎드렸고 게르트는 그것을 승낙했다.
1년여에 걸친 내전 끝에 미하엘 황제는 폐위되고 유폐되었다. 그리고 게르트는 에이센 제 10대 황제에 오르게 되었다.
그가 황위에 올라 가장 먼저 한 일은 민회를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요녀로 소문나 있던 엘 페린을 공개 처형한 일이었다. 당시 최고의 미녀였다고 하는 엘 페린이 많은 황제들의 마음을 미혹시켜 혼란을 만들었다는 것이 죄목이었고, 그녀와 함께 많은 미하엘의 측근들이 숙청되었다.
이런 내전 이후 게르트 황제 때에는 장기간의 평화가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황제는 오히려 대중앞에 모습을 들어내지 않아 정치를 관장하게 되는 것이 민회가 되었다. 민회의장이 내정을 총괄해서 책임지게 되면서 엄격하게 입헌 군주제가 시행되었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그렇지만 이런 평화도 50년이 채 못되어 끝이 나고 말았다.
저 멀리 우주 너머로 사라져 버렸던 초거대제국 황녀의 직계 황족 혈통을 이어 받은 바르디아제국이 세력을 키워 나가고 있었는데, 이들의 영토가 급격히 팽창되고 있던 에이센의 개척지와 맞닿게 되면서, 이에 위협을 느낀 바르디아가 결국에는 에이센을 갑작스럽게 침공했던 것이다.
전쟁의 초반에는 50년 동안의 평화에 나약해 있던 에이센군대가 지리멸렬 흩어졌다. 하지만 에이센은 전 거주민들을 다곤과 아이크로 철수시키면서까지 바르디아침공군을 에이센 영토내 깊숙이 끌어들여 로이드행성계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해 이들을 다시 몰아내었다. 이때 에이센이 본래의 영토를 회복할 때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바르디아 침공에 의해서 벌어진 전쟁을 7년 전쟁이라고 불렀다. 이때가 백효연을 비롯해서 게르트 하우츠 황제가 게르트 라인케라는 이름으로서 군부에서 대 활약을 펼쳤던 시기였다.
에이센은 7년 전쟁후 곧바로 다시 2번에 걸쳐서 바르디아에 직접적인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고, 몇 번의 대규모 전쟁 끝에 바르디아를 멸망시키는데까지 모두 13년 가까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단기간에 거대 제국이 멸망했던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고, 그간 축적되어온 에이센의 역량을 한꺼번에 쏟아 부은 결과였던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도 다시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국내가 어느정도 안정되려 할 때쯤 제 4대 황제 리하르트에게 멸망되었던 신족들의 국가인 아이크의 재독립을 표방하면서 파츠 베이스의 성립을 선언해 버렸고 에이센은 다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민회는 황실보다 오히려 에이센의 민중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행성계 최고 대표 위원을 수도로 파견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에이센인이라는 의식을 뚜렷이 갖게 되었고 공화제를 통해서 황제에게 자신들의 뜻을 대변할 수가 있도록 강하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몇번씩이나 역대 황제들이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완전 전제 군주제를 실시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것은 전제정치와 마찬가지로 이런 공화제에 길들여져 있던 에이센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파츠 베이스가 성립될 때 무엇보다도 지대한 공헌을 한 이는 백효연 원수라고 할 수가 있었다. 에이센 역사상 그런 정도의 능력을 지녔던 인물은 전무후무할 정도라고 평가되고 있었다. 바르디아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전공을 세우고 전투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하는 상승의 장군이었으며, 종전후에도 통수본부 총장과 아이크 총독까지 역임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마지막에 파츠 베이스의 성립에 가담하면서 에이센의 최대의 반역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녀는 언제나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반드시 승리를 했지만, 결국에는 황제의 심복중의 심복인 이리나스 피틀레아 대장과의 전쟁에서 패해 장렬히 전사했다고 했다. 최후의 전투가 된 아이크 공방전에서 팽팽하게 접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에서 백효연 원수는 자살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무모하게 움직였고, 그녀의 지휘하에 있던 함대가 이상하리 만큼 허약했던 것은 많은 억측을 낳게 했는데, 이것들 중에서 하나는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백효연 원수가 파츠 베이스에서 황제를 옹립하고 황정을 세운 내각 총리 피델 아론과 불화가 심각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이것은 억측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파츠 베이스에 백효연을 갈음한 인재도 없었고, 그 만한 능력을 지닌 장군도 에이센에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마주 싸웠던 인물들은 대부분 오랜 야전생활에서 백효연의 지휘하에서 성장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들 대부분 오랜 전쟁 경험을 가진 노련한 인물들이었지만 모조리 백효연에게 참패를 당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에이센이 3번에 걸친 대규모의 원정을 감행해 파츠 베이스의 독립을 막으려 했지만 모조리 실패했고, 결국에는 다급한 나머지 결국에는 황제가 심복중의 심복인 이리나스 피틀레아 대장에게 전권을 맡겨 당시 점령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바르디아에 있던 함대까지 집결시켜 파츠 베이스를 진압하려 했던 것이다. 이 덕분에 발바이스가 성립하게 되었을 때 바르디아에 남아 있던 군대가 없어 에이센은 거의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고, 이들 바르디아군의 역침공을 쿠르트 지겔마이어 원수를 급파해서 겨우 막아내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3국 모두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휴전 조약을 맺게 되었다. 에이센도, 파츠 베이스도, 발바이스도 장기간의 전쟁에 기진맥진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20년 넘게 에이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백효연이 말년에 파츠 베이스 성립에 참여한 것은 많은 추측을 불러왔다.
백효연 원수는 현 황제 게르트 하우츠 황제와도 오랜 친구이기도 했고, 몇번의 군부 내에서의 세력 다툼 때문에 벌어진 쿠데타에서도 살해의 위협을 받아 실각되었지만 게르트 황제는 꾸준히 신임해 주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던 시절 그녀의 난잡했던 사생활 문제 때문에 몇 번이고 군부의 윤리 위원회에 회부되어 징계되려던 것을 당시 게르트 라인케라는 이름을 사용했던 황제가 막아 주었던 것이다.
이런 그녀가 결국에 고향인 아이크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친위공작으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켜 이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군을 장악하고, 비상령을 내려 아이크의 전권을 비상대권으로 부여받아 아이크를 통치하면서 함대와 군대를 완전 장악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독립전쟁을 일으켜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그녀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돌변한 일에 대해서 많은 추측들이 나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었는데 게르트황제가 군문에 있을시 자신이 황제라는 것을 오랬 동안 밝히지 않았는데,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그녀에게는 게르트가 황제라는 사실이 오랜 친구에게 강한 배반감을 느낀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이것이 황실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커졌다는 설도 제기되어진곤 했다.
또다른 설으로는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계속하면서 백효연과 같은 유능한 장군들 밑에는 다수의 유력한 지휘관들이 모여들어 일종의 군벌을 이루었는데, 종전이 되었을 시에 지방군의 상당수를 그녀 휘하의 지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이것을 황제가 두려워해 백효연에게 은근히 쿠데타를 일으킬 수밖에 없도록 종용했다고 하는 것도 있었다. 이 설에 따르면 황제는 그녀 휘하에 있던 지휘관들에게 자신들의 상관을 치도록 했고, 결국에는 이들이 모조리 옛상관에게 대패하자 기가 죽은 이들의 위에 자신의 심복을 올려놓는 수를 썼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권 기반이 불안정 게르트에게는 백효연에게 반란을 일으키도록 종용함으로서 군부에서 그녀의 세력을 일소하고, 보다 확고하게 자신의 지배권을 가질 수가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토벌군의 총사령관이 된 이리나스 피틀레아 대장은 게르트 하우츠 황제를 따라서 소위시절부터 대장계급에 오르게 되는 근 20년간을 그때까지 그가 참여했던 모든 전쟁에 함께했던 인물로, 게르트에 대한 충성이 절대적이었고 그 능력도 매우 출중했다. 여느 장군 못지않게 경험이 많았지만 토벌군에는 오랜 야전 생활을 한 백효연 휘하였던 관록있는 지휘관들이 있었고, 그들과 자신은 출신이 다른 인물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싶어했던 게르트 황제는 이들의 기세를 모두 꺾어 놓고 군부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확립하고자 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파츠 베이스가 성립되고 토벌전이 전개되면서 많은 군부의 요직에 백효연의 옛 부하들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는 사실은 이런 추측도 거짓이라고 반박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백효연의 세력을 일소하려 했다면 게르트 황제가 이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이리나스와 같이, 백효연의 휘하에서 20년 가까이 전쟁터를 누였던 당시 네므 주류기지사령관 및 바르디아 군관구 사령관인 엘베르트 폰 아델베르크 원수와 사르메스 군관구 사령관 예핌 에세비 대장, 스트링턴 요새 사령관 요한 울브리 대장을 그대로 유임시켰다는 점에서 모든 추측이 서로 반박하고 수많은 논리로 억측만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효연 휘하에 있었던 윌리엄 윈스턴 원수와 트리스턴 노린 원수도 또한 각각 국방장관까지 지냈던 것으로 볼 때 모든 사실을 더욱 혼란스럽게만 만들고 있었다.
백효연 원수는 실로 에이센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었다. 신족으로서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면 약 150세 정도까지 살아 남았을 것이다. 그녀는 귀족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집안에서 유명인사가 나왔거나 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조금 더 뛰어났고 두뇌가 매우 우수했던 인물이었다.
아이크의 어느 지방 도시 출신이었던 백효연은 12세 때 친부를 잃고 어머니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재혼을 했고 어느 시기인가 알수는 없어도 양부가 상습적으로 백효연을 성폭행했다는 설이 있었다. 이에 가출한 그녀는 나이트 클럽에서 스트립댄서로도 일하기도 했고 룸살롱 같은 곳에서 콜걸이 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독학으로 학위를 딴 그녀는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24세 때 소위로 임관했다. 사관학교 시절 바리스타 부문에서는 특히 우수했고 전략과 전술론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았다.
임관한 후 중위가 될 때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렸는데, 이때 지방 반란을 진압하는 임무에서 당시 소위로서 임관해 있던 황제인 게르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대위가 되어 스트링턴 요새에 근무했었고 뛰어난 실력으로 테스트파일럿이 되기도 했었다. 어찌 보면 평범했을 그녀의 인생이 변한 것은 바르디아가 일으킨 7년 전쟁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 전쟁에서 꾸준하게 전공을 세웠는데, 특공작전을 감행해 적함대의 기함을 격파해 총사령관을 전사케 하는 등 최고의 공훈을 받았다. 당시 연패에 빠져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에이센에게는 둘도 없는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언제나 그녀에 대한 상관의 평가가 좋았다. 이것은 백효연이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상관들과 잠자리를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녀가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닌 미인이었기 때문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승진을 하면서 승승장구했고 당시 비슷한 과정을 밟아 나가면서 군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게르트 황제는 친구인 백효연을 절대적으로 밀어 주었던 것이다.
백효연은 이후 꾸준히 승진과 출세를 하고 권한을 넓혀 나갔다. 이런 그녀였지만 사생활에서는 지극히 난잡했다. 군의 주요 지휘관으로서 능력과 공적이 없었다면, 그리고 당시가 전시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탄핵을 받아 불명예 제대가 확정되었을 만큼 사생활은 지극히 난잡했던 것이다. 매일밤 남자를 갈아치우고 클럽에서 사귀는 남자와 간단히 섹스를 했는데,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었다. 남자도 오래 사귀지 않고 한두번 잠자리하고 다른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녀를 비하하는 사람들은 마치 창녀같다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가출 했을때와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그녀가 클럽에서 댄서로 일했다거나 매춘부로 일했다고 하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사생활은 이렇게 지독하게 난잡했던 그녀였지만 실제 일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매우 뛰어났고 실제로 엄청난 공적을 세웠다. 실제 바르디아를 점령할 때 그녀가 바르디아 전 영토의 1/3을 주력 군의 1/10도 되지 않는 예하 함대만으로 점령했던 것은, 실로 엄청난 그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생전에 2번 결혼을 했는데 첫번째 남편인 스티비 윌슨과 결혼을 했을 때 이미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에서, 여러 남자를 만나다 실수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에서 가장 경제력이 있던 윌슨과 결혼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백효연은 저축액이 무려 10억 다르크가 넘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재산가였기 때문에 이런 추측은 신빙성이 부족했다. 둘 사이에서 딸을 하나 낳았고 제 2차 원정 전쟁 때에는 이 때문에 전면에 서지 못하고 아델베르크를 총사령관으로 기용했었다. 후에 그녀는 후속대를 이끌고 출전했다.
두번째 남자는 아이크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만난 로이드 디제라는 남자였는데, 그녀는 이미 윌슨과 결혼한 상태였는데 디제와 만나 곧바로 동거에 들어갔다.
신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시 그녀는 로이드 디제의 아이를 가져 임신 5개월 째였고 임신한 몸 때문에 직접 전쟁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토리만 벤플리트 중장을 앞세워 에이센 원정군을 참패시켰다.
결국 그녀는 아이크에서 전사했고 역사의 흐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 이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리고 종전이 되고 십수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에이센과 파츠 베이스, 그리고 현재는 발바이스가 된 바르디아는 끊임없이 서로 투쟁하고 있었고, 그 가운에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병사들이 있었다.
…복구합니다…^_^;;;
에이센과 파츠 베이스와의 프로스베인을 둘러싼 전투는 더이상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양쪽 모두 무력 충돌로 어지간한 피해가 난 것도 있겠지만, 서로간에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3월 14일 재생액으로 옆구리를 처바르고 거즈로 감싼 디네스는 침대에서 쫓겨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움직이는데 거의 지장이 되지 않았고, 그동안 물같은 영양식품만 먹게 되었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포 재생기술이 매우 발달해 있어서 앞으로 하루 정도만 있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타고 있는 전함 슈레델호의 인사과에서는 소대가 전멸한 디네스는 보충되어진 신병들과 함께 제 2공전대 3소대로 편입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