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272
“면목없습니다. 각하······그리고 감사합니다. 기꺼이 처벌을 받겠습니다.”
에이린이 순순하게 크라우프의 말을 알아 듣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만 나가 보라고 말했다. 그녀를 내보낸 크라우프는 록시나 XI호의 함장 워크홀 중령을 불러 사고를 일으킨 에이린을 독방에 15일간 감금할 것을 지시했다.
크라우프는 그녀가 바르디아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맡긴 다이레아에게 이 점을 주지시켰다. 다이레아도 에이린의 그런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이점을 충분히 인지한 후 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다이레아는 그 중사가 다른 곳에서 전입되어 온 녀석임을 십분 활용했다. 파일럿으로 중사나 된 남자들 중에서 거친 성격을 가지지 않은 녀석이 없다는 가정하에 그 중사에 대해 조사했던 것이다. 다이레아는 그와 관계된 사람들을 조사해서 그 중사가 평소 거친 성격에 사고를 잘 일으키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을 기초로 해 사건을 조사하여 완전히 결론까지 내 버렸다. 그녀가 조작한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에이린은 평소 거친 언행을 일삼는 그 중사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고 언젠가 버릇을 고쳐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여러 장교들과 여성 파일럿들이 많이 있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거릴 것 없이 상스러운 말을 하던 그 중사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서 후려친 것이 조금 지나쳤다는 것이었다.
다이레아는 슬쩍 정보를 왜곡해 그 중사를 맞아도 당연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고 에이린은 지나치게 상대를 폭행한 것으로 만들어 서로 똑같은 잘못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는 단순한 앙심에 의한 폭행 사건으로 만들어 이것을 단순 상호 폭행으로 만들어 버렸다.
6일 08시 오전의 정례 회의에서 다이레아는 크라우프에게 이 사건에 대한 보고를 올렸다. 보고서를 받은 크라우프는 그것을 읽어 본 후 쉐프턴 중령에게 신병들을 비롯해서 타함대에서 들어온 전입병들의 질서와 군기 교육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특히 패전한 함대 출신들은 기강을 어지럽히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들에 대해서 신경써 주기를 바랍니다.”
크라우프의 지시에 쉐프턴 중령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크라우프는 다른 업무 보고를 받았고 늘상 했던 말대로 전투가 벌어지기 전 장교와 병사들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팽배해 있고 이것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을 주의를 주었고, 다시 한번 함대 내의 기강을 확립할 것을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참모들 모두 입을 모아 대답하자 만족한 미소를 짓던 크라우프는 후 오전 회의를 끝냈다.
크라우프는 잠시 다이레아에게 남아 있으라는 말을 했다. 모두 회의실 밖으로 나간 뒤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다이레아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제가 할일입니다. 더욱이 에이린에 대해서 잘 알고 있구요.”
“바르디아인이라······어제 시에나도 같은 말을 하더군······”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크라우프의 대답에 다이레아는 슬쩍 웃음을 흘렸다.
“잘하신 겁니다. 각하······이번에 에이린도 잘해 준거구요.”
다이레아의 말에 크라우프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이레아는 정색을 하면서
“오히려 이것으로 다른 곳에서 온 전입병들과 신병들, 그리고 기존에 있던 고참병들 사이의 골을 씻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같은 에이센군인들인데 말이야······”
크라우프는 다이레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모두 같이 싸워야 하지만······막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서로 조금만 틀리더라도 반목하고 자신들의 틈에 끼워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두번 겪어 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이레아는 쉐프턴 중령과 넥스 소령이 정신 교육등을 통해서 부대의 기강을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크라우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금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다소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 겠지. 다이레아······그나저나 같은 에이센인이고 같은 군복을 걸친 군인들이지만 서로 같은 함대 출신이 아니거나 오래 같이 있지 않았다고 서로 이렇게 불신을 하니 말이야······같은 에이센인들 끼리도 이런진데 파츠 베이스인, 그리고 바르디아인들의 불신은 더 크겠지?”
약간 나직히 한숨을 내쉬고 있는 크라우프의 모습에 다이레아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대답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5월 8일 공격 항공 모함 바우터 크라이스 호의 바리스타 대대 대대장 엘레비아 아네스 린제이 타르고 상위의 기분은 그리 좋은편이 아니었다. 얼마전 상부의 지시에 따라서 인터뷰를 했지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에이센이 약 100만 척의 전투 함대를 동원해서 네페르에서부터 반격에 나섰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고, 파츠 베이스 최고의 에이스라는 인터뷰에 응한 것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엘레비아는 격납고에 내려와 작업복을 입고 자신의 바리스타 세우터를 정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특히 신경을 쓰는 것은 조준장치와 메인 모니터에 대한 조정이었다. 모니터의 떨림 현상을 찾아 정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 격납고가 시끄러울 정도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뭐지?’
엘레비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콕핏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장교복을 걸친 두 명의 젊은 장교가 바리스타들을 바라보면서 탄성을 지르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중이었다. 엘레비아는 아마도 그들이 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영웅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에이센이 100만 척의 전투 함대를 출격시켜 파츠 베이스를 전면적으로 침공해 들어오는 위급한 상황들이니 바리스타를 조종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릴 것 없이 전선으로 투입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두 녀석 모두 남자들로 모두 짧게 자른 금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멀리서 보니 마치 형제처럼 보였다.
‘불쌍한 놈들······’
그 젊은 장교들 중 한 사람이 몸을 위로 날리면서 다른 곳에 격납되어 있는 세우터의 콕핏에 올라섰다. 그런 뒤 허락도 받지 않고 콕핏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격납고가 울리도록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엘레비아는 씁쓸한 기분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해 있든 없든 신경스지 않은 채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그 두 녀석 쪽으로 다가갔다. 한 녀석은 다른 바리스타를 보러갔고 남아 있던 한 녀석은 허락받지도 않고 콕핏에 들어 앉아 조종간을 움직여 보고 패널을 움직여 보고 있었다.
엘레비아는 콕핏에 기대 서서 조종간을 움직여 보고 있는 그 젊은 소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씽긋 웃으면서 그 소위를 바라보아도 소위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신기한 듯 세우터의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엘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최신예 군사 장비였기 때문에 갓 사관학교를 졸업한 영웅분들에게는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한 엘레비아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계속 개량되고 있으니 엘윈에 비해 승차감이 다소 좋아진 것도 세우터의 특징이기도 했다.
“자네가 정비하나?”
젊은 소위는 엘레비아가 정비사 복장을 하고 있자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아볼 생각을 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반말투로 물었다.
“소위님은 세우터에 처음 타보시나 봅니다.”
엘레비아는 우습다 못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소위에게 비아냥 섞어 말을 건넸다. 그렇지만 소위는 그녀의 말에 섞인 비웃음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 이것을 타게 된다 이말이야!”
그 소위는 자신이 세우터에 타게 되는 것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엘레비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조금 불쌍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 녀석 얼마나 버틸까······’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위님 적기 4기가 자신에게 달려온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적기 1기가 내 눈앞에서 도망친다면 그것은 다른 적기 4기나 7기가 나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거죠. 그럼 죽게 될 뿐이죠.”
씽긋 웃으면서 조언을 해주는 엘레비아의 모습에 콕핏에 앉아 있던 소위는 가만히 엘레비아를 바라보았다. 엘레비아는 무표정한 그늬 얼굴에서 꽤 기분이 상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만이 최고라고 여기며 남에게 조언을 듣기 싫어 하는 고집불통의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엘레비아는 다시 한번 비아냥 거리기로 결정했다.
“소위님은 조언 들으시는게 싫으신가 보죠?”
엘레비아가 약간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으니 소위는 숨을 조금 들이마시더니 씁쓸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아니 정비사에게 조언 듣는게 처음이라서······”
엘레비아가 입고 있는 정비복에는 계급을 구분할 수 있는 계급장이 없었기 때문에 소위는 엘레비아를 정비반 하사관 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언을 할때 잘 들으셔야죠. 혼자서 잘났다고 날뛰면 죽을 뿐입니다.”
그녀는 상대가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하자 오히려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그런가? 하지만 공중전은 백병전 위주로 되지 않나? 하기야 정비병이 알턱이 없지······”
그 소위의 대답에 엘레비아는 히죽 웃으면서 정비사복을 벗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엘레비아의 행동에 소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데 정비사복을 벗은 후 드러난 것은 상위 계급장이 역력한 군복 상의였다.
“아? 상위님!”
상대가 자신 보다 3단계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 소위의 얼굴을 하얗게 질려 버렸다.
“바리스타에서 나와라!”
엘레비아는 그 소위 자신의 기체도 아닌데 함부로 콕핏에 들어가 있는 그를 밖으로 불러 냈다. 소위가 황급히 나오자 그녀는 히죽 웃으면서 다른 기체에 들어가 있다가 깜짝 놀라 동기생 옆으로 달려오는 또다른 소위를 힐끗 바라보았다. 둘이 나란히 서자 엘레비아는 그둘 앞에 쓴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내가 네놈들의 대대장인 린제이 타르고 상위다. 자네들이 이번에 보충되어 오는 신임 소대장들인가?”
“네! 그렇습니다.”
둘은 거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대답했다.
“관등 성명이 무엇인가?”
엘레비아의 물음에 한쪽은 가브리엘 마리우스 소위라고 대답했고 방금 엘레비아와 대화를 나눈 쪽은 조엘 바슈틴 소위라고 대답했다.
“마침 장교들이 모자란 중이니 자네들을 받겠네······자네들의 기체는 아직 배정되지 않았으니 함부로 남의 기체에 올라가지 않도록 하게!”
그녀는 그 둘에게 주의를 준 뒤 이들과 함께 캣워크로 올라갔다.
공격 항공 모함의 파일럿 휴게실에서 칼루야 소좌와 함께 앉아 무엇인가 즐거운 듯 떠들고 있던 루밀은 격납고 쪽에서부터 엘레비아가 2명의 젊은 소위들과 함께 내리자 반갑게 손을 흔들면서 엘레비아를 불렀다.
“어이! 엘레비아! 이 못생긴 년아! 어라? 제게~ 방송 좀 탔다고 들은체도 안하냐?”
루밀이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엘레비아는 부끄럽기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를 조용하게 하기 위해서는 루밀과 칼루야 소좌쪽으로 다가가야만 했다.
“뭐냐? 이 되다만 녀석들은?”
엘레비아의 뒤를 따라온 마리우스 소위와 바슈틴 소위를 보고 루밀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갑작스러운 말에 그 둘의 얼굴이 저절로 붉어졌다.
“신임 소대장······보충이 잘 되지 않더니만 이제 드디어 보내 준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그녀는 칼루야 소좌에게 감사의 말을 했다. 그러자 루밀은 불퉁한 표정으로 엘레비아에게 칼루야 소좌와 너무 가까워지지 말라고 퉁을 놓았다.
“그래 알았어 이년아! 실례하겠습니다.”
엘레비아가 슬쩍 인사를 하고 칼루야 상위 옆을 지나가고 그 두 소대장이 엘레비아의 뒤를 따라 가려 하니 루밀이 다리를 꼬고 앉으면서 팔장을 낀채로 그 두 소위를 불렀다.
“잠깐 기다려·····이 되다만 녀석들아!”
아까부터 자신들에게 비아냥 거리는 루밀이 거슬린 바슈틴 소위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루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루밀은 그가 입을 열기 전에 그가 하려던 대사를 내뱉어 버렸다.
“상위님 방금 하신 말씀은 영광스러운 파츠 베이스 군인을 상호 모욕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비난받아야 할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상위님께서는 방금의 발언을 철회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려고 했지?”
엘레비아는 그만 두라고 말을 하려 했는데 뜻밖에도 칼루야 소좌가 눈짓으로 엘레비아를 막았다. 그녀가 순간 멈칫 하자 루밀은 너희들의 생각 따위는 이미 다 알고 있다면서 깔보는 듯한 눈으로 바슈틴 소위를 바라보았다.
“네놈의 조종은 반사람 몫이지만 네놈에게는 7명의 목숨이 달려 있다. 너 혼자 잘났다 생각을 하면 너 뿐만이 아니라 7명 모두 죽게 된다.”
“······알고 있습니다.”
바슈틴 소위는 겨우 목소리를 자제해서 루밀의 말을 받았다. 그 모습을 다 알고 ㅣ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루밀을 히죽 웃으면서
“알면 됐다. 가봐! 전장에서는 네놈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명심하도록!”
“······알겠습니다.”
두 소위가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고 루밀은 엘레비아가 자신을 바로보자 씽긋 웃음을 지어 주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될것이라 생각한 엘레비아는 굳이 따져 묻는 대신에 그들 둘을 데리고 자신의 대대가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밀은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칼루야 소좌를 바라보았다.
“저 중에서 바슈틴이라는 놈이 누구야?”
“방금 너 한테 대들려던 녀석······”
“얼핏 본 기록이 맞다면 사관학교의 문제아라던 녀석이 맞지? 게다가 한 놈은 겁쟁이라더군······엘레비아도 불쌍하다. 어쩌다 저런 놈들을 맡게 된거야? ”
“마침 소대장 자리가 두 자리가 비어서······그리고 이번에 에이센 놈들이 대대적으로 공세를 취하고 있잖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 때 아니겠어?”
칼루야의 대답에 루밀은 볼을 잔뜩 부풀리면서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칼루야에게 부탁을 했다.
“저 두 놈들 중 한 놈 나한테 줄래? 저런 놈들이 둘이나 한곳에 있으면 사고치지 십상이거든······기억나? 전에 나 수송 함대 있을 때 말이야······”
“그때 네가 에이센군 전함 3척을 단독으로 격침 시켰었지?”
“응······후방 수송함대로 빠진 놈들 대부분이 저런 놈들 투성이였는데······막상 전투에 투입되면 전혀 도움이 안되거든······특히 바슈틴 같은 녀석들은 자기 잘났다는 생각과 쓸데 없는 경쟁 의식에 사로잡혀 명령 위반 투성이에 위험 천만한 곡예 비행을 하기 일쑤거든······”
루밀의 투덜거림에 칼루야 소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한 사람도 부족하니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면서 루밀을 다독였다.
“맞다······지금은 저런 놈이 죽더라도 에이센 놈 하나라도 더 죽여 주기를 바래야겠지······”
쓸쓸해 하는 그녀의 말에 칼루야 소좌는 손을 뻗어 루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녀가 씽긋 웃으면서 칼루야 소좌의 손을 부여 잡고 자신의 왼쪽 빰에 가져가 댔다. 칼루야의 손은 거칠었지만 루밀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눈을 감고 한참 동안이나 볼에 전해져 오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5월 10일 에이센 함대는 파츠 베이스의 최전선 사령부가 있던 유케울 행성계의 점령을 공식 발표 했다. 이 발표는 유케울의 중심도시 데르의 우주항에서 전격으로 이루어 졌다.
이것은 파츠 베이스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이룩해낸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유케울 행성계의 주성 쉬프로 진격해 들어온 뱅상 바리에 대장은 허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 초반 파츠 베이스 함대가 무려 40만 척이나 주둔하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모두 썰물이 빠지듯 후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곳 유케울의 점령이 전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되어 졌었기 때문에 파츠 베이스의 극렬한 저항을 예상했고 뱅상 바리에 대장은 휘하 함대 대부분을 잃을 각오까지 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손쉬운 승리에 유케울 행성으로 집결하고 있던 에이센 함대 장병들은 오히려 허탈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적들이 일찍 후퇴를 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약 40만 척의 전투 함대가 결사 항전을 계속했다면 에이센군의 손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5월 10일 유케울 점령이 공식 발표 되었다고는 해도 유케울 행성이 완전하게 에이센의 수중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식적으로 쉬프는 에이센의 100만 척이 넘는 전투 함대의 모습이 무저항으로 투항하기는 했지만 쉬프의 일부 지역에서는 에이센군에 저항해서 무장 투쟁을 선언하는 소규모 집단들도 있었다.
행성 점령의 임무는 하만 바이파 군관구의 소관이었기 때문에 뱅상 바리에 대장을 비롯한 에이센군 수뇌부는 행성의 완전한 점령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요한 시설들은 함대 휘하의 강습해병대와 공간기갑병대를 파견해서 접수했다. 이런 것들도 12시간을 넘기지 않고 신속하게 이루어 졌다.
크라우프는 11일 11시 40분 시에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 공용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시에나가 조금 추워하는 것 같자 담요를 끌어와 몸을 덮어 주었다. 시에나가 씽긋 웃으면서 크라우프의 가슴에 키스를 해 주며 연체동물처럼 모믈 밀착시켜 왔고, 둘은 같이 공용 방송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용 방송에서는 유케울의 주성 쉬프를 점령한 사실을 계속해서 보도해 주고 있었다. 쉬프가 에이센에 항복함으로서 무혈 입성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함과 동시에 함대 소속의 공간기갑병과 강습해병대원들이 바리스타와 경장비를 가지고 시내를 순찰하고 주요 시설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는 장면들을 연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기사의 끝부분에는 일부 지역에서 에이센군을 향해서 총격을 가하거나 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짤막하게 덧붙이고 있었다.
“의외로 쉽네······”
시에나는 크라우프의 가슴에 머리를 올려 놓으면서 시시하다는 투로 말했다.
“전쟁이 좀 과격했으면 좋겠어?”
크라우프는 다소 어이없다는 어투로 시에나를 바라보았다.
“뭐······조금은 오히려 파츠 베이스군이 저렇게 후퇴를 한 것이 더 걱정되기는 해도······”
시에나의 걱정스러운 말에 크라우프는 고개를 조금 뒤로 젖히면서
“아마도 우리는 가장 어려울 때 투입될 것 같아······”
“가장 어려울 때?”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시에나의 눈을 바라보는 크라우프는 엷게 웃음을 띄고 있었다.
“아마도 그럴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단정을 하듯 대답을 하는 크라우프의 말에 시에나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그녀는 가볍게 하품을 하면서 크라우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코프 지켜줄께······”
시에나는 슬쩍 고개를 들면서 크라우프의 가슴에 다가 키스를 해 주었다.
“믿어 있어 시에나. 언제나 네가 곁에 있으니까 나는 안심할 수 있어.”
크라우프의 대답을 듣고 난 시에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5월 11일 09시 40분 에이센의 수도인 베르베라는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디나는 가볍게 하품을 하면서 11시 강의에 들어가기 위해서 고속 전철에 탑승해 있었다. 고속 전철은 베르베라의 지하 도시 각 층을 순환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지만 이미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이시간 쯤에는 회사에 들어가 있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디나가 탄 고속 전철 안에는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노인 몇 사람과 함께 자신의 마주보는 앞자리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여성에서 시선이 멎었다. 캐주얼한 차림에 이 시간에 앉아 고속 전철에 앉아 책을 본다면 아마도 디나 자신과 같은 대학생 정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몇 번 바라보면서 그녀는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디나의 시선이 멎게 된 것은 평범한 모습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남들의 시선을 잡아 끌고 있는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곱게 기른 검은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었고 슬쩍 다리를 포개 얹고 있는 모습하며 반소매 티셔츠를 통해서 드러나 있는 하얀 팔은 사진과 영상을 전공하는 디나에게는 멋진 모델이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슬쩍 가지고 있던 사진기를 꺼내서 지하철에서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의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두어 번 셔터를 눌렀을 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여성의 시선이 조금 위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사진기를 들고 있는 디나를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작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이 프리랜서나 커리어 우먼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렇지만 화장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디나는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여성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모습도 마음에 들어 다시 사진기를 꺼냈을 때 그 여성은 책을 내려 놓으면서 디나를 바라보면서 허락없이 찍지 말라고 말했다.
“아, 네에!”
디나는 씽긋 웃으면서 그 여성이 더 이상 찍지 말라고 말하자 사진기를 내려 놓았다.
“고맙군요.”
상대의 입가가 좌우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있던 디나는 사진기를 집어 넣으면서 대학생 이시냐고 물었다.
“예······그쪽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