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uff RAW novel - chapter 854
의무실을 빠져 나온 크라우프는 이제 좀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이제 22시 정도 까지는 우선 피곤한 육체를 달래고 22시 30분부터 다시 밀린 일을 처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00시 식당이 다시 열리면 내려가서 자정 식사를 한 후 03시나 04시까지 업무를 보고, 한 3, 4시간 정도 잠을 자두겠다며 가만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
기함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티아라와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몰려드는 업무 때문에 서로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티아라의 모든 것이 그리웠지만 지금은 바쁜 일 때문에 만나지 못하게 되니 안타까워하는 자신을 달래며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해 침실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그새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크라우프가 가지고 있는 휴대 전화기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전화를 받아 보니 이스할의 함장 도리스 마라카 대위였다. 좀 쪽잠을 자두려는데 또 무슨 귀찮은 일이 생겼는지 싶어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불쾌감을 나타내며 높아졌다. 이것 때문에 마라카 대위가 잠시 머쓱해 했지만 그녀는 급한 일이나 함교로 좀 올라와 주셔야 하겠다고 부탁했다. 크라우프가 중장이기는 했지만 급한 일이라고 한다면 짜증을 내더라도 함교로 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인지 마라카 대위의 부탁은 간결했다.
“그래 알겠다.”
크라우프는 투덜거리면서도 영악한 대위라고 잠시 화를 내며 급한 일이라고 강조한 점 때문에 함교 위쪽으로 올라섰다.
“무슨 일인가?”
생각 외로 빨리 크라우프가 올라오자 마라카 대위는 경례를 올려붙이며 보아 주셔야 할 내용이 있다면서 에이센의 민수용 공용 회선에 잡힌 긴급 입수 영상을 확신시켜 주었다. 다시 재방송되고 있는 내용에서는 방금 전 입수한 에르바 시티에서의 대 학살극이 집중 부각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려 있는 가운데 에르바 시티 외각에서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질이 고르지 못한 영상에는 수많은 포탄들이 투발되어 새까맣게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영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에나!”
마치 궤도 포격을 감행하는 것과 같은 모습의 폭발 장면이 연속해서 벌어지고 있었고 얼굴은 나오지 않고 있었지만 몹시 떨리는 남성의 목소리는 지금 바르디아인들이 에이센인 집단 거주 구역을 청소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포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중포 사격이군!”
크라우프는 폭발의 모습을 지켜보더니 예전에 만드레일 대륙에서 엠더 광산을 두고 지상전을 벌였던 시절을 떠올리며 궤도 포격이 분명하다고 떠들어 대는 이스할의 오퍼레이터들에게 냉정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크라우프에게 쏠렸지만 그는 짧은 한 숨과 함께 중포가 맞다고 설명 하면서 발바이스의 전차 하리크의 주포 180mm의 폭발과 발바이스가 운용하는 580mm 거점 공격용 중포의 폭발이라면 이 정도의 폭발력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하리크의 180mm 포는 1분에 대략 45발이 평균 발사 속도이고, 580mm 포는 1분에 10발을 쏘던가? 의외로 580mm 거점 공격용 중포의 발사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지.”
상대무기에 대한 제원을 읊어낸 크라우프는 길게 탄식을 한 후 바닥을 군화발로 몇 번 두드렸다. 이런 때 모두의 앞에서 의례적인 연기 활동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그냥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후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감정이 충실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월 1일 일요일 초대형 잠수한 가틱스 클라투스가 보유하고 있는 바리스타의 격납고를 내려 보고 있던 클로리사 발라트 대위는 가틱스 클라투스가 보유하고 있는 바리스타가 현재 사용되는 것들이 아님을 깨닫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너도 한 대 타 보고 싶니?”
어느 순간 클로리사의 뒤쪽으로 가틱스 클라투스의 함장 데릭 오시무스 중령이 다가와 클로리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물었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던 클로리사는 빙긋 웃으며 오시무스 중령에게 돌아서더니 이내 그러고 싶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한테도 바리스타를 한 대 정도 내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녀가 간절한 눈빛으로 데릭 오시무스 중령을 바라보니 그는 오히려 자신이 부탁하고 싶은 것이었다면서 파일럿에 자원한 클로리사의 머리카락을 슬며시 어루만졌다.
“저도 의미 있는 일을 한 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제까지 했던 일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표정의 클로리사에게 오시무스 중령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렇겠지. 특히 그 쬐끄만 검은 머리의 계집애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도 할 수 있는 일 아니겠나?”
오시무스가 칭찬을 해 주자 잠시 클로리사는 키득거리고 웃으면서 아름다운 입술로 감사함을 표시했다.
“다 죽여 버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요.”
눈을 크게 뜨고 마치 어린애가 보채듯이 똑바르게 오시무스 중령을 바라보는 클로리사에게 그는 슬며시 얼굴을 앞으로 숙여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 얹었다.
“그래! 고맙다. 네가 힘써 주겠다고 하니 나도 안심이다.”
가볍게 키스를 해 준 오시무스는 화장기가 없는 얼굴이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클로리사의 얼굴을 한 번 쓸어 만져 주었다. 바로 이 순간 오시무스 중령을 호출하는 소리가 들렸다. 되돌아서야 한다. 그는 되돌아 서기 전 오시무스는 일반인들을 예의 보급 기지에 모두 내려 준 후 제대로 한 번 놀아 보자면서 기대감을 부풀게 만들었다.
“그때 까지만 조금 참아 줘! 알겠지?”
오시무스가 격려해 주니 클로리사는 알겠다며 생기 넘치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10월 2일 00시 순양함 이스할의 구드 바렌브룩 대령은 자신의 침실에서 소위 말하는 9월 30일의 악몽 사건이 전국적으로 보도됨으로서 에이센 민간인들의 비난이 연일 쏟아지고 있고, 발바이스 인들을 몰아내자고 하는 시위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음이 에이센의 공용 회선을 메우고 있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울러 이제는 어떻게 촬영 된 것인지는 몰라도 바르디아인 집단 거주 구역 까지 발바이스 군인들이 중포 사격을 감행하고 수많은 군복을 걸치지 않은 시신을 트럭에 옮겨 실어 수송하고, 어느 곳에서 시신을 그대로 묻어 버리거나 로켓 추진제로 불태워 버리고 있는 장면들을 입수해 내보내고 있었다.
“쯧! 썩 그렇게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군.”
에이센 공용 회선에서 가감 없이 시체들이 불타고 발바이스 병사들이 이죽거리면서 시체들이 수북이 쌓인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십여 개의 목을 들어 보이면서 기념 촬영을 하듯,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다.
바로 이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가 싶어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 보니 뜻밖에도 다이레아가 서 있었다.
“자나?”
상의에 군복 안쪽에 받쳐 입는 티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고 군복 바지 차림이기는 했지만 화장기 하나 없이 머리카락을 온통 풀어 헤친 상태였기 때문에 다소 의외였다.
“아닙니다. 마티스 준장님. 몸이 회복되신지 얼마 되시지 않았는데?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마주 서 있던 다이레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빙긋 웃어 주었다.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어깨 위까지 흘러내리고 있는 모습에 비추어진 매혹적인 모습은 마치 바렌브룩 대령과 즐거운 밤이라도 보내기 위해서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런 매력적인 여성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다이레아가 전혀 자신과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애초부터 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괜찮다고 한다면 한 잔 하겠나?”
갑자기 말을 꺼내는 다이레아에게 바렌브룩 대령이 깜짝 놀랐다. 그러자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자신과 솔티 준장 그리고 시어리 대령이 모두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수뇌부를 잘 이끌어 준 바렌브룩 대령에 대한 작은 성의라면서 다른 두 사람도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는 바렌브룩 대령이 여러 가지 일로 피곤한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길게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라면서 슬며시 한쪽 눈을 감고 고운 목소리로 부탁하는 바렌브룩 대령은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이레아를 따라 가니 솔티 준장의 방에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시어리 대령과 솔티 준장이 바렌브룩 대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지 않고 있었는데?”
다이레아가 피식 웃으며 다른 두 사람의 옆 자리에 앉았다. 곧 바렌브룩도 어색하게 다이레아와 단 둘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두 사람이 있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정해진 테이블에 앉으며 잠시 걱정을 했다.
“각하께서······참모들이 술을 마신 것을 아시면 어떻게 나오실지 걱정입니다.”
그러자 대뜸 다이레아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괜찮아! 으이그! 걱정도 팔자다. 병사들이야. 전투 끝나면 상황 끝이지만 지휘관들은 최소한 3주는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고,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그냥 이 상태 이대로 후퇴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 말이지. 한 잔씩 받으라고. 알겠어?”
결심을 굳힌 바렌브룩 대령이 먼저 다이레아가 따라 준 술잔을 받아 들었다. 다이레아가 솔티 준장과 시어리 대령에게 술을 따라 주고 바렌브룩 대령이 다이레아의 술잔을 가득 채워 주었다. 모두들 한 모금씩 입안에 술을 흘려 넣고 별것 없는 마른안주를 씹었다.
“그나저나 세 분 이제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걱정이 컸습니다.”
바렌브룩 대령이 마른안주를 씹기 전 세 사람에게 걱정을 하니 솔티 준장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살았으니 다행이지 말이야. 내 바램에는 이 녀석도 좀 다쳐서 이번에 치료 받는 중에 아예 좀 크게 재건해 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좀 아쉽다.”
잠시 기침을 하면서 장난스레 사타구니 쪽을 오른손으로 툭 치고 있는 솔티 준장에게 다이레아가 웃는 얼굴로 오른손으로 그의 왼쪽 허벅지 위를 가볍게 툭 쳤다. 갑자기 말없이 듣고 있던 시어리 대령이 왼손으로 눈썹 쪽을 긁적이며 한 마디 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재건되면 한 동안 약에 의존해야 한다고 합니다. 잘 서지 않아서 말입니다.”
일순간 무엇이 우스운지 시어리 대령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이레아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그럼 자신은 가슴이나 더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을 그랬다고 대답하며 투덜거렸다.
이것에는 일순간 모두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웃음을 참느라고 한참을 고심했다. 모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다이레아가 볼멘 표정을 짓고 있자 솔티 준장은 애써 이 자리가 어색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을 막은 후 바렌브룩 대령에게 자신들의 빈자리를 채워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저야,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칭찬해 주는 세 사람에게 슬며시 고개를 숙인 바렌브룩 대령에게 다이레아는 고맙다고 대답하며 묵묵히 술잔을 기울여 한 모금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시르피드 XII호에 많은 추억이 있었는데,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그 최후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군.”
그 배와 운명을 함께 한 수많은 동료들을 위해 건배를 하자고 하는 다이레아에게 모두 묵묵히 들고 있던 술잔을 비우고 다시 잔을 채운 후 그것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 잠시 씁쓸한 표정만을 지은 후 말없이 잔에 든 술을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씁쓸한 술맛이 지금 자신들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10월 3일 발바이스와 뮤틸레 족 연합 함대 수뇌부는 에이센 공용 회선을 통해 에르바의 상황이 발표되자 강한 의혹을 제기하며 영상의 유출 경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가 시작되는 동안 에르바 행성 곳곳에서는 에이센인들에 의한 지상전이 개시되었고, 아울러 일부 바르디아인들 조차도 무장 투쟁에 참가하게 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신경이 에르바 행성으로 쏟아지고 있을 때 라노멘 행성계에 대한 공격의 주체가 세갈 마이야 하페텐 그리고 워너 폴크로 바뀌었고, 본래 50만 척 남짓한 공격 전력이 무려 2,000,000척의 함대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공격의 주체가 바뀐 것은 라노멘 행성계에 조지 월터 부치 대장이 이끄는 대략 2,000,000척 이상의 함대가 배비되어 있고, 아울러 에르바 행성계 근처에 있던 여러 가지 선박 수리 시설들과, 식량 생산 플랜트 그리고 에르바 행성에 비축되어 있던 다량의 식량과 전투 물자들이 모두 라노멘 행성계로 옮겨 갔다는 정보가 입수 되었기 때문이다.
입수된 정보를 토대로 자칫 에르바 행성계에 만족하다가 가까운 곳에 2백만 척이나 적 함대가 장기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도저히 그대로 보아 넘길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 백작이 지휘하는 50만 척 남짓한 전력으로는 절대로 라노멘 행성계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져 전격적으로 공격의 주체가 세갈 마이야 하페텐과 워너 폴크로 교체 되었다.
발바이스와 뮤틸레 족의 연합 함대는 라노멘 행성계에 대한 공격의 주체가 바뀌게 되었고, 에르바 행성에서 거주민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었지만, 발바이스와 뮤틸레 족의 연합 함대는 이 사이 에르바 행성계에 대한 완전 장악을 완료했다.
연합 함대는 에르바 행성 곳곳에 남아 있던 잔적들을 소통하고 미처 에이센인들이 파괴하지 못한 각종 시설들을 접수했다. 특히 잔존되어 있던 전략 설비 중 식량 생산 플랜트와 병기 생산 설비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선박 수리시설의 40%25 이상을 온전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접수된 나머지 시설들도 에이센군이 철수하면서 제대로 폐기 처분을 하지 않아서 주요 설비 몇 개만 교체한다면 100%25 재사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전체적으로 잔류되어 있는 물자 생산 시설과 선박 수리 시설의 70%25 가까이 1개월 이내에 발바이스와 뮤틸레 족 연합 함대를 위해 100%25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이 내려졌다.
이 정도라고 한다면 극심한 전투 물자 부족 때문에 고심할 필요 없이 오히려 에이센군의 물자 생산 시설을 이용해 에이센군에게 대항할 수 있는 충분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연합 함대의 수뇌부는 보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에 한껏 고무 되었고, 일부 지휘관들은 에이센 함대 1천만 척에 대해 대등한 전투가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10월 4일 01시 10분 활동 중에 있던 다른 중형 잠수함에게 클로리사를 제외한 나머지 승무원들을 인계한 초거대 잠수함 가틱스 클라투스호는 인계 작업을 마치고 다시 깊은 대양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잠수함의 지휘데스크에서 데릭 오시무스 중령은 표준시를 나타내고 있는 원자시계를 바라보며 에르바 행성에 남아 있는 잔류 병력들의 총사령부로부터 내려온 명령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에르바 시티에서 남쪽으로 1,750km 떨어진 엘렘 대륙에 있는 시버린 시티를 향해 보병 1개 연대의 공격이 개시될 것이니 이들의 탈출을 지원해야 하는데, 그나저나 1개 도시를 공격하는데 1개 보병 연대 7,500명으로 가능할지 모르겠군. 뭐······나로서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지만 말이야.”
오시무스 중령은 피식 웃은 다음 10월 7일 정도에 발바이스 와 뮤틸레 족 연합 함대가 라노멘 행성계 쪽으로 출정할 것이니 이때부터 에르바 행성의 전체에서 대대적인 활동이 재개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훗훗······10월 7일부터 재미있어 지겠군. 후후후.”
그는 엷게 웃음을 남긴 후 격납고 쪽을 돌아보겠다는 말을 남긴 후 지휘 데스크를 빠져 나왔다.
가틱스 클라투스의 격납고에 준비되어 있는 바리스타는 현 바리스타 메이커인 HVN의 전신인 VSM에서 제작한 테무게 였다. 테무게는 형식 번호가 VSM-GR-350-테무게 이며 지상전 전용으로 개발되어 중형에 중장갑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 가틱스 클라투스의 격납고에 있는 테무게는 VSM이 20년 전쟁 말엽과 그 이후에 국지전 전용으로 개발 생산한 기체들로서 연식으로 따진다면 거의 30년 가까이 된 구식 기체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국지전 전용으로 사용한다면 현재의 만능형 바리스타에 비해 결코 뒤떨어 지지 않는 고성능 기체였다.
테무게는 워낙 기본 설계에서부터 지상전 전용으로 제작된 탓에 기체의 기본 구조가 매우 견고 했다. 물론 처음 생산된 상태 그대로 현재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제네레이터를 신형으로 교체하고 여러 가지 전자 장비들을 최신형으로 바꾼 후 아울러 현재 파일럿들에게 익숙하도록 콕핏을 최신형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거치고 난 지금 충분하게 현재에서도 100%25 성능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장비할 수 있는 기본 무장으로는 본래 380mm 테무게 전용 실체탄을 발사하는 바주카를 기본 무장으로 갖추고 있었지만, 현재는 신형 제네레이터를 사용해 출력이 향상된 탓에 380mm 테무게 전용 실체탄을 발사하는 바주카 대신해 여유 있는 동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380mm 바주카 보다 파괴력이 뛰어난 하이파워 빔 바주카를 장비하고 있었다.
이것과 함께 테무게는 강력한 하이파워 빔 바주카와 기본형 빔 라이플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며 기체의 사이드 스커트에 로켓탄 포트를 장비하고 있고, 기체의 후부 스커트에 35기의 미사일을 장비하고 있고 광검과 기체의 두부 바로 아래쪽에 격투전용 머신건을 갖추고 있었다.
테무게가 비록 중형에 중장갑을 갖춘 고성능 기체이기는 하지만 20년 전쟁 말기와 파츠 베이스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테무게는 총합적인 화력 면에서 자카운에게 밀리고 지상전 전용이라는 기체의 한계 때문에 자카운 같이 같은 약간의 개수 작업만 펼친다면 어느 곳에서든 활용이 가능한 만능형 기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기체의 생산 단가가 자카운의 180%25에 달해 초도 생산분과 일부 분쟁 지역에서 사용되기 위해 발주되었던 생산된 물량 전부가 자카운으로 대체되기로 결정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전 기체가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군의 창고에서 봉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 슬슬 폐기될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에르바 행성에서의 저항이 결정되자 뜻밖에도 테무게가 주목 받게 되었다.
자카운이나 스부타이가 비록 만능형 기체이기는 했지만 지상전이 중심이 될 에르바 행성에서의 결전은 테무게가 휠씬 유리했다. 자카운과 스부타이가 소위 말하면 인간처럼 두 다리로 지상을 걷거나 달리는 것으로 이동 방식을 삼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테무게는 중형 기체로서 양쪽 다리에 별도의 엔진과 제네레이터를 장비하고 호버크라프트를 사용해 지상을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지듯 기동할 수 있었다. 호버크라프트를 이용한 이동 방식 때문에 이동력 또한 자카운 이나 스부타이 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화력적인 면에서는 자카운이나 스부타이 에게는 미치지는 못했지만 일격 이탈과 신속한 기동이 생명이 될 잔류병들의 활동에서 지상을 스키를 타듯 미끄러지듯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발바이스의 크누트와 베르터 그리고 라피니온 같은 기체들은 감히 따라오지 못할 지상전 기동력을 갖추고 있으니 이들의 생존력을 높이고 전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아울러 개량된 핵융합 엔진과 제네레이터로 호버크라프트를 개량한다면 충분하게 장시간 해수면 위에서도 수상 스키를 타듯이 해수면 위에서도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저항군의 중심이 될 잠수함 전단에서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가틱스 클라투스 호의 격납고에서는 테무게가 출동 대기 준비를 마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 테무게와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네므 주류 기지에서 백효연 원수의 주도하에 개발된 차타이 II 改 였다.
차타이 II 改는 형식 번호가 VSM-GR-270-차타이 II이며 개발 시기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알아 둘 것이 있었다. 20년 전쟁을 크게 3번의 구분 단계로 나누는 구분은 보통 다음과 같이 나누는 방법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1단계는 바르디아의 침공으로 에이센이 로이드 행성계 까지 밀려났던 7년 전쟁을 20년 전쟁의 1단계로 둔다.
2단계는 7년 전쟁 후 에이센이 절치부심하여 바르디아의 중심인 바로 이곳 에르바까지 진격해 나와 데카우 요새를 무너뜨린 후 양측이 강화 조약을 맺은 1차 바르디아 원정 전쟁을 지칭하는 2번 째 단계로 구분한다.
3단계는 강화 조약이 무너지고 에이센이 재차 원정을 감행해 에르바 행성계가 함락되고 바르디아의 잔당들이 발바이스를 성립할 때 까지를 20년 전쟁의 기간으로 보고 있었다.
차타이는 바로 20년 전쟁의 기간 중에서 7년 전쟁이 종결되고 1차 바르디아 원정 전쟁이 개시되기 전의 백효연 원수가 네므 주류기지 사령관으로 재직하게 되는 동안 네므 주류 기지의 바리스타의 연구 및 생산 시설을 이용해 생산해낸 상황에 맞게 전투기와 인간 형태로 전환이 가능한 가변식 바리스타의 선구인 차타이의 최종 형태였다.
차타이 I이 1차 바르디아 원정 전쟁 기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면, 차타이 II는 차타이 I의 문제점인 가변 시스템의 변환 시간문제와 장갑의 강화 그리고 무장의 강화에 중점을 두어 개량된 기체였다.
차타이 I이 단순하게 대 출력 빔 라이플 1기와 미사일 12기 그리고 광검 2기만을 장비하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차타이 II는 항속 능력의 증가와 장갑이 강화되고 기체의 변형 시간도 5초에서 3.5초로 짧아짐과 동시에 무장도 성능이 향상된 대 출력 빔 라이플과 미사일도 18기로 장비할 수 있는 포트를 증가시키고 근접 격투전 전용의 기관포를 추가했다. 그리고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광검과 기본적으로 전용 방패를 장비할 수 있도록 개량 했다.
그런데 차타이 II는 제 2차 바르디아 원정 전쟁을 끝으로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고 치라운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그 이유로 내세워 진 것이 치라운의 등장과 자카운의 등장이었다. 차타이 II는 총합적인 화력 면에서 이들 두 기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차타이 시리즈는 더 이상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더 이상 기체의 개발을 유지시킬 백효연 원수가 파츠 베이스의 반란에 가담함으로서 그녀의 업적을 어떤 식으로든 깎아 내리기 위한 군부의 앙갚음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차타이의 생산 단가가 치라운과 자카운 보다 10%25가 높고 치라운과 자카운에 비해 정비성의 효율이 떨어지며, 자카운과 치라운의 활동 시간 증가에 따른 개량화 작업과 20년 전쟁후 벌어진 군비의 대폭적인 삭감은 보다 발전될 가능성이 높고 활용도가 높았던 차타이의 성장을 더 이상 유지시킬 수 없었다.
지금 테무게와 마찬가지로 창고에 처박혀 폐기될 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타이가 가지고 있는 전투기로 변형이 가능한 기능이 주목되었다. 곧 차타이를 사용하면 코바 전투기를 이용하는 것 보다 휠씬 에르바에 잔류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생존성을 높여 줄 수 있고, 아울러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에이센 수뇌부는 창고에 처박힌 차타이 II를 에르바로 공수해와 제네레이터를 교체하고 전자 장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식으로 개량화 작업을 거쳐 차타이 II 改라는 이름으로 에르바 잔류군이 배비하고 있었다.
클로리사가 본연의 모습을 내보이며 가틱스 클라투스의 격납고에서 한창 바리스타의 정비를 도와주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데릭 오시무스 중령은 슬며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10월 5일 정식으로 데이고 주류 기지와 에르바 행성계 사이에 위치한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은 크라우프는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는 본래 바르디아인들이 베니지오 조르마 행성계라고 불리우던 행성계로 20년 전쟁 후 에이센인들이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로 개명했다.
유인 행성은 제 2태양계의 3번째 행성 알로나 행성이고 제 2태양계의 태양은 페피타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알로나 행성은 5개의 대륙을 가지고 있는데 북반구에 탄센트 대륙과 자리아 대륙이 있고, 탄센트 대륙의 남동부 25km의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북반구에서부터 적도 그리고 남반구에 이르기 까지 길게 펼쳐져 잇는 거대한 에드먼드 프리도스 대륙과 이어져 있다.
에드먼드 프리도스 대륙의 동부와 탄센트 대륙의 남부 그리고 자리아 대륙의 서부를 감싸 안고 있는 헬리프 대양의 동남부 지역에 알렉산드로 대륙이 마치 섬처럼 위치해 있다. 자리아 대륙의과 알렉산드로 대륙의 사이에는 알로니 행성의 적도를 가르는 부분에는 다수의 크고 작은 열대 기후의 섬들이 위치해 있다. 나머지 1개 대륙은 알로나 행성계의 남부 극지방에 위치한 벨라니에 대륙으로 대부분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에드먼드 프리도스 대륙의 서부와 자리아 대륙의 동부 그리고 알렉산드로 대륙의 동부 지역에는 거대한 대양인 버크 자비어 대양이 펼쳐져 있으며, 이 버크 자비어 대양의 가운데 면적 3,500km의 타원 형태를 갖고 있는 카롤라 섬이 위치해 있다. 중심 도시는 자리아 탄센트 대륙의 중부 레베카 산맥에 위치한 인구 450만 명의 샤넬리 시티이며 샤넬리 시티에서 북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베아트리스 광야에 인공적으로 건설된 거대한 담수호 조시아 호에 우주항이 건설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대규모 농업과 목축업 그리고 자리아 대륙 남부와 알렉산드로 대륙 사이에 위치한 도서를 이용한 관광업이다. 에드먼드 프리도스 대륙의 열대 지역에서는 대규모 목재를 생산한 임업과 구리 생산업이 발달되어 있고, 알렉산드로 대륙에는 대규모 노천 철광산이 개발되어 있다. 벨라니에 대륙에는 어업이 크게 발달해 있으며 버크 자비어 대양의 가운에 있는 카롤라 섬은 전체가 군사 기지로서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알로나 행성의 표준 중력 1.01이 이었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 곳이군.”
크라우프는 이곳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를 거점으로 삼아 1천 만의 함대를 재정비하고 차후 에르바 행성계에 대한 공격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전체적인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조금은 쉴 수 있으면 좋겠군.’
전투의 사후 처리 때문에 쪽잠을 자며 바쁘게 지내다 보니 다이레아와 티아라와 함께 있으면서도 제대로 만나게 되지 못했는데 잠시간은 브랜다 조슬리 행성계에서 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0월 6일 이제 24시간 후면 라노멘 행성계 쪽으로 출병하게 될 세갈 마이야 하페텐과 워너 폴크의 연합 함대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오콘 다비토는 알리샤 레나와 함께 셔틀을 이용해 검은 묵시록 호에서부터 에르바 행성 내부로 내려와 에르바의 대지와 공기를 마음껏 즐겼다.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있기는 해도 에르바 행성의 하늘은 더 할 수 없이 맑고 푸르렀고, 대지는 한껏 생명력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람들은 괴로운 듯 피를 뿌리고 모든 것이 일순간에 타오르고 있는 생명의 불길들은 에르바 행성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9월 30일 에네르 자드 하페텐의 지상전 병력들이 에이센인 집단 거주 구역과 바르디아인 거주 구역에 대해서 대대적인 180mm 전차포 사격과 580mm 거점 공격용 중포 사격을 감행한 탓에, 에르바 시티의 한 구역이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이것 때문에 에르바 행성 전체적으로 미처 철수하지 못한 에이센인들이 저항군을 조직하고 있었고, 아울러 일부의 바르디아인들 조차 저항군을 조직해 발바이스 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은 없군!”
슬슬 에르바 행성을 점령하고 난 이후 점령지의 바르디아인들이 식량 부족을 호소하며 식량의 배분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큰 문제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지오콘 다비토는 발바이스와 뮤틸레 족의 연합 함대가 에르바 시티에 진주하고 있다고 하는 상징적인 의미로서 궤도상이나 우주항에 사령부를 설치하지 않고 에이센군이 버리고 간 기지를 접수해 사령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연합 함대 수뇌부의 자존심이라고 한다면 자존심이었다.
우주항을 점령하고 있는 부대에서 마련해 준 헬기에 올라 자리를 잡은 지오콘 다비토는 옆 자리에 레나를 앉히고 헬기를 출발 시켰다. 문득 헬기를 타고 가면서 굳이 안전한 우주항을 두고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에이센군이 버리고 간 기지를 사령부로 사용하고 있는 수뇌부의 어리석음이 무척이나 안타깝게 느껴졌다.
‘어리석은 인간들······’
잠시 쓴웃음을 짓고 있던 그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알리샤 레나의 어깨에 손을 얹은 후 오른 손으로 그녀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헬기의 아래쪽으로 아직까지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전차와 장갑 차량들이 불타고 있는 모습들과 더불어 수많은 군용 차량들이 지상전 병력들과 장비들을 꾸준하게 이동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에이센 놈들은 포기를 모르는 끈질긴 놈들인데······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잠시 걱정이 되었던 지오콘 다비토는 곧 헬기가 착륙할 것이라고 하는 헬기 조종사의 신호에 알겠다며 내릴 준비를 서둘렀다.
10월 7일 00시 겉으로는 여유를 가진 채로 라노멘 행성계 쪽으로 세갈 마이야 하페텐과 워너 폴크가 2,000,000척의 함대를 이끌고 출병을 감행하는 것이었지만 내실 에르바 행성계의 목줄기와 같은 라노멘 행성계에 에이센 함대가 최저 2,000,000척이나 버티고 있다고 하는 것은 결코 달갑기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노멘 행성계는 에르바 행성계에서 사르메스 쪽으로 7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행성계 이다. 유인 행성은 제 7태양계의 4번 행성 유슬림이 유일 했다.
특이하게도 행성계 주변에 이상 중력장을 비롯한 항행 불능 지역이 다수 위치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라노멘 행성계는 3군데의 안전한 항해가 가능한 지역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이렇기 때문에 라노멘 행성계는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나오기도 무척이나 어려운 곳이었다.