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351
쓴웃음을 짓는 레나였다. 어차피 죽게 된다면 죽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서로 훈련 중에 얼굴을 부딪쳤을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이었다.
레나가 자리에 앉자 서로 얼굴만 보고 있던 사람들 중에서 금발의 젊은 남자가 자신 쪽으로 다가와 옆에 앉았다.
“안녕? 나는 게로라고 해······만나서 반갑다.”
“아?”
뜻밖에도 먼저 말을 건네는 남자는 매우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20세 정도 되어 보였다. 어떻게 검투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자신과 같은 노예 신분일 것이다.
“나는 레나라고 해······반가워!”
그녀는 억지로 빙긋 웃어 주었다.
“여기에 있은 지 얼마나 되었어?”
게로의 말에 레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침울한 표정을 짓자 게로는 짧게 숨을 들어 마시면서 뭐라고 말을 하려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환호성이 들려왔고 호페가 안으로 들어오면서 검투사들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라고 했다.
그들 모두에게 족쇄가 채워지고 있었고 병사들에 이끌려서 밖으로 나왔다. 조명이 환하게 비추어 지고 있는 가운데 검투사 경기장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변에는 수많은 관중들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고, 레나를 비롯한 검투사들은 모두 중앙으로 걸어가 전용석에 자리하고 있던 영주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면서 손을 번쩍 들어 환호성을 유도했다.
처음으로 정식 검투사 경기를 하게 되는 레나였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각자 손에 맞는 무기들을 골라잡았다. 레나는 손에 꼭 맞는 검을 집어 들었다.
남자 검투사 2명이 먼저 검투사 시합을 위해서 나갔다. 게로는 자리에 앉아 깊게 숨을 들어 마시고 있었다. 레나는 그가 무척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잠시 뒤에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함성이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만에 경기장이 떠나갈 듯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승부가 결정이 난 것이다.
레나는 검을 무릎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모아 잡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믿고 있는 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간절한 마음에 기도하고 싶었다.
3번째 레나의 차례가 되었다. 그녀와 함께 나가게 되는 것은 비슷한 또래의 검은 머리칼의 남자였다.
‘남자라······’
그녀는 주먹을 한번 쥐었다 펴면서 검을 들고 호페의 지시에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 마시면서 경기장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크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레나는 호페에게 배운 대로 중앙으로 들어서서 영주에게 인사를 하고 주변에 인사를 했다. 오늘 처음 경기에 나서는 레나였고 상대도 마찬가지로 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서면서 들고 있는 무기를 고쳐 잡았다. 침을 한번 삼키고 있던 레나는 상대가 양손에 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한 것이다. 보디세아는 상대가 가지고 나오는 무기에 대해서 적절한 대처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침착해라······침착해······’
자신뿐만이 아니라 상대 남자도 온갖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오른손에는 손도끼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검을 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야!”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면서 레나가 검을 고쳐 잡으며 뛰어 들었고 상대는 멈칫하는 듯하다가 곧바로 마주 나왔다. 그는 레난가 휘두르는 검을 오른손의 손도끼로 막아 내면서 왼손 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기 위해서 팔을 곧게 앞으로 뻗었다. 레나가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찌르기 공격을 피하고 거리를 두며 물러서려 하자, 남자 검투사는 이어지듯 도끼를 내리찍어 오면서 검으로 공격을 가해왔다.
레나는 연이어 이어지는 공격을 검으로 막아내면서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는 왼손 검으로 레나의 검을 쳐 내면서 오른손 도끼로 내리찍으려 했다. 그렇지만 레나는 상대가 강하게 자신의 검을 쳐내는 힘을 이용하여 몸을 완전히 비틀면서 내리치는 도끼를 피해 냈고, 완전히 비어 있는 남자의 옆구리를 검으로 내리쳤다.
살을 찢고 뼈에 검이 박는데도 상당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옆구리가 그대로 찢어진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무기를 떨어 드렸고 그대로 엎어졌다. 다가서려던 레나는 순간 멈칫 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보디세아가 특히 당부한 것이 웅크리고 있는 상대에 다가서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가 엄청나게 흘러나오고 있는 옆구리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남자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레나는 검을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 손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사람을 베어 본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대로 웅크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몸을 일으켜 야수처럼 레나에게 돌진해 온 것이다. 순간 관중들이 크게 탄성을 질렀다. 레나는 남자가 자신의 몸 위로 덮쳐 오자 자기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내질렀는데, 그것이 남자의 가슴에 자신의 검을 그대로 박아 버렸던 것이다.
“끄어어어······”
남자는 마치 허공을 보고 있는 듯한 눈으로 레나를 바라보며 부들부들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면서 반쯤 벌어진 그의 입속에서는 무엇인가 풍선에 공기가 빠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털썩 무릎을 꿇으면 쓰러졌고 검을 빼낸 레나는 피가 분수처럼 앞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서 이빨을 딱딱거리며 부딪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남자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앞으로 털썩 쓰러져 버렸다. 레나가 정신을 차린 것은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 때문이었다.
‘내가 이겼다······’
그녀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살아남았던 것이다.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것이다.
“잘했다.”
레나가 지하에 있는 공용 목욕탕에서 피에 젖은 몸을 씻고 있을 때 보디세아가 다가와 그렇게 말을 해 주었다. 그녀가 놀라 고개를 돌아보니
“살아남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더 힘들어 질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레나가 뭐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녀는 다른 말없이 되돌아섰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는 보디세아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레나는 자신이 매우 지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죽어가고 있던 그 사람 을보고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싶었다.
‘나······’
그녀는 양팔로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웅크리고 앉으면서 가늘게 흐느꼈다. 겨우겨우 울음을 참았다. 울어봤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살아 나간다. 살아 나가서······’
그녀는 눈가를 닦으면서 일어섰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뜻밖에도 게로가 서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 어깨를 기대서고 있다가 그녀를 보자 자세를 고쳤다.
“잘했다. 살아남았잖아. 축하해!”
게로의 말에 레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너도 사람 죽인 거야?”
“······응······”
그의 대답에 레나는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왼손으로 앞으로 흘러내린 갈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어떻게든 나갈 거야. 이곳에서 죽을 수 없어······”
게로는 지나가는 투로 그렇게 말을 했다. 레나가 놀라 뒤돌아보고 있을 때 그는 목욕을 하기 위해서 옷을 벗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린 그녀는 자신의 방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녀 검투사들이 서로를 볼 수 있을 때는 공용 목욕탕 밖에는 없었다. 다른 때는 서로 스쳐 지나가는 정도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서로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지만 여자 검투사들끼리 자리를 차지하고 간단하게 레나의 첫 검투사 신고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을 자축해 주고 있었다. 간단하게 고기와 술이 내려왔던 것이다. 영주는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지만 검투사들에게 매우 잘 대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보디세아는 무척이나 두려워했다. 보디세아는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로 별로 말이 없고 친구도 사귀지 않았다.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영주가 가끔씩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레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축하한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잔을 내민 사람은 머리를 완전히 밀어 버린 넬라라고 하는 여자였다. 눈이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겁이 많은 것 같았는데 실제로도 겁이 많은 편이었다. 올해 20세라고 들었다.
“고마워······”
레나가 빙긋 웃으면서 잔을 들었다. 모두들 같은 노예 신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서로를 죽여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보디세아는 서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고 했었다. 지금 보디세아는 이 자리에 앉아 있기는 해도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 간단하게 자신의 고향 얘기들을 했다.
서로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제각각이었다. 고향도 틀리고 처음 들어 보는 곳도 있었던 것이다. 전쟁 포로나 해적들에게 사로잡힌 경우도 있었고, 넬라는 도박 빚을 진 아버지가 딸을 노예로 팔아 버린 경우였다. 몇 번의 저택을 거쳐 결국에는 검투사가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되어 버렸다.”
보디세아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애써 듣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너는 아무 말도 없니?”
누군가 그렇게 말을 하니 보디세아는 핏 웃기만 했다.
“너는 어쩌다가 검투사가 된 거야?”
“······나? 글쎄 그걸 안다고 해도 노예 검투사 신분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잖아······”
그녀는 평소와 같은 말투로 대답을 했다. 레나가 잠시 듣고 있다가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어차피 처지가 같은 사람들 아니야······”
“······웃기는 군······”
냉랭하게 대답을 하고 있던 보디세아였다. 그녀는 약간 앞으로 흘러내리고 있던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러고 나서 비웃는 듯한 얼굴로 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꼭 살아남아 헤어진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살아 나가지 못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맞는 말이라고 했다.
“뭐 상관없잖아? 죽으면 그만인 거······”
보디세아는 그렇게 말을 받으면서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들어 마셨다. 그러고 나서 그대로 일어서 버렸다.
“원래 저런 애야······상관없잖아?”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차피 서로 죽고 죽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자유를 찾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렇지 못하게 될 것이 더 확실하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 나간다.’
레나는 마른 침을 한번 삼켰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희미하게 비추어지고 있는 전등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보게 된 것이 언제쯤인가 싶었다.
‘에인샤······’
이제 13살인 자신의 동생이었다. 아주 간단하게 노예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허무하게 헤어져 버리게 되었다.
‘허무해······반드시 살아남겠어······’
그녀는 그렇게 굳게 다짐을 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주먹을 한번 쥐었다가 손에 들고 있는 잔을 단숨에 들어 마셨다. 순간 뱃속에서 욱신하는 느낌과 함께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겨우 참았다. 넬라가 조심해서 들이마시라는 말에 레나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세 취기가 올라왔던 것이다. 앞에 놓여져 있는 고기를 입안에 넣고 씹어 먹었다. 열심히 먹고 기운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살아남을 거다. 반드시······’
레나가 눈을 돌렸을 때 가냘픈 몸매의 검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셀라네. 호페하고 있다가 온 거야?”
셀라네는 호페의 배려로 검투사 훈련을 받지 않았다. 호페가 요즘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것도 그녀를 사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완전하게 그의 여자인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는 남자에 의해 노예 신분이었지만 행복함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셀라네는 매우 다정다감한 여자로서 거칠게 검투사로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어딘지 모르게 호감을 가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영주도 별다르게 호페의 일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지가 않았다.
그녀도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지만 그래도 이들 중에서 가장 자신들을 오래 기억할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결코 셀라네를 배척하거나 나쁘게 보지 않았다.
“축하해요. 레나······”
“고마워요.”
레나는 빙긋 웃으면서 셀레네가 내준 잔을 받았다. 다시 술을 한잔 마셨다.
“보디세아는 역시 이런 자리에 앉지 않는 군요.”
그녀는 자신이 죽여야 할 때 거리낌 없이 죽이기 위해서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고 싶어 하지 않아했다. 어차피 죽게 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이다.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일 것이다. 보디세아가 감정 없이 상대를 죽인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레나는 계속해서 아까 자신이 가슴을 찔러 죽은 사람이 내뱉고 있던 그 괴이한 소리를 잊어버릴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술을 한잔 마신 레나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시 비틀거리자 넬라가 그녀를 부축해 주었다.
“가서 자둬!”
레나는 자신의 힘으로 가겠다고 하면서 넬라를 뿌리치고는 비틀거리며 자신의 방쪽으로 향했다. 모두들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잘했다고 할 수도 없고 잘못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보디세아는 자신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흐트러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와는 영주의 밤 시중을 종종 같이 하기 때문에 다른 여자들에 비해 친분이 있는 편이었다.
‘레나······’
하지만 자신이 죽여야 할 상대로 나선다면 거리낌 없이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살아야 한다면 말이었다. 결코 남을 위해서 희생하지 않겠다. 했다.
‘남을 위해서는 결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던 그녀는 물끄러미 조용히 불타고 있는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어지럽게 펼쳐지고 있는 불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하아······정말로······”
보디세아는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도 반드시 살아야 했다.
발바이스제국력 10년 6월 22일 레나는 공용 목욕탕에서 하루 종일의 땀과 피로를 씻어 내면서 오늘도 하루 살아남아 있다는 것을 안도하고 있는 남자 검투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예라는 것들이었다. 자신들은 평민들이 아니었고 노예 신분인 것이다. 주인이 마음대로 죽여도 상관없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주인의 부속물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들 중에서 금발의 건장한 체구를 한 젊은 남자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게로였다. 그가 다른 검투사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있는 던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있던 레나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남자들이 그렇게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니 얼굴이 붉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쓱한 기분이 들어서 되돌아서서 슬그머니 자신들이 잠드는 방쪽으로 걸어갔다. 오늘밤은 영주가 찾지 않았다. 보디세아도 오늘은 부르지 않았다.
오다 보니까 보디세아는 자신의 방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싶었다.
호페의 방에서는 셀레네와 호페가 정담을 나누고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호페는 셀레네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것 같았다. 레나는 지금 영주의 잠자리에 함께 들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영주가 몸 위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영주는 자신과 보디세아를 같이 불러들여 한 침대에서 뒹구는 적이 많았다. 그것을 무척이나 흡족해 하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나자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던 레나였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
언제 나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보디세아처럼 자유의 몸이 될 것을 바라면서 그것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도 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사람은 모두 죽인다.’
17살의 나이였지만 보디세아는 살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주가 자신의 침실로 불러 올 때도 묵묵히 참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와 에인샤를 만나야해!’
계속해서 그 생각을 하면서 이곳에서 결코 질 수 없다고 했다. 일단 굳게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곳에서 죽어 봐야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보게 된 게로의 몸이 순간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떨려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춥고 습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고 개인적으로 쓰는 침대에 몇 가지 간단한 가구들도 있었다. 반쯤 마시다만 술병을 손에 든 레나는 그것을 조금 들어 마셨다. 입술만 좀 적신 다음에 조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자신의 목숨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면서 살아가는 생활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간절하게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검투사로서 삶이란 너무나도 지독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죽여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죽였다. 그 사람을 죽이지 않는 다고 한다면 자신이 죽게 되기 때문에 죽여야만 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 사람도 필사적이었을 것이다. 보디세아는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검투사도 죽였다. 서로 그렇게 친했다고 했었는데 영주는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하면서 두 사람을 그 자리에 내보냈던 것이다.
서로를 죽이지 못한다면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과 같은 검투사 훈련을 받지 않고 있는 셀레네가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기회를 보자······’
레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자신의 침대에 누웠다. 몸이 무척 피곤했기 때문에 생각 외로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발바이스제국력 10년 할베인(7월) 보델(토요일) 23일 알리샤 레나는 떠나갈 듯한 검투사 경기장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이제 또다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녀의 상대는 얼마 전에 들어온 잘 알지 못하는 검은 피부의 여자였다. 왼손에 방패를 잡고 오른손에 검을 들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